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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62화 (62/222)

62 화

왕궁에 도착한 일행은 겨우 안도 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화살 공격은 한 번밖에 이루어지 지 않았고,기사들에게 휩쓸린 공 녀의 말만 다친 정도로 끝나게 되

었다.

하지만 일행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일행은 내성에 들어선 뒤에도 한 참 시간이 흘러서야 주변을 둘러 볼 수 있게 되었다.

레타니아의 왕궁은 일행이 예상 한 대로 상당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제국의 황성에 비하면 반의반 정도 크기밖에는 되지 않았지만,그 화려함은 오히 려 더 뛰어나 보였다.

다만,이 왕궁은 화려함에 치우

친 나머지 왕국 입구에서 보았던 요새 성 같은 실용성은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불에 잘 타는 목재로 이 루어진 부분이 있어 불을 이용한 공격에는 취약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화려함에 가려진 부 실한 부분도 보였다.

그것을 본 수도 기사들이 긴장이 풀렸는지 작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조금전 화살 공격을 떠올리며 왕 국에 남아야 하냐는 목소리도 들

려왔다.

하지만 임무는 완수해야 한다는 공녀의 의견에 따라,각자 접객실 과 숙소로 나눠서 움직였다.

레이첼 공녀와 마법사 앰버는 접 객실로 향했고,나머지 인원은 내 성에 마련된 손님방에 나누어 지 내게 되었다.

제이크 일행은 방 두 개와 응접 실로 이루어진 내실을 통째로 사 용하게 되었다.

"우와,엄청 예쁘다."

레이첼 공녀의 응접실에 가 보기 도 했고,나름 잘 꾸며 놓은 저택

에서 지내고 있지만,이곳 레타니 아 왕궁의 내실은 그 화려함이 달 탔다.

현란한 수를 놓은 커튼과 고풍스 립지만 화려한 가구들,그리고 한 껏 솜씨를 뽐낸 그림까지.

이런 아름다운 응접실과 침실은 제시카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물론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 는 루이는 조금 신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말았지만,제이크는 제시카의 말에 동의할 수 있 었다.

'이 화려함도 어차피 장사의 한 부분인 거니까.'

레타니아의 화려함은 사치가 아 니었다.

제국과 다른 왕국들 사이의 교역 으로 먹고사는 레타니아의 입장에 서는 그런 화려함으로 자신들을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주변 왕국들이 그런 화려함에 눈 이 돌아가 주머니를 열게 만드는 일종의 상술이었다.

또한 제국이 보기에는 적당히 약 하다고 생각되게끔 하는 생존 기 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겉보기 하고는 다른 게 사람과 국가니까.'

영지를 방문했던 가짜 상인들과 호위 용병들은 모두 이 레타니아 에서 보낸 첩자들과 기사들이었다.

더구나 제이크와 같이 미래를 보 았던 수련 마법사도 이 레타니아 에서 보낸 첩자였다는 걸 감안하 면,제이크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질 정도였다.

겉보기에 화려하기만 한 이 왕국 도 실제로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 로 노력하는 국가였던 것이다.

"그럼,일 끝날 때까지는 우리는 노는 건가?"

제시카가 응접실에 있는 소파에 올라가 뒹굴자,제이크가 한쪽에 있는 욕실을 가리켰다.

"뭐,회담 같은 건 공녀님이 하 실 테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저녁 에 있을 만찬 때까지는 쉬면 될 겁니다. 하지만 우선 씻어요."

"잘됐다. 이번 호위 임무는 정말 쉬웠어. 아까는 깜짝 놀랐지만 말 이야! 돌아갈 때까지는 별일 없었 으면 좋겠어."

욕실로 들어가면서 제시카가 하

는 말에 제이크도 전적으로 동의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파티마에게 속 삭였다.

-제국이 병력을 일으키기 전에 는 왕국인들의 반감이 그리 심하 지는 않았는데.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아까 화살 공격 말하는 거죠? 그래도 그 정도 공격은 별 소용없 잖아요. 그 앰버라는 마법 기술자 가 실드도 걸어 놓았었고,주인님 도 따로 방어 마법을 걸었으니까요.

-뭐,마법이 아니라도 기사들이 있으니 문제는 없었겠지만 공격을 했다는 그 자체가 문제란 말이

마법에 대해서는 빠삭했지만,오 랜 세월 정치 같은 것은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파티마로서는 제이크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 수 가 없었다.

제이크도 대답을 듣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기에 그는 곧 응접실 에 앉아 쌓인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일행과 다르게 제이크 는 저녁까지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짧은 세면 뒤에 제이크도 접객실 로 불려 나간 것이다.

"아무래도 남자 수행원이 기사님 뿐이라서요."

제이크에게 앰버가 미안한 표정 으로 사과했다.

제국의 특사로 온 공녀의 수행원 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이미 공녀와 앰버,그리고 선임

기사인 주크베인은 모두 예식에 맞는 정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공녀는 언제 준비했는지 정갈하 지만 고급스러운 드레스 차림이었 고,앰버 마법사는 예식용 마법사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주크베인도 판금 갑옷 대신에 기 사단 정복을 입고 있었다.

제이크는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는 왜 공녀가 공식적인 면담 자리에 용병을 불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차마 반대를 할 수

없어 불편한 표정만 얼굴에 나타 냈다.

공녀의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기사만이 아니었다.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문관으로 뒤를 받치기에는 너무 어려 보일 것 같은데요."

제이크의 질문에 공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특사 일행으로 왕과 만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나이가 어려 보이 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네요."

"뭐,그 부분은 공녀님이 충분히 고려하신 것 같으니까요."

이미 제이크의 귀족적인 식견과 예절은 공녀와 앰버에게 충분히 보여 줬다고 생각하는 제이크였다.

그래서 개방적인 공녀가 그를 임 시로 참여시키게 된 것은 그리 이 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자신의 나이가 20살도 되 지 않은 것은 일행으로서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 부분이 걱정 될 뿐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은 제 전문 분야니까요."

하지만 앰버가 옆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자 제이크는 얼마 전 본 그녀의 화장이 생각이 났다.

마법을 쓴 것 같은 무시무시한 변신.

그녀의 실력이면 제이크의 나이 도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게 분명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1시간 뒤,정복으로 갈아입은 제이크의 얼굴은 족히 삼십 대 중반 으로 보였다.

엠버가 제이크의 얼굴에 화장을 해 준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뿐

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야리야리한 얼 굴이었던 제이크는 잔주름이 슬쩍 잡힌 지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변 해 있었다.

"오,정말 다른 사람 같네요."

기사도 제이크의 얼굴을 보고 무 척이나 놀란 듯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여기서 제일 놀란 사람은 제이크 본인이었다.

거울로 본 그의 얼굴은 미래의 자신의 얼굴과 똑같았던 것이다.

"정말 미남인데요? 제이크는 정 말 10년 뒤가 기대되는 남자네

요."

앰버는 자신의 작품이 예상보다 멋지게 완성되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이크를 끝으로 준비가 끝난 뒤,또다시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왕과의 접견 허가가 떨어졌다.

네 사람은 접객실을 나서,왕궁 을 가로질러 왕궁 안쪽에 있는 알 현실로 들어섰다.

레타니아의 알현실은 거대하고 장엄한 제국과는 달리,화려하지 만 그렇게 광활하거나 장엄하지는 않았다.

알현실 끝에는 왕으로 보이는 중 년의 남자가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양옆으로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부터 장년까지의 남자들 이 여러 명 늘어서서 입구로 들어 서는 공녀를 바라보았다.

알현실에는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크의 감각에는 숨어 있는 마나 사용자들이 여러 명 걸 려들었다.

그를 느낀 제이크는 슬쩍 긴장이 되는 걸 느꼈다.

"어서 오시오,제국의 특사로 오 신 전 황태자비."

공녀를 보자 바로 시비를 거는 레타니아의 왕.

보기에는 미소를 짓는 사람 좋은 중년 남자처럼 보였지만,웃음 뒤 로 보이는 왕의 눈은 마치 살모사 가 먹이를 보는 듯이 음흉하게 빛 나고 있었다.

"루테리아 공작의 딸인 레이첼입 니다. 황제 폐하의 명으로 레타니 아에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발은 공녀에게 전 혀 먹히지 않았다.

공녀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 고, 담담하고 낭랑한 그녀의 인사 는 그를 얕잡아 보던 모든 사람을 정신 차리게 했다.

그로 인해 슬쩍 간을 보려던 레 타니아의 왕도 자세를 달리하게 되었다.

"그래,무슨 일인가. 갑자기 제국 의 특사가 짐을 찾아오다니."

공녀는 왕 앞에 다가가 시종장에 게 황제의 인장이 찍힌 국서를 전 달한 뒤에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왕이 인장을 뜯고 국서를 읽는 동안 그녀의 임무를 수행하

기 시작했다.

"몇 개월 전 본 영지로 레타니아 에서 상인들이 호위 용병들을 데 리고 찾아왔습니다."

그녀도 황제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제국 의 귀족으로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영지에서 벌어진 일을 차 분한 목소리로 왕과 귀족들에게 설명했다.

상인들과 호위 용병들이 던전들 을 휩쓸고 다니면서 유물과 마법 아이템을 쓸어 담던 일과 그 일로

인해 영지에 파견된 황제의 기사 들과 알력이 생긴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제 기사들 과 상인들이 한날한시에 소식이 끊어진 것까지.

제이크의 예상대로,루테리아 공 작은 황제 기사들과 상인들의 일 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황제 페하의 기사들 이 연락을 보낸 내용에 따르면, 상인으로 위장한 첩자와 호위 용 병으로 위장한 귀국의 기사들을 폐하가 알려 준 던전에서 보게 되 었다고 합니다."

국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공녀 는 알현실 내에 있는 이들이 모두 알 수 있게 담담히 황제의 말을 옮겼다.

"얼마 전에도 폐하께서는 수도에 암약하던 귀국의 첩자들을 눈감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또다시 제국 내에 첩자를 보내 제국의 던전을 약탈한 귀국의 행위에 대해 제국 은 강하게 항의하는 바입니다."

공녀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레 타니아의 왕과 귀족들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변해 갔다.

"더구나 제국 내에서 제국 기사

들에게 해를 입힌 행위는 제대로 된 책임과 보상이 필요합니다."

공녀의 말이 끝나자,바로 귀족 들이 성토가 시작되었다.

"무슨 망발이오! 첩자는 무슨 첩 자! 우리 왕국에는 그런 짓을 벌 일 이가 없소이다!"

"듣자 듣자 하니까! 괜한 우리 상인들을 죽여 놓고 반대로 우리 에게 죄를 씌우는 것 아닌가!"

하지만 한껏 화를 토해 내던 귀 족들은 조용한 왕과 몇몇 실세 귀 족들의 모습에 말을 멈추고 말았다.

레타니아 왕은 예상보다 강한 공 녀의 말에,아니,제국의 대응에 꽤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레타니아 왕도 루테리아 영지에 남아 있는 첩자들에게 어느 정도 상황을 전해 들었다.

레타니아로서는 첩자와 기사들이 죽고 유물과 마법 아이템을 잃은 것이 분하기는 했지만,황제의 비 밀을 증명한 덕분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미래의 정보라 니.

물론 황제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과 거와 달리 자신들도 그 정보를 이 용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문제는 제국이 의심하게 될 경우 였는데,그럴 경우는 절대로 시침 을 떼기로 합의를 보았었다.

하지만 이렇듯 직설적으로 항의 가 들어오는 경우는 그들의 예상 에는 전혀 없던 내용이었다.

마치 들켜도 그만이라는 모습에, 왕은 도무지 대응할 방법이 생각 나지 않았다.

"휴,무언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

네. 우리 쪽도 그에 대한 회의가 필요할 듯 하니 오늘은 그만 물러 가는 게 어떻겠는가. 그리고…… 오늘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도 전 해 들었네. 그들을 대신해 내가 사과하겠네."

왕의 사과에 귀족들은 다시 한번 웅성거렸지만,공녀는 머리를 깊 이 숙여 감사를 표하고 알현실을 물러났다.

이날,제국의 황태자비가 아닌 루테리아의 레이첼 공녀로서의 첫 데뷔는 이렇게 다른 나라의 왕궁 에서 화려하게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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