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신력이 높은 사제들은 얼굴도 몸매도 엄청 좋아진다고 하던 데…… 설마 그런 건가?"
혹시나 싶은 제시카의 물음에 여 사제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 변하지는 않은 것 같은 데……
"아니야! 완전히 달라졌어! 다른 사람이 되었다니까? 목소리도 다 르고. 아무리 헤어진 지 10년이 넘었더라도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또박또박 여사제의 말에 대답하 는 루이의 모습은 일행하고 이야 기할 때와 전혀 달랐다.
"안 달라졌어!"
덕분에 다시 한번 여사제의 주먹 이 날아갔지만,이번에는 루이가 떡하니 막아 냈다.
신력으로 강화된 사제라 하더라 도,제대로 된 방패 기사의 음직 임을 따라갈 순 없었다.
"어쭈!"
"흥! 어릴 때와 똑같은 줄 알아?"
다시 한번 남매 간에 드잡이질이 벌어지는 것을 본 제시카가 중얼 거렸다.
"아무래도 남매가 확실한 것 같 은데?"
"그렇겠죠. 그런데 갑자기 루이 의 누나가 떡하니 등장했다는 게 의아할 뿐이네요."
우연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소설도 아니고 우연이 그렇게 쉽 게 일어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은 아닌 듯했다.
동생하고 투닥거렸던 여사제는 어떻게 자신이 이들을 찾아왔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모든 일은 얼마 전 남부 왕국으 로 내려간 톨레도 백작가 때문이 었다.
대수림으로 탈출한 백작가 일행 은 남부 왕국 중 레타니아 왕국로 가게 되었다.
백작가 이야기를 들은 여사제는
동생을 찾아 백작가 일행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이 중간에 낙 오했다는 소식만을 듣게 되었다.
동생이 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에 낙담했던 그녀는 대수림으로 갈 지원자를 받는다는 교단의 말 에 혹시나 싶어 참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상인으로 위장한 일행과 함께 루테리아로 오게 된 것이었다.
"누구와 다르게 눈치가 나쁘지 않아 대충 상황을 알게 되었죠, 다들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상인들로 위장한 기사단하 고…… 여러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되 나요?"
"뭐 비밀로 해 달라고 했지만, 어차피 전 신을 모시는 몸이고, 동생과 같이 있는 분들이 함부로 이야기할 리가 없겠죠. 본인들도 숨기는 일이 많아 보이는데."
동생과 말할 때와는 달리 담담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제시카가 조금 질린 얼굴이 되었다.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성격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어쨌거나 사제가 필요한 거죠? 이래 봬도 신께 꽤 인정받은 사제 라,종종 길을 보여 주시거든요."
신의 길이라고 불리는 것은 일종 의 미래 예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옳은 행동이 어느 쪽인지 느껴지 게 해 주는 성력의 일종으로,다 른 사람이 보기에는 엄청난 행운 을 거머쥔 것처럼 보이는 능력이 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저주라고 볼 수도 있었다.
신이 가르쳐 주는 길은 인간을 위한 길이 아니라 신을 위한 길이
었다.
많은 사제가 신이 가르쳐 주는 행동을 따랐다가 순교를 하는 경 우도 많이 일어났다.
제이크는 곰곰이 고민했다.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만,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 이었다.
그냥 거절해도 되긴 했다.
하지만 거절했을 때 그녀가 저 남부 왕국의 가짜 상인들에게 비 밀로 할지도 보장할 수 없었고, 그녀의 성력도 실제로 많은 도움
이 될 게 분명했다.
제이크는 루이와 제시카를 바라 보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같 이할까요?
제이크의 메시지 마법에 제시카 는 잠시 고민에 잠겼지만,루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났지만,그가 아는 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루이가 고개를 끄덕이고,곧이어 제시카도 승낙했다.
다만,그녀는 약간의 불만을 말 했다.
-흠,뭔가 안전장치가 없을까?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닌데. 그냥 허락하기는 것은 마음에 안 드는 데……
제시카의 말을 들은 파티마가 대 수롭지 않은 듯이 말을 툭 내뱉었다.
-그럼 신의 맹세를 하게 해요. 신의 개념이 변하지 않았다면,신 력을 잃고 싶지 않다면 신의 맹세 는 지킬 거예요.
괜찮은 생각이었다.
제이크는 파티마에게 들은 대로 여사제에게 맹세하게 했다.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비밀로 할 것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해 주 세요."
여사제는 제이크의 말에 조금 눈 을 크게 떴다.
"어,신력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아무래도 신이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가 흔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흥,어차피 마법사가 마나에 걸 고 하는 맹세하고 그리 다를 바 없는 것 두고,유세는!
파티마가 머릿속으로 비웃는 소
리를 했지만,절대 그대로 말을 전할 수가 없었기에 제이크는 그 냥 무시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여사제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저,리에는 겔드의 이름으로 맹 세하겠습니다."
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여사 제 리에의 모은 손에서 광채가 흘 러나왔다.
"이곳 지하 석실에서 일어난 모 든 일은 신의 이름을 걸고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함부로'라는 말이 들어가는 바람 에 조금 애매해지기는 했지만, 100퍼센트 비밀은 없는 법.
제이크는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기도를 마친 뒤 빤히 쳐다보는 여사제에게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배치를 바꾸도록 하죠."
사제가 포함되었으니 이제는 여 차하면 도망칠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제이크는 조금 전의 계획을 모두 날려 버리고,일행에게 다시 지시
를 내렸다.
* * *
쿠구구궁.
관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 년 만에 관 속으로 불빛이 흘 러 들어왔고,아직 남아 있는 실 패한 동결 마법은 그 순간 깨어졌다.
그리고,관 속에 잠들어 있던 리 치가 눈을 떴다.
[결국,죽은 건가.]
관에서 몸을 일으킨 리치는 자신
의 몸을 확인하고 중얼거렸지만, 턱뼈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리치가…… 크악!] 아쉽게도 그가 깨어나서 한 첫 대사는 채 마무리되지도 못했다.
그가 관에서 일어나자마자 환한 광채가 그의 몸을 휘감았기 때문 이다.
바로 리에 사제가 펼친 성력의 정화였다.
덕분에 아직 깨어난 지 얼마 되 지 않아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리 치는 시작부터 비명을 질러야 했다.
"시작해요!"
리에 사제가 쏜 성력이 명중하는 것을 본 제이크가 바로 파티원들 에게 지시를 내렸다.
리치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내 야 했다.
괜히 기회를 주었다가 부서진 언 데드를 복구해 버리면 귀찮은 일 이 생길 게 분명했다.
"으라차!"
루이가 기합과 함께 리치를 향해 몸을 날렸고,그는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리치를 들이받아 버렸다.
쿠앙!
방패 기사의 강력한 태클은 관에 있던 리치를 석실 벽까지 날려 버 렸다.
리치는 벽에 부딪혀서 뼈들이 산 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끝난 건가?"
"아뇨! 계속 공격해야 해요!" 다음 공격을 하려던 제시카가 박 살이 난 리치의 모습에 움찔했지만,제이크는 그녀를 재촉했다.
제시카는 제이크의 말에 바로 단 검을 들고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제이크의 말이 맞았다.
제시카가 달려드는 와중에도 리
치의 부서진 뼈들이 다시 모이고 있었고,혼란스럽게 흔들리던 해 골 눈의 붉은빛도 제자리로 돌아 오고 있었다.
"우왁! 진짜잖아!"
놀란 제시카가 단검으로 모여드 는 뼈들을 마구 잘라 내었다.
다행히 뼈들은 검에 잘려 나가 더 산산이 분해되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마법적인 힘으 로 인해 계속 모여들려고 하고 있 었다.
다행히 성력을 얻어맞아 모이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지만,제시카
의 입장으로는 끊임없이 모여드는 뼈들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루이가 달려와 주었다.
그와 동시에 아쉽게도 팔뼈가 리 치의 몸에 달라붙게 되었고,그 손뼈 끝에서 마법이 시전되었다.
[튕. 겨. 나가라!]
리치는 제대로 된 육체가 모이지 않아 암흑 마법은 쓸 수 없었지만,그래도 두 마나 사용자를 날 려 버릴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펑!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 더니 루이와 제시카가 뒤로 튕겨 나갔다.
수 미터를 밀려 나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바닥에 착지 했다.
제시카는 공중회전으로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고,루이는 바닥에 한 바퀴를 구른 뒤 몸을 일으켰다.
그 덕분에 두 사람 다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을 튕겨 낸 리치 는 금방 자신의 몸을 복구해 버렸
다.
강력한 리치의 힘이 정화마저 이 겨 내 버린 것이다.
"윽,너무 강해요! 모두 피해야 해요!"
성력이 퉁겨져 충격을 받은 리에 사제가 모두에게 소리쳤지만,그 보다 리치의 주문이 더 빨랐다.
[사제가 있다고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나? 모두 죽어라! 죽음 손길 이여!]
오염된 강대한 마나가 리치의 손 에서 뿜어져 나와 석실을 가득 메 웠다.
마치 검은 안개가 석실 안에 퍼 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 지만,나를 죽인 자와 살아남은 모두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이 제 죽은 자의 세상이 돌아올 것이 다!]
동시에 분노에 찬 리치의 목소리 가 공기를 타고 석실을 진동했다.
하지만 아쉽게도,그의 마법은 완성되지 못했다.
"빨아들여라! 그리고 역전하라!" 어두운 마나가 가득 찬 석실 가 운데에서 제이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과과과!
검은 마나는 제이크의 말과 함께 소용돌이치며 석실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마나가 빨려 들어가는 곳은 제이크가 들고 있는 긴 막대기였다.
바로 리치가 흑마법사일 때 사용 했던 전용 지팡이이자,강력한 마 나 아이템인 스태프였다.
석실에 가득 메워진 마나는 결국 모두 지팡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리치는 어이없는 눈으로
지팡이를 든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마법이 이렇게 쉽게 깨질 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리치가 사용하는 오염된 마나는 일반 마법사는 다루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마법 기술자들은 더 방법 을 찾을 수 없었고,복제 세상 속 의 리치는 영지들을 손쉽게 짓밟 았다.
하지만 그런 리치도 결국은 끝까 지 가지 못했다.
수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이 목숨 을 바쳐 결국 리치에게서 지팡이 를 탈취했던 것이다.
그 지팡이 덕분에 그들은 리치를 잡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지팡이로 리치를 잡은 사람은 전직 용병이자,고대 마법 사의 후계자인 대마도사 아론이었다.
그는 고대 마법을 이용해서 지팡 이에 실린 마법진을 분석해 냈다.
그 덕에 리치가 쏘아 내는 마법 을 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리치를 쓰러뜨린 이후
마법사들과의 충돌로 아론은 다시 유랑하게 되었지만,전투에 대한 자료는 황궁으로 보내져 제이크에 게까지 넘어왔었다.
-호,신기하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나 아이템에 새 겨진 마법진을 반전시켜서 오염된 마나를 흡수할 생각을 하다니.
물론 그 생각은 복제 세상에서 파티마가 아론에게 알려 준 것이 겠지만,제이크는 그 사실을 파티 마에게 알려 주어서 우쭐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지팡이에는 오염된 마나를 강화
하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아론은 마법진을 수정해서,리치 가 마법을 쓰는 순간 마나를 빼앗 아 버렸었다.
그처럼,지금 제이크도 파티원들 이 리치와 싸우는 동안 빠르게 마 법진을 고쳐 리치에게 사용했다.
[너희 스스로 자신을.윽,]
[너희의 피는 이제부터…… 큭.] 그 뒤로 리치는 계속 마법을 시 전했지만,그 마법은 완성되기도 전에 마나를 탈취당해서 모두 실 패해 버렸다.
그리고 리치는 허무하게 제시카
와 루이의 공격에 다시금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건가?"
마지막까지 공격을 피하던 두개 골이 결국 루이의 방패에 부서져 버리자,그 안에 두뇌 대신에 검 은 보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로 리치의 핵이었다.
제대로 시간을 들여 리치가 되었다면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겨 놓 았을 물건이었지만,따로 핵을 감 출 시간적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결국 핵이 발각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거 팔면 돈 안 되려나"
"위험한 겁니다!"
"부숴요. 놔두면 또 부활할 거예요."
핵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제시카 였지만,리에 사제와 제이크의 말 에 단검을 내리찍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검은 보석은 마나가 실린 검을 맞자 비명을 내지르며 부서졌다.
그와 함께 리치의 남은 뼈들도 모두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핵이 파괴된 순간,리치가 완전
히 소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