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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60화 (60/222)

60 화

'여우?'

-여우족이네요. 역시 현혹술을 써서 그럴 것 같더라니.

-아인족 맞지?

-아인족이라고 하기도 하고,유

사 인류라기도 하고. 암튼 주인님 이 하는 말이 맞아요.

눈앞에 보이는 음유 시인은 이제 인간 땅에는 더는 찾기 어렵다는 아인족이었다.

-과연,어떻게 황제의 공격을 아 인족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었는 지 이제 알겠네.

미래에 황제가 대수림을 넘어 아 인족 땅을 공격했을 때 아인족들 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물론 여러 나라가 멸망하고 아인 족 땅의 태반이 쑥대밭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제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는 아인족의 피해가 적었다.

그래서 아인족들이 어떻게 이쪽 세상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했는 데,이런 식으로 정보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하실 거예요? 마법으로 현 혹술을 파괴할 수 있을 듯한 데……

-뭐, 우선 두고 보자.

어차피 황제 쪽을 도울 것도 아 니니,일행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괜히 나서서 일을 키울 필요 는 없었다.

그렇게 제이크가 방관하는 사이 에 음유 시인은 완전히 일행에 동 화되었다.

덕분에 그날 밤은 마치 음유 시 인의 야외 공연장이 된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숙영지 중앙에 피운 모 닥불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음유 시인 베른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공작은 마지막까지 대수림 입구에 남아 몰려드는 몬스터를 막아 냈다네.

그리고 그는 황제의 명으로 그곳

에 거대한 성벽을 세우고 대를 이 어서 제국의 방벽이 되기를 초대 황제께 다짐을 했다네...

베른은 만돌라를 튕기며 초대 황 제와 초대 루테리아 공작의 이야 기를 노래했다.

제국 초대 황제의 영웅담 중의 하나로 음유 시인들에게 많이 불 리는 노래였는데,공녀가 누구인 지 알고선 일부러 고른 노래인 듯 했다.

많이 들었던 노래였지만,수도 기사들과 공녀와 레인저,그리고 제이크의 일행까지,모두 그의 노

래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오죽했으면 경계를 서던 기사단 소속의 종자들마저 노래를 듣느라 경계를 소홀히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곡의 노래를 더 부른 뒤 그의 공연은 끝이 났고,음유 시인은 큰 박수를 받으며 뒤로 물 러났다.

"와,이런 음유 시인도 있네. 지 금껏 들어 본 노래 중의 최고였 어!"

제시카가 들떠서 하는 말에 루이 도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종자 생활을 하느라 음유 시인을

거의 보지 못했던 그로서는 무척 이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확실히 베른이라는 음유 시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였다.

전생과 꿈의 경험으로 꽤 많은 노래를 들어 봤다고 자부하는 제이크도 쉽게 들어 보지 못한 목소 리였다.

그런 음색과 현혹술이 합쳐지니, 세상에 다시없는 천상의 노래가 되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난 후에도 사람들은 남은 여운으로 인해 마 음이 풀어지게 되었다.

각자 자기 정비를 하거나 잠자리 를 준비하는 동안,음유 시인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 넸다.

자신의 노래에 대한 답례로 세상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것이었다.

음유 시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그의 질문과 들려온 대답들은 묘하게 경계에 걸쳐 있었다.

"난 아직 결혼 안 했어."

"그래도 애인은 있으실 것 아닙 니까. 이렇게 국경 부대로 가시면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아,국경 부대로 가는 게 아니 라 남부 왕국으로 가는 거야. 공 녀님 호위 임무로 말이지. 그리고 아직 애인 없어."

"오,그렇군요. 아쉽네요. 이런 훌륭한 기사님이 혼자시라니."

이렇게 근처의 기사에게 이야기 를 듣거나.

"영지 밖에서 레인저를 뵙는 게 오랜만이네요. 슬슬 가을이라 몬 스터 웨이브 준비할 때 아닌가요?"

"찜,황제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거기다 영지와 관련된 일이

니 뻘 수도 없고."

"이런,영지도 힘들 텐데 걱정이 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런 식으로 레인저에게 정보를 얻었다.

그의 현혹술과 한껏 풀어진 분위 기 덕분에 말하지 않아도 될 말들 까지 술술 나왔고,덕분에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일행에 대한 정 보가 되어 갔다.

마법을 이용해서 한껏 귀를 열고 있었던 제이크 역시 그 덕분에 모 르던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역시 우리가 벌인 일 때문이었 네.'

공녀는 단지 그녀의 호위 명목으 로 제이크 파티에게 의뢰를 했다. 제국 남부로 내려가는 장거리 호 위 업무.

하지만 실상은 황제의 명령 때문 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 사실이 기는 했지만,음유 시인 덕분에 제이크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황제가 보냈으면 그냥 협박 정도가 아닐 듯한데…… 좀 더 주 의를 기울여야겠어.'

황제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제이크였기에 그의 추리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렇게 제이크가 열심히 고민하 는 동안,음유 시인이 제이크 일 행에게 다가왔다.

현혹술이 있다곤 하지만,부르지 도 않았는데 공녀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기는 힘들었다.

대신,그는 제이크 일행을 마지 막 대화 상대로 삼기로 한 것이다.

"오,이건 무슨 차인가요? 저도 맛볼 수 있을까요?"

간만에 제이크가 만든 홍차로 후 식을 즐기고 있던 일행은 음유 시 인이 묻자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아,제가 만든 홍차입니다. 한 잔 드릴까요?"

차 주전자를 들고 부드럽게 미소 를 짓는 어린 청년을 본 음유 시 인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저,괘,괜찮으시면 부,부 탁하겠습니다."

"괜찮으세요? 어디 안 좋으신가요?"

그가 갑자기 더듬거리자 루이와 제시카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제이크 역시도 속으로는 의아해 했지만,겉으로는 미소를 풀지 않 고 다른 잔에다 차를 따라 건네주 었다.

그러면서 파티마에게 속삭였다.

-설마 알아챈 거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는데요. 마법사라 는 것을 알기는 힘들 텐데요. 마 법사가 마나 사용자도 아니고.

-근데 왜 저렇게 떠는 거야? 겁 먹은 거 같잖아.

-아,아무래도 본능적으로 두려 워하는 듯한데요. 아직도 유전자 에 공포가 남아 있는 건가?

오랜 옛날,마도 제국 시절.

인간을 제외한 아인족은 인간보 다 떨어지는 이류,삼류 종족으로 여겨졌었다.

그나마 인간과 동화가 되는 종족 들은 이류 종족으로 여겨져 인간 과 삶을 영유했지만,그 밖의 종 족들은 노예로,전쟁 병기로,혹은 마법사의 실험 도구로 삶을 이어 갔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생명을 이어 가던 아인족들은 마도제국이 멸망 할 때,모두 봉기하여 쇠사슬을 끊고 인간들을 떠나 대수림 너머

로 사라졌다.

파티마는 그 앞 세대라 아인족 탈출에 대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 지만,그래도 마도 시대에 이루어 졌던 여우족에 대한 취급은 잘 알 고 있었다.

-그 당시에 몇몇 수인족들은 마 법사의 실험물로 많이 이용당했어요. 그 탓에 마법사만 보면 다들 겁에 질려서 움직이지도 못했죠.

확실히,음유 시인으로 위장(?)한 여우족은 자신이 벌벌 떠는 이유 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본능인 것인지,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그는 허둥지둥 작별 인사를 하고 는 자신의 마차로 돌아갔다.

"갑자기 왜 저러지?"

"글쎄요 "

제시카의 물음에 제이크는 어깨 를 으쏙할 뿐이었고,그녀는 의심 스러운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다음 날,일행은 전날의 안락함 덕분인지 세 명 다 밝은 모습이었다.

특히 루이는 마치 집에서 잠은 잔 것처럼 개운한 모습으로 텐트 밖으로 나섰다.

"와,정말 저택보다 못할 게 없 는데요."

"아직 그래도 조정할 게 많아."

"지금도 궁궐 같은데요,뭐." 루이의 감탄에 제시카가 입을 삐 쭉 내밀었다.

"쳇,나도 만들어 주지. 난 허리 가 다 배겼다고."

"하나도 다 못 만들었어요. 대신, 다음에는 제시카 것까지만들어 둘게요."

"쳇,나도 저기서 자고 싶은데."

"저걸 제시카를 주면 우리 두 사 람이 좁은 텐트에서 지내야 하잖 아요."

그녀가 자고 나온 천막과 루이와 제이크가 자고 나온 천막은 똑같 은 크기와 모양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제시카의 천막과 는 달리,제이크와 루이가 잔 천 막은 제이크가 마석을 심고 마법 진을 그려 마법 아이템으로 만든 공간 확장형 천막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들어가도 꽤 넓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불안해서,제가 안에 있어야 해요."

"그럼,나랑 같이 자자."

"다 큰 처자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두 사람이 만담을 나누는 사이에 루이는 한편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이 님이 있어야 할 정도로 위 험한 물건이었나? 설마 펑 하고 터지는 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마법사의 실험 쥐가 된 것 같은 느낌에 그는 온몸을 부르 르 떨었다.

그때, 루이처럼 몸을 떠는 남자

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멀리서 제이크를 바라보던 음유 시인 베른이었다.

그는 얼굴이 거무죽죽한 것이 한 숨도 못 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거L 그는 밤새도록 전 날 있었던 일을 고민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밤이 새도록 고민 을 해 봐도 결론은 나오지 않았 고,결국 그는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마차 밖으로 나온 그는 멀리서 제이크 일행을 보고

섬광같이 늙은 장로의 말이 떠올 탔다.

'옛날,마도 제국 시절에 존재했 던 진짜 마법사들은 정말로 무시 무시한 존재였지. 그들 손에 수많 은 일족이 실험실 재료로 목숨을 잃었고,그 바람에 일족은 정신 깊숙한 곳에 마법사에 대한 공포 를 새기게 된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사라졌겠지만,그때 는 정말 무서운 시절이었어.'

떠올린 장로의 말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

'말도 안 되지,고대 마법사라

니.'

베른은 애써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 말고 다 른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잖아. 설마, 저 청년이 들고 있는 지팡이 때문 인가? 마법 아이템처럼 보이는데. 청년은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다행히 지금은 제이크를 바라봐 도 어제처럼 떨리는 느낌이 없어, 그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마나 사용자가 두 명

에다가 알 수 없는 마법 아이템을 가진 용병 청년까지,확실히 뭔가 있는 용병 파티야.'

거기까지 생각을 진행했던 그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어젯밤 그는 이 수도 기 사들과 루테리아 공녀 일행의 목 적을 어느 정도 알아내는 데 성공 했다.

이들은 루테리아 영지에서 벌어 진 일 때문에 황제의 명령으로 공 녀가 남부 왕국 중 한 곳에 가서 항의를 가장한 협박을 하기 위해 모인 일행이었다.

이 정도 정보를 모았으니,더는 위험하게 이들과 같이 움직일 필 요가 없었다.

정보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속에 섞일 수 있는 인원이 얼 마 안 되는 지금,개개인의 안전 이 더욱 중요했다.

'괜히 위험을 살 수는 없지.'

현혹술도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 지 모르는 일이었다.

필요하면 며칠은 같이 다닐 생각 이었지만,예상보다 마나 사용자 들 숫자가 많아,그 생각은 빨리 포기했다.

그는 바로 공녀에게 다가가 하직 인사를 했다.

"하룻밤,공녀님의 보살핌 덕분 에 안전하게 보냈습니다.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갈 까 합니다."

"며칠 더 같이 갈 것으로 생각했 는데……

"공적인 일로 움직이시는 분들에 게 더는 폐를 끼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 있으니 그만 하직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공녀와 일행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지만,곧 그가 떠난다는 생각에 그 표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크 게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는 먼저 마차를 몰고 떠나갔다.

"황제 폐하의 강녕을…… 모두 가시는 길에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음유 시인의 모 습을 잃지 않았고,덕분에 일행은 떠나는 그를 기분 좋게 배웅했다.

제이크도 피곤한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그를 배웅하고 있었다.

-잘 통한 것 같지?

-네,눈을 마주쳐도 떨지 않는 것을 보니 마법이 잘 통한 것 같 네요.

제이크는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 며 자신에게 걸려 있는 마법을 풀 었다.

'해제,숨겼던 너의 본질을 풀어 라.'

마법사인 자신의 본질을 숨기는 마법으로, 여우족의 현혹술에다 어제 현혹술을 깨 버린 자신의 마 법을 반전시켜 만든 마법이었다.

덕분에 하룻밤을 새우고 말았지

만,마법은 제대로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던 제이크의 표정은 얼마 안 가 다시 불만에 차 버렸다.

-왜 안 가는데?

시야에서 사라졌던 음유 시인의 마차가 일정 거리에서 다시는 멀 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멀리 언덕 너머에 마차를 세운 음유 시인은 공녀 일행이 있는 곳

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마법사처럼 마법으로 상대를 추 적할 수는 없지만,그의 코는 먼 거리에서도 냄새로 상대를 추적할 수 있었다.

"위험하다고 저런 의심스러운 자 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는 마차에 매여 있는 노새를 풀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분명 노새처럼 보였지만,마차를 풀고 그가 올라타자 노새는 마치 말처럼 땅을 박차며 다리를 풀었다.

"오랜만에 달려 볼까. 그동안 답

답함을 풀어 보자고!"

음유 시인이자 여우족인 베른은 당나귀와 유니콘의 잡종인 노새를 타고 공녀 일행을 몰래 쫓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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