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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7화 (17/222)

17화

제이크가 용병패를 받고 일주일 이 지난 뒤.

루테리아 시의 서문으로 제국의 기사들과 군인들이 들어왔다.

평범한 다른 영지의 기사들이 아

닌,황제의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이 멋진 갑옷을 입고 거리 를 가로지르자,지나가는 시민과 용병들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 라보았다.

레인저들이 치안을 담당하는 이 곳,루테리아 시에서 황제의 기사 들을 보게 된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놀란 사람들 사이에 입을 벌리고 선 제시카도 끼어 있었다.

제이크의 예상을 확인하고자 매 일 이곳에 나왔던 그녀였다.

그동안 같이 다닌 덕에 제이크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지만,이렇게 실제로 이루어지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시카는 제이크의 출신 성분에 '점쟁이'를 추가하기로 했다.

잠시 뒤 기사와 병사들이 내성 방향으로 사라지자 그녀는 여관으 로 달려갔다.

제이크에게 기사들이 왔다는 것 을 알려 주어야 했다.

루테리아 시의 내성은 도시 중앙 이 아니라 도시의 서쪽 대장벽에 붙어 있었다.

루테리아 영주의 성은 다른 성과

달리 영주를 지키기 위한 성이 아 니라 대장벽과 연결된 요새였다.

아름다움도,편의성도 모두 버린 채로 대수림에서 내려오는 적들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성이었다.

시의 중앙 대로를 지나 내성 앞 에 도착한 기사들은 바로 영주에 게 알현을 청했다.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알리고 황제의 명령을 전 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내 딸을 차 버린 놈이

이제야 사람을 보냈다는 건가?"

다른 방과 달리 그나마 꾸며져 있는 알현실에는 이곳의 영주이 자,제국의 몇 안 되는 공작 중 한 명인 루테리아 공작이 험상궂 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 세월 대수림에게서 제국을 지켜 온 루테리아 일족의 당대 가 주인 그는 마나를 다루는 정명한 기사이자, 수많은 싸움을 거친 제 대로 된 레인저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딸을 차 버린 황제의 기사가 왔다는 소리에 기 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결혼식 참석차 황도로 떠나려다 가 파혼이라는 황당한 소식을 듣 고,잠시나마 황도로 쳐들어갈 생 각마저 했던 그였다.

바로 이성을 찾긴 했지만,지금 도 여차하면 제국 전체를 들쑤셔 놓을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는 봐야겠 지. 들여보내."

그의 말에 바로 알현실 문이 열 렸고, 세 명의 기사가 절도 있는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영주 앞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황제 페하의 명령서를 가지고 온 기사 사무엘입니다."

중앙에 선 기사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황도에서 온 게 아니라 동부 직 할대에서 온 건가?"

인사를 한 기사의 문장은 근위대 소속의 문장이 아니라 루테리아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황실 직 할대의 문장이었다.

아무래도 수습 차원에서 보낸 특 사가 아닌 것 같아 공작의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네,황제 폐하의 지시로 직할대

에서 차출된 기사들입니다. 여기 황제 폐하가 직접 쓰신 편지와 명 령서가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황제의 편 지였다.

정중하게 내민 편지와 명령서는 공작이 직접 일어나 건네받았다.

그는 편지의 봉인을 뜯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편지에는 사무적인 어조로 황태 자비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어 아 쉽다는 이야기와 공작의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니,앞으로도 제국을 위해 힘써 주기 바란다는 내용으 로 편지가 끝이 났다.

편지를 본 공작의 얼굴은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이어서 명령서도 확인했다. 명령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기사들의 던전 탐사를 최선을 다 해 지원하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 을 뿐이었다.

잠시 명령서를 들여다본 공작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필요한 게 뭐지?"

눈을 감은 채로 공작이 꺼낸 말 을 기사가 용케 알아들었다.

"마법사와 레인저,그리고 던전 탐사를 도울 용병들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공작이 눈을 떴다. 그의 눈 속 깊숙한 곳에서는 성난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알맹이 없는 유감 편지에,던전 탐사 지원 명령서라. 아무래도 우 리 가문이 새로운 황제 폐하께 제 대로 법보였나 보군."

무척이나 살벌한 말과 함께 그의 몸 주위로 마나가 들끓었기에,기

사들은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 을느꼈다.

"이제 나가라. 마법사와 레인저 는 지원을 해 주지. 다만 용병은 그대들이 구해야 할 거야."

만족할 만한 지원은 아니었지만, 기사들은 수긍하고 알현실을 빠져 나갔다.

분위기로만 본다면 바로 목이 날 아갈 정도로 살벌했다.

어차피 용병은 자신들이 구해도 상관이 없으니 쓸 만한 레인저들 과 마법사만이라도 지원받기를 바 랄 뿐이었다.

기사들을 내보낸 공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미친 황제가 일부러 내 성질 을 건드리는 것 같은데."

"지식을 얻은 황제 폐하께서 저 희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공작 옆에 서 있던 유능한 참모 이자 사촌 동생인 앤드류 루테리아 남작이 공작의 말에 대답했다.

오랜 시간 황가를 알아 온 귀족 들은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기 직 전,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롭고 신기한 지식을 얻게 된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을 찾아 내는 능력,숨겨진 던전의 위치를 알아내는 능력,그리고,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미리 골라내는 능력.

"성질머리가 더럽다는 소리에 레 이첼마저 붙여 보았는데,역시 무 리였나."

"대관식 전 파혼이 이번이 처음 이 아니니까요. 그리 상심하실 필 요는 없다고 봅니다."

결국,딸에게 몹쓸 아버지가 되 어 버렸지만, 황제에게 위협이 되 는 귀족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이었다.

"문제는 이번에는 제대로 찍힌 것 같다는 거야."

"새로운 황제가 들어설 때마다 휘말리는 일이잖습니까. 어차피 대수림 때문에라도 여기를 직접 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복수도 할 수 없어."

이번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역 대 황제와 루테리아 공작가는 서 로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는 사이였다.

다만,대수림 때문에 둘은 서로 싸우지 못한 채 의심만 더해 갔던

것이다.

"우선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형식적으로나마 유감 표시도 했으니 바로 뭔가 일 을 일으킬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정말 이 자리가 몹쓸 자리야. 성격대로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 다니,몬스터 같았으면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으면 그만인데."

파혼을 당한다는 것은 귀족,그 것도 대 공작가의 체면을 박살 내 는 일이었다.

야전에 뛰어난 기사이기도 했지

만,그는 대공작가의 가주였다.

그는 손에 든 편지를 무심히 내 려 보았다.

"거기다 일을 시킬 생각이면서도 고압적인 편지뿐이라니. 성격 때 문인지 아니면 간을 보는 건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덕분에 재를 뿌리기도 쉽지 않 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곱게 성공하게 놔둘 수는 없지."

명령서를 구기며 공작이 눈을 빛 냈다.

"지금 성내에 있는 마법사가 누

가 있지?"

"공녀님과 함께 돌아온 앰버 경 이 있습니다."

"쯧,여태 객지에서 고생했을 텐 데. 다른 마법사가 없으니 어쩔 수 없군."

나지막이 혀를 찬 공작은 계속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레인저는 기사급으로 골 라."

"과한 지원입니다."

"실패하게 만들 수 없으면 성공 을 슬쩍 나눠 가지는 방법도 있어."

"아,머리를 쓸 수 있는 부대장 들로 고르겠습니다."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그 는 마지막 지시를 내리며 의자에 서 일어났다.

"이번 황제도 제대로 된 던전들 을 알고 있을 테니,영지가 꽤 활 기를 띠게 될 거야. 앞으로도 이 런 일이 더 있을 테니 경이 제대 로 준비해 줘. 언제가 됐든 이쪽 에서도 한 방 먹일 수 있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알현실을 나섰고,공 작은 남작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고하게. 난 그럼 레이첼에게 가 보도록 하겠네."

"많이 위로해 주십시오."

"그래도 예상보다 꽤 멀쩡해 보 이더라고. 밀크티에 브랜드 넣는 법을 알아 와서는 같이 술도 마신 다니까."

공작의 말에 남작은 난감한 표정 을 지었다.

"그래도 공녀 신분으로 술은 자 제시키시는 게."

"이제 귀족하고 결혼도 글렀는데 뭐,원하는 인생 살게 해 줘야지. 기사를 하고 싶으면 기사를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결혼시키고."

'영주가 되고 싶으면 영주가

마지막 말은 공작 머릿속에서만 얼핏 지나갔다.

같은 시각.

여관으로 달려온 제시카가 제이크의 방에서 그에게 질문을 던지 고 있었다.

"어떻게 기사단이 올 줄 알았던

거야?"

"전대 황제도 대관식 이후에 바 로 던전 탐사를 위한 기사단을 보 냈기 때문이죠. 이곳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텐데요. 노인분들도 알 거고."

"그런 옛날 일 신경 쓰는 용병이 어디 있다고."

당연하다는 얼굴로 하는 대답에 제시카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더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들이 가는 곳이

네가 알고 있는 던전 근처가 맞아?"

"용병들을 모집하는 걸 봐야겠지만,아마 맞을 겁니다. 기다려 보 죠."

"설마,네가 가는 던전하고 같은 곳은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제이크는 강하게 부인했다.

지금 제이크가 가고자 하는 던전 은 황제가 죽은 뒤에 찾아낸 곳이 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거대한 던전 에 붙어 있는 새끼 던전으로,기

존 던전이 발굴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발견한 던전이었다.

지금 찾아온 기사들은 제이크가 찾는 던전 옆에 있는 거대한 던전 을 찾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많은 보물과 마법 장비,그리고 마나석이 묻혀 있는 곳이고,오래 지나지 않아 발견될 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다른 던전보다 먼저 찾아야 했다.

다만,모든 이야기를 제시카에게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많은 신뢰를 주고 있었지만,아직 그는 그녀를 다 믿기 어 려웠다.

'모르는 게 좋을지도. 아니면 내 가 벽을 치고 있는 건가.'

제시카는 비밀이 많은 제이크에 게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두 달 동안 보아 온 정 때문인지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앞으로의 계획에 몰두했다.

"기사들의 탐사대에 껴서 그쪽 던전 앞까지 간 다음에 옆으로 새 자는 이야기지?"

"우리가 갈 던전은 그리 깊지 않 은 던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 나 이틀 정도만 시간을 내면 됩니다."

다행히 제이크가 가고자 하는 던 전은 제시카가 죽었던 난공불락에 가까운 던전이 아니었다.

"흠,그러면 던전 탐사가 끝난 뒤에 시간을 내거나,던전 밖 대 기조에 남는 방법을 찾아봐야겠 네. 그런데 너무 시간을 끌면 돌아올 때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는 데……"

제이크는 탐사대와 헤어진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확 신하고 있었지만,그걸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제시카는 자신 있 게 가슴을 두드렸다.

"뭐,상황에 따라 방법을 찾아봐 야겠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맡길게요. 그런데 저희가 참가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요? 제국 기사단이 하는 탐사라 경쟁이 치 열할 것 같은데요."

"그건 걱정 없어. 경쟁은커녕 다 구하지도 못할걸? 이건 내가 예언 할 수 있지."

제시카는 오래간만에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단언했고,다음 날,그녀 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다음 날,길드 임무 판에는 황제 직속 기사단이 탐사원을 모집한다 는 글이 떡하니 붙어 있었다.

거기다 길드 직원들이 직접 뛰어 다니며 용병들에게 소식을 전했지만,용병대도 용병 파티들도 모두 시큰둥할 뿐이었다.

몇몇 용병은 모집 글을 보고 침

까지 뱉는 모습을 보니,단지 조 건 문제가 아닌 듯했다.

"뭐,조건이 제일 크긴 해. 용병 들이 대수림으로 가는 이유는 다 들 한몫 잡기 위해서니까. 그렇지만 황제 기사단은 부스러기 하나 남기가 쉽지 않아. 잘못했다가는 반역죄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데 누가 쉽게 참가하겠어. 거기다 공녀의 파혼으로 분위기가 최악이 라 참가하기가 더 어렵지."

"그런데 우리가 참여해도 됩니까? 다들 뭐라 할 텐데요."

"흥,그래 봤자지. 자기들이 욕하

면 어쩔 거야."

제시카는 근래 당한 일들로 섭섭 함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있는데 도 와줘야지."

그녀는 손을 들어 기사들과 함께 길드 사무소로 들어오는 여자 마 법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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