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저택을 싸게 구할 수는 있었지만,바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낡은 집이었다.
3층짜리 저택에 양옆으로 마구간 과 창고가 있는 전형적인 지주의
집이었지만,창고는 구멍이 나 있 었고,마구간은 반쯤 허물어져 있 었다.
다행히 저택은 튼튼하게 지어져 있어 내부 수리만 하면 될 듯했다.
"하지만 마물도 등장한다고 하잖아. 담벼락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쪽은 제가 생각이 따로 있어요. 우선 수리부터 끝내죠."
후견인인 남작에게 넘겨진 고향 집 이후에 처음으로 산 집이었다.
미래 기억 속에서도 이런 저택은
사 본 적이 없으니,전생과 미래 를 통틀어서 처음이었다.
제이크와 제시카는 바로 사람들 을 써서 저택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석공을 불러 무너진 벽을 수리하 고,목수를 불러 내부의 가구들을 다시 설치했다.
불려 온 사람들은 이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낡은 집을 고친다는 이야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을 지었다.
그래도 웃돈을 충분히 얹어 준
덕분인지 일은 제대로 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 창고와 마구간도 수 리를 마치니,낡은 저택은 다시 번듯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황량하지만 넓은 벌판을 앞에 두 고 산을 등진 채로 저택은 과거의 위용을 되찾았다.
두 사람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저 택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제시카가 조금 걱정되 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좋긴 좋은데 지금 둘이 지내기 는 너무 크지 않아?"
고칠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집
이 너무 컸다. 이 집 구석구석을 청소할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까 마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을 채워야죠."
제이크는 처음부터 둘이 지낼 생 각이 없었다.
"엑,벌써 사람을 쓸려고? 사람 이 늘어난 뒤에 쓰려던 것 아니었어?"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낭비 돼요. 왜 용병들이 비싸도 여관에 서 지내는 건데요. 숙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잖아요."
제이크의 말은 무척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제시카는 사람을 쓴다는 생각에 돈이 먼저 걱정되 었다.
"하지만 비싸잖아."
"저,부자예요. 그리고 앞으로 더 부자가 될 거고요."
싸게 저택을 산 덕분에,제이크 에게는 아직 많은 돈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 마법 아이템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제이크는 마법사였다. 돈
을 버는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았다.
"그거야 그렇지만…… 둘만 있는 데 사람을 쓸 거라곤 생각 못해 서……"
귀족으로 살았던 제이크와 산골 소녀였던 제시카는 사고방식이 달 탔다.
물론 여러 인생을 살아보았던 제이크는 제시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고,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설명했다.
"제시카가 밥하실 거예요? 저도 차 이외에는 잘 못하는 편입니다
만."
단 한마디의 질문에 제시카는 수 긍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여관 주인 패트릭의 도움으로 주방과 살림을 담당할 두 명의 여성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은 패 트릭에게 저택을 샀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고,그 이야기는 다시 두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말 을 꺼내게 했다.
다행히 패트릭은 두 사람의 성공 을 기뻐하면서 여관을 나가게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딸인 제니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 섰다가 패트릭에게 꿀밤을 맞았다.
패트릭은 한 미망인과 그 딸을 소개해 주었다.
평상시 오지랖답게 그가 돕던 친 구 용병의 유족으로 30대 후반의 여성과 10대 중반의 소녀였다.
소개를 받은 자리에서 두 여성은 어린 소년과 처녀의 등장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곧 정중하게 인사 를 하는 것으로 제이크와 제시카 를 흡족하게 했다.
세파에 시달렸지만,아직 조금은 미모가 남아 있는 여성의 이름은 힐다,그리고 아직 어린 그의 딸 의 이름은 앤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딸의 인사와 달리 힐다의 인사는 제대로 된 인사였다.
"전에도 경험이 있으신가 보군요."
"네, 젊었을 때 귀족가에서 하녀 로 있었습니다."
제이크가 묻자,힐다는 조금 긴 장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제이크를 보고 바로 알아 차렸다.
옆에 서 있는 여성 용병과 달리 어려 보이는 청년은 몸에 예법이 배여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둘 중 누가 실세 인지 알아차렸고,예상보다 어려 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차차 더 뽑을 겁니다. 다행히 힐다 씨가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 사람들이 늘어도 잘 관리 해 주시기 바람니다."
"알겠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힐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제시카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 지 몰랐지만,지금 제이크는 힐다 에게 하녀장 자리를 약속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좋은 분을 소개해 주셨군요. 감 사합니다."
"역시,자네는 비밀이 많아. 아무 래도 딸은 못 주겠어."
제시카나 제시와 다르게 두 사람 의 이야기를 대충 눈치첸 패트릭 이었다.
"아빠!"
"패트릭!"
패트릭의 말에 제시카와 제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제시카의 고함에 제니는 묘한 눈 으로 제시카를 보았지만,제시카 는 자기가 왜 소리를 질렀는지 어 리둥절했다.
"그럼,두 분은 선불을 드릴 테 니 한 주 정도 뒤에 저택으로 오 시면 됩니다."
"엥? 그렇게 늦게? 집수리는 다 끝났잖아."
"아뇨,아직 일이 다 안 끝났어요."
제이크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 는 제시카였지만, 다음 날 그녀는 제이크의 말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며칠 잘 쉬게 해 주더니 이번에 는 도끼질이냐!"
다음 날,제시카는 횃불을 조명 삼아 도끼로 바위를 부수고 있었다.
집을 지을 동안에는 그나마 한자 리에서 마나 감지 훈련을 하게 해 주었는데,오늘 느닷없이 바위를 부수라는 지시를 한 것이었다.
그녀가 부수는 바위는 저택 지하 실에 박힌 바위로,제이크는 벌써 바위 옆 흙을 마법으로 부수며 한 참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저택 지하실에 동굴을 뚫는 중이었다.
목표는 마나가 모이는 핫 스팟이 있는 저택 뒷산 지하.
그가 마법으로 흙을 부수며 나아 가다가,중간에 길을 막아선 돌과 바위는 제시카에게 말해 부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전에 기둥을 부순 것처럼 그도 바위를 부술 수는 있었지만,
바위를 부수면 한참 동안 마법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바위와 돌은 제시카에게 맡기고,제이크는 흙만 파 내려간 것이다.
"내가 무슨 마나 사용자이냐 고…… 그치들이야 검으로 바위를 잘라 버린다지만,나 같은 도적이 곡평이로 두들겨서 어쩌란 말이 야."
마나 훈련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없었으면 제시카는 예전에 곡평이 를 던져 버리고 도망쳤을 것이다.
근래 계속 간질거리는 느낌 덕분
에,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그 녀는 제이크의 지시를 착실하게 따르는 중이었다.
"아니,곡괭이 날은 어쩌려고,이 렇게 두들기다가는 날 다 망가지 겠다. 곡괭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꿈쩍도 않 는 바위를……"
쩍!
"……갈라졌다."
한껏 투덜거리면서 내려친 바위 가 그만 반으로 갈라지고 만 것이 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곡괭이와 바
위를 번갈아 보던 그녀는 함박만 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힘껏 곡 괭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두르는 곡괭이에는 아주 흐린 빛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우와,제이! 또 부서졌어!"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에 제이크 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슬슬 벽이 깨지는 중이네요. 파티마의 말처럼 벽이 깨지는 중 이었다.
몸 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냥 흘려보내던 마나를 어느 순간 부터 몸 안에 담아 놓게 되는 그
시점.
바로 마나 사용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부서지지 않던 그녀의 벽은 이곳 핫 스팟의 풍부한 마나 덕분에 깨지게 된 것 이다.
그것을 위해 계속 바위를 부수라 고 한 것이었고,그녀는 훌륭히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위를 부수 기 위한 쪽이 더 컸잖아요.
하지만 훌륭한 제자를 향해 만족 한 미소를 짓던 제이크를 향해 파
티마가 진실을 폭로해 버렸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저렇게 무식하게 바위를 깨부술 필요는 없었다.
그냥 핫 스팟에 가까운 동굴에서 마나 감지만 계속해도 될 일이었다.
-저쪽이 더 빨라.
뻔뻔한 대답을 한 제이크의 심상 에 파티마의 한숨이 들려오는 듯 했지만,제이크는 한 치의 부끄러 움도 없었다.
모두가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동굴을 판 지 6일 뒤,제
이크는 동굴을 핫 스팟까지 뚫을 수 있었다.
거리가 수십 미터 이상 되는 동 굴은 두 사람이 충분히 걸어갈 널 찍한 넓이를 가졌고,곳곳에 박혀 있던 바위는 제시카의 손에 부서 졌다.
그리고 제이크가 파낸 흙과 제시카가 부순 돌덩이들은 밤사이에 제이크의 마법으로 지상으로 옮겨 졌다.
덕분에 동굴이 연결된 6일 뒤, 저택 주위에는 높은 담벼락이 세 워졌다.
제이크와 제시카는 지하 동굴 끝 에 서서 저택 지하실까지 이어진 긴 동굴을 바라보았다.
"수고했어요."
"암,암,수고했지. 흐흐흐."
제시카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 으로 손에 든 마법 단검을 바라보 았다. 단검의 날은 전과 다르게 붉은빛이 돌고 있었다.
제시카의 마나가 검날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시카는 결국 마나 사용자가 되 었다. 병사였으면 기사로 특채되
는 바로 그 마나 사용자로,소꿈 친구인 콘라드와 같은 위치로 올 라선 것이다.
아니,도적이란 직업을 가진 용 병 중에서는 그녀 혼자일지도 몰 탔다.
"그럼 다 끝난 거지?"
마나 사용자가 되어 기쁜 것도 있었지만,그동안의 훈련이 끝난 것도 그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중요한 일은 끝났지만,그래도 제시카가 틈틈이 해 주셔야 할 일 이 있어요."
"엑? 또 있어? 나 안 해! 마나
사용자 되었으니 안 해도 되잖 아!"
제시카는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 었지만,제이크는 전혀 개의치 않 았다.
"제시카 씨도 마음에 드시는 일 일 걸요?"
제이크는 자신들이 온 동굴을 가 리켰다.
"통로 옆으로 방들을 확장하는 것은 제가 조금씩 해도 되지만, 이곳까지 오는 길에 함정을 깔아 놓는 것은 제가 할 수 없어요. 마 법으로 만드는 함정들은 가능하지
만,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함정을 만든다고?"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의 눈이 반 짝였다. 함정을 만든다는 이야기 를 난생처음 들은 도둑은 그만 마 법사의 말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네,그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제 대로 된 함정을 만들어 주세요. 제대로 된 정통 마법사의 실험실 이 허접스러운 함정이 깔렸을 수 는 없죠."
제이크의 말이 이어지자 제시카 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잠깐,뭔가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내용인데……"
"뭐가요? 던전을 만드는 거요?" 던전이라는 말에 제시카가 입을 딱 벌렸다.
"엑! 지금 우리가 던전을 만드는 거였어?"
"당연하죠. 제가 뭘 만든다고 생 각하셨어요? 고대 마법사의 공방 인데 당연히 던전이죠."
"에엑! 에엑! 던전이라니!"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빙빙 돌던 제시카는 번개같이 제이크에게 달 려와 그의 얼굴에 얼굴을 들이댔다.
"지금 우리가 던전을 만드는 거 란 말이지? 여태 우리가 파내던 그 던전을? 내가 지금 던전의 함 정을 최초로 만드는 도적이란 소 리인 거지?"
제시카의 홍분은 제이크의 예상 이상이었다.
벌써 동굴을 달려가며 함정을 만 들 곳을 확인하는 모습에 헛웃음 을 짓던 그는 고개를 돌려 동굴의 끝, 핫 스팟을 바라보았다.
흘러가던 마나가 고이는 장소. 그곳에는 지금도 공기 전체가 마 나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다만,아쉽게도 대수림보다는 마 나가 부족해 보였다.
-어쩔 수 없죠. 제가 있던 연구 소의 복제 마법진보다 수천만 배 강력한 복제 마법진이 마나를 빨 아먹고 있는데. 지역에 마나가 남 아날 리가 없죠.
계곡 전체의 마나를 빨아들여 연 구소의 복제 마법진을 가동하는 것처럼,제국 수도에 있는 복제 마법진은 대륙의 반 이상의 지역 에 있는 마나를 끌어당기는 중이 었다.
계곡에 있던 마법진처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아니었지만,그 래도 제국이 대수림보다 마나가 희박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였다.
"뭐,예상하던 일이었으니,필요 한 마나는 사냥으로 채워야겠어."
-몬스터의 마석을 쓸 생각인가요?
"그 방법이 제일 빠르니까. 마석 을 사들이는 것은 위험하니까 결 국 사냥인데……"
-사냥하려면 파티 인원이 더 필 요하겠네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냥하면 마석을 얻기 어려울 테
니.
"그럼 우선 파티원을 구할 차례 인가?"
제이크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뽑 아 놓은 사람들의 이름이 스쳐 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