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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7화 (7/222)

7 화

돌들이 정교하게 배치해 만든 지 하 통로.

다행히 그동안 들어온 사람이 없어서인지 지하 통로는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무슨 대리석 바닥 같은 느낌이 네."

슬쩍 벽의 먼지를 닦아 보니 불 빛에 얼굴이 반사될 지경이었다.

덕분에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제이크였지만,이곳에서 치료는 불가능했다.

"확실히 고대 마도 제국이 지금 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나 봐."

얼마 전에 본 미래를 경험하게 만드는 유적도 그렇고 지금 걸어 가는 통로도,제국의 문물을 뛰어 넘은 것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감사할 따름이지.'

덕분에 이렇게 도망칠 수 있게 되었으니,제이크는 이곳을 만든 고대의 장인에게 감사를 표할 뿐 이었다.

다행히 황성 아래의 지하 통로는 던전 같은 것이 아니라 평범한 지 하 통로였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이미 들은 이야기였었지만,실제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제이크의 긴장이 조 금 풀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간 뒤, 그는 통로 중간에서 오래되어 변색한 갑옷과 낡은 무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갑옷들과 무기들이 통로 모서리 에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 서 고대인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철제 장비만 남은 것을 보니 죽 은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뼈마저 남지 못한 것 같았다.

제이크의 기억으로는 미래에 이 곳을 지난 황실 사람들은 이 물건 들을 그냥 지나쳤었다.

그에게 비밀 통로에 대해 말해 준 사람도 이 갑옷이나 칼에 대해 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한창 도망치는 도중에 낡은 갑옷이나 무기가 소 용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제이크는 그들과 다른 입 장이었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제이크는 서기실에 복귀할 수도,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죽은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겠지만,어디 가서도 제이크라는 이름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 가족은 남아 있지 않고, 후견인 쪽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

았으니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은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먹고사는 게 문제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옷과 횃불,그리고 기사의 검뿐이었다.

더구나 시간이 꽤 지났는지 배에 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이 대로는 밖에 나가서 강도나 구걸 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제이크는 흩어진 갑옷과 무기를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 세상은 전생에서 본 소설처럼 고대의 유물이 엄청난 값어치를 가지지 못했다.

마법이 발달한 고대인 만큼,오 히려 갑옷이나 무기들은 지금보다 좋지 못했다.

혹시 마법에 걸려 있었던 무기나 갑옷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났으니 마법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확인해 보니 이곳에 있는 갑옷과 무기들도 만지면 부스러질 정도로 삭아 있었다.

결국,무기나 갑옷도 모두 쓸모 없는 물건일 뿐이었다.

"역시 없을 리가 없지."

하지만 제이크가 살피는 것은 망 가진 무기나 갑옷이 아니었다.

갑옷이 부서져 나가는 것을 무시 하고 유물들을 뒤지던 제이크는 바닥에 떨어진 동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대다수는 구리 동전이지만,반짝 이는 금빛이 흐르는 동전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역시,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어."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로 제이크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미래의 기억을 봐도 자신은 확실 히 악운에 강했다.

평범한 서기가 대륙의 마지막 생

존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니,보통 운이 아니었다.

'제발,이번에도 도와주길.'

알고 있는 신들 모두와 천사들에 게 잠시 기도를 보낸 그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12시간 뒤,제이크는 지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밀 통로는 다행히 그리 길지 않았다.

유물을 찾은 얼마 뒤,그는 비밀

통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비밀 통로의 출구가 문제였다.

비밀 통로의 출구는 황도의 하수 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제이크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황실 사람들과는 다르 게 제이크는 황도의 하수도 구조 를 알 수 없었다.

나름 수백 년을 확장해 온 하수 도였다.

더구나 제대로 된 하수도도 없는 다른 나라와 달리,거의 지하 도 시를 방불하게 하는 거대한 하수 도를 구축한 제국이었다.

덕분에 제이크는 출구를 찾기 위 해 하수도를 진이 빠지게 헤맸다.

결국 깨어난 지 14시간 만에,그 리고 지하 통로로 들어선 지 20 시간 만에 그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거의 하루를 굶어 배가 등에 붙 어 버렸지만,나올 때는 해가 없 는 밤이라 몰래 하수구를 빠져나 가기에 나쁘지 않았다.

제이크는 악운이 도와주었는지 하수도 출구는 빈민촌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기야 악운이라기보다 당연한

일이었다.

황도의 하수도 출구가 빈민촌 말 고 다른 곳과 연결될 리가 없었다.

빈민촌에서 밖으로 빠져나온 하 수도는 촘촘한 철망으로 만들어진 수로를 통해서 황도의 외성 밖으 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제이크는 물처럼 철망 사 이를 통과할 수 없으니 성벽 가까 운 곳에서 수로를 빠져나왔다.

빈민가 밤거리에는 몇몇 주저앉 은 술주정뱅이들이 있었지만,냄 새를 풍기며 걸어가는 제이크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누더기가 된 그의 옷과 냄새는 이 빈민가와 정말 잘 어울렸다.

다행히 제이크는 이 빈민가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마법 속에서 본 수십 년 뒤 의 빈민가였지만,다행히 매번 건 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전생과 다 르게 이곳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 가까이 변화가 없는 곳이었다.

제이크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는 대로를 한참 걷다가 어둠침 침한 골목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

밀었다.

별로 넓지 않은 골목에는 낡은 간판이 가득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제이크는 간판들을 훑어보다 한 간판을 확인하고 눈을 빛냈다.

'아직 그대로군. 아니,그 반대인 건가?'

미래의 기억 속에 있는 가게가 다행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있었다.

자신이 아는 가게임을 확인한 제이크는 바로 골목으로 들어서지 않고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

다.

한참 뒤,다시 골목 앞으로 돌아 온 그는 이번에는 골목 안으로 들 어서 가게로 향했다.

[루베르 전당포]

[황도 잡화상]

[저울추 유물상]

여러 가지 명칭과 이름을 하고 있지만,이 골목의 가게들은 결국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었다.

각종 물건을 받고 돈을 건네주는

곳.

받는 물건은 모험가가 가져온 유 물에서부터 소매치기나 도둑이 가 져온 귀금속까지.

나름 번듯한 상호들을 내걸고 있 지만,실제로는 모두 내로라하는 암상인들이었다.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제이크로 서는 번듯한 상단이 아닌 이곳으 로 올 수밖에 없었다.

제이크가 골목에 들어서자 보이 지 않는 곳에서 시선들이 느껴졌다.

역시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만

약,제이크가 평상시의 옷차림으 로 이 골목을 걸었다면 벌써 강도 를 당했을 게 분명했다.

[유물 전문. 루벨]

골목 안쪽.

제이크가 찾던 가게가 있었다.

제이크는 바로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고풍스러운 각종 유물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마치 동화에서 보던 마법사의 집 같은 분위기.

하지만 제이크는 실상을 알고 있 었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저 물건들은 모두 가짜였고,아무렇게나 흩어 져 있는 모습은 치밀한 고민으로 만들어 놓은 배치였다.

기억 속의 모습보다는 조금 어설 퍼 보였지만,매대 뒤에 있는 젊 은 주인의 모습을 보니 절로 이해 가 되었다.

기억 속 상점 주인의 모습은 주 름투성이의 노인이었는데, 지금 모습은 이제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건장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점잖게 물어오는 그의 모습은 나 이가 젊어,아직은 미래 속의 그 보다 상당히 어설퍼 보였다.

"당연히 물건을 팔러 왔습니다."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소년의 입 에서 나오는 점잖은 말에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은 옷과 말이 매치가 안 된 것 이다.

하지만 주인은 곧 어깨를 으쏙하 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물건을 꺼내 놓으라는 이야기.

제이크는 품에서 구리 동전 여러

개와 금화 하나를 꺼내 올려놓았다.

모두 황도의 지하 통로에서 구해 온 물건.

"설마? 진품?"

시큰둥한 얼굴이었던 주인의 표 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확인해 보시죠."

제이크의 말에 주인은 금화를 확 인하기 시작했다.

문양을 살피고, 재질을 확인하고, 무게까지 측정한 뒤,이제는 조심 스럽게 금화를 내려놓았다.

"흠,진품이 맞군요."

그의 말에 제이크는 어깨를 으쏙 했다.

"이거 어디서 구한 겁니까?"

"그걸 말해 줄 리가 없잖습니까?"

"이게 전부입니까?"

"당연히 더 있죠."

간단한 문답이 지난 후 제이크의 뒤쪽으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어느 틈엔가 건장한 남자가 문을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주인의 손에도 칼 한 자 루가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후딱 검사해 보시죠. 당연히 들 고 다닐 리가 없잖습니까?"

제이크의 말에 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그는 문을 막아 선 수하에게 제이크의 몸수색을 시켰다.

"거참 애매한 행색을 하고 나타 나서 사람 헷갈리게 하네."

결국,제이크의 품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한 그는 입맛을 다시며 투 덜 거렸다.

"아무리 구정물을 뒤집어써도 옷

하고 얼굴은 어디 귀한 집 도련님 인데 말이야. 말하고 행동하는 꼴 은 닮고 닳은 놈이니,원. 네놈이 헷갈리게 했으니 사과는 안 할 거야."

좀 전까지 존댓말을 쓰며 분위기 를 잡던 남자는 이제 구시렁거리 는 닳고 닮은 암상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끙,한몫 잡을 줄 알았는데. 에 이,텄다."

그가 손을 흔들자 문을 막아섰던 남자는 쪽문을 통해 사라졌고,주 인은 매대 아래에서 주머니를 꺼

내 제이크에게 던졌다.

"40실링이야. 나름 네놈도 알고 왔을 테니 제값을 쳐준 거야. 너 도 알고 있겠지만,구리 동전들은 그리 돈이 안 되니 고대 금화값 만이야."

실제로 제대로 쳐주었는지 제이크가 알 수는 없었지만, 금화가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거 짓으로 후려치지는 않을 게 분명 했다.

미래에 본 그와 성격이 다르지 않다면 눈앞의 남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남자는

아니었다.

슬쩍 주머니를 열어 대충 개수를 확인한 제이크는 목을 까닥여서 그에게 인사를 한 뒤에 가게를 빠 져나왔다.

"나머지도 꼭 가져와야 해!"

문을 나서기 전에 들려온 음성에 제이크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랜 시간 뒤 황도가 혼란하던 시절.

나름 살아남기 위해 제이크가 손 을 잡은 곳이 바로 이 상점의 주 인이었다.

그때는 닳고 닳은 노인 암상인으

로 실력을 발휘한 덕분에 제이크 가 큰 손해를 보긴 했지만,덕분 에 목숨을 구했으니 제이크도 별 로 불만은 없었다.

골목을 빠져나온 제이크는 바로 빈민가를 벗어나 길드 사무소가 있는 거리로 향했다.

용병 길드를 지나가는 순간,암 상가에서부터 따라오던 인간들이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한 그는 길 드 옆에 있는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밤이 늦어서인지 1층 술집에는 건장한 술꾼들이 이리저리 잠들어

있었다.

여인숙 주인은 뒷정리를 하다가 제이크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여긴 돈 없이 지낼 수 없어. 빨 리 나가라."

암상인과 달리,이곳 주인은 제이크를 거지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룻밤 숙식과 목욕,빨래. 얼마 입니까?"

제이크가 손에 은화 하나를 꺼내 보이니 주인의 표정이 바뀌었다.

"손님이었나? 2실링이네."

한참 바가지였지만,제이크는 바

로 은화 두 개를 꺼내 주인에게 던졌다.

"바로 준비하겠네."

한가롭게 정리하던 주인의 음직 임이 번개같이 바뀌었다.

주인은 물을 데우고 제이크에게 남은 음식을 가져다준 뒤,빈방 열쇠를 건네주는 등 순식간에 일 을 처리해 버렸다.

덕분에 제이크는 하루 동안의 공 복을 해결한 뒤에,자신의 방에서 목욕통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정신없는 하루였어.'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자 피로가 쏟아졌다.

'내일은 숨겨 놓은 남은 금화를 바꾸고 길드에 들러서 사람을 찾 아야지. 그리고..

목욕통 속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던 그는 어느 순간 잠이 들 었다.

다음 날,생각과 달리 그는 감기 에 걸려 종일 여인숙에서 골골 앓 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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