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120)

제100화

웅성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리온의 눈도 가늘게 뜨였다.

“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하나밖에 남지 않은 루비온 가문에서 전해져 오는 보석!”

진행자는 조심스레 보석을 들어 보이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구매 여부를 가늠하는 것처럼 재빠른 눈빛이었다.

“지금부터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면 손을 들어 주세요.”

꽤 간단한 방식이었다.

다른 방법으로 진행이 되면 초대된 이가 아닌 게 들킬까 걱정했는데.

스윽 사람들을 보니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리온은 그들의 입찰 방법을 지켜봤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을 든 이들에게 다가가 뭔가를 전해 줬다.

거기에 금액을 적는 것 같았다.

어차피 초반에는 그리 큰 금액이 오고 가지 않을 터.

조금 더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문지기의 행동으로 봐선 제가 뺏은 초대장의 주인은 꽤나 거물급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나서는 게 맞겠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붉은 보석을 빤히 보았다.

다섯 개를 다 찾을 생각은 없었다. 하나만 얻어도 출처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예상외의 소득으로 일이 빨리 해결될 것 같았다.

‘돌아가면 카벤에게 상이라도 줘야겠군.’

그래야 저도 한동안 움직이기 쉬워질 테니까.

* * *

“죄송하지만, 오늘은 들어갈 순 없습니다.”

“……아니 왜지?”

두 번째 집을 보러 왔더니 문전 박대를 당했다.

나와 헤센 경은 멍하니 집사를 쳐다봤다.

“주인님께서 오늘 집을 비우셨습니다.”

“집을 내놨으면 사람이 언제든 보러 올 수 있다는 것도 모르나?”

나는 언짢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냈다.

집사는 곤란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문을 절대로 열어 주지 않았다.

외관이 너무 내 취향이라 순순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집을 살 생각이니 안내해 주게.”

그래서 나는 냉큼 질렀다.

산다는데 안 된다고 내쫓겠어?

“죄송합니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내쫓네.

게다가 집사는 기계처럼 ‘죄송합니다’를 서두에 붙였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런 날씨에도 빛나는 외관을 보니 안은 어떨지 가늠이 됐다.

“안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만 보고 나오겠네.”

“안 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어차피 경비도 있고, 시종도 다 있을 텐데.

내가 뭐라도 훔쳐 갈까 봐 그러나?

이 차림새로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건 좀 자존심이 상했다.

‘도대체 안에 뭐가 있길래?’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집에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니면 왜 막는 거지.

중개업자 소개받고 온 건데!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여기까지 와서 못 보고 갈 생각을 하니 억울했다.

“집주인은 어디에 있지?”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곤란하네.”

장애물이 생기니 저택이 더 예뻐 보였다. 지금 꼭 그런 마음이었다.

“값의 두 배를 쳐주지.”

“……네?”

“내가 지금 당장 급해서 말이야. 어차피 중개업자의 말을 들으니 며칠 내 집을 비운다고 하던데.”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집사를 흘겼다.

한 번 마음에 드는 걸 본 이상 다른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내부가 별로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네, 그건 사실입니다.”

“흐음, 자네의 태도가 영 못 미덥군. 거짓말이라도 한 건가?”

“아닙니다! 정말로 며칠 내 집을 비워 드릴 수 있습니다!”

집사는 손사래를 치며 힐끔 문을 보았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일개 집사라 함부로 문을 열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주인이 있는 곳을 말해. 내가 가서 허락을 맡을 테니.”

“하, 하지만…….”

아 정말 깐깐한 사람이네.

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처럼 수도까지 왔다 갔다 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그래서 한 번에 끝내려고 하는 건데.

“벨루아 가문이라고 들어 봤겠지.”

“베, 벨루아라면…… 히익!”

집사의 손이 달달 떨렸다.

그래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런 반응은 이상할 게 없었다.

심지어 황실에 척을 진 상태로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아. 익히 들어서 알겠지.”

“그, 그럼…… 시내에 있는 술집으로 가 보십시오!”

“……술집?”

아니 말을 너무 안 해 줘서 비밀 장소라도 되는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술집이라니.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집사가 나를 떼어 내려고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정말입니다! 여기 이 표시가 있는 곳에 가면 계실 겁니다.”

“……거짓말이면 꽤 곤란해질 거야.”

“네, 네! 아무렴요!”

집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센은 협박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정말 부녀가 날로 닮아가니 좋아해야 할지…….”

“어쩔 수 없잖아요. 헛걸음하긴 싫은데.”

“그냥 다음 장소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저도 여기가 1순위이긴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마지막 곳도 보고 오시죠.”

헤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집주인을 만나겠다고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긴 하지.

“그럼, 이렇게 해. 세 번째 집을 보고도 별로면 집주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 어때?”

“네, 그렇게 하시죠.”

헤센과 타협을 끝낸 나는 아쉬움 마음을 안고 마차에 올라탔다.

빗속을 질주하는 마차에 하루 종일 타고 있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멀미 날 것 같아.”

“저도 그렇습니다.”

“거짓말.”

헤센은 아무렇지 않게 올곧은 자세로 마차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요동을 치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정말 흔들리지 않는 헤센스가 따로 없다.

“얼마나 더 가야 해?”

“곧 도착합니다.”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헤센이 리스트에 적어 둔 것이었기에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두 번째 저택에 두고 온 상태였다.

“……아가씨 표정을 보아하니, 두 번째로 마음을 굳히셨군요.”

“응, 반드시 두 번째여야 해.”

“내부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럴 리 없어. 괜찮을 거야. 겉만 봐도 딱 답이 나오거든.”

건축에 쓰인 재료만 봐도 돈을 얼마나 들였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황실과 거리를 따졌을 때 처음이 나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접근성이었다.

“두 번째가 자객이 들기 힘들 것 같았어.”

“……아가씨 요즘 괜찮으신 거 맞죠?”

“물론이지. 그냥 적이 많은 것 같아서 조심하려고.”

어쩐지 나를 바라보는 헤센의 눈빛이 측은하게 보였다.

“술집이랬나? 일단 가 보자. 집주인을 만나서 내부 좀 보게 해 달라고 해야겠어.”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시려고요.”

“안 되는 게 어딨어? 두 배로 산다는데.”

분명 괜찮은 집을 파는 것과 동시에 며칠 내로 비우겠다고 했다.

그건 급히 어디로 떠나야 한다는 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나와 상관없으니 됐고, 집의 내부만 보게 해 준다면 뭐.’

헤센은 나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는지 마차에 잠자코 올라탔다.

“……아, 마차 말고 다른 게 있었다면 좋을 텐데.”

“수도에는 법적으로 텔레포트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리온은 잘만 오던데?”

“그건 마탑에서 오는 거지 않습니까. 그들은 독립적인 단체니까요.”

그렇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등을 기댔다.

마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또다시 속이 울렁였다.

* * *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다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나는 문지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술집인데 왜 못 들어간다는 거지?”

“오늘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도 나는데. 출입이 안 된다고?”

“예, 오늘은 초대받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무슨 술집이 이렇게 까다로워.

비싼 돈 내고 마시는 곳이라기엔 허름한데?

“금액이 얼마이든 지불하겠습니다.”

“곤란합니다. 돌아가십시오.”

융통성 없는 문지기 같으니.

얼굴을 보아하니 절대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사람 하나만 찾아 줘. 비로이드라는 분을 급히 만나야 해.”

“……그분은 왜?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아랫사람을 보낸 것으로 압니다.”

“뭐야, 여기 없어?”

나는 시종을 떠올렸다.

……이게 거짓말을 해?

“그럼 그 아랫사람이라는 사람 좀 잠시 불러. 물을 게 있으니까.”

“아, 거참. 알 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문지기의 표정이 험상궂어졌다. 작은 내가 깐족거리는 게 영 거슬린 모양이다.

하긴 젊은 영애가 술집에 와서 들여보내 달라고 떼를 쓰고 있으니 웃기긴 하지.

나는 헤센 경을 보며 씩 웃었다.

“벨루아 가문에서 왔다. 들어 봤을 테고, 술집이라면 융통되는 것들이 어디를 통해서 오가는지 알지 않나?”

“……벨루아 가문이라면.”

한순간에 문지기의 표정이 바뀌었다.

음지에서 활동했던 전적이 있어 그런가 꽤 효과가 있는 듯했다.

문지기는 곤란한 듯한 태도를 보이더니 이내 옆으로 비켜섰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한 번만입니다. 똑같이 망토를 쓰고 왔으니 그 사람을 찾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술집 들여보내 주면서 저렇게 생색을 내는 거야.

뭐 얼마나 맛있고 비싼 술을 팔길래 그러지?

헤센과 나는 힘겹게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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