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
제이크는 검을 뽑을 준비를 하고 는 먼저 나간 쥬더스를 따라 복도 로 나갔다.
쥬더스가 먼저 속이고 배신을 준 비했으니,이제 둘 사이의 동맹은
끝난 것이다.
마나의 폭주라 폭발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을 듯했지만,이곳 에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복도로 나선 제이크는 쥬더스를 보고 그가 또 한 번 뒤통 수를 친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복도로 나섰던 쥬더스는 막 철로 된 탑의 정문을 닫고 있었다.
"멈춰!"
그 모습을 보고 문을 향해 달려 갔지만,쥬더스가 문을 닫는 것이 더 빨랐다.
철컥.
닫친 철문은 바로 열쇠를 가진 쥬더스에 의해 밖에서 잠겼다.
쾅! 쾅!
"무슨 짓이야!"
철문을 두드리며 제이크가 소리 쳤지만,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너한테는 좀 미안하게 생각해." 의미 없는 쥬더스의 사과가 철문 밖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쾅! 쾅! 턱!
그리고 철문을 내려치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쥬더스가 떠나면서 문에 방음 마
법을 걸어 버린 것이었다.
"과연 스파이 마법사답다고 할 까. 신기한 마법들을 사용하네."
문 뒤에서 더 이상 인기척이 들 리지 않자,제이크는 바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반쯤은 각오하고 있 었으니 실망도 크지 않았다.
어차피 적국의 스파이였다.
끝까지 같이 탈출하리라고는 생 각하지 않았다.
다만,폭탄으로 깔끔하게 다 죽 여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 을 뿐이었다.
"젊은 몸이라 생각이 다시 어려
진 걸까?"
머리를 툭툭 두드린 제이크는 급 하게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언제 마나 폭탄이 터질지 알 수 가 없었다. 따로 확인한 탈출로로 빨리 달아나야 했다.
"크윽!"
제이크의 방에서는 잠든 기사가 배를 잡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배에 감돌던 붉은 빛은 이제 가슴 까지 퍼져 있었다.
제이크는 기사가 있는 방을 지나 좀 더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복 도에는 각각 다른 두 소년의 방을
지키던 병사들이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제이크는 쥬더스가 빠져나간 방 을 살펴본 뒤에 아직 잠겨있는 종 자 윌리엄의 방 앞에 섰다.
"밖에 무슨 일입니까!"
방 안에서는 좀 전부터 윌리엄이 소리치고 있었다.
밖에서 그런 소란이 일었는데 마 법으로 잠든 것이 아닌 이상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고지식한 제국의 종 자. 아니,미래의 기사.
윌리엄은 함부로 문을 박차고 나
오지 못했다.
"나,제이크야!"
"네가 왜 밖에 나와 있어?"
"쥬더스가 기사와 병사들을 재우 고 도망쳤어!"
물론 제이크도 탈출을 도와주었 지만,월리엄에게 밝힐 이유는 없었다.
"미친놈! 탑을 나간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도망치면 가족 은 어떻게 하려고!"
역시,윌리엄도 생각이 아예 없 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실을 인정한 것일지도.
하지만 스파이인 쥬더스나 남은 가족이 없는 제이크는 그와 달랐다.
"나와 봐! 쥬더스가 열쇠로 정문 을 잠가 버렸어! 더구나 기사님에 게 마법을 걸어서 지금 엄청나게 아파하셔!"
"열쇠를 가지고 도망간 거야? 젠 장! 일이 꼬이네. 비켜 봐!"
윌리엄의 말에 제이크가 문 옆으 로 비켜섰다.
그와 동시에.
쾅!
문을 박살 내며 윌리엄이 복도로
뛰쳐나왔다.
'역시,미래에 기사를 경험한 자 가 마나를 다시 못 일깨울 리가 없지.'
제이크가 문을 부수며 등장한 윌 리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 안,그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님은?"
"내 방 안에!"
제이크의 말에 윌리엄이 열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짝짝!
"기사님! 일어나 보세요! 기사 님!"
붉은빛을 내뿜는 기사의 배를 보 고 놀란 윌리엄이 뺨을 치며 기사 를 깨우려고 했지만,기사는 꿈적 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사를 깨워 보던 그는 결국 포기하고 탑의 정 문을 향해 달려갔다.
틱! 틱!
그는 좀 전에 제이크가 한 것처 럼 철문을 두드렸고,곧이어 마법 에 소리마저 막힌 것을 알게 되었다.
마법이 걸린 것을 확인한 윌리엄 은 인상을 쓰며 다시 한 번 마나 를 끌어 올렸다.
오랜 시간 마나를 단련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지금 가진 육체는 이제 겨우 마나를 맛본 육 체.
갑작스럽게 끌어 올린 마나 덕분 에 그는 여러 곳에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죄다 뒤집어쓸지 도 몰라. 무사히 나가게 될지 아 슬아슬한 판에 일을 만들고 있어. 역시 마법사라는 족속은 애나 어
른이나 다 개새끼들이야."
마법사에 대한 편견이 가득 찬 말을 내뱉으며 윌리엄은 끌어올린 마나를 몸에 두르고 철문을 향해 돌진했다.
쿠웅!
나지막이 울리는 충돌음.
아쉽게도 철문은 끄떡도 없었다.
하지만 기사는 포기할 줄 모르는 족속이었다.
다시금 문을 향해 돌진하는 윌리 엄.
쿵!
이번에도 문은 멀쩡했지만,충돌
음은 좀 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내 문에 건 마법이 깨지고 있 었다.
"한 번 더!"
윌리엄이 문을 향해 돌진했다!
쾅!
윌리엄이 철문을 두드리는 동안, 제이크는 열심히 윌리엄의 방을 뒤지고 있었다.
제이크가 윌리엄을 괜히 방에서 끄집어낸 게 아니었다. 제이크는 이 방에 볼일이 있었다.
제이크는 무력이나 마법을 지니
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오랜 시간 쌓아 온 서기관의 기억이었다.
그것 때문에 지하 유적의 마법진 에 그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탈출 방법을 찾아 볼 수 있었다.
탑에 갇힌 이틀 동안,그는 남들 모르게 탑을 열심히 조사했다.
원래라면 황도의 내성에 이런 탑 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은 탑은 지하 유적처럼 황도가 건설
되기 전부터 남아 있었던 유적 중 하나였다.
풍화되고 파괴된 다른 유적과 달 리,멀쩡한 형태가 남아 있는 이 탑은 일종의 문화유산으로,황실 이 남겨 놓은 것이다.
실제로는 지하 유적과 연동되어 있을지도 몰라 파괴하지 않은 것 이었지만,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 던 제이크는 이 탑이 과거 유물이 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미래의 기억 속.
제국이 멸망하고 황도가 무너지 는 그때.
남아 있던 황실 사람들 일부는 유적의 비밀 통로를 이용해서 포 위망을 뚫고 황도를 빠져나갔었다.
그리고 황도 밖에서 황실 사람들 과 만난 제이크는 도망자가 된 황 실 사람 중 한 명에게 비밀 통로 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단지 흥미 위주로 듣는 이야기일 뿐이었지만, 한참 기억 을 되새겨 보니 이야기 속에 지하 통로의 입구가 '탑'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제이크의 방과 복도,
그리고 철문 앞 로비는 지하로 통 하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좀 전에 쥬더스의 방을 확인해 보았을 때도 입구의 흔적 은 보이지 않았으니,마지막으로 이 방만 남은 것이다.
"찾았다!"
윌리엄의 방을 뒤지던 제이크가 마지막으로 나무 침대를 밀친 뒤 감탄사를 터뜨렸다.
희미하게 낙서처럼 패인 문양. 마치 알파벳의 V자처럼 보이는 문양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아직은 황실에서도 유적의 비밀
통로를 알지 못할 때였다. 그러므 로 소년들을 이곳 탑에 가둔 것이 었고.
제이크가 듣기로는,유적의 지하 통로 입구는 마나로 열고 닫히는 구조였다.
황실의 강력한 마법사들과 대마 도사가 있는데도 오랜 시간 입구 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이상한 일 이었지만,그것은 유적이 만들어 진 고대 마도 제국과 현재의 마법 은 그 발현 형태가 달랐기 때문이 었다.
지금의 마법은 마법사의 심장에
마나 서클을 만들어 마법을 발휘 하는 구조.
하지만 고대의 마법은 주변 세상 에 강력한 의지를 부여해서 기적 을 일으키는 형태였다.
'내 손은 마나를 느낄 수 있다!' 며칠 전에 이어 다시금 제이크는 자신의 손에 강한 의지를 부여했다.
'내 손에 마나가 모여든다!'
조금씩 푸른빛을 흘리기 시작하 는 제이크의 손.
그는 푸른빛의 손을 문양 위에 올렸다.
"너는 문을 열어 나에게 진실을 보여라!"
작지만 강력한 주문.
강한 의지를 실은 말은 손에 담 긴 마나에 의해 기적을 일으켰다.
우웅.
나지막한 울림과 함께 문양과 그 주변은 희미한 빛을 홀리기 시작 했다.
고대 마법을 얻은 대마도사 '드 베르만'이 미래의 세상에 퍼뜨린 고대 마나 기술.
덕분에 황실은 황성 지하의 비밀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제이크에게 넘 어와 지금,그의 눈앞에 마법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정말,그녀의 말대로 비밀번호 를 터치하는 건가?"
바닥의 빛은 사각형이 가로 세로 로 두 줄씩 선이 그어져 9등분 된 모양이었다.
전생에 보았던 비밀번호를 입력 하는 버튼과 비슷했다.
제이크는 그녀에게 들은 내용대 로 빛으로 만들어진 버튼을 눌렀다.
아쉽게도 전생과 다르게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입력은 제대로 된 듯했다.
철컥!
잠김이 해제되는 듯한 소리가 들 리고, 문양이 새겨진 돌바닥이 밑 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지하 통 로.
지하로 향한 계단은 어둠 속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확신하고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왼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쥐어져 있었고,뒷목에서는 식은땀이 계 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곧 정신을 차린 제이크는 바로 복도에 걸린 횃불을 낚아챈 뒤, 방으로 돌아가려다 걸음을 멈추었다.
쿵! 쿵!
"젠장!"
아직도 윌리엄은 철문에 몸을 들 이박고 있었다.
이미 철문에 걸린 마법이 깨져 큰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
만,아직 탑으로 오는 사람은 보 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제이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윌리엄에게 소리쳤다.
"윌리엄! 따로 나가는 출구를 발 견했어!"
급한 상황이었지만,아무것도 모 르는 윌리엄을 두고 갈 순 없었다.
"출구?"
제이크의 외침에 윌리엄이 돌아 보았다.
"지하로 통하는 길이야! 탑 밖으 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제이크의 말에 윌리엄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네가 그걸 어떻게 찾은 거지? 그리고 그리로 가면 우리도 도망가는 거잖아!"
말하는 동안 기사가 있는 방에서 붉은빛이 밖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내가 미래에서 알아낸 거야. 우 선 도망쳐야 해. 저 기사한테 걸 린 마법은 폭파 마법이야. 여기가 다 터져 나갈 거야!"
어쩔 수 없이 제이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빠르게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오히려 역효 과를 만들었다.
"좀 전에는 모른다며? 더구나 사 람을 터뜨리는 마법이 있다고? 잠 깐,왜 저 기사는 네 방에 쓰러져 있는 거지?"
무사히 넘어간 것처럼 보였던 문 제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맞아,전부터 이상했어. 나 빼고 둘이서 몰래 쑥덕거리는 눈치였는 데. 둘이 같이 도망치려고 한 거 맞지? 근데 너 혼자 남겨진 거 고?"
어이없게도 바보 기사가 순식간에 명탐정이 되어 버렸다.
"아하! 결국,네놈도 도망가려고 나를 꼬드긴 거군? 둘이 나를 바 보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제국 기 사를 무시하고도 괜찮을 줄 알았어? 좀 있다가 기사님들이 오면 바로 사실대로 고발할 테니 기다 리고 있어!"
윌리엄이 명탐정으로 변한 것은 그렇다 치지만,문제는 흥분한 그 가 제이크의 말을 전부 무시했다.
덕분에 제이크는 윌리엄을 설득 할 방법을 잃어버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윌리엄을 보던 제이크가 다시 한 번 그를 설득하 려고 했지만,아쉽게도 더는 시간 이 남지 않았다.
화악!
기사가 있는 방에서 홀러나오던 붉은 빛이 복도마저 가득 메웠고, 동시에 거대한 열기가 방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제이크는 바로 방 안에 있는 지 하 통로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부풀어 오른 기사의 몸이 터져 나갔
다.
콰아아아앙!
폭발은 복도에 누워 있던 병사들 을 휩쓸었고,철문 앞에 서 있던 윌리엄도 집어삼켰다.
그리고 벽과 천장,탑 전체를 무너뜨렸다.
쿠구구구궁.
황성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 던 마지막 남은 지상 유적이 미래 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파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