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화
에고 아이템.
고대 마도 제국 시절 만들어진, 그 당시 마법의 총체가 담긴 살아 있는 장비들.
소유자에게 조언하고,마나의 사
용을 돕고,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사용자에게 전수하는 등 조언자에 서 스승까지 폭넓은 역할을 하는 물건이었다.
에고 아이템은 검과 방패,반지 등 여러 형태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발굴될 때마 다 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다만,마법사용 에고 아이템은 거의 발견되지 않아 마법사들은 기사나 다른 이의 에고 아이템을 연구용으로 사용하곤 했다.
에고 아이템에는 여러 등급이 있 었다.
스승 역할까지 가능한 지혜로운 아이템이 있는가 하면,겨우 마나 활용을 도와주는 역할밖에 못하는 아이템도 있었다.
콘라드가 가졌던 미래의 에고 소 드도 평범한 검사를 제국의 검호 로 성장시킨 최고 등급의 아이템 이었다.
그리고 제이크가 손에 들고 있는 완드 역시 에고 소드와 마찬가지 로,평범한 용병을 마도사로 만들 어 준 물건이었다.
'문제는 말이 안 통한다는 거지.' 다른 에고 아이템 사용자들도 그
문제로 엄청 고생했다.
한번 말을 배워 놓으면 문제가 없었지만,처음 발굴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에고 아이템과 말씨름을 해야 했다.
제국 황도에 있는 마탑에는 전문 적인 번역서가 있다고 들었지만, 제이크로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다만 에고 완드를 얻게 된 마도 사 아론 이후,에고 아이템의 주 인들은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졌었다.
제이크는 완드를 쥔 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내 손은 마나를 느낄 수 있다! 내 손에 마나가 모여든다'
마음속으로 차례로 외친 주문은 다시금 그의 손에 마나가 모여들 게 했고,제이크의 손은 푸르스를 하게 빛이 났다.
"그게 뭐야?"
놀란 제시카가 물어보았지만,제이크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한번 잡은 마나를 붙잡고 있으려 면 집중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 는 그로서는 단지 주변에 몰려온 마나를 붙잡고 있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비지땀을 홀리며 집중하 고 있자,손에 머물고 있던 푸른 빛이 조금씩 완드 쪽으로 흘러 들 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들리시나요? 정말 마나 모 으는 실력이 형편없군요. 그 고생 을 해서 겨우 이제야 정신 감응 마법을 쓸 수 있을 마나가 모이다 니. 하,이번 사용자는 정말 걱정
되네요.
드디어 에고 완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떠들기 시작했다.
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 라 뭔가 심령이나 이미지 같은 것 으로 전해 오는 느낌이었지만,어 쨌거나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처음 꺼낸 말부터 신랄한 비판이라, 제이크의 집중이 그만 깨져 버렸다.
마나가 끊기자 바로 에고 완드의 목소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린 제이크는 시끄 러운 완드를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너,마법사였어?"
다시금 묻는 제시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귀족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신나게 반말을 했던 그녀였기에 지금 모습이 무척이나 생소했지만,용병들에게 마법사란 그런 위 치였다.
제이크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 었다.
"마법사는 아닙니다. 그냥 마나 를 감지하는 기술을 좀 가지고 있 는 거예요."
앞으로 마법사가 될 생각이긴 했 지만,어쨌거나 지금은 평범(?)한 전직 서기관일 뿐이었다.
"마나를 감지하는 기술은 또 뭐 야."
생각해보니 제이크가 변명하고자 했던 것도 지금은 없는 기술이었다.
제시카가 알 리가 없었다.
"나중에 다 설명해 드릴게요. 어 쨌거나 제가 찾던 물건은 찾았습
니다."
제이크의 말에 긴가민가한 표정 으로 제이크의 호주머니를 가리켰다.
"찾는 물건이라니,설마 에고 아 이템이라도 되는 거야?"
제시카의 얼굴을 보며 잠시 고민 하던 제이크는 결국 고개를 끄덕 였다.
어차피 에고 아이템이 아니더라 도 그녀가 욕심을 내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제시카가 찾은 보물들도 에고 아 이템은 아니었지만,사람의 인생
을 바꿀 만한 물건이었다.
"에엑! 정말? 나도 봐도 돼?" 다만 제이크의 예상대로,제시카 의 눈에는 욕심 대신 호기심만 가 득했다.
제이크는 피식 웃으며 에고 완드 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완드를 잡았던 그녀 는 인상을 가득 쓰곤 바로 제이크 에게 돌려줬다.
"이게 뭐야. 막 이상한 말로 소 리치는데?"
그녀의 말에 제이크는 얼른 완드 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아무
래도 완드가 불만이 많은 모양이 었다.
"아,그게 고대 언어라는 건가? 으,저렇게 시끄러우니 마법사에 게 파는 게 더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질린 표정으로 투덜거린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완드라면 마법사가 쓰는 물건이 겠네. 마탑에 가져가면 정말 인생 이 바뀌겠는걸? 하지만 그렇게는 안 하겠지?"
이제 제시카도 평범한 추측은 안 하기로 했다. 거기다 그런 추측을
할 머리는 제시카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흐흐,그럼 고대금화에다가 마 법 아이템,그리고 에고 아이템까 지! 이건 대박 정도가 아니야. 이 런 던전을 바로 이 몸,도적 제시카가 혼자 뚫고 들어온 거야."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금 그녀를 건들면 안 될 것 같았다.
"흠,침대를 쓸 수 있으려나."
종일 고생한 덕분에 제시카는 흥 분이 가라앉으면 바로 퍼질 게 분
명했다.
대충 먼지를 털어 내고 침대를 확인한 뒤에,제이크는 바닥에 모 포를 폈다.
그동안 그녀는 금화 상자를 끌어 안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잠들어 있었다.
제이크와 다르게,언제나 예상에 서 빗나가지 않는 그녀였다.
제이크는 잠든 제시카를 안아 침 대에 눕혔다.
많이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혀질 동안 깰 기미도 보이지 않으면서 도 양손에는 금화 하나씩을 꼭 쥐
고 있었다.
"그럼 슬슬 이야기를 나눠 볼까?"
침대를 마저 정돈해 준 제이크는 모포 위에 앉아 완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다시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크는 하는 수 없이 완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성질이 있는 에고 아이템이니만 큼 우선 조용할 때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인간이 아니니 오래오래 떠들 수
도 있겠지만,제이크는 참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모포 위에 앉은 제이크와 그 앞에 놓인 완드 가 신경전을 벌였고,결국은 제이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제이크는 조용해진 완드를 손에 쥐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오자 다시금 그의 손과 완드가 빛이 나 기 시작했다.
-뻑,정.신. 감.응.을. 활.성.화. 했.습.니.다.
이번에는 딱딱한 기계 같은 음성
이 머릿속을 울렸다.
조금 전까지 무척이나 듣기 좋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는데,지금 은 반쯤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신경전이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제이크는 속으로 한숨을 쉰 뒤 말을 건네 보았다.
"내 말 들려?"
-머리. 속으로. 강하게 이미지. 를 떠올리십시오. 저는. 귀. 같은. 것은. 달려. 있지. 않습니다.
계속 삐죽대는 완드를 무시하고,
제이크는 그녀 말대로 에고 완드 에게 말하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 았다.
-이제 들려?
잠시 대답이 없던 에고 완드는 잠시 뒤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 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인간의 음 성이네요.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 한 모양이에요.
막연히 상상했을 뿐인 에고 완드 의 인격은 사람과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상대라면 도구를 다루듯이
쓰기는 무리였다.
-잠시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더는 집중하기가 어려워.
-네? 겨우 이 정도 시간밖에 못 한다고요?
-마법사도 아닌데 무리야.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과한 집중으로 자주 멈추기는 했 지만,그날 밤 마법 완드와 제이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둘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에고 완드는 자신을 파티마라고 불러 달라고 했고,제이크도 제이
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아직 고대 세계가 멸망하 기 전의 기억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을 놔두고 마법사가 떠난 뒤,오랫동안 이 안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인공 정 령이지만,너무 오랜 기간이었어요. 제이 님이 저를 잡으셨을 때 정말 놀랐다니까요. 저는 이곳에 서 완드가 모두 마모될 때까지 홀 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
지 물어보자,그녀는 쑥스러운 어 조로 대답했고.
-저는 세상일은 잘 몰라요. 거쳐 간 마법사님도 많지 않았고,완드 에다 세상일을 이야기하는 마법사 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고대 마도 제국에 관해 묻자 아 는 것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과 제이크에 관 해 설명해 주자 완드는 깜짝 놀랐다.
-네? 서클 마법이라고요? 그건 마법 기술자들이 쓰는 마법이잖아요. 마법사들은 다 어디 가고 마
법 기술자들을 마법사로 불러요?
이런 반응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마법을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요? 그럼 겨우 남은 게 마나 감지 기술 정도인 거예요?
실제로는 방금 제이크가 사용한 마나 감지 기술도 제이크 이외에 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맙소사. 이럴 수는 없어요. 마 법을 모르는 세상이라니. 모두에 게 제대로 된 마법을 알려 줘야 해요!
마법사들이 들으면 분노할 말을
계속 늘어놓는 파티마였다.
그리고 방금 한 말 덕분에,제이크는 미래에 에고 완드를 얻은 마 도사가 왜 그렇게 열심히 고대 마 법을 알리려고 노력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마도사의 헌 신인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에 고 완드가 우긴 일이었다.
'파티마의 말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는데.'
마도사가 고대 마법을 알리는 와 중에 다른 마법사들과 충돌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제국이 무너지고 혼란한 때여서 그나마 덜했지만,극심했던 마법 사들의 반발을 생각하면 이런 사 실을 함부로 주변에 알릴 수 없었다.
-바로 훈련에 들어가죠! 제가 멋 진 마법사로 만들어 드릴게요. 마 나 감지 능력으로 보면,한 3개월 이면 마법사로 들어설 수 있을 거 고,5년 정도면 마법 기술자들을 비웃어 줄 수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미래에 그녀를 얻었던 마도사보다 제이크 쪽이 더 재능
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도사는 에고 완드를 얻은 지 7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마법사가 되는 훈련은 루테리아 시에 복귀한 뒤에 해야 할 일이었다.
제시카와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 봐야 했고,황제를 생각하면 제국 에 머무르는 것도 그로서는 고민 해 봐야 할 문제였다.
그런 이야기를 제이크가 꺼냈더 니,파티마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요. 제가 마법
사 기본은 금방 알려 줄 수 있어요. 내일 일어나서 제가 알려 드 리는 곳으로 가시면 돼요.
조금 전 말과 반대되는 이야기였 지만,마나를 모으며 이야기를 하 느라 지친 제이크는 그 말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 날.
제이크는 제시카와 함께 파티마 가 알려 준 곳으로 향했다.
제시카가 감이 안 좋다고 말한
문 둘 중 하나로 다시 찾아가 보 니,그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하,마법사 방 잠금장치가 다 른 문하고도 연결되어 있었나 보 네. 다른 문들도 모두 열려 버렸 겠는걸?"
찾았던 보물함을 다시 침대 밑에 숨겨 둔 그녀는 새로운 탐험에 눈 을 반짝이는 중이었다.
"걱정되지 않아요?"
"거기 있는 걸 아는 건 너하고 나밖에 없잖아. 무슨 걱정이야. 그 보다 난 그 에고 아이템하고 말 통한 게 더 신기한걸?"
아무래도 비밀을 더 가져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서로 갈라서지 않게 된다면 그녀 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에고 완드 파티마가 알려 준 문 뒤로는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작지만 둥근 원형 지하 광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묘한 무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가운데에는 마법진 하 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 방향에,이 정도 거리면 우 리 던전이 아니라 마법사님이 들
어간 던전에 가까울 것 같은데." 제시카가 길을 확인하고는 고개 를 갸웃거렸다.
-맞아요. 방금 통로는 마법사님 연구실하고 중앙 연구소하고 연결 된 통로예요.
제이크가 대신 물은 질문에 파티 마가 제시카의 추측이 맞다고 말 해 주었다.
-그럼 중앙에 있는 마법진에 손 을 올려놔 주세요.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
-마법을 배우게 해 드리려고 하
는 거예요. 잠깐만 올려놓으시면 돼요. 그 어떤 위해도 없다는 것 을 제 인격을 걸고 맹세할게요.
마법사의 맹세란 신성한 것.
제이크는 파티마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제이크는 마법진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곧이어.
마법진과 지하 광장의 모든 무늬 가 빛을 발했다!
이 지하 광장에 새겨진 모든 무 늬가 마법진인 것이었다.
제이크는 주변 모습에 어디선가
보았던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제이크 위로 지하 광장의 환영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제이크의 모습도 있었 고,제시카의 모습도 있었다.
환영은 점점 더 넓은 광경을 보 여 주었다.
미로 같은 주변 던전의 모습과 마법사의 던전,그리고 던전 안을 움직이는 탐사대원들까지.
제이크는 이 마법진이 무슨 마법 진인지 알 수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과거 황성 지
하에서 보았던 그 마법진과 같은 마법 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