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화
풍덩.
절벽을 뛰어내린 두 사람은 그대 로 강물에 처박혔다.
물에 빠진 제시카는 정신을 차리 고 물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물살이 너무 거칠었다.
물살에 휘말려 버둥거린 그녀는 한참 만에 물 위로 올라올 수 있 었다.
"푸하! 살았다!"
가쁜 숨을 내쉰 그녀는 제일 먼 저 제이크를 찾았고.
"푸우!"
뒤이어 물 위로 나온 제이크를 본 그녀는.
"제이,이 염병할 XXX 같은 놈 아! 이 XXX!"
그를 향해 엄청난 욕을 퍼부어 댔다.
"나가면 보자고! 물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10년은 보내게 해 줄 테니!"
눈물마저 글씽이며 화를 내는 제시카였지만,제이크는 오히려 그 녀에게 딴소리를 했다.
"그보다 어서 헤엄치기나 하세요. 다시 떠내려갈지도 몰라요."
"뭐?"
엉뚱한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어라? 여긴 어디야?"
분명 절벽에서 떨어져 계곡 물에 빠졌는데,지금 눈에 보이는 광경
은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빨리 와요."
벌써 제이크는 안쪽으로 헤엄치 고 있었다.
제시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따라 손발을 휘저어 앞 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헤엄쳐야 할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금방 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으핵,힘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물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차가
운 동굴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거 렸다.
"와,생각보다 힘드네요."
"뭐! 생각보다 힘들어? 죽을 뻔 했잖아!"
제시카의 울분에 제이크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미리 설명을 못 드 려서."
"홍! 사과한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말과 다르게 제시카는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 눈앞에 드러난 결과 가 있었기에 좀 더 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동굴이 던전으로 가는 길이 에요. 제가 알고 있는 길은 방금 처럼 특정 위치에서 뛰어내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헤엄치면서 하 나하나 수면 아래를 확인하는 방 법도 있겠지만,어느 세월에 찾을 지……"
"그럼 미리 말을 하지."
"말을 했으면 뛰어내리셨겠어요?"
"절대 안 뛰어내렸지!"
"그래서 말을 안 했죠."
"으으"
말이 되는 이야기에 주먹을 부르 르 떨었지만,그녀는 결국 호기심 에 지고 말았다.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변 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안쪽으로 길이 나 있네?" 그녀 말대로 물에 잠겨 있는 동 굴은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런 곳에 입구를 낸 거야! 어떻게 찾으라고!"
"옛날에는 수위가 낮았겠죠. 그 때는 아마 배로 드나들었을 겁니다."
추측에 불과하긴 했지만,나름
그럴듯한 말이었다.
거기다 입구가 뻔히 보였다면 다 른 사람이 먼저 찾았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감춰져 있으면 그렇게 계속 걱정할 필요 없었잖아."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물에 빠 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 이었다.
너무 걱정이 많다고 조금 투덜거 렸지만,그녀는 바로 움직이기 시 작했다.
두 사람이 들어온 동굴은 물속에 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겨우 주변 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제시카는 메고 있던 가방을 풀 어,막대기와 기름 먹인 천을 꺼 내 들었다. 동굴 탐사를 하려면 횃불을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방수 가죽으로 만든 가방 덕분에 내용물은 젖지 않았다.
제시카는 발화석을 이용해서 햇 불에 불을 붙였다. 이글거리는 햇 불이 어두운 동굴 안쪽을 비췄다.
"자,출발해 볼까?"
방금 만든 햇불을 들고 두 사람
은 던전 탐사를 시작했다.
* * *
자연적인 동굴은 금방 끝이 났다.
백 걸음이 되기 전에,두 사람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철문은 많이 삭았는데요." 물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철이 많이 녹슬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철문을 확인한 제시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삭아서 다행이야. 덕분에 문에 새겨진 마법진이 모두 뭉개졌어. 마법진이 멀쩡했으면 되돌아가서 마법사님을 모셔 와야 했을 거야."
마법진이 망가진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제이크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두 사람은 힘을 합쳐 철문을 움직였다.
끼기기깅.
"힘 좀 더 써 봐! 에구, 삭은 게 여기서 문제가 되네."
"으윽!"
낡아서 움직이지 않는 문을 억지
로 열어젖힌 두 사람은 문 뒤에서 흘러나온 건조한 바람을 맞았다.
곰팡이 냄새가 섞인 듯한 바람이 었다.
"몇 백 년,아니,천 년도 넘은 바람인가."
제시카는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으며 코를 쿵쿵거렸다. 그녀는 숨겨진 던전에 최초로 발을 들여 놓은 감격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 이었다.
"몇 년 묵은 지하실 냄새하고 그 리 다르지 않은데요."
하지만 그녀의 감격은 훼방꾼 덕
분에 바로 깨져 버렸다.
"으……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너 재수 없어!"
"뭐,그런 거로 하고…… 이제 슬슬 실력을 발휘해 주세요."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의 눈이 반 짝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카를 고용한 이유는 이 던전을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이곳에 도착했던 미래의 모험가는 나름의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던전을 지나가 는 동안에 수십 번을 죽을 뻔했다 고 했다.
노래나 연가,그리고 우연히 만 나서 들은 그의 모험담에서 몇 번 이나 들었던 내용이라,제이크는 제일 먼저 도적을 찾았다.
지금 두 사람 앞에 놓인 것은 황 궁 지하 통로와 비슷해 보이는 지 하 석실이 길게 이어져 있는 던 전.
"그럼 시작해 볼까?"
등에 멘 가방에서 각종 도구를 꺼낸 제시카가 석실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반나절 뒤.
"맙소사! 마법하고 함정들이 전 부 다 작동하고 있다니!"
제시카는 앞을 가로막은 문 앞에 벌렁 누워 버렸다.
"이런 무식한 던전은 처음 봤어.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망가진 게 거의 없어. 으,실력이 부족하 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우 울해졌어."
낙심한 목소리로 넋두리를 늘어 놓는 제시카였지만,말과 다르게 두 눈은 반짝였다.
마치 맛있는 것을 가득 먹은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이게 실력이 부족한 겁니까?" 반면,제이크는 감탄한 얼굴로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제시카의 등 뒤로 수많은 함정과 마법 장치들이 파괴되거나 해체되 어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 모든 것들을 하나도 걸리지 않고 모두 해체한 것이다.
바닥을 누르면 꺼지는 함정,마 법으로 사람을 감지하는 벽,거기 다가 들이마시면 바로 영원히 잠
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통로 까지.
기상천외한 함정과 마법이 그들 을 가로막았지만,제시카는 그 모 든 함정을 뚫고 이곳까지 제이크 를 데리고 왔다.
파괴할 수 있는 함정은 파괴하 고,피해야 하는 마법들은 피하면 서 그녀는 반나절 만에 던전 마지 막 문 앞에 도착했던 것이다.
"아주 대단했어요. 정말로 감탄 하는 중이니까 앓는 소리는 그만 해요."
"그렇지? 나 잘한 거지? 암,나
말고 이렇게 빨리 이런 어려운 던 전을 터는 사람은 없을 거야."
"네,네,제시카 씨는 최고의 도 적이에요."
역시,구시렁거리고 있었지만,칭 찬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문이 확실한 거죠?"
"그렇다니까. 이 문은 지나온 문 들과 다르게 느낌이 좋아."
"느낌이요?"
"흠,느낌이라고 말하면 이상하 려나? 이때까지의 문들은 물기가 맺혀 있거나 어딘가 어긋난 것 같 은 문들이었어. 뭐,도적들 사이에
서 '감이 안 좋다'라고 말하는 것 들이지."
제이크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전문가인 그녀가 말하는 것이 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제이크가 보아도 눈앞의 문은 느낌이 좋았다.
이 던전은 던전의 여러 타입 가 운데 속칭 '마법사의 실험실'로 분류되는 던전이었다.
마나가 모이는 장소.
즉,핫 스팟에 마법사가 세운 연 구실을 말하는 것으로,숙식을 위 한 방,연구물을 채워 넣는 창고,
실험실 등으로 이루어진 지하에 만들어진 마법사의 '탑'이었다.
눈앞의 문 뒤에는 중요한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단단하게 마감된 문에 화려한 문 양까지.
마법이 걸려 있지는 않았지만, 단단히 잠겨 있는 문은 '절대 출 입 금지'라는 느낌을 풀풀 풍기는 중이었다.
"그럼 좀 먹고 움직일까요? 대충 저녁 먹을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니면 한숨 잔 뒤에 움직여도 되 고요."
들고 있던 햇불을 한쪽에 세워 놓고,주섬주섬 배낭의 물건을 꺼 내는 제이크였다.
"넌 정말 이상한 녀석이야. 어떻 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이제 목표가 코앞이었다.
제시카도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는데,아직 어린 제이크 는 평상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뭐,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요."
"정말 노인네 같아."
'전생까지 포함하면 노인네 그 이상이니까요.'
제이크는 피식 웃으며 가지고 온 육포를 제시카에게 건네주었다.
"육포 꽤 많이 들고 왔는데,이 렇게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었나 보네."
딱딱한 육포를 침으로 녹이며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안전제일이죠."
"흥,절벽을 뛰어내린 인간이 할 소리냐."
잡담을 나누며 식사 시간을 가진 두 사람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홍차가 아쉽긴 하지만…… 후딱 끝내고 돌아가서 마시자."
제시카는 야영지에 두고 온 홍차 를 잠시 떠올렸지만,그 생각은 문 앞에 서게 되자 바로 사라졌다.
제이크도 겉으로 태연한 척하기 는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풍파를 겪었다고 하지만,그도 사람이었다. 수개월의 노력이 눈 앞에 나타나게 되자 그도 한껏 긴 장이 되었다.
제시카는 조심조심 문을 살펴보 았다. 그리고 잠시 뒤 눈살을 찌
푸렸다.
"뭐가 잘못되었나요?"
"아니,여는 건 문제가 없는데 잠금장치가 묘하네. 다른 곳들하 고 연결되어 있어. 뭔가 마법적인 방법을 쓴 것 같은데 그쪽은 알 수가 없으니."
"문제가 될까요?"
제이크의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쏙였다.
"상관없지. 여기까지 왔는데 멈 출 수도 없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잠금장치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꼬챙이와 여러 가지 물건이 문틈 사이에서 움직였고,문에서는 자 그마한 소리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찰칵,찰칵
확실히 도적이라는 직업에 잘 어 울리는 손놀림이었다.
던전 탐험가로 불리길 원하는 그 녀였지만,문을 따는 솜씨를 봐서 는 황성도 다 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마지막 소리가 멈추었을 때.
"됐다!"
제시카가 소리를 질렀고. 끼이익.
잠겼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의 내부는 드래곤의 보물 창고가 아니었다.
평범한 침대,책상과 의자,그리 고 빈 책장이 있는 평범한 방이었 을 뿐이었다.
"오,당첨!"
하지만,제시카는 신이 나서 안 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움직여도 돼요? 함정은요?"
"침실에 함정 까는 사람 봤어?" 제이크에게 핀잔을 준 뒤,그녀 는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침대를 밀치고,책장 뒤를 확인하던 그녀 는 금세 숨겨진 공간을 찾아냈다.
"흐흐,역시,다들 비슷한 데에 숨겨 놓는단 말이야."
침대 아래에 석판으로 막아 놓은 작은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제시카가 석판을 들어내자 그곳 에 작은 함이 놓여 있었다.
함은 여자 혼자서 들기에는 상당 히 무거웠다.
제시카가 힘들게 함을 꺼내 열어
보니,그 안에는 고대 금화가 가 득했고,묘한 빛을 뿜는 브로치 몇 개,그리고 영롱한 빛을 뿌리 는 단검이 들어 있었다.
"크,잭팟이다!"
온몸을 부르르 떨던 제시카가 결 국,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가득한 고대 금화도 고대 금화였 지만,브로치들과 단검은 마법 아 이템이 분명했다.
현대 마법으로 만들어 낼 수 없 는 마법 아이템은 부르는 게 값이 었다.
"제이,뭐 해! 빨리 이리 와 봐."
그녀는 급하게 제이크를 불렀지만,아무리 손짓을 해도 제이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보물 상자를 발견했을 때,제이크는 책상 위에 놓인 물 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시카가 보물 상자를 발견한 것 처럼,제이크도 찾던 물건을 발견 한 것이다.
책상 위에 대충 굴러다니는 짧은 지휘봉이 그가 찾던 물건이었다.
음유 시인들의 노래 속에 등장하 는 영웅이자,고대 마법으로 대마
도사까지 올라간 전직 탐험가가 가지고 다니던 마법 아이템.
바로,고대 마법으로 만들어진 에고 완드였다.
제이크는 지휘봉을 조심스레 주 워 들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말소리가 쏟아 져 들어왔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고대 언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