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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24화 (24/222)

24 화

환하게 빛나던 지하 광장이 어느 순간 빛이 꺼져 버렸다.

얼마 전,아니,오래전 제이크는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바로 황궁 지하에서 경험한 그의

인생이었다.

제이크는 일그러진 얼굴로 에고 완드를 잡았다.

-소형 현실 복제 마법진이에요. 연구용이라 지하 연구소 안만 복 제되고,기간도 최대 1년이 한계 지만,마법 훈련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어요.

마나를 주입하자 친절하게 설명 하는 파티마였다.

하지만 제이크의 표정은 바뀌질 않았다.

기간은 짧아졌고 범위도 넓지 않 았지만,그의 생각대로 같은 마법

에 휘말린 것이다.

-이곳은 마나로 만들어진 또 다 른 세상이에요. 1년이 한계지만, 이 안에서 필요한 훈련은 다 할 수 있어요. 1년 뒤에는 그 기억을 가지고 지금 이 시점으로 돌아올 수 있고요. 수십만 배 이상 속도 를 빠르게 돌렸으니 마법진 밖의 시간은 거의 멈춰 있을 거예요.

제이크의 기분이 나빠진 것을 알 아차렸는지,파티마는 이 세계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설명이 없어도 제이크는 이 세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런 세상에 들어온 경험이 있었다.

던전 같은 작은 지역이 아니라 이 세상,혹은 이 별 전체를 복제 해서 수십 년을 지냈던 경험이었다.

제이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이 이 세상에 딸려 온 제시카가 있었다.

-같이 들어온 동료는 어떻게 되 지?

-아,던전 안에 다른 분들도 있 었죠? 그분들은 1년 뒤에 던전과

함께 소멸하게 될 겁니다. 아니, 원래 시간으로 돌아간 뒤에 기억 을 못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분들?

-이곳 연구소 전체가 복제된 거 니까요. 다른 곳으로 들어온 분들 도 모두 복제되었을 거예요.

"맙소사."

두 사람이 들어온 던전만 복제된 게 아니라 거대 던전까지 모두 복 제된 것이었다.

좀 전에 환상으로 본 탐사대원들 의 모습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던전에 들어온 탐사대원들 모두

가 말려든 것이다.

"문제가 생겼어?"

마법이 잘못되었을까 봐 제시카 가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 어놓기로 했다.

'어차피 기억을 못하게 됐으니까 지금 이야기하는 것 아냐?'

또 다른 자신이 속에서 비웃는 것을 느꼈지만,제이크는 비웃음 을 감내하고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말고 우선 이야기를 끝 까지 들어 주세요."

그는 제시카에게 전생자였던 이

야기를 제외하고 모든 일을 말해 주었다.

하급 귀족으로 태어나 수습 서기 관으로 살아온 이야기에서 시작 해,황궁 마법진에서 벌어진 사건.

마법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일과 황궁을 빠져나와 제시카와 함께 이곳까지 온 일.

제이크는 이곳에 태어난 이후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고,이야기 를 들은 제시카는 무척이나 혼란 스러워했다.

아니,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 겠다는 표정이었다.

제이크의 설명은 그녀가 생각했 던 모든 상상을 몇 배나 뛰어넘었다.

전생까지 꺼냈다면 헛소리로 생 각했을지도 몰랐다.

결국,제이크는 몇 번이나 다시 설명해야 했고,그러고 나서야 그 녀는 겨우 이해가 되었다.

"그럼 제이크는 애늙은이가 아니 라 할아버지인가……요?"

제시카가 조심스럽게 꺼내는 질 문에 제이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기억만 있을 뿐이에요. 전 처럼 대하시면 돼요. 죽은 거로

되어 있으니 귀족 취급도 안 하셔 도 되고요."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서먹서먹해질까 봐 엄청 걱정했다니까."

제시카는 이제야 제이크의 행동 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양한 지식과 처세,그리고 품 위 있는 모습과 생존 능력,많은 일들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행 동하는 것까지.

그리고 그녀는 소굽친구의 밝은 미래를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럼 콘라드가 미래에 대검호가 된다는 거잖아! 정말 잘됐다."

아쉽게도 미래가 바뀌었으니 대 검호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제이크는 그녀의 기쁨을 굳이 망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기사가 되었으니 대검호 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꿈은 충분 히 이룬 것이니까.

"문제는 지금 갇혔다는 거지?"

"네,1년간 꼼짝없이 이 던전에 갇힌 겁니다. 뭐 자살을 해 버리 면 그만이지만,그건 무리죠."

그녀가 제이크의 말을 믿더라도

자살로 이어지기는 무리였다. 그 리고 제시카는 자살할 생각이 없었다.

"1년 동안 추가 생명을 가진 거 잖아.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기억 을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제이크 가 기억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

밝은 성격 덕분인지,아니면 경 험해 본 적이 없었던 덕분인지 제시카는 편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니면 제이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든 것을 이해한 그녀는 마법에

대한 걱정보다 앞으로 1년을 지낼 방법을 먼저 고민했다.

"제이크는 마법 훈련을 하면 될 테고,물은 우리가 들어온 웅덩이 에서 구하면 되고. 흠,그럼 식량 이 문제려나? 우리가 들어온 던전 은 몬스터나 동물도 보이지 않았 는데..

다행히 식량은 파티마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오래전 던전 한쪽에 거대한 식량 창고를 만들어 놓았었다는 이야기 였다.

보관 마법으로 걸어 놨으니 무사

할 것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무사할지 는 확인해 봐야 했다.

그것보다 먼저 제시카에게 알려 줄 내용이 있었다.

이 복제 마법 던전에 들어온 탐 사대도 휘말렸다는 이야기.

당연히 제시카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1년 뒤,복제 마법이 끝나는 마

지막 날.

제이크는 두 개의 돌무더기 앞에 서 있었다.

아무 이름도 없는 돌무더기였지만,제이크가 정성 들여 쌓아 놓 은 무덤이었다.

제시카와 앰버의 무덤.

마법 공부를 도와주던 앰버와 마 지막까지 제이크를 위해 노력했던 제시카의 무덤이었다.

물론 1년짜리 복제 세상에서의 죽음이었지만,제이크가 느끼기에 는 다른 죽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곧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물론 그동안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그래도 죽었던 사람 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분 되는 일이었다.

-곧 시간이 됩니다.

1년간 그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파티마도 차분하게 세상이 소멸할 시간을 알려 주었다.

"역시 너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가?"

-어쩔 수 없죠. 이 마법진의 기 억 전달은 인간을 대상으로 만들

어져 있어서요.

에고 완드인 파티마라도 기억하 길 바랐지만,이 세상의 기억은 온전히 제이크만 가질 수 있었다.

-그래도 목표했던 능력보다 훨 씬 강해졌으니까요. 이제 어디 가 서 마법 기술자들에게 얕잡아 보 이지 않을 거예요.

"그래야겠지. 그러려고 1년 동안 모두 그 고생을 한 거니까."

제이크와 함께 다른 두 여성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그리고 보답도 받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 았다.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 러보았다.

돌을 쌓아 만든 두 구의 무덤과 주변에 흩어진 마법 아이템들,그 리고 그의 뒤에 쌓여 있는 수많은 몬스터의 딱딱한 껍질들.

두 여성이 죽은 뒤 그가 홀로 지 내던 곳이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

마지막으로 지난 1년을 떠올린 그에게 파티마가 음성을 전달했다.

-수고하셨습니다,제이크 마법사 님.

그 순간,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정신 차려! 제이크! 이건 왜 안 떨어지는 거야! 아!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제이크가 처음 본 것은 울상이 된 제시카가 자신을 마구 흔드는 모습이었다.

그다음 느낀 것은 무척이나 아픈 양쪽 볼이었다.

"아,흔들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 잖아요."

"와,괜찮은 거야? 깜짝 놀랐어.

너 마법진에 손을 올린 채로 딱딱 하게 굳어져 버렸어. 손도 안 떨 어지고,무슨 석화 마법 같은 게 걸린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마구 말을 쏟아 놓는 제시카를, 제이크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이지,그 이상한 소리 하는 완드까지 뺏으려고 했다니 까. 그런데……"

말을 하던 제시카는 제이크를 보 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거야?" 제시카의 질문에 제이크는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았다.

"끽:!"

제시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 지만,작게 속삭이는 제이크의 말 에 차마 그를 뿌리치지 못했다.

"다시 만나서 고마워요."

절절한 말에 제시카는 어리둥절 했지만,우선 그가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제이크는 제시카를 놓 아 주었다.

그리고 제시카를 빤히 보곤 미소 를 지었다.

"무슨 일이야? 마법이 잘못된 건 아니지?"

오래전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에 다시금 웃은 그는 제시카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 앉게 했다.

지난 일 년,마법 속에서 지내는 동안 제시카는 그에게 정말 최선 을 다했다.

그녀는 그 속에서 그의 비밀을 듣고도 변하지 않았고, 죽음으로 그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소굽친구의 대신일지 모른다는 것은 이제 상관없었다.

제시카가 죽었을 때 제이크는 밖 에 나가서도 모든 것을 알려주기 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제시카에게 모 든 것을 털어놓았다.

"놀라지 말고 우선 이야기를 끝 까지 들어 주세요."

과거에 했던 말과 똑같은 말로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반응은 전과 비슷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그전보다 더 심해졌다.

때문에 더 여러 번 설명해야 했 고,마지막으로 그는 증거를 보여 주어야 했다.

"잠시만요."

제시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

한 뒤,그는 파티마에게 말을 걸 었다

-다녀왔어.

-잘 다녀오셨나요? 별문제는 없 었죠?

뭔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파티마 의 음성에 제이크는 이마에 힘줄 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별문제가 없어? 할 말은 많지만 우선 동기화부터 하자.

-마법사가 되셨군요! 잘되었네요. 바로 시작하죠!

동기화를 한다는 생각에 흥분한 그녀는 제이크가 화난 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고생을 시킨 파티마에게 한 소리 를 하고 싶었지만,우선 동기화가 먼저였다.

동기화.

마법사와 에고 아이템의 에고가 마법적인 링크를 걸어,사용자의 오감을 같이 보고 느끼는 것을 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에고 아이 템의 사용자가 정식으로 소유자가 되는 계약이었다.

동기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에고 아이템이 외부 세계를 느낄 수 없

기에 파티마가 제이크가 마법사가 되는 일에 서둘렀던 것이다.

그 탓에 제이크는 1년 동안 복 제 세상에서 죽도록 고생했다.

제이크는 손을 펼쳐 마나를 느끼 기 시작했다.

1년 동안의 마법 수련은 그를 제대로 된 고대 마법사가 되게 했다.

마나를 몸속에 가두는 방식을 사 용하는 요즘 마법사들이었다면 제이크는 몸속에 마나가 전혀 없는 지금,마법을 쓰지 못하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마법을 수련한 제이크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원래 마법사에게 필요한 것은 의 지와 지식,그리고 믿음.

마나는 단지 세상에서 빌려오는 것일 뿐이었다.

그간 배우고 깨달은 모든 것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제이크 로서는 단지 감각을 일깨울 짧은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나 마법사 제이크는 마나의 이 름으로 파티마와 계약을 맺는다."

제이크는 마나를 끌어모으며 강 력한 의지로 세상에 선포했다.

마나는 그의 의지에 따라 제이크 를 향해 몰려들었고,마법은 그의 말에 의해 세상에 배열되었다.

-나 파티마는 마나의 이름으로 마법사 제이크와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파티마의 선언으로 마법 은 효과를 발휘했다.

완드와 그의 몸에서 푸른빛이 흘 러나왔고,잠시 뒤 번역 마법이 없이도 파티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와,얼마 만에 보는 세상인지.

"원 실력을 찾으려면 조금 시간

이 필요하겠어."

-엑! 지금도 대단한데요? 제 예 상보다 훨씬 뛰어나요.

제이크는 파티마의 놀람에 어깨 를 으쏙했다.

그녀의 칭찬은 복제 세계에서 수 없이 들어 별로 감흥이 없었다.

"설마 진짜로 마법사가 된 거 야?,'

더구나, 놀라 굳어 버린 동료를 안심시켜 줘야 했다.

"네,마법사입니다."

그는 제시카를 향해 씩 웃어 주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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