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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54화 (54/222)

54화

늪지에 생긴 곳이라 그런지 던전 안은 무척이나 습했다.

군데군데 물이 떨어지고,바닥에 물이 고여 웅덩이가 된 곳도 있었다.

물기가 물은 벽을 만지며 제시카 가 얼굴을 찌푸렸다.

"함정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꽤 위험하겠는데?"

물과 습기 때문에 함정이 망가져 있을 확률이 높았지만,만약 그게 아니라면 함정이 언제 발동할지 알기 힘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세세히 살펴보던 제시카가 무언가를 보더 니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뭐,별로 걱정할 것 없 겠어. 먼저 들어온 분들이 다 박 살 내면서 전진하셨네."

길게 이어진 석실은 그녀 말대로 온통 뒤집혀 있었다.

벽도 이곳저곳 부서져 있었고, 물이 고여 웅덩이가 된 곳이 알고 보니 함정이었다.

함정과 함께 땅을 뒤집어엎어서 웅덩이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덕분에 세 사람은 함정을 걱정하 지 않고 한동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걷자 부서진 함정 말고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지렁이와 두꺼비 형태의 몬스터들이 죽어 있었다.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며칠 전에 들어온 용병들이 쓰러뜨린 게 분명했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원래부터 몬스터들이 있었다는 건데,앞쪽 의 함정이 멀쩡하네요."

"뭐,몬스터에 반응하지 않는 함 정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던전 중 간에 구멍이 났을 수도 있고."

루이의 말에 대답하면서도,그녀 는 던전에 구멍이 난 쪽이 더 그 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맞았다. 몬스터의 사체를 지나 계속 나아

간 세 사람은 넓은 석실에서 한 무리의 몬스터들을 보게 되었다.

사람 크기의 지렁이들이었는데, 지렁이들은 한군데 모여 무엇인가 를 빨아먹는 중이었다.

"제길,용병 시체가 먹히는 중인 건가?"

눈살을 찌푸린 세 사람은 바로 지렁이들을 공격했고,다행히 지 링이들은 금방 일행의 손에 박살 이 났다.

지렁이들이 박살 난 자리에는 반 쯤 먹힌 용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세 사람은 인상 을 찌푸렸지만,여태까지의 경험 덕분에 토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루이는 시체와 주변을 둘러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요. 죽어 있는 몬스터 들을 봐도 이렇게 시체가 남을 싸 움은 아니었을 텐데……

"미끼군요."

"그렇겠지."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시체가,그것도 용병대의 시체가 나왔다는 것은 같이 온 상인들이 용병대를 미끼로 사용한 뒤,빠르 게 지나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용병대가 이걸 두고 봤 다고요?"

제이크의 의아한 모습에 제시카 가 쓴 미소를 지었다.

"유물을 찾은 뒤에 복수하려고 한 거겠지. 아마도 좀 손해를 볼 각오를 했을 거야."

호구처럼 굴어 방심하게 한 뒤 역습을 가하는 것도 용병들이 즐 겨 쓰는 방법의 하나였다.

제시카로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방법이었지만,돈으로 뭉친 용병대에서 용병대에서는 주로 쓰 는 방법이었다.

"그 상인들이 그리 방심할 것 같 지는 않습니다만……

"글쎄,어떻게 될지……

상인들과 용병대 말고도 뒤따라 들어온 기사들이 있어,어떻게 진 행되었을지는 이곳에서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여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좋게 끝나지는 않았다는 이 야기 겠죠."

제이크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세 사람은 계속 던전 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걸은 후, 제이크는 자신의 감각에 무언가 걸린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제시카의 말에 따르면 던전 중심 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던전 중앙에 생존자가 있네요." 제이크의 말에 일행은 걸음을 우 뚝 멈추었다.

같은 시각,던전의 중심부인 커 다란 원형 지하 석실은 사방에 피 가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고,바닥 에는 수많은 사람이 시체가 되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석실 한쪽에 문이 부서진 작은 방 안에서 천칭 기사단의 부 기사단장인 안젤로 카나시가 가물 거리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젠장,이대로 잠들까 보냐."

사홀 만에 마나 사용자인 그가 이렇게 맛이 갈 리가 없었지만, 그의 몸에 난 상처들을 보면 지금

까지 버틴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갈비뼈 반이 부서져 있었고,옆 구리는 반쯤 뜯겨 나갔고,다리는 한쪽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정도면 마나 사용자고 뭐고 간에 바로 죽었을 테지만, 비상용으로 들고 있었던 포션 덕 분에 이렇게 목숨을 이어 가고 있 었다.

같이 들어온 일행이 모두 죽고, 자신도 던전을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안젤로는 솔직히 살아서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

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포기해 버렸지만,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아직 살아 있나? 남부 쓰레 기!"

바로 지금 들려오는 저 제국의 학살자가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난 멀쩡해! 네놈 목소리가 떨리 는 것 보니 얼마 남지 않았나 본 데?"

안젤로는 고통을 참으며 석실을 향해 소리쳤다.

물론 폐도 반쯤 맛이 가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섞여 들어갔지만, 상대편도 그리 멀쩡하지 않아 피 차일반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른 뒤,안젤로 는 다시금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사흘 전의 일을 떠올렸다.

상인 일행과 용병대는 던전에 들 어선 뒤에 극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함정을 지날 때는 그래도 용병대 의 도적이 함정을 찾고 호위 용병

들이 나서서 함정을 부수는 식으 로 협조가 이루어져 괜찮았다.

그런데 그러던 것도 몬스터를 만 난 뒤에는 전혀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상인 일행이 거치적거리는 몬스 터만 치워 버리고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용병대가 남은 몬스터들에 의해 계속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던전 통과 속도는 빨 라져서 반나절 만에 던전 중심부 까지 도착할 수 있었지만,용병대 의 삼분의 일이 다치거나 죽고 말 았다.

조금만 더 던전이 길어졌다면 용 병대와 상인 일행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을 게 분명했다.

던전의 중심부는 원형으로 이루 어진 커다란 석실이었다.

중앙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돌관 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원형 벽 에는 고대에 만들어진 철갑옷 열 구가 돌관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 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철로 만들어진 갑옷 들과 검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 도 불구하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상인 중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쳤다.

"마법 아이템이야!"

오랜 시간에도 멀쩡한 물건을 본 용병들의 눈이 바로 뒤집혔고,바 로 석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용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세 워져 있는 갑옷과 무기에게 달려 들었고,일부는 중앙의 석관을 향 했다.

"멈춰!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용 병 대장이 소리를 쳤지만,그의 외침은 너무 늦었다.

서걱!

외치던 그의 목이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함정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찾아 왔다.

이곳까지 같이 온 자들이 그의 목을 벤 것이다.

"모두 없애!"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호위 용병을 가장한 기사들이 일제히 용병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뭔 짓이야!"

"막아! 이놈들 배반했다!"

용병들이 소리쳤지만,그들보다

상인 일행이 먼저 움직였다.

용병들은 유물을 모두 얻기까지 상인 일행이 필요했지만,상인 일 행은 유물을 얻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원하던 곳에 도착했으니 더 이상 미끼는 필요 없었다.

원래도 극심하게 차이 나는 실력 에 갑작스러운 기습이 추가되었으 니 용병들은 제대로 방어조차 하 지 못했다.

차라리 처음에 이상하게 생각했 을 때 일을 벌였으면 그래도 체계 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겠지만,이

미 늦은 일이었다.

"항복해요! 항복!"

"전 도적이에요. 제가 필요할 거 예요!"

곳곳에서 항복한다는 소리와 살 려 달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기 사들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원형 석실은 피바다가 되었다. 수십 명 의 용병이 한순간에 썰려 나간 것 이다.

"쳇,실수했네."

"본국에 돌아가면 혼날 줄알아."

난전 덕분에 가볍게 상처를 입은 기사들이 있기는 했지만,움직이 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고,부 단장의 가벼운 꾸지람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런데 정말 저 전시된 갑옷들 이 마법 아이템이 맞아?"

"모르지,나야. 그냥 떠든 것뿐인 데?"

석실에 들어서자마자 마법 아이 템이라고 외친 상인은 다른 상인 의 말에 어깨를 으쏙일 뿐이었다.

"뭐,지금부터 알아보면 되겠지. 모두 확인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곧 사방으로 흩어졌고, 상인들과 부기사단장은 중앙의 석 관으로 향했다.

"그래도 예상보다 던전이 위험하 지는 않군요?"

스파이의 보고로는 던전의 위험 도가 최상급이었는데,이들이 던 전을 지나오는 동안에는 그런 위 험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덜 위험하면 더 좋은 법 이었다.

용병대를 데려온 보람이 적어지 긴 했지만,그래도 잘 마무리되었

으니 상관없었다.

"석판을 열어 보도록."

부기사단장이 다른 기사에게 석 관을 열도록 했다.

쿠구구궁.

상당히 무거운 돌로 된 뚜껑이었 지만,마나를 끌어올린 기사의 힘 은 버틸 수가 없었다.

관 뚜껑이 곧 치워지자,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안을 확인 하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관 안에는 판금 갑옷을 입고 있 는 해골이 누워 있었다.

그 해골 아래로 고대 금화들이

깔려 있었지만,정작 관을 연 사 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해골 가슴 에 올려져 있는 아름다운 검이었다.

에고가 담겨 있는 검.

마나를 강화해 주는 것으로도 훌 륭한 검이었지만,에고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른 이야기였다.

오랜 세월의 지식을 가진 에고는 그 자체가 훌륭한 스승이자 조언 자였다.

에고 아이템을 지닌 자가 하나같 이 세상에 이름을 떨친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무척이나 잘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목표도 무사히 그 자리에 있었다.

부단장은 만족한 얼굴로 조심스 립게 검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때 였다.

"적입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가 소리 쳤다.

"적이라니?"

"판금 갑옷! 기사들입니다."

멀리서 따라오던 황제의 기사들 이었다.

던전 중심으로 상인 일행이 들어

선 것을 확인한 그들이 더는 기다 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모두 첩자들이다. 사실을 토해 낼 한두 명만 남기고 모두 죽여!"

맨 앞을 달려오며 외치는 선임 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들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그들의 말에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부기사단장은 바로 기 사들을 불러들였다.

"제국 놈들이다! 모두 모여 진형 을 갖춘다!"

그의 말에 용병으로 가장했던 레

타니아 왕국의 천칭 기사단이 순 식간에 석실 한쪽에 진형을 갖췄다.

그와 동시에 석실 안으로 제국의 기사들이 뛰어들었고,기사들은 바로 천칭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카카캉!

마나를 가득 담은 검들이 충돌하 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욕설이 터 져 나왔다.

하지만 왕국의 기사들이 바로 밀 리기 시작했다.

부단장까지 온 상황이었지만,숫

자에서 차이가 났고,입고 있는 갑옷도 판금 갑옷과 용병의 가죽 갑옷으로 차이가 있었다.

물론 그동안 모아 놓은 마법 아 이템을 쓴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그것은 안전을 위해 숨겨 놓 았기에 당장 사용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한창 두 기사단이 싸우는 동안에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자들 이 있었다.

상인으로 위장했던 첩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편이 밀리는 듯하

자 조심스럽게 중앙의 석관으로 다가가 검을 집어 들었다.

바로 몸을 빼는 편이 살아남기에 는 더 유리했지만,두 사람 다 왕 국을 위해 오랜 시간 목숨을 내놓 고 살았던 충신들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충성스러운 행 동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절망을 안겨 주었다.

구구구구궁!

천 년 이상을 장식으로 멈춰 있 었던 갑옷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입구 옆에 서 있던 두 갑옷은 입 구를 막아섰고,다른 갑옷들이 검 을 치켜들고 싸우는 기사들을 향 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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