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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3화 (3/222)

3 화

제국의 요충지만 골라 파괴하는 그림자 마법사 '그린크로우'.

몽타주에는 약식으로 그의 별명 이 올라와 있었다.

그 당시에는 기억이 희미해서 알

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확인한 그 의 모습은 나이는 달라도,마법으 로 만든 몽타주와 똑같았다.

어떻게 남들이 모르는 요충지만 골라 습격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 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는 제국에 암약하던 첩자였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를 고발할 생 각이 없었다.

목숨이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었다.

황가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 무 사히 빠져나가기는 글렀으니,첩 자든 뭐든 힘을 합칠 필요가 있었다.

제이크의 손가락이 까닥이자,쥬 더스가 다시 메시지 마법을 걸어 왔다.

-너도 눈치챈 거지? 이 보고서 를 다 쓰면 바로 황성의 비밀 통 로에 묻힌다는 거.

황도에 몰래몰래 흐르는 풍문이 었다.

황실 내부의 암투가 벌어지면 황 성의 비밀 통로에 조용히 묻어 버

린다는 이야기.

어제까지만 해도 제이크는 그 말 을 믿지 않는 쪽이었지만,미래를 경험한 지금은 쥬더스의 농담이 진실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쓰는 게 아니야. 그때 일어난 일의 시간과 장소,이름을 정확하게 써 넣어야 해."

윌리엄에게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까닥이는 제이크의 손가락.

ー우선 내가 아는 내용을 이야기 해 줄게. 아무래도 어제 경험한 마법진은 일종의 복제 마법진인 듯해. 마나 형태를 물체를 복제해

서 마나로 구성된 가상의 공간에 복사하는 마법이지. 원래 그 마법 의 목적은 물체의 구조를 파악해 서...

윌리엄은 마법사답게 황성 지하 에 있었던 마법진에 대해 메시지 마법으로 신나게 떠들어 댔다.

덕분에 중간에 마나가 모자라 메 시지가 끊어지기도 했고,쏟아지 는 마법 이야기에 제이크의 행동 이 꼬이기도 했지만,결국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알아들었어?

제이크는 다시 손가락을 까닥거

렸다.

엄청나게 긴 설명이었지만,오랜 관록 덕분에 대충 어떻게 된 마법 인지 제이크도 알 수 있었다.

황성 지하의 고대 마법진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복제 마법진 이었다.

몇십 년 동안 대륙 전체에서 모 은 거대한 마나로 세상 전체를 마 나의 형태로 복제하는 마법진.

그리고 마나로 만들어진 틈새 차 원 속에서 복제된 세상이 수천, 수만 배는 빠르게 시간을 흘러가 게 하는 마법진이었다.

그곳에서 황태자와 세 소년,제 국을 비롯한 이 별의 모든 존재가 삶을 이어 갔었다.

그 복사된 세상에서 삶을 보낸 세 소년은 죽음 이후 그곳에서의 경험을 본래 자신의 머릿속에 복 사한 것이었다.

'결국, 마나로 이루어진 현실과 똑같은 가상 현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네. 그걸로 미래를 경험하 는 것이고. 황태자와 우리들은 그 세계의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이었다는 거지.'

제국은 황제가 들어설 때마다 유

적을 이용해서 미래를 아는 황제 들을 만들어 냈고,그 황제들은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제국을 이 끌어 온 것이었다.

당연히 미래를 아는 황제들은 전 지의 황제라고 불릴 수밖에 없었 고,대륙은 제국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이크는 절로 욕이 나왔다.

"제기랄,매트릭X냐!"

전생을 기억하는 그로서는 뜬금 없는 가상 현실의 등장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평생을 살아온 경험이 단지 가상

의 경험일 줄이야.

영화 속의 주인공이 현실을 알아 차린 뒤의 혼란을 제이크도 뼈저 리게 느낄 수 있었다.

ー정신 차려!

다행히 쥬더스의 메시지 마법 덕 분에 제이크의 흥분이 가라앉았다.

"아,죄송합니다. 잠깐 흥분했습 니다."

일그러진 제이크의 표정에 놀랐 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다만,자신 때문으로 착각한 윌

리엄은 기분 나쁜 얼굴로 제이크 를 바라보았다.

"쳇,좀 못할 수도 있지. 그런 거 로 화를 내고 있어."

물론 윌리엄 때문은 아니었지만, 다른 핑계거리가 없으니 제이크는 그냥 오해를 놔두기로 했다.

"좀 더 집중해 봐."

한참 서로 떠들다 보니 세 소년 은 이제 서로 반말로 떠들어 대는 중이었다.

물론 그들 중 두 명은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겉으로 보 기에는 평범한 소년들의 대화처럼

보였다.

그 뒤로 미래의 일을 정리하면서 제이크와 쥬더스는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쥬더스는 계속 메시지 마법으로 이야기했고,제이크도 글을 썼다 가 펜으로 덧칠해 지우는 방식으 로 쥬더스에게 간단한 말을 전했다.

둘이 숨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어느덧 해가 졌다.

세 소년은 앞으로 대충 4, 5년 동안 벌어질 일들을 적을 수 있었다.

각자 마법사에 관련된 이야기들 과 기사단과 전쟁에 대한 일,그 리고 그 밖의 큰 사건들.

당연히 서기였던 제이크가 적은 사건들이 제일 많았다.

'대충 반 정도는 감춘 것 같은 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뻔히 아는데 제대로 쓸 리가 없었다. 쥬더스도 숨긴 것이 있는 것이 분 명했고.

하지만 윌리엄은 열과 성의를 다 해서 자신이 아는 내용을 적었다.

다만 그가 기억하는 내용이 많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내일은 10년 뒤까지 마무리 짓 도록."

소년들이 쓴 내용을 확인한 마법 사는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리고 탑을 나섰다.

그 뒤로 기사와 병사들도 따라 움직였지만,그들이 나가자마자 바로 새로운 기사와 병사들이 들 어섰다.

교대 인원들이었다.

'밤에도 제대로 감시하려나 보 네.'

병사를 따라 방에 돌아온 제이크

는 침대에 앉아 오늘 하루를 되새 겨 보았다.

'우선,적어도 4, 5일은 시간이 있을 듯한데.'

하루에 5년치 정도면 그가 죽었 을 때까지 적기 위해서는 5일 이 상 적어야 했다.

물론 도중에 잘못될 수도 있지만,그래도 기준은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역시 감시하는 것을 보니,일을 끝내면 무사히 살아 나가기 힘들어.'

24시간 감시였다. 더구나 제국의

근간이 되는 비밀이니 일이 끝난 뒤 멀쩡할 가능성이 없었다.

'같이 갇힌 두 친구 중 종자 쪽 은 근육 머리를 가진 기사고,마 법사는 스파이라……'

메시지 마법으로 이야기하는 동 안에 쥬더스는 자기가 스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에 자신의 몽타주가 제 국에 나돌았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았다.

제이크가 몽타주를 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죽었으니,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죽은 모

양이었다.

'그럼 내가 제일 오래 살았던 건 가?'

종자 쪽은 제국이 무너지기 훨씬 전에 죽었고,황제도 원정을 떠났 다가 죽고,그 이후 제국이 망할 때 수습 마법사도 죽었으니,제이크가 제일 오래 살아남았다는 결 론이 나왔다.

'뭐,대륙의 마지막 인류 중 하 나였으니까……'

생각을 이어 가다 죽었을 때를 떠올린 제이크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의 죽게 된 원인인 마물의 침공.

인간 사이의 전쟁이나 제국의 멸 망 같은 거야 인류사에서 보면 별 것 아니었지만,대륙의 인간이 모 두 멸망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이 문제는 지금 고민해 봐야 소 용이 없었다.

당장 며칠 뒤에는 죽게 될지 모 르는 상황에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다니,오지랖도 그런 오지랖

이 없었다.

어쨌거나 제이크와 쥬더스는 둘 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낮 동안 합의를 봤다.

당연히 결론은 탈출이었다.

중간에 제이크가 윌리엄도 같이 하자고 했지만,쥬더스가 결사반 대했다.

자신들과는 다르게 바로 고자질 할거라고…….

윌리엄의 미래 모습이나 지금 하 는 것을 봐서는 쥬더스 말이 일리 가 있어,제이크도 더는 권유하지 못했다.

탈출 방법은 우선 쥬더스가 나서 서 찾아보겠다고 했다.

마법사에다가 첩자로 들어온 그 였기에 제이크도 그의 말을 수긍 했다.

그가 탈출 방법을 만들어 올 동 안 기다려도 되겠지만,제이크도 몰래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스 파이를 믿는다는 것은 어딘가 꺼림칙 했다.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일

나름 숨겨진 무기 하나는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도 보고서를 쓰는 것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병사들은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고,마법사도 이제는 소년들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기사만이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혹시 이번 대관식하고 황제 폐 하의 결혼식하고 같이 진행되는 건가요?"

"엄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일에 나 집중해라."

윌리엄이 조심스럽게 한 질문에 도 근위 기사는 무뚝뚝하게 주의 를 줄 뿐이었다.

"뭐,그 정도는 알려줘도 되잖습 니까? 결혼식은 취소되었어. 이번 에는 대관식만 거행될 거야."

다행히 마법사가 그의 말에 대답 을 해 주었다.

마법사의 말을 들은 윌리엄은 표 나게 안도했다.

"역시 미래가 아니라 환상일 뿐 이었어. 다행이야."

작게 중얼거렸지만,쥬더스와 제이크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름 머리를 쓰려고 한 모양인 데…… 역시……'

윌리엄도 바보가 아닌지라,자신 의 경험이 진짜 미래에 벌어진 일 인지 알고 싶어 했다.

거기다 다른 두 소년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는 것도 눈 치를 챘고…….

결국 그는 경험한 미래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해 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거기가 끝이

었고,잘못된 확신을 하고 말았다. '그 황제 폐하가 똑같은 여자와 다시 결혼할 리가 없지.'

미래의 경험 속에서 잘난 황비와 외척 덕분에 엄청 고생한 황제였다.

황제 성격에,다시 황비와 결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제국의 황제 중에 파혼이 많은 게 이런 이유일 수도 있겠구나.'

아쉽게도 윌리엄은 잘못된 질문 을 한 것이다.

두 번째 날에는 마법사의 말대로 앞으로 10년 뒤까지의 사건들을 적었다.

제이크도 첫날과 비슷한 양의 보 고서를 작성했다.

윌리엄은 조금 익숙해졌는지 첫 날보다는 많은 양을 써 넣었다. 단지 쥬더스의 보고서가 첫날보다 부실해졌다.

미래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겠지만,제이크는 한눈에 알 수 있었고,윌리엄마저도 갸웃거 릴 정도였다.

제이크가 몰래 주의를 주었지만,

쥬더스는 요지부동이었다.

'입장이 다르다는 건가?'

어쨌거나 제국 출신인 두 소년과 다르게 쥬더스는 적국의 출신이었다. 제국에 도움이 되는 보고서를 제대로 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들키지 않을 리 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 없겠어.'

제이크의 예상대로였다.

* * *

다음 날 아침,마법사는 쥬더스

를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모를 줄 알았어? 이렇게 빼먹으 면 내일부터는 식사가 없을 줄 알 아! 그리고 넌 오늘 빠진 부분 전 부 채워 넣어! 그때까지 넌 못 잘 줄 알아!"

다행히 첫날이라 큰 벌이 떨어지 지는 않았지만,불같이 화내는 마 법사보다 검에 손을 올린 기사의 날카로운 눈이 소년들을 소름 돋 게 했다.

다행히 쥬더스는 마법사에게 손 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마법사는 화를 풀었다.

그리고 보고서를 쓰는 시간.

쥬더스는 제이크에게 메시지 마 법을 보냈다.

'오늘 밤 탈출한다!'

역시,예상대로 시간이 얼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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