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화
질퍽거리는 늪이 앞을 가로막고, 피어오른 안개에 앞도 보이지 않 는 위험한 늪지대.
하지만 상인 일행과 용병대는 착 실하게 늪지대를 돌파해서 던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정보가 틀리지 않았습니다."
늪지 사이에 솟아나 있는 바위기 둥을 보며 상인 일행이 기뻐했지만,같이 도착한 용병 일행은 그 리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뒤에 알 수 있었다.
쉬익!
안개 속에서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용병들 속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왔다.
"으 "
작은 소리였지만,그 소리에 용 병대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났다.
바로 용병대의 대장이 인원을 점 검했다.
"인원 확인해 봐!"
"전열 이상 무!"
"중간 열도 이상 없습니다!"
"젠장,후열,미르티가 없어졌습 니다!"
듣고 싶지 않던 대답이 일행의 후위에 있던 용병들에게서 들려오 자,용병대 대장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벌써 세 번째였다.
소리 없이 날아온 헛바닥에 휘감 겨 사라진 용병이 벌써 세 명이었다.
늪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대 로 평범했던 대수림 탐사가 늪지 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이 늪지 자체가 위험도가 높아 탐사가 기피되는 지역이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상인들의 성공 덕 분에 용병들은 그리 걱정하지 않 았다.
그렇지만,용병들은 상인과 같은 일행이 아니었다.
용병들은 늪지에 들어선 뒤,사 람들이 그동안 늪지에 들어오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늪지의 안개 속에서 모습을 보이 지 않는 몬스터가 사람을 하나씩 낚아채 가고 있었다.
더구나 움직이기 힘든 늪지라, 일행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문제는 지금까지 당 한 세 사람이 모두 용병이라는 사 실이었다.
상인 주변은 호위 용병들이 철저
히 막고 있기도 했지만,그쪽으로 는 몬스터가 공격 자체를 하지 않 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끼가 된 것 같습니다."
오래된 동료의 말이 아니더라도 용병 대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젠장,왜 이제 와서!"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드러내 놓고 일을 벌이는데요."
상인 일행은 이번 탐사를 하면서 늪지까지 오는 동안 용병들의 손 실을 노골적으로 내버려 두었다.
처음 탐사나 그 뒤에 같이 음직
였던 탐사는 보상은 적어도 이렇 게 대놓고 일을 벌이지는 않았기 에,용병대장의 표정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젠장,설마 마지막 탐사로 생각 하는 건가?"
"아니면,증거만 없애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었지만, 어떤 상황이든 이대로 당하고 있 을 수는 없었다.
"좀 더 버티라고 해. 어차피 던 전 안에서 저놈들 실력은 필요하 니까. 내가 기회를 보아 신호할
테니까,그때 모두 멱을 따 버리 자고."
"알겠습니다."
용병 대장의 결정이 있고 나서, 용병들 사이로 조용히 수신호가 흐르기 시작했다.
돌기둥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던 전으로 들어가는 돌층계는 들었던 대로 뻥 뚫려 있었다.
덕분에 이번 던전으로의 진입은 무척이나 쉬운 편이었다.
던전 진입 인원은 전과 다르게 모두가 들어가는 것으로 정해졌
다.
용병대 인원을 미끼로 생각한 상 인 일행도,그런 상인들의 뒤통수 를 치기로 결정한 용병대도 모든 인원이 들어가길 원했다.
그 덕에 전원이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가기 전,주 변을 살피던 상인이 나지막이 호 위 용병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용병대 쪽에서 알아차 린 듯합니다."
"쯧,귀찮아진 거 아냐?"
"괜찮습니다. 어차피 용병들 생
각하는 것은 뻔합니다. 유물 찾을 때까지는 입도 뻥끗 안 할 겁니다."
사실 기사인 부단장은 용병들을 미끼로 삼는 것을 그리 탐탁지 여 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차피 죽이기로 결정 했으니,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써 먹자는 상인들의 말에 대놓고 반 대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꺼림칙한 양심 탓에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들킨 것에 불안 해하지는 않았다.
하찮은 용병들에게 당하기에는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과 용병들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더구나 이 던전은 용병들보다 자 신들이 더 잘 아는 곳이었다.
스파이의 정보로는,이 던전은 평범한(?) 마법 아이템이 아닌 에 고가 담긴 마법 검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그런 아이템이 숨겨 있는 곳인 만큼,이 던전은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 었다.
하지만 그 정보 역시 평범한 용 병을 기준으로 한 정보였다.
벌써 몇 차례 던전 탐사를 성공 한 왕국의 기사단이 실패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로 늪지 중앙에 있는 돌기 둥을 통해 던전으로 들어갔다.
상인 일행이 기둥 아래로 사라지 고 얼마 뒤,안개 사이에서 가죽 갑옷을 입은 열 명의 용병이 모습 을 드러냈다.
평범한 용병 복장을 하고 있었지
만,그들이 들고 있는 검과 방패 는 평범한 용병들이 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품이었다.
이들은 상인 일행을 추격하고 있 는 황제의 기사들이었다.
"확실하군. 폐하가 지목하신 던 전이야. 어떤 방법인지 모르겠지만,폐하가 알려 주신 던전을 알 고 있는 게 분명하다."
"폐하의 대관식 전에 황도에 있 던 남부 왕국의 첩자들이 왕창 목 이 잘려 나갔는데,그때 홈쳐 낸 것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이
들이 스파이인 것을 확인했으니 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뒤,기사 중 한 명의 손에 서 작은 매 한 마리가 하늘로 떠 올랐다.
하늘로 떠오른 매는 바로 제국의 수도가 있는 서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확인되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영지로 돌아가서 기다릴까요?"
하지만 물어보는 기사도 선임 기 사의 대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 었다.
"아니,계속 추격한다. 다시 영지 로 돌아갈 보장도 없으니 몰래 쫓 다가 기습하기로 한다."
충분히 합리적인 대답이었지만, 본심은 그동안 당한 것을 갚아 주 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다른 기사들도 선임 기사 와 같은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모두 긴장해,남부 왕국 놈들인 것을 확인했으니,평범한 용병들 하고는 다를 거다."
"그래 봤자 남부 기사들일 뿐입 니다. 저희는 제국의 기사입니다."
선임 기사의 말에도 기사들은 전 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은 대륙 전 체를 호령하는 중이었고,그 힘의 핵심은 바로 이들,제국의 기사들 이었다.
그런 그들이,덜떨어진 남부 기 사 나부랭이들에게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주의를 준 선임 기사도 그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진 않았기에 더 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점검한 뒤, 던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쉬익!
다시 한번,낮은 휘파람 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안개 사이에서 붉은빛의 혀가 기사들을 향해 쏘아져 왔지만,이번에는 비명 대신에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났다.
서걱!
뒤쪽에 서 있는 기사에게 쏘아졌 던 붉은 혀는 어느새 뽑혀 나온 기사의 검에 잘려 나갔고,남은 혀는 피를 뿌리며 안개 속으로 사 라졌다.
"만만찮은 곳인데요? 까딱하다가
는 당할 뻔했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검을 확인하는 기 사의 말에 선임 기사는 고개를 끄 덕였다.
"다들 주의하도록,자칫 방심하 다가는 기사도 당할 수 있는 곳이다."
그때,일행 앞에 있던 용병이 조 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좀 서둘러야 합니다. 늪지와 다 르게 던전 안에서는 시간이 지나 면 추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을 꺼낸 용병은 나이가 꽤 들 어 보이는 용병으로, 나름 이 영
지에서 이름이 알려진 도적 출신 의 용병이었다.
앞선 기사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 유가 제대로 된 안내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기사들은 큰돈 을 들여 제대로 된 길잡이를 찾아 고용한 것이다.
덕분에 가로채기를 당한 던전 이 외의 던전에서는 탐사에 모두 성 공해서,기사들은 이 용병에게 무 척이나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출발하지. 앞의 놈들하고는 제 대로 거리를 유지하고."
선임 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들과 도적은 고개를 끄덕였고,그들도 돌기둥 아래로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지고 나서 시간이 조 금 지나자,돌기둥 주변 늪지대에 는 인간 냄새를 쫓아 모여든 몬스 터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 작했다.
마지막으로 황제의 기사들이 돌 기둥으로 들어간 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던전으로 들어간 사람들 은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변을 지키던 늪 몬스터들도 지 쳐서 슬슬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 가려던 순간이었다.
"화염! 전격!"
안개 속에서 제이크의 외침이 들 려왔고,동시에 돌기둥 위쪽 허공 에서 큰 화염이 사방으로 터져 나 갔다.
쿠앙!
화염은 순식간에 안개를 사방으 로 밀어냈고,그와 동시에 늪지
위로 전류가 내달았다.
늪지라고 전부 늪으로 덮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땅도 충분한 물 을 머금고 있었다.
또한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진 전 류는 늪과 땅속에 숨어 있던 몬스 터들을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였다.
두꺼비처럼 생긴 사람 몇 배 크 기의 몬스터와 큰 뱀만 한 지렁이 등이 밖으로 나와 꿈틀거렸지만, 그 몬스터들은 곧 빠르게 달려든 제시카와 루이의 손에 정리되었다.
두 사람이 몬스터를 정리하는 동 안,제이크가 마법 지팡이를 든 채로 지친 얼굴로 돌기둥에 다가 갔다.
"역시 속도는 빠르지만 마나 소 모가 심하네."
-당연한 이야기예요. 어차피 마 법사가 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자 동 마법 장치일 뿐이니까요. 낭비 는 당연한 거예요.
지팡이를 보며 혀를 차는 제이크 를 향해 파티마가 핀잔을 주었다.
그녀는 제대로 된 마법사인 제이크가 마법 기술자들의 흉내를 내
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고대 마법사로 돌아다닐 수 없으니,마법 아이템 을 구한 마나 사용자 홍내를 내는 수밖에."
-아니,이건 정말 말도 안 돼요. 차라리 그냥 모두에게 알려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 마법 기 술자들이 모르는 마나 기술들이 있잖아요. 그걸 모두에게 알려 주 면 마법 기술자들도 수긍할지도 몰라요!
제이크는 파티마의 이런 말 때문 에 에고 완드를 얻은 마도사가 마
나 기술을 사방에 뿌렸던 거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던가?
결국 마도사는 다른 마법사들과 한바탕 싸움만 났었다.
제이크는 복제 세상의 고대 마도 사와는 달랐다.
추호도 무료 봉사를 할 생각도 없었고,아직 쟁쟁한 세력을 가지 고 있는 마법사들과 한바탕을 할 생각도 없었다.
"안 돼,아직 제대로 실력도 못 갖췄는데 분란에 휘말릴 수는 없어."
-이제는 그래도 초보 마법사 수 준은 벗어났다니까요. 마법 아이 템을 썼다고는 하지만,이중 마법 도 사용했잖아요.
지팡이에 새겨 넣은 화염 마법과 전격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으니 파티마의 말대로 초보 마법사의 마나양은 넘은 게 맞았다.
하지만 제이크는 거기에서 만족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상급 마법사 정도는 되 어야 해."
-그러려면 한두 해로는 어림없어요.
"뭐,불가능이 아닌 것만 해도 만족이야."
그렇게 제이크가 자신의 완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루이와 제시카는 주변의 몬스터를 모두 정 리할 수 있었다.
"마무리 끝냈어. 이제 들어가는 거지?"
제시카가 흥분한 표정으로 제이크에게 달려왔다.
던전을 앞에 두고 며칠을 기다린 탓에 제시카는 무척이나 몸이 달아 있었다.
"그래야겠죠?"
아직도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제이크도 제시카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 제시카가 이 던전에서 목 숨을 잃기는 했지만,그때와는 상 황이 달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던전에 들어 갔던 제시카의 파티와는 달리,지 금은 미래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했 던 제이크가 이곳에 있었다.
제시카가 어떻게 목숨을 잃게 되 었는지,던전이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지는 대검호가 된 제시카의 소굽친구 일지에 모두 나와 있었
다.
그리고 그 일지를 정리한 제이크 의 머릿속에 그 내용이 모두 담겨 있었다.
또한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던전에 있는 에고 검이나,던전에 먹혀 버린 남부 왕국 기사단이 가 지고 있는 유물이 너무 아까웠다.
"그럼,들어가자고."
"대신 한 가지만 꼭 약속해 줘야 해요."
"알고 있어. 몇 번이나 계속 말 하는 거야? 절대 이번 던전의 함 정은 혼자서 처리하지 말라는 거
잖아."
"네,꼭 처리하기 전에 저하고 상의하셔야 해요."
"알았어,알았어."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그녀의 죽 음은 비밀로 했지만,다행히 그녀 는 진지하게 말하는 제이크에게 착실하게 대답했다.
아직도 안심은 되지 않았지만, 다시금 멀리서 몬스터들이 몰려오 는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제이크는 서둘러 일행과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이크 일행이 던전으로
들어서자,던전 깊숙이 잠들어 있 던 에고 검이 눈을 떴다.
-파티마?
제이크의 에고 완드가 잠들어 있 던 에고 검을 깨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