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20)

제101화

“늦게 오신 분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혹시 몰라 망토를 뒤집어썼으니 망정이지.

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내 얼굴이 공개됐다면 나중에 곤란해졌을 것이다.

나는 내 집인 양 편안하게 손을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

술집이 아니었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모를 곳이긴 했다.

그래서 그렇게 어디 갔는지 안 알려 준 건가.

황급히 비로이드 대신 왔다는 이를 찾기 시작했다.

“아, 거! 참여 안 할 거면 자리라도 잡고 앉던가!”

날카로운 음성에 흠칫 몸을 사렸다.

뭘 사려고 저러는 거야?

진행자가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크기도 엄청 크고 동그란 모양의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나를 경쟁자로 보듯 사람들이 바쁘게 손을 들어 직원들을 불렀다.

그런데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그보다 이 안의 분위기는 다소 험악해 보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애가 타는 이들도 있었고 씩씩거리며 욕을 지껄이기도 했다.

“헤센 경.”

나는 작게 그를 불렀다.

그 역시 술집 안의 분위기가 이상한지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술집이 아닌 모양입니다.”

“내 생각도 그래. 경매 같은데 저거 시중에는 나올 수가 없는 물건이야.”

“……저게 뭔지 아시는 겁니까?”

사실 확실하진 않긴 했다.

저렇게 선명한 붉은 빛을 보자 한 가지 떠올랐을 뿐이니까.

루비온 가문에 보관되고 있던 보석.

저주의 근원.

그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가씨,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 돼.”

“……네?”

“저거 사야겠어.”

“네에?”

헤센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내게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대체 저거 사서 뭐 하시려고요.”

“쓸 일이 있어.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정말 필요한 거니까.”

“위험해지면 바로 나가는 겁니다.”

“걱정 마. 어차피 다른 이들 역시 이곳에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못할 입장일 테니까.”

헤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경매에 참여할 테니까 헤센 경은 비로이드 대신 온 사람을 찾아.”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아시겠죠?”

아, 아직 헤센은 모르고 있지. 나한테 어떤 힘이 생겼는지 알면 까무러칠 텐데.

나중에 놀라게 해 주기로 하고 나는 경매에 집중했다.

“네, 삼백만 골드 나왔습니다!”

진행자는 활짝 웃었다.

삼백만이라…… 통이 크네. 하지만 다들 저 보석의 값어치를 아는 듯했다.

죽어라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오백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마지막 보석입니다.”

진행자는 더욱 경쟁을 부추겼다.

나는 금액을 얼마를 부르면 다른 이들이 넘보지 못할지 고민했다.

‘천만 골드? 아니야 그것도 약해. 이천만 골드?’

그 정도면 다들 놀라 주춤할 것 같은데.

내가 모아 둔 재산은 집을 구매해도 티도 안 날 정도로 넉넉했다.

액세서리 아이템도 성공하는 바람에 수익이 엄청났으니까.

심지어 꾸준한 수리 비용도 들어오니 다달이 그 돈만 해도 굉장했다.

최근에 공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액세서리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고.

나는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이천만 골드.”

“……네?”

“못 들었어? 이천만 골드라고.”

“아, 알겠습니다!”

직원은 정신을 금세 부여잡고 진행자에게 가서 뭔가를 보여줬다.

“이, 이천만 골드! 사상 최대로 비싼 가격이 매겨졌습니다!”

그의 흥분과 함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더 없으십니까?!”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진행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천만 골드 이상을 부르는 자가 어디 있겠어.

나는 팔짱을 끼곤 붉은 보석을 보았다.

저걸 손에 넣어야 리온의 저주를 풀 수 있을 실마리를 찾을 텐데.

“삼천만 골드.”

“사, 삼천만 골드 나왔습니다!”

뭐? 이거보다 더 부른 사람이 있다고?

나는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헤센 경과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망토를 뒤집어쓴 그 남자도 나를 보고 있었다.

‘비로이드에서 보낸 사람인가 보네. 돈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엄청난 저택이긴 했지만, 고위 귀족도 그 정도 현금을 가지고 있긴 어려웠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면 알아봐야겠어.

나는 손을 들어 더 큰 가격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헤센 경이 다급히 손을 들어 엑스 자를 만들었다.

‘응? 왜 저래.’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얼마가 들어도 보석을 손에 넣어야 했다.

리온의 저주를 끝낼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센은 미친 듯이 손을 저으며 나를 말렸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망토를 쓴 남자가 살짝 망토를 젖혀 나를 빤히 보았다.

‘……리온?’

붉은 눈동자. 나만 볼 수 있는 리온의 것이 고스란히 닿았다.

그제야 나는 손을 내렸다.

진행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곤 보석을 상자에 담았다.

“삼천만 골드로 낙찰되었습니다. 25번분은 안쪽으로 와 주시면 됩니다.”

구매자도 철저한 익명으로 보호받았다.

틈을 타 헤센이 빠르게 내게로 다가왔다.

“아가씨 일단은 나가시죠.”

“잠시만, 리온이 왜 여기에 있어?”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망토를 쓴 사람을 찾았더니…….”

그를 보니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듯했다.

리온에게 당장 다가가서 묻고 싶었다.

‘비로이드가 보낸 사람을 찾으라니까 왜 리온이 거기서 나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망토를 쓰고 다른 사람인 척 있는 걸 보면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아마도 리온은 루비온 가문의 흔적을 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보석 경매를 알게 된 걸 테고.

나 역시 우연히 보석을 발견하게 되긴 했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리온이 구입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놓였다.

“일단 나가자. 아무래도 우리가 찾는 이는 여기에 없을 것 같네.”

“아, 그거 말입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줬습니다.”

“그래?”

“제가 다녀올 테니 마차에 타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가려 했지만 헤센은 강경히 만류했다.

문을 열고 술집을 빠져나가는데 문지기가 헤센의 어깨를 잡았다.

“왜 두 분이서만 나오십니까? 비로이드의 사람을 찾는다고 하시지 않았는지.”

“아, 찾았는데 일이 해결되었네.”

나는 싱긋 웃으며 문지기에게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건넸다.

“이건 보답이니 부담 갖진 말고.”

문지기는 제 손에 들어온 묵직한 주머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지나쳐 마차 앞으로 간 나는 다시 헤센에게 물었다.

“정말 혼자 갔다 올 거야?”

“마차를 타고 가다가 그자가 있는 곳에 멈춰서 내린 후 데려오겠습니다.”

뭐야, 가까운 데 있나 보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밖에 있다는 건가?

리온이 비로이드의 사람인 척 안에 있는 게 걸렸다.

아무래도 사고를 친 것 같다.

정말 바로 근처에 마차가 멈춰 섰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헤센 경은 마차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하니 또 예전 기억이 떠오르네.

나는 턱을 괴곤 마차 문만 뚫어지라 응시했다.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헤센 경의 어깨에는 웬 남자가 실신한 채 들쳐져 있었다.

“……설마 이게 비로이드는 아니지?”

“안타깝지만 맞습니다.”

나는 그제야 경악하며 고개를 저었다.

“숨은 붙어 있습니다만, 냄새가 너무 심해서.”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 주워 온 거야.”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했습니다.”

“알 만하네.”

누구의 작품인지 듣기만 해도 알 것 같았다.

비로이드의 초대장을 뺏어서 술집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비로이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우리가 발견한 것으로 해. 그래야 쉽게 안으로 들어가지.”

“예? 정말 이자를 데리고 저택에 가실 겁니까?”

“그래, 리온은 어차피 내게 찾아올 거야. 지금은 눈앞의 일부터 처리해야지.”

어차피 우리는 비로이드가 내놓은 집을 살 생각이었으니 좋은 기회이긴 했다.

습격당해서 쓰러진 그를 구해 왔다고 하면 시종도 문을 의심 없이 열어 주겠지.

의식도 없는데 뭐 어쩌겠는가.

손가락을 코에 대어 보니 숨은 잘 쉬고 있었다.

“빨리 가자.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어.”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난리가 날 것 같았다.

뭐 하고 왔냐고 물으면 집 계약서라도 보여 줘야 사고 친 걸 안 들킬 테지.

어차피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터.

시내에서 벨루아 가문의 여식이 돌아다녔다는 둥. 마차를 타고 집을 보러 왔다는 둥.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하루 종일 나를 앉히고 혼내실지도 모른다.

“으으으.”

비로이드는 조금씩 정신이 드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얼굴색을 싹 바꾸곤 호들갑을 떨었다.

“정신이 드시나요? 비로이드 님?”

“여, 여긴…… 당신들은 누구지! 나를 납치하려는 건가!”

“어머, 오해세요. 길바닥에 쓰려져 있는 것을 구했답니다.”

“내가…… 길바닥에 쓰려져 있었다니.”

그는 여전히 정신이 오락가락한 듯했다.

의식이 있으면 우릴 경계해 집 안으로 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헤센을 향해 눈짓했다.

그는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손날로 비로이드의 목덜미를 쳐 기절시켰다.

이럴 땐 합이 참 잘 맞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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