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화
찾던 사람을 만났지만,제이크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괜히 나서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 가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 상황을 봐
서 일을 진행해도 충분했다.
도망자들.
귀족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어 린 소녀,잘생긴 젊은 소년,그리 고 시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과 기사들과 종자들.
지저분한 모습으로 숨기고 있었 지만,딱 봐도 원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곳까지 도망쳐 왔는지 신기할 정도였지만,어쨌거나 지 금은 의뢰자들이었다.
"잘 아는 유능한 파티입니다. 다 들 실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
셔도 됩니다."
제시카가 대표로 변장한 앰버에 게 말하자,앰버가 다른 용병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노련해 보이는 용병들이 었다.
뒤에 서 있던 여성들은 겁에 질 린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 았지만,젊은 소년은 신기한 표정 으로 제시카를 빤히 바라보고 있 었다.
-아무래도 저 귀족 소년이 제시카가 마나 사용자라는 것을 알아 차린 것 같은데요?
제이크의 메시지 마법에 제시카 는 힐끔 소년을 훔쳐보았다.
마나 사용자들끼리는 가까이 접 근하면 서로가 마나 사용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까이 접근해야 가능한 일이었고,기사들이나 제시카는 서로 마나 사용자인지 알 정도로 가까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는데, 설마 어린애한테 정체를 들킬 줄이야.
-백작의 둘째 아들이 살아남았 군요. 미래에도 엄청난 기사가 되
어 있었고,지금도 천재로 이름 높은 소년 기사이니 알아보는 것 도 무리가 아니죠.
제시카는 자신이 마나 사용자인 것을 처음 들킨 상대가 귀족 소년 이라는 사실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차피 그녀가 마나 사용자라는 것은 알려지게 될 수밖에 없는 일 이었지만,두 번째 만난 어린 귀 족이 천재 검사라니.
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백작의 둘째 아들이자 제국 최연
소 기사로 이름 높은 로럴드 톨레 도는 제시카를 보고 만족한 얼굴 이 되었다.
그로서는 여성 마나 사용자,그 리고 용병 마나 사용자를 처음 보 았다.
마나 사용자가 된 지 얼마 안 돼 보였지만,이런 사람을 붙여 주다 니,루테리아 공작의 배려가 나쁘 지 않았다.
제시카의 실력을 알아본 공작 자 제 덕분에 일은 편하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제시카와 다른 용병들을
인정해 주었고,일행은 바로 마을 을 빠져나갔다.
일행이 빠져나가자 집안에 틀어 박혀 숨죽이고 있던 마을 사람들 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도망자건 아니건 귀족과 같은 곳 에 지내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귀족들이 떠나가자 마을 사람들 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마을은 다시 원래의 모습 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다음 날 새벽.
일행이 떠나간 마을에 평범한 가 죽 갑옷을 입은 용병처럼 보이는 자들이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용병이었 지만,그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은밀하고 신속했다.
그들이 말없이 마을에 있는 집들 을 방문할 때마다 그 안에서는 작 은 비명들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흐른 뒤,그들은 마을 중 앙 광장에 모였다.
그들 중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보고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다고
합니다. 용병들하고 떠났다고 하 니 대수림을 통해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다른 자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한 남자가 덩치 큰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철수할까요? 조금 늦은 것 같습 니다만."
이들은 이곳까지 도망자들을 추 적해 온 제국의 사냥개들이었다.
새 황제가 들어선 뒤 일이 밀려 서,이번 도망자들을 조금 늦게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아니,추적한다."
부관의 반대에도 추적대의 대장 은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꽤 위험할 겁니다. 어차피 잔당 일 뿐인데 대수림 안까지 따라가 는 건 좀 과한 듯한데요."
그 위험하다는 대수림이었다.
부관은 다시 조언했지만,대장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제일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야. 그들 중 잡아야 할 인간이 하나, 제거해야 할 인간이 하나 있다. 잡기 힘들면 제거하라고 했으니 지금 같은 경우는 둘 다 제거가 정답이겠지."
"골치 아프군요. 알겠습니다." 제국에서 제일 위면,한 사람밖 에 없었다.
제국의 사냥꾼으로 음지에서 지 저분한 일을 해결하는 그들로서는 황제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다.
추적자들은 빠르게 루테리아 시 를 향해 움직였고,마을에서는 더 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추적자들이 마을을 떠났을 때, 제이크와 도망자들은 대수림에서
첫 밤을 보내고 다시금 출발 준비 를 하는 중이었다.
제시카가 고른 용병 파티는 상당 히 실력이 좋았다.
파티원 중 도적은 길잡이형 도적 으로,대수림에서 귀신같이 길을 찾아냈다.
그러면 다른 파티원들은 앞뒤에 서 주변을 경계하며 일행을 이끌 었다.
몇몇 파티원들은 수풀 속에 사라 졌다가 나타났다.
그들은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계 속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던전 탐사 때 대충 뭉쳐 다니기 만 한 용병들을 봐 온 제이크는 제대로 된 용병을 보자 감탄이 절 로 나왔다.
더구나,운 좋게(?) 첫날은 몬스 터와 전혀 만나지 않아 일행의 사 기는 무척 높았다.
물론,대수림을 걸어가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고역이어서 벌써 무 척 지쳐 보였지만,그래도 아직 걸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편한 여행이 분명했다.
"얼마 못 봤다고 무슨 몬스터를 피하는 능력 같은 게 생긴 건 아
니지?"
대부분의 길은 파티의 길잡이 도 둑이 이끌었지만,몇 차례 제시카 가 일행을 멈춰 세우거나 방향을 바꾸게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근처에 몬스터 무리가 있었다.
덕분에 맥은 제시카가 뭔가 신기 한 능력이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럴 리가요. 운이 좋은 거겠 죠."
"운도 여러 번이면 실력이야. 아 무튼,그런 운, 자주 이야기해
줘."
맥의 말을 대충 넘긴 제시카는 제이크의 곁으로 돌아와 그를 노 려보았다.
이 모든 일이 메시지 마법으로 몬스터 위치를 알려 준 제이크 때 문이었다.
"일이란 일은 다 나한테 떠넘기 고,덕분에 오해받게 생겼잖아!"
"어쩔 수 없죠. 제가 말한다고 누가 믿어 주나요. 저랑 같이 다 니면 계속 능력을 발휘하게 될 테 니 미리 인정받는 것도 나쁘지 않 죠."
"으,정말,저 입이 문제야. 매번 지지도 않아."
입을 삐쭉 내밀던 제시카가 잠시 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보다,저 도련님 시선 어떻게 안 되나. 자꾸 등 뒤에 시선이 달 라붙으니 신경이 쓰이네."
"뭐,신기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 하세요."
"신기하긴 뭐가 신기하다고."
"마나 사용자인 여자 용병이잖아요. 도적에다가,아마 용병 중 처 음 아닐까요?"
"흥,그렇게 따지면 저 도련님은
최연소 기사라면서. 본인이 더 대 단한 거지."
최연소 기사라는 타이틀을 가지 고 있다고 하지만,지금은 단지 도망자일 뿐이었다.
전혀 내색을 안 하는 듯했지만, 덩치 큰 자신의 종자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버지와 형제,그리고 모든 권력과 고향을 잃은 상황이 었다.
저 나이에 멀쩡하다면 그게 이상 할지도 몰랐다.
"근데,그렇게 따지면 내 앞에 있는 분은 얼마나 대단하신 걸까 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대 마법사에,에고 아이템을 지니고 있고,귀족 출신에다가…… 보기 와 다르게 엄청 노인! 일지도 모 르고."
킥킥 웃는 제시카를 보며 제이크 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나 사용자씩이나 되었으면서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게 제시카의 멋진 모습이긴 했 지만,제이크에게는 아직도 물에 내놓은 철없는 손녀를 보는 기분
이었다.
일행은 곧 다시 대수림을 나아가 기 시작했다.
어제는 멀리 보이던 대장벽이 더 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루테리아 영지의 서쪽 면을 막아 선 높고 긴 대장벽.
하지만 그 대장벽도 끝없이 이어 져 있지는 않았다.
루테리아 영지를 넘어서면 그 아 래는 버려진 영지들이 넓게 펼쳐 져 있었다.
대수림까지 확장을 하려다가 매 년 밀려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버
티지 못해 결국 물러난 영지들.
그곳은 다시 대수림의 영역이 되 어,울창한 숲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일행은 그 숲을 뚫고 계속 남쪽 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일행은 그날 오후 처음으 로,몬스터와 조우하게 되었다.
-돌아가기는 무리예요. 빠르게 통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제이크의 메시지처럼 이곳 일대 는 버려진 들개,아니,들개 마물 의 영역이었다.
"들개 떼입니다. 돌파합니다!"
맥의 말에 기사들은 검을 고쳐 잡고,용병들은 자신의 무기를 달 려오는 들개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용병들은 싸움에 나설 일 이 없었다.
마나를 담은 기사의 검은 달려오 는 들개들을 토막 냈고,귀족 도 련님은 번개같이 사방을 뛰어다니 며 들개들을 박살 냈다.
무척이나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용병들이 놀란 것은 귀족 도련님 의 싸움이 아니었다.
가속!'
제이크가 알려 준 방법으로 부츠 에 마나를 보내자,제시카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갑작스러운 가속에 몸이 휘청거 렸지만,그동안의 훈련과 마나 사 용자가 된 덕분에 그녀는 억지로 라도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제시카는 순식간에 달려오는 들 개 두 마리를 스쳐 지나갔고,그 녀가 지나간 뒤에 들개들의 목에 서 피가 치솟았다.
마나 사용자가 된 제시카가 처음 으로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
람은 그녀가 마나 사용자가 된 것 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마나 사용자라니. 좀 더 꼬드겨 볼걸……"
맥은 제시카의 활약을 보며 아쉬 운 얼굴을 했고,기사들도 마나 사용자인 여자 용병의 활약에 무 척이나 놀란 눈치였다.
뒤이어,앰버의 커다란 화염공이 들개 무리 한가운데 떨어졌다.
쾅!
화염이 퍼져 나갔고,몰려들던 들개들은 그때를 기해 사방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돌파는 안 해도 되겠는데요." 파티원의 말에 맥은 허탈한 웃음 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몬스터 영역에 서 편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일행은 빠르게 들개 마물의 영역 에서 빠져나왔다.
영역에서 벗어나자마자 일행은 휴식을 취했다.
"축하해요. 마나 사용자가 되셨 군요."
제일 먼저 제시카에게 다가온 것 은 마법사 앰버였다.
그녀는 예상보다 빠르게 마나 사
용자가 된 제시카를 축하해 주었 고,미리 그녀를 끌어들이기로 한 공녀의 결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 뒤에 용병들이 그녀에게 다가 와 질문을 쏟아 냈다.
기사들과 귀족 소년은 호기심 어 린 표정으로,여성들은 선망의 표 정으로 제시카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한참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제시카는 이런 사태에 일조한 제이크 를 찾았다.
멀찌감치 서서 놀리는 표정으로
보고 있을 줄 알았던 그는 뜻밖의 사람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 었다.
그는 덩치가 커다란 소년,소년 기사의 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싸움에서 소년 의 종자는 커다란 방패를 들고, 여성들 앞에 서서 그녀들을 지키 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과 귀족 소년이 여성 들을 버려두고 신나게 활약한 것 은 여성들을 지켰던 종자 때문이 었다.
여성들을 지키던 방패 든 소년.
소년 기사의 덩치 큰 종자가 바 로 제이크가 찾던 미래의 기사, 무적의 철벽을 자랑하는 방패 기 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