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화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환한 미 소를 지었다.
"우와! 이제 마법사님이라고 불 러야 하는 건 아니겠지?"
"네,평상시처럼 불러 주세요."
이미 여러 번 놀라서인지,단지 제이크가 마법사가 된 것에 기뻐 하는 제시카였다.
"그럼,이제 보물을 들고 던전을 빠져나가면 되는 거야?"
"아뇨,우선 일을 하나 처리하고요."
말을 하는 제이크의 눈에서 스산 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은 마법진이 펼쳐진 지하 광장을 떠나 탐사대가 내려오는
중인 거대 던전으로 향했다.
벽처럼 보이는 문을 통해 거대 던전에 진입한 두 사람은 제이크 의 안내로 빠르게 거대 던전을 주 파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새로 열린 문 앞에 멈춰 섰다.
-식량 창고로 가는 통로네요. 역 시 마법사의 방이 열리면서 같이 열렸군요.
이제는 번역 마법이 없이도 파티 마의 음성이 이해가 됐다.
제이크는 그녀의 음성을 무시하 고 제시카에게 설명했다.
"마법진에 의해 두 던전이 모두 복제되면서 저희 두 사람과 함께 탐사대도 말려들었어요. 그리고 사람들 말고도 걸려든 것들이 있 었습니다."
제이크가 완드를 치켜들었다. 환하게 빛을 뿌리는 완드. 갑작스러운 마법에 제시카는 놀 란 눈치였지만,제이크는 문 뒤쪽 의 통로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멀리까지 밝혀진 통로에는 들개 크기만 한 검은 전갈의 모습이 보 였다.
갑작스러운 빛에 전갈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건 땅굴 전갈들이었어요. 이 리저리 땅굴을 뚫다가 보존 마법 이 걸린 식량 창고를 발견해,그 곳에 자리를 잡았던 거죠. 그리고 전갈들은 던전과 함께 복제된 세 상에 끌려들어 와 갇혀버렸어요."
그 뒤에는 인간과 몬스터 간에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지옥 같 은 세상.
그 와중에 탐사대가 전멸하고,
앰버와 제시카마저 죽었다.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죄송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파티마가 사과했지만,그는 그녀 의 사과를 받아 주지 않았다.
복제 세상 안에서는 모두 용서했 지만,그때의 에고 완드와 지금의 에고 완드는 달랐다.
제이크는 이 기회에 파티마의 콧 대를 좀 꺾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고,빛 이나 계속 유지해.
파티마에게 라이트 마법을 계속
유지시키고,제이크는 다른 손으 로 쇠뇌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쇠뇌에 마법을 걸기 시 작했다.
"마나는 나의 손에 모여 존재를 깨운다."
"존재는 반복되는 규칙을 따라 다시금 움직인다."
"기억을 되살려라!"
제이크의 말이 이어지자, 쇠뇌에 는 묘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제이크는 쇠뇌를 들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땅굴 전갈을 가리켰다.
화살도 걸리지 않은 쇠뇌에 제시카가 의아해했지만,곧 그녀의 눈 은 동그래졌다.
"장전."
제이크의 말과 함께 쇠뇌의 시위 가 스스로 걸리고,등에 짊어진 화살통에서 화살이 튀어나와 쇠뇌 에 장전되었다.
"마법 아이템을 만든 거야?"
'마법' 같은 쇠뇌의 모습에 놀란 제시카가 물어보았지만,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거지,마법 아이템은 아니에요."
보기에는 마법 아이템과 똑같았 지만,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마 법 아이템과는 다르게 마법사가 직접 마법으로 구동시킨 것이었다.
"마법으로 그런 것도 가능한 거 였어?"
평범한 공격 마법 같은 것만 봐 왔던 그녀로서는 제이크의 마법은 신기하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고대 마법사로서는 당연 한 마법일 뿐이었다.
어차피 마법 아이템이란 마법사 가 물건에 거는 마법을 다른 사람
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었다.
지금의 마법사,아니,마법 기술 자들과 다르게,고대 마법사인 제이크는 마법 아이템처럼 물건에 마법을 걸 수 있었다.
제이크는 방아쇠를 당겼고,작은 정찰용 전갈은 쏘아진 화살에 꿰 뚫렸다.
제이크는 죽어 버린 검은 전갈을 지나 통로를 걸어갔다.
뒤따라 걷던 제시카는 고개를 갸 웃거렸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내가 아는 마법사들하고는 영 달라서 말이야. 다들 불공이나 얼 음 화살 같은 걸 만들어서 날리던 데,제이 넌 쇠뇌를 쏘잖아."
"마나 낭비예요. 화살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 마나를 화염으로 전환해 쏘아 내다니,뭐,손이 부 족하다고 시위를 거는 데 마법을 쓴 저도 꽤 폼을 잡은 거지만
어깨를 으쏙이는 제이크의 뒤로 죽은 전갈에서 뽑혀 나온 화살이 따라와,화살통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제대로 된 마법은 곧 보 여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멀리 통로 끝을 바라보며 제이크 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제시카는 조금 떨떠를 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변해 버린 제이크가 적응되지 않았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이전과 달 라지지 않았어요."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는 듯,앞 장을 선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빚을 갚을 수 있게 돼서 조금 흥분한 것뿐이에요."
다행히 전과 다를 바 없는 제이크의 목소리에 제시카의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도 대단한 마법사님이 되어 버리니,뒤쫓아 가기도 힘들어져 버렸잖아."
하지만 편하게 털어놓은 이야기 에 그녀의 속마음이 드러나 버렸다.
그녀는 소꿉친구 콘라드가 떠난 것처럼,제이크도 떠나 버릴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제시카를 위로할 수도 있었지만,제이크는 다른 이야기
를 꺼냈다.
"던전을 나간 뒤에 제시카 씨도 훈련을 시작하죠."
"훈련?"
"제가 마법을 쓰는 것처럼 제시카 씨도 마나를 다루는 훈련을 해 야 해요."
"엥? 내가 무슨 콘라드인줄 알아? 마나 사용자는 천재들만 되는 거야."
"제시카 씨는 천재예요. 제가 제시카 씨를 두 달 안에 마나 사용 자로 만들어 드릴게요."
"어? 농담 아니었어?"
단정적인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 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제이크는 자신 있었다.
이미 복제된 세상에서 제시카는 마나를 깨달았었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지켜본 제이크로서는 그녀의 재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물론 상당히 힘든 시간이겠지만……'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나름 즐 거운 시간이 될 게 분명했다.
통로는 상당히 길었고,두 사람
은 여러 마리의 땅굴 전갈과 마주 쳤다.
창고로 다가가면서 땅굴 전갈들 의 크기는 점점 커졌지만,전갈들 은 두 사람을 막지 못했다.
전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껍질도 단단해졌지만,제이크와 제시카가 쏘는 화살은 막을 수가 없었다.
제이크가 화살에 걸어 준 강화 마법 덕분이었다.
엷은 빛을 흘리며 날아간 화살은 검이 들어가지 않는 단단한 껍질 마저 쉽게 뚫고 들어갔다.
잠시 뒤,두 사람은 식량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는 족족 화살로 처리한 덕분에 두 사람은 들키지 않고 식량 창고 에 숨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위 뒤로 보이는 광경은 제시카를 질리게 했다.
"네가 아무리 마법사라지만 이건 무리 아냐?"
정찰용의 작은 전갈부터 황소보 다 더 큰 전갈까지,백 마리도 넘 는 전갈들이 식량 창고에 우글거 렸다.
더구나 식량 창고의 중앙에는 수 십 개의 알을 등에 진 거대한 암
컷 전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곳은 큰 땅굴 전갈 무리의 둥 지였다.
제시카의 말대로,이 정도 숫자 의 땅굴 전갈과는 싸울 수 없었다. 탐사대가 전멸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에 제이크가 살아남은 것도 도망치면서 하나씩 처리했기 때문 이었다.
고대 마법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정면 대결로 수십 마리를 한 꺼번에 상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제시카와 앰버 도 죽었고…….
제이크는 고개를 흔들고는 눈앞 의 광경에 집중했다.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사각형 형 태의 거대한 지하 석실.
옛날에는 마법으로 보강되어 허 물어지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단지 공학적인 형 태만으로 석실이 유지되고 있을 뿐,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 석실 한쪽에 구멍이 뚫려 버린 틈으로 땅굴 전갈들이
이곳에 둥지를 마련했던 것이다.
석실 한쪽에 뚫린 구멍을 확인한 제이크는 제시카를 향해 손짓했다.
- 따라와요.
머릿속에서 들리는 제이크의 목 소리에 움찔했던 제시카는 곧 그 를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두 사람은 석실 난간을 기어가, 잠시 뒤 석실 벽에 붙은 거대한 기둥 앞에 도착했다.
-지금부터 마법을 사용할 테니 엄호 부탁할게요.
갑작스러운 제이크의 말에 고개
를 끄덕인 제시카였지만,이어지 는 상황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 고 말았다.
제이크가 손을 기둥 위에 올린 채 주문을 외웠고,얼마 지나지 않아 기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쩌저저적!
그 소리에 놀란 땅굴 전갈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한 치의 망 설임도 없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야! 왜 부수는 거야!" 이미 들켰으니,목소리를 줄일
필요가 없었다.
숙! 숙!
쇠뇌를 쏘며 제이크에게 소리를 질렀지만,아쉽게도 제이크는 대 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속은 끊어질 것이고,틈은 벌 어질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가속될 것이고, 형체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입에서는 계속 주문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는 회색빛 마나가 흘 러나와 기둥을 휘감았고,기둥은
계속 갈라지며 부서져 나갔다.
"왜 기둥을 부수는 건데! 설마 기둥이 부서지면 석실이 무너진다 든가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쉽게도 그녀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는 마법이 없이도 갈라지는 기둥을 보곤 제이크는 마법을 거 두어들이고는 제시카를 향해 소리 쳤다.
"곧 석실이 무너질 거예요! 달려 요!"
놀란 제시카는 제이크 뒤를 따라 달리며 그에게 소리쳤다.
"에엑! 이 무식한 놈아! 석실을 무너뜨리면 우리도 깔리잖아!"
"괜찮아요! 석실만 무너질 거예요. 통로부터는 끄떡없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한 번 무너뜨려 봐서 알아요!"
"엑?"
제이크의 대답에 제시카는 발이 꼬일 뻔했다.
오랜 싸움 끝에 땅굴 전갈 무리 를 쓰러뜨린 제이크는 복제 세상 을 나간 뒤 어떻게 하면 무리 전 체를 없애 버릴 수 있을지,고민
을 계속했었다.
물론 땅굴 전갈들을 남겨 놓고 떠날 수도 있었지만,그렇게 되면 탐사대가 위험했다.
탐사대가 위험해진 건,제이크가 연 문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앰버 는 죽게 놔둘 수가 없었다.
제이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던 끝에 식량 창고의 기둥을 발견하 게 되었고,죽을 것을 각오하고 기둥을 무너뜨려 본 것이다.
다행히 제이크의 실험은 성공했 고,지금 이 순간 그 실험이 재현
된 것이다.
쿠구구구궁!
결국,기둥은 완전히 무너져 내 렸다.
그와 함께 석실 전체가 마구 흔 들렸다.
쿠아아악!
땅굴 전갈들은 대혼란에 빠져 버 렸다.
흩어져 있던 땅굴 전갈들은 급하 게 암컷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암컷들을 석실 옆에 난 구멍으로 데려갔다.
자신들이 들어왔던 구멍으로 빠
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일부는 제이크를 쫓아 통로로 달려갔다.
콰과과쾅!
결국,석실 천정도 무너져 내렸다.
"꺄악!"
"뛰어요!"
"쿠엑!"
다행히 두 사람은 석실이 무너지 기 전에 통로로 뛰어들 수 있었지만,뒤따라오던 전갈들은 쏟아지 는 토사에 휘말려 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거친
숨을 내쉬었다.
"휴,내 말이 맞죠? 통로는 안전 하다니까요."
몸을 뒤덮은 흙을 털어 내며 하 는 말에 제시카가 화를 냈다.
"그래도 말을 했어야지! 네 덕분 에 수명이 마구 줄어든다니까!"
"늦을까 봐 말 못했어요. 죄송해요."
내심을 숨긴 채로 제이크가 사과 했다.
늦을 것 같아 말을 안 한 것도 있었지만,더 중요한 이유는 이곳 에 오는 것을 제시카가 반대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시카는 복제 세상의 일을 기억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제이크의 복수심을 이 해시키기는 무리였다.
"휴,지난 일이니까 이번만 봐줄 게. 다음부터는 꼭 말해야 해!"
"알겠습니다."
"으이구,대답은 잘해요. 그런데 이 진동은 얼마나 가는 거야?"
고개를 흔들던 제시카가 다시 그 에게 물었다.
쿠구구구구구.
석실이 모두 묻혀 버린 뒤였지
만,그녀 말대로 진동은 계속 이 어지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전에는 바로 소리 가 멈췄는데…… 아…… 계산이 틀렸나?"
제이크의 머릿속에 복제 세상과 지금의 다른 점이 떠올랐다.
던전 주위만 복제된 세상과 던전 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존재하 는 지금.
"실수했다."
던전에 가해지는 압력이 같을 리 가 없었다!
다시금 통로가 무너져 내리기 시
작했고.
"아무래도 좀 더 달려야 할 것 같아요. 뛰어요!"
"이게 뭐야!"
아직은 실수투성이인 신입 마법 사가 도적과 함께 무너지는 통로 를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