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급 서기관의 회귀-31화 (31/222)

31 화

제이크와 제시카가 공방을 완성 했을 때,루테리아 공작은 한창 인상을 찡그리는 중이었다.

그는 방금 다른 영지의 밀사와 면담을 했는데,그 밀사가 그에게

두통을 안겨 주었다.

"골치 아프군."

"아무래도 그냥 거절하시는 편이 어떠 실는지요."

그의 오랜 참모이자 친척인 앤드 류 남작이 옆에서 조언했지만,그 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냥 무시 하기는 곤란해."

"하지만 돕다가 들키면 새 황제 의 분노를 살 수 있습니다."

남작의 말이 정론이었지만,그의 말대로 하기에는 공작의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그게 문제지. 하지만 저들도 큰 잘못도 없이 철퇴를 맞은 상황이 야. 새로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있었던 일이었지만,이번 황제는 정말 심하군."

"그래도 바보는 아닌지 내란 수 준까지는 가지 않게 조절하는 듯 합니다."

남작의 말에 공작이 작게 비웃음 을 흘렸다.

"전지의 황제라 불릴 정도인데, 그렇게 쉽게 틈을 보이겠나. 어쨌 거나 우리 영지에 계속 머무르게 할 수도 없으니,분란의 소지가

없도록 떠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나아."

"그럼,병력을 준비할까요?"

공작은 남작의 말에 고개를 흔들 었다.

"아니,대놓고 돕기는 어려우니 까…… 애들은 지금 대수림에 있 지?"

"네,첫째 공자님과 둘째 공자님 은 레인저 부대를 이끌고 대수림 을 정리하는 중이십니다."

공작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직접 보낸 만큼 그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루테리아 영지의 레인저들은 일 정 시간마다 대수림의 몬스터들을 정리하곤 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최대한 줄여 놓아야 나중에 몬스터 웨이브를 줄일 수 있었다.

이번 파견에는 그가 두 아들을 레인저들과 함께 대수림으로 보냈 었다. 영지를 다스릴 자들이라면 경험해 보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 었다.

두 아들이 자리에 없으니 결국 이 일은 남은 사람이 해야 할 듯 했다.

"흠,그럼 이번 건은 레이첼에게 맡겨 봐야겠군."

"네? 괜찮으시겠습니까? 따로 사 병도 없으신데."

공작의 말에 남작은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뭐,어차피 들킬까 봐 레인저도 쓸 수 없어. 첫째나 둘째에게 맡 겨도 용병이나 개인적인 사병을 쓰는 건 마찬가지야. 형제들 고생 하고 있는데 혼자 놀게 할 필요는 없지. 용병을 구하든 사병을 모으 든 알아서 하라고 해야겠어."

"여태 고생하던 공녀님에게 너무

과한…… 아,무슨 뜻인지 알겠습 니다."

공작의 참모로 일한 지 벌써 십 수 년.

이 정도 정보를 주었는데 남작이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공작은 지금 남작에게 자신의 딸 을 후계자에 포함하겠다는 뜻을 알린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리게 말했다 는 뜻은 앞으로 이 사실을 공식화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뒤 호출을 받은 공녀가 공

작에게 찾아왔고,공녀는 공작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남작은 새로 뛰어든 후보 를 보며 주판을 튕기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제이크와 제시카는 길드 사무소 1층에서 마법사 앰버를 만나게 되 었다.

"지내던 여관에서 나가신 모양이 더라고요. 길이 어긋날 뻔했네요."

두 사람은 앰버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성 바깥에 작은 파티용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절대 작지는 않았지만,오 해를 사지 않으려면 아직은 저택 을 비밀로 할 필요가 있었다.

앰버는 그 두 사람을 만나기 위 해 원래 그들이 묵고 있던 여관을 찾아갔었지만,패트릭이 두 사람 이 어디로 갔는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앰버가 그들을 찾기 위해 길드 사무소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저택의 단장을 마친

뒤,새로운 소식이 없나 하고 길 드 사무소로 찾아온 두 사람과 이 렇게 마주치게 되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제이크와 제시카는 앰버가 저택 에 대해 더 물어볼까 걱정했지만, 정작 앰버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혹시나 늦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의뢰가 있어서 두 사 람을 찾았어요."

앰버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두 사람을 지목 해서 의뢰를 맡길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수림을 통해 사람들을 남부 왕국까지 호송하는 일이에요. 대 수림을 잘 알고 호위가 가능한 용 병이 필요해요.

그때 두 사람에게 들려온 앰버의 메시지 마법에 제시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제이크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제시카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 었다.

"자리를 옮기죠."

제시카의 생각이 맞다면 의뢰의

수락과 상관없이 이곳에서 할 이 야기가 아니었다.

세 사람은 길드 사무소 근처의 여관으로 가,방을 잠시 빌렸다.

방을 빌리는 일이 흔한지,여관 주인은 돈을 받자 바로 방을 빌려 주었다.

그 덕에 세 사람은 작은 방에 앉 아 제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뢰 내용이 도망자 인도,맞나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한 뒤,제시카가 앰버에게 질문했

다.

앰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카의 질문에 제이크는 그제 야 앰버가 맡기고자 하는 의뢰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곳 루테리아 용병들이 하는 일 중에는 던전 탐사 같은 드러내 놓 고 하는 일뿐만 아니라, 비밀을 요하는 음지의 일들이 있었다.

음지의 일은 말처럼 겉으로 드러 내기 어려운 일로,지저분한 일부 터 시작해서 불법적인 일까지 다 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제국의 도망자

들을 대수림을 통해 남쪽 왕국으 로 탈출시켜 주는 일이었다.

중앙에 권력이 집중된 제국은 남 부 왕국들과 제국 사이에 대단한 숫자의 병력과 감시망을 깔아 놓 고 있었다.

들키지 않고 제국을 가로지르고, 또 훈련된 병사들과 마법을 피해 남부 왕국으로 달아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반 범죄자들은 국경을 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의 추적을 받는 다른 도망자,즉,내란이나 국가 반란에

연루된 귀족들은 제국을 가로질러 남부 왕국으로 탈출하기는 무척이

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도망자들이 남부 왕국으로 가는 방법은 서쪽의 바다를 이용 하거나 동쪽의 대수림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이어져 오는 동안,수많 은 도망자가 용병의 안내를 받아 대수림을 통과했었다.

또한,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도망자 인도는 용병들에게는 고위 험,고소득의 일로 자리 잡았다.

앰버의 대답에 오히려 제시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망자 입장에서도 신뢰할 수 있 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앰버가 의뢰를 가져온 것 을 보면,이 의뢰는 비공식적으로 영주성에서 나온 의뢰였다.

당연히 영주성과 연결된,이런 일을 하는 용병들이 있었을 터인 데,굳이 두 사람에게 의뢰를 가 져온 것이 의아했다.

"이 일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영 주님과 상관없어요."

앰버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영주성과 연결된 이야기라

고 말할 리가 없었다.

"다만,이번 의뢰를 받아 주면 공녀님이 제시카 씨를 중요하게 쓰실 거예요."

하지만 이어진 앰버의 말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아직 이런 식의 말에 익숙하지 못한 제시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제이크는 단번에 눈치챘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영주님이 아니라 공녀님 쪽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이번 의뢰는 저희 두 사 람을 자기 사람으로 쓸 수 있을지 확인하는 일종의 테스트라고 봐도

될 것 같네요.

제이크의 메시지 마법에 제시카 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녀가 두 사람,아니, 제시카를 좋게 본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고마운 이야기였지만, 아쉽게도 시기가 좋지 못했다.

영주의 딸,그것도 공녀와 인맥 을 만드는 것은 용병인 제시카에 게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고,제이크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위험한 일에 휘말려선 안 되었다.

물론 마나 사용자가 된 제시카와 고대 마법사인 제이크는 평범한 용병과는 절대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반란 귀족과 연관되는 것 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제야 겨우 발돋움을 시작했는 데 위험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파티원을 모아 몬스터를 사냥한 뒤,마석을 모아 가며 차근차근 성장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

거절하자는 제이크의 메시지 마 법에 제시카도 동의했다.

단지 모험을 좋아해서 용병이 된

그녀였다. 제이크와 관련된 일도 아닌데 괜히 지저분한 일에 연관 될 이유가 없었다.

"저희는……"

"톨레도 영지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저와도 인연이 있기에 따로 부탁하는 거예요."

제시카가 거절하려는 기색을 읽 은 앰버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부탁이 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었다.

귀족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무 척이나 껄끄러운 일이었지만,예

시카는 다시 한번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말을 끝 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저희는……"

"잠깐만요."

제이크가 그녀의 말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제시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자,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의뢰를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습 니까?"

조금 전까지 메시지 마법으로 말

한 내용과 반대되는 이야기에 제시카가 그를 노려보았지만,그녀 는 앰버 몰래 계속 사과하는 제이크를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제시카는 결국,의뢰를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의뢰를 받아들이겠 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인원은 제 가 모아도 되겠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모아 주세요. 그리고 아시겠지만,누구를 데 리고 가는지와 저에 대해서는 비 밀로 해 주세요."

어떻게 자신을 감출지 말은 안

했지만,앰버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다음 날 출발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이야기를 마친 뒤,앰 버가 먼저 방을 나서자 제시카가 제이크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자 이제 왜 말을 바꿨는지 설명 해 보실까?"

"톨레도 영지 때문이죠."

"그게 왜 "

톨레도 영지는 이번 황제가 즉위 한 뒤,반란 혐의를 뒤집어씌워 정리한 여러 귀족 영지 중 하나였

다.

황제에 의해 영지가 토벌당했다 는 이야기에 제이크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왜냐하면,미래에 톨레도 백작이 황제에 전횡을 막는 데 톡톡한 역 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외척이었던 루테리아 공작은 영지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 대신 톨레도 백작이 황제를 반대하는 귀족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덕분에 백작과 그의 영지는 미래

를 경험하고 돌아온 황제의 첫 번 째 척살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도 중에 문제도 많이 있었지만,전지 의 황제라는 명칭은 그런 문제를 모두 이겨 낼 만한 힘이 있었다.

이미 백작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귀족들은 백작의 남은 일가가 분 명했다.

"하지만 이미 도망자가 된 귀족 들이잖아. 다른 나라로 도망가서 힘을 키운다고 해 봤자 도움이 되 나?"

"귀족들의 힘이 필요한 게 아닙 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필요합 니다."

톨레도 영지의 몰락에 제이크가 아쉬워한 이유는 백작 때문만이 아니었다.

톨레도 영지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당시 제이크의 머릿속에는 백작의 성에 거하고 있었던 한 사 람이 떠올랐다.

백작이 죽고 영지가 토벌되었다 는 소리에 포기했었는데,다시금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제이크의

기억에 의하면 지금 그는 백작 일 가와 같이 움직였을 확률이 높았다.

"귀족과 연줄을 만드는 게 아니 라,파티원을 구할 생각입니다. 제 예상대로라면 제대로 된 검사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쩝,그런 이야기면 화를 내기도 어렵잖아."

그녀는 이번 기회에 연장자로서 제대로 혼을 낼 생각이었다.

근래 계속 제이크에게 휘둘린 덕 분에 나름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 했는데,아쉽게도 이번에도 혼을

내기는 무리였다.

* * *

파티가 해산된 뒤에 비웃음도 많 이 당했지만,제시카의 인맥은 아 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파티원으로 포함 시키고 싶어 하던 건실한 용병 파 티를 하나 끌어들였다.

"맥일세. 제시카 걱정을 많이 했 는데 나름 잘 헤쳐 나가는 걸 보 니 마음이 놓이는군. 잘 도와주게 나."

용병 파티의 파티장은 중후한 중 년 남자였다.

큼직한 곡도를 허리에 찬 그는 얼굴과 몸에 난 상처만큼 연륜이 있어 보였다.

"맥 아저씨네는 꽤 건실한 파티 로 이름이 높아. 큰 용병대에서도 스카우트하고 싶어 한다니까."

만약,맥의 파티에 제대로 된 도 둑이 없었다면 맥의 꼬드김에 넘 어갔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다른 어떤 파티도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예상보다 제시카, 네

인맥이 좋구나. 귀족님 일도 받고 말이야."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도망 자가 귀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용 병은 없었다.

"어쩌다 굴러들어 온 거예요. 여 기 제이가 복덩이죠."

제시카의 말에 맥이 제이크를 다 시 한번 바라보았다.

지금 제이크와 제시카,그리고 맥의 파티원들은 루테리아 시를 빠져나와 영지 외각의 작은 마을 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그곳은 어제 앰버가 위치를 알려

줬던,톨레도 영지를 탈출한 도망 자들이 숨어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에 다가가자 가까운 집 앞에 한 여성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색이 바랜 갈색 머리에,날카로 워 보이는 30대 여성이 로브를 입고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로브를 입은 것을 보아,마법사가 분명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에 어리둥절한 제시카였지만,바로 들려온 제이크 의 메시지 마법에 눈이 커졌다.

-앰버 님이잖아요.

"엑,마법인가?"

뜯어보면 비슷한 면이 있겠지만, 원래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 습이라 제시카는 쉬이 믿지 못했다.

-마법이 아니에요. 변장이지. 뭐, 저 정도면 마법이라 불러도 될 정 도네요.

전생의 분장들을 본 경험이 없었 더라면 제이크도 알아차리지 못했 을 게 분명했다.

10살 정도 나이 들고,머리색과 피부도 다르고,얼굴형까지 변한 모습에 제이크는 자신의 단순한

변장을 반성했다.

"어서들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 어요."

목소리마저 허스키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마법보 다 이쪽에 더 소질이 있어 보였다.

제이크는 그녀가 같이 간다고 한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분장이면 누구도 알아차리 지 못할 게 분명했다.

잠시 뒤, 그녀 뒤쪽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와 다르게,엉성하게 변장을 한 도망자들이었다.

그리고 제이크는 자신이 찾던 사 람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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