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
용병 길드.
전투, 전쟁,호위,탐사 등 전투 와 모험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협회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길드
가 난립하고 통합된 관리도 안 되 고 있었지만,제국에서는 단 하나 의 용병 길드 본부가 제국의 모든 모험가와 용병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제국 용병 길드 뒤에는 황실이 있다는 소문도 많았다.
하지만 용병들로서는 떼먹지 않 고 관리가 잘되는 길드 본부에 불 만이 많지 않았다.
제국도 광활한 국토를 지배하기 위해 용병들을 많이 쓰긴 했지만, 제국 황도에 있는 용병들은 거대 한 용병대들이 아니었다.
그저 대관식을 오가는 사람들을 호위해 한몫 잡으려는 소규모 파 티뿐이었다.
그래서 두 기사가 길드 건물 안 으로 들었을 때,길드 내부는 작 은 그룹으로 이뤄진 사람들이 테 이블과 여러 곳에 흩어져 떠들고 있었다.
다른 곳처럼 용병대의 대장에게 말해 조용히 시킬 순 없었지만, 두 기사도 용병들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었다.
쿵! 쿵!
"모두 주목!"
검에 마나를 실어 바닥을 두드리 니 건물 전체가 울렸다.
덕분에 시끄럽게 떠들던 용병들 이 모두 입을 다물고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중 몇은 슬그머니 검에 손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지만,검을 내 려찍은 사람이 기사인 것을 알자 바로 손을 내렸다.
길드 본부 직원이 기사를 알아보 고 다가오려고 했지만,기사는 귀 찮게 여러 번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검사 콘라드! 이곳에 있나?"
웅장한 목소리가 길드 1층 전체 에 퍼져 나갔고,기사들을 보던 용병들의 시선이 한쪽 구석으로 움직였다.
용병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원 형 테이블에 일곱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왜?"
떡 벌어진 어깨에 건장한 젊은이 가 기사의 지적에 어리둥절한 표 정을 지었다.
"단장,뭔가 사고 친 거 있어?" 남자의 뒤쪽에 서 있던 여성이 놀리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고지식한 단장이 사고 칠 리가. 제시카,네가 지나가는 귀족 주머 니를 슬쩍한 거 아냐?"
"흥,내가 슬쩍했으면 들킬 리가 없어요. 말씀하시는 만년 2서클 마법사님이 며칠 전 폭발 사건 범 인일지도."
반쯤은 진심인 날 선 농담이 파 티의 홍일점인 도적과 마법사 사 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기사 들이 한걸음에 다가왔다.
"그대가 3급 용병,검사 콘라드 맞나?"
재미있는 표정으로 일을 지켜보
던 일행은 기사의 검을 보고는 딱 딱하게 굳어졌다.
기사가 들고 있는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황실 문장인 금빛 용이 새겨진 문장.
이들은 황실 근위 기사였다.
"예,제가 콘라드가 맞습니다."
남자의 대답을 들은 기사는 다가 온 길드 직원에게 확인을 받았고, 길드 직원의 확인이 떨어지자 가 지고 온 명령서를 꺼내 읽어 내렸다.
"제국 황실의 이름으로 3급 용병
콘라드를 제국 팔라티노의 11대 황제 대관식에 초청하는 바이다. 황태자 엘리고스 사알 안드라스." 갑작스럽게 등장한 황태자의 명 령서에 모두 어쩔 줄 몰랐다.
나름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테이블에 머리 를 박는 사람,빤히 기사를 쳐다 보는 사람,입을 딱 벌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호통과 함께 검 을 꺼내 들었겠지만,좋은 일로 용병들을 찾아왔으니 기사들은 융 통성을 발휘했다.
"모두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해 라!"
기사들의 말에 급하게 모두 고개 를 숙였고,그들이 고개를 들고 난 뒤에 작은 웅성거림이 퍼져 나 갔다.
무슨 일인지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대관식 초청인가."
중년의 마법사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들의 단장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주변에 모여 있는 파티원 들 중에는 대관식 초청이 뭔지 모 르는 사람도 있었지만,바로 이야
기가 전파되어 이내 모두가 알게 되었다.
"와! 그거,한 방에 귀족으로 올 라간다는 그 초청장 맞……?"
흥분된 얼굴로 콘라드의 등을 내 려치던 도적 제시카의 손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눈치가 빠른 덕분에 일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알아차렸기 때문이 었다.
"정말 대관식 초청이 확실합니까?"
하지만 콘라드는 제시카의 손이 멈추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대관식 초청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다른 모든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맞다. 그대는 대관식 참석 준비 를 해야 하니 최소한의 짐만 추려 빨리 나오도록. 준비는 모두 황실 에서 할 테니 최대한 서두르기 바 란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 겠다."
기사가 품에서 금빛 용 문양이 새겨진 초청장을 콘라드에게 전해 주고는 바로 길드를 빠져나갔다.
두 기사가 과거에 용병들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용병들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할 리 가 없었다.
"맙소사,맙소사,맙소사."
젊은 나이치고는 진중한 콘라드 였지만,초청장을 받은 뒤에는 의 미 없는 감탄사만 계속 홀릴 뿐이 었다.
그런 단장의 모습에 파티원들은 모두 같이 기뻐해 주었지만,마법 사와 도적은 기뻐해 주지 못했다.
마법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 를 저었고,도적은 흔들리는 눈으 로 단장의 등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일은 마법사와 도적의 생
각대로 흘러갔다.
"무슨 말이야! 파티를 해체한다 니!"
초청장을 받고 축하가 끝난 뒤, 콘라드가 말한 '파티 해산'이라는 말에 파티원들이 모두 들고일어 났다.
큰 용병대는 아니었지만,적어도 1년에서 4년까지 같이 지냈던 파 티였다.
더구나 무늬만 파티인 다른 파티
들과는 다르게,1년 중 몇 번은 대수림에서 던전 탐색을 하던 건 실한 탐험가 파티였다.
그런 파티를 갑작스럽게 해산한 다는 말에 파티원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곧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관식 초청을 받는다는 것은 황 실의 후원을 받고,국가 소속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로 내려오던 귀족이 된다 는 소문이 맞는다면,콘라드는 이 들과 같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용병들과 다르게 평 생소원이 기사, 그것도 근위 기사 가 꿈이었던 콘라드로서는 이 기 회를 놓칠 수 없었다.
파티원들은 그의 꿈을 모두 알고 있었다.
"모두 미안해. 내 소유의 파티 재산은 모두 나눠 줄게."
결국,콘라드의 사과에 파티원들 의 분노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래되고 친한 파티였지만,결국 파티일 뿐이었다. 계약서도 없고, 체계로 묶이지도 않은 그런 파티.
나쁘게 찢어지고 칼부림까지 나
는 다른 파티에 비하면,가진 것 을 모두 파티원들에게 내놓는 단 장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마지막까지 호구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재산을 정리하 고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것을 본 제시카가 콘라드에게 한 소리 했다.
"어차피 황궁에서 지원이 나올 테니,상관없겠지."
"그러지 말고 대관식에 간 뒤 편 지를 보내거나 나중에 이야기하면 흐지부지 헤어질 수도 있잖아. 나 중에 술 한잔해도 되고. 그렇게
하면 욕을 먹지도 않고,호구짓 할 필요도 없잖아."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나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인데."
자리를 벗어난 마법사는 벌써 다 른 파티들 사이에서 몸값을 높이 고 있었고,다른 팀원들은 그들끼 리 받은 돈을 들고 술을 마시러 갔다.
오랜 인연이지만,관계가 끝나니 금방 남처럼 변해 버렸다.
그런 전 파티원들을 보고 있자 니,조금 전까지 단장이었던 오랜 소굽친구가 더욱 바보처럼 여겨지
는 제시카였다.
검사 콘라드와 도적 제시카.
두 사람은 흔한 모험 소설에 나 오는 주인공들처럼 작은 마을의 소굽친구였다.
자유 기사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버지를 가진 소년과 마을 사냥 꾼의 딸은 어렸을 때부터 친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꿈과 희망 을 좇아 마을을 나와 용병이 되었다.
소년은 기사가 되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해 용병으로 실력 을 키우고자 했고,소녀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들은 모험을 하고 싶 어 도적이 되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재능이 있었 고,운도 나쁘지 않아 건실한 파 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파티들과 달리,수 년 동안 제대로 된 모험을 하며 실력을 키워 왔었다.
"너한테 미리 말하지 않고 결정 해서 미안해."
"무슨 차이가 있다고. 어차피 네 실력 보고 모인 사람들인데."
제시카도 훌륭한 도적이고 유적 탐험가였지만, 여성이라는 점과
특수 직업인 도적의 특성상 유명 해지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검사인 콘라드는 대단한 재능을 지닌 칼잡이였다.
젊은 나이에 벌써 3급까지 올라 왔고, 젊은 용병 검사 중에 몇 안 되는 마나 사용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희귀한 마법사가 이들 파티에 있었던 것 은 전부 콘라드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도 이제 서로 다른 길 을 가는 건가?"
아쉬운 표정으로 콘라드를 바라 보는 제시카였다.
콘라드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대관식에 있는 동안 용병 을 그만두고 같이 있어 주겠어?"
콘라드의 말에 놀란 표정이 된 제시카였지만 잠시 뒤 짓궂은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타이밍이 엉망이야. 더구나 날 잘 알면서 귀부인처럼 집에 처박 혀 있으라는 청혼을 해? 참 감사 하지만,거절이야."
"그래도 너 혼자는 일 구하기도 힘들잖아."
콘라드의 말처럼 용병은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 업종이었다.
그동안 콘라드가 방어해 주어 그 나마 괜찮았던 거지,위험했던 때 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건 알아서 해. 댁이나 열심히 하세요."
콘라드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꾹 꾹 누르며 제시카가 태연하게 대 답했다.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던 그 는 결국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남 기고 길드를 나섰다.
"기다려 줘. 내가 자리 잡으면 바로 연락할게."
콘라드는 아직 그녀의 거절을 받 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별을 확신했다.
"너의 꿈을 잡은 걸 축하해. 멋 진 기사가 돼서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하게 살아."
그녀의 머릿속으로 그와 함께했 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련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잠시 뒤, 얼굴을 쓸어내리며 표정을 가 다듬었다.
감상도 잠시뿐,이제 현실이 다 가왔다.
파티는 깨졌고,소꿀친구도 떠났
다.
쓸 만한 기술은 가지고 있지만, 이 험한 용병들 속에서 살아남기 는 만만찮았다.
파티가 깨진 지 몇 분이 되지 않 았는데 벌써 그녀를 지저분하게 훑어보는 인간들이 열 손가락이 넘었다.
'바로 대수림 쪽으로 움직일까? 어차피 주 활동 지역은 그곳이니 아는 얼굴도 거기가 많고. 다른 파티에도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꽤 개인적인 희망이 섞인 예상이 었지만,대수림 쪽으로 가는 것이
확실히 나아 보였다.
파티가 깨진 지금,대관식을 노 린 호위 임무는 이미 불가능했으 니 더는 이 황도에서 일을 맡기는 힘들었다.
'결국,대 적자네.'
벌이도 없이 다시 대수림 경계로 가자니 쪽박도 이런 쪽박이 없었다.
모아 놓은 돈이 떨어져 이곳에 온 것인 만큼,경계에 도착하면 정말 빈털터리가 될지도 몰랐다.
혹시나 싶어 대수림 방향으로 가 는 상단 호위 임무를 찾아보았지
만,길드 직원도,임무판에도 그런 임무는 보이지 않았다.
돈은 못 받더라도 얹혀 갈 수 있 다면 좋았겠지만,대관식 때문에 그런 일감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결국,축 늘어진 어깨로 길드를 나선 그녀는 옆에 있는 술집에 가 서 주인에게 독한 술 한 잔을 부 탁했다.
갑작스러운 낮술에 주인이 놀란 표정이 되었고, 소식을 들었는지 몇몇 술꾼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녀의 지금 기분으로는 술꾼들
과 함께 난장을 피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제일 먼저 다가 온 것은 술꾼도 아니고,술을 가 져온 주인도 아니었다.
잘생긴 갈색 머리 소년이 제일 먼저 그녀 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
"대수림으로 가는 전속 호위를 원합니다. 기간은 두 달."
그녀 앞에 묵직한 돈주머니가 떨 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