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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72/120)

제72화

“손님 누가 온 거예요?”

에드가가 사라진 후 궁금해서 미칠 것 같던 나는 곧바로 물었다.

“센 공작이 왔더군.”

“아…… 자백제는 보내면 되는 건데 굳이 온 이유가 뭘까요?”

“아무래도 그쪽도 반려가 너인 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렇죠?”

예상했던 바였다. 나도 느껴지는데 상대는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양의 모양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갑갑하긴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면 신경이 더 쓰인다는 걸 모르시는 걸까.

“당분간 몸을 좀 사려야겠다.”

에드가의 표정을 보니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두말도 않고 곧장 거처로 향했다.

아무도 오는 이가 없어 외롭고 심심하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아니, 다 있으면 뭐 해. 사람이 나뿐인데!”

에드가의 그림자가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영 껄끄러웠다. 게다가 리온에겐 상대도 안 되는 것 같았는데.

“그나저나 리온은 대체 뭐 하고 있을까.”

못 본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나 찐하게 인사를 했기 때문에 여운이 꽤 길게 갔다.

눈만 감으면 그의 잔상이 어른거린달까.

최근 들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바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

나는 침대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문양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생길 거면 좀 예쁜 걸로다가 생기지. 붉은색에다가 마름모가 뭐야 마름모가…….

아무리 주인공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미 원작은 틀어질 때로 틀어졌을 터.

“아, 리온 보고 싶다.”

아무도 없으니 좀 편하게 이야기도 할 수 있을 텐데.

아니지, 아버지의 그림자에게 들키려나?

똑똑똑.

나를 이 한밤중에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응시했다. 저택과는 달리 한 방으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에 입구는 하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지도 않고 문고리와 눈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누구지?”

불안한데.

엘인가? 그림자일지도 모르잖아.

이럴 때 문을 열면 무슨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여 나는 얌전히 침대로 돌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똑똑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다시금 문 쪽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그래도 누군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야.”

“……리온?”

나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정말로 리온이 문 앞에 서서 나를 보았다.

“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보고 싶다 했는데 실제로 나타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 말에 리온은 옅게 웃었다.

“실제로 우리 오랜만이야.”

“그런데 다른 이들은 못 봤어?”

엘이 분명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나는 리온 뒤를 쳐다보려 했다. 그러자 그는 문을 닫고 들어와 나를 꽉 껴안았다.

“뭐야…….”

“보고 싶었어.”

그의 품에 안긴 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동안 좀 바빴어. 이런저런 일이 좀 있었거든.”

리온의 나른한 음성을 들으니 절로 미소가 번졌다.

내 손목에 푸른 리본이 없었음에도 그는 나를 알아본다.

그게 이곳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델테르가 오늘 찾아왔어.”

“뭐? 설마 너인 걸 알아차린 건 아니지?”

리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곤 손을 꽉 잡았다.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리온은 내 손길을 느끼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이내 액세서리를 빼어 냈다. 황급히 가렸지만, 소용없었다.

“……제법 문양이 보이네.”

“응, 갑자기 빨라진 것 같아.”

반려인 센 공작을 마주했으니 좀 더 빨라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리온도 제니스를 본 후 빨라졌으니까.

“마름모?”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표정을 굳혔다.

“맞나 보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리온은 내 뺨을 감싸며 싱긋 웃었다.

“왜 이렇게 야위었어.”

“응? 아닌데.”

나 엄청 잘 먹고 누워서 빈둥거리기만 했는데…….

왜 이렇게 찔리는 걸까.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다들 내게 관심 없어.”

“하긴, 마법사가 몇 명인데 다른 사람들도 바쁘겠지.”

리온과 침대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묘했다.

“엘르, 네 반려 말이야.”

“으응?”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누군지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리온은 내 손목에 나타난 문양을 문지르며 침음했다.

“붉은 문양을 가진 이면 위험한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나는 네가 그 말을 하는 게 왜 더 위험해 보이지.

“리온, 이상한 생각하지 마.”

“그래.”

“나 보고 말해!”

나는 리온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똑바로 마주 보게 했다.

“알았어.”

“정말이지?”

리온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얘가 나서면 진짜 반려 죽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공작인데, 일이 복잡해지고 말 거다.

안 그래도 에드가도 눈에 불을 켜고 방법을 찾고 있는데…….

“진짜 나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엘르, 걱정 마. 네가 싫어하는 짓은 안 해.”

그렇게까지 말하니 마음이 놓이긴 하다만.

“여전히 네 눈엔 내가 예뻐?”

요망한 리온이 붉은 눈동자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저 얼굴을 보고 누가 아니라고 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붉혔다. 진짜, 얘는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거야.

어릴 땐 순진했던 것 같은데.

떨어져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얘가 왜 안 하던 행동을 하고 그러지.

“제니스 황녀님은 별다른 이야기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온은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붉은 문양을 가진 이들의 특징에 대해서 찾아내고 있어.”

“특징이 있나 보네.”

“그동안 많은 이들을 찾아다녔어. 제국에 붉은 문양을 가진 이들은 거진 다.”

“……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그러니까 잠시만 잘게.”

리온의 숨소리가 이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는 리온에게 더는 말을 걸 수 없었다. 지친 기색이 훤히 느껴졌기 때문에.

* * *

“하…… 알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마법사는 이런 마나의 흐름은 처음 봤다. 무엇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탑주님께선 눈치껏 하라고 하셨지.’

그건 내부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일 테고.

황실에게 협조를 해 주는 것과 별개의 문제였다.

“상위 마법인건 확실합니다. 깔끔하고 흔적도 제법 빨리 사라지고 있는 걸 감안하면…….”

“마탑 내에서 이 정도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자가 있나?”

“죄송하지만, 이건 금지된 마법이라 불가능합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구사할 수 있는 자가 있긴 했으나…….

‘마탑주님과 따로 이야기를 해야겠군.’

카벤은 저를 마탑주가 콕 집어 보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곤란하군.”

“제국 내에는 마탑에 들어오지 않은 마법사들도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을 조사해 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도록 하지. 오늘 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남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델테르는 마법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놈 밑에 있더니 죄다 비슷해져 가는 건지.

시간도 늦어서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럼 이만.”

마법사들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정말 딱 할 일만 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델테르는 어쩐지 당한 기분이 들었다.

“……한 방 먹었군.”

급한 마음에 앞뒤 제대로 재 보지 않고 뛰어든 제 잘못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정도의 마법은 구사할 줄 알았으니까.

* * *

“……네가 왜?”

델테르는 제 방으로 왔지만 뜻하지 않은 손님으로 인해 당황스러웠다.

“하루 종일 안 보이셔서요.”

“내가 그놈에게 뭐라도 했을까 봐 걱정했나 보지?”

“…….”

제니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를 훑는 시선에 적대감이 가득했다.

“하, 이 짓도 할 만하네. 내 누이가 나를 다 찾아오고.”

“별일 없으신 것 같으니 가 보겠어요.”

“이렇게 와 놓고 얼굴 보자마자 가면, 내 입장에선 좀 그런데.”

델테르는 제니스의 손을 잡아챘다. 맞잡은 손과 함께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건…….’

그의 얼굴에 만연하게 핀 미소와 제니스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아, 너도 드디어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나 보네.”

제니스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몇 걸음 떨어졌다.

“……뭐든 전하가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거예요.”

“제니스, 똑똑하게 생각해. 그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누구인지.”

델테르는 제 머리를 톡톡 치며 씩 웃었다.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는데. 엘르 영애 말이야.”

흠칫.

제니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자연스레 델테르에게 향했다.

“아니지, 이걸 알려 주면 재미가 없겠네.”

델테르의 말에 다시금 제니스는 앞으로 걸었다.

드레스 자락을 꽉 쥔 그녀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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