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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66화 (66/222)

66 화

시간이 지나자 바닥없는 협곡은 완전히 어둠에 휩싸였다.

시간상으로는 아직 밤이 아니었 지만,빛이 들어오는 곳이 실선 같은 하늘의 틈새밖에 없으니 해

가 조금만 넘어가도 깜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협곡 안 에 작은 모닥불 하나 만이 제이크 와 공녀를 비추고 있었다.

제이크가 마법 가방 안에 가득 담아 온 장작 중 일부로 만든 모 닥불이었다.

천막이 무사했다면 공간 확장이 걸린 천막 안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겠지만,이미 천막은 어디론 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모닥불은 안전을 위해 절벽에 최 대한 붙여서 피웠다.

두 사람은 모닥불을 중앙에 두 고,각각 작은 모포 위에 마주 앉 아 있었다.

제이크 이야기는 한참 전에 끝났다.

그 뒤로 공녀는 한동안 눈을 감 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정리 하기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참 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떴을 때,그녀의 앞에는 따 뜻한 홍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제이크가 타 놓은 홍차였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

운 찻잔에 놓인 홍차를 보고는 공 녀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전에 타 준 홍차도 그 마법 속 세계의 미래에서 제가 좋아했던 홍차였나요?"

그녀가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꺼낸 이야기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자 생활에 서기관이 뭔 도 움이 되었겠습니까. 쥐는 법만 아 는 칼 솜씨에,남들 다하는 쇠뇌 정도밖에 없었으니 홍차나 타는 게 일이었죠."

물론,서기관치고 정말 잘 적응

해서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긴 했지만,같이 도망치던 기사 나 마법사에 비하면 결국 일반인 에 불과했다.

"저에게 해 준 모든 말이 사실이 라면,아니,사실이겠죠. 이런 황 당한 이야기를 이런 상황에서 거 짓으로 지어낼 이유가 없으니."

제이크의 손에 쥐어진 완드와 옆 에 뉘인 마법 지팡이,그리고 뒤 쪽에 입구를 벌리고 있는 배낭까 지.

여태 보여 준 마법과 가지고 있 는 마법 아이템만 보아도 그가 범

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단지,예상했던 것을 넘 어서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놀랐 을 뿐이었다.

공녀는 질문을 계속 이어 갔다.

"제이크,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 이죠?"

과연,공녀였다.

중간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바 로 핵심으로 치고 들어왔다.

현명한 그녀의 모습에 제이크는 만족한 얼굴로 자신 앞에 놓인 홍 차를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몸을 숨기고 황제에게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키우면서 돈을 버는 게 목표였죠."

먼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살 아남기도 쉽지 않을 때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다.

"그 뒤로는 멀리 남부 왕국 중 하나로 가서 숨어 지낼 생각이었 습니다. 다만,생각지 못한 인연들 덕분에 여기에 주저앉았죠."

다시 한번 마법 세상에 들어가 마법을 배우게 되었고,공녀와 앰 버,제시카와 루이를 만나게 되었

다.

공녀는 재촉하지 않고 계속 그의 말을 경청했다.

진지하게 듣는 그녀의 모습은 미 래에 모두에게 힘을 주었던 황비 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를 가진 그는 계속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았다.

"공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미래 에 있을 제국의 멸망은 제게는 꼭 막아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제이크의 말에 공녀가 잠시 움찔 했다.

하지만,그녀는 제이크의 말을

막지 않았다.

"다만,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전생의 문명과 제국이 멸망한 미 래를 경험한 그에게 있어서,제국 은 그동안 거친 여러 나라 중 하 나일 뿐이었다.

하지만,인류가 괴물들에게 멸망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괴물들은 황제가 대수림을 넘 어 아인족들을 공격한 뒤에 아인 족의 땅에서 나타났습니다."

대수림 너머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기에 어디서 시작된지는 알 수 없었지만,그것만은 확실했다.

"적어도 황제가 아인족을 친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우선 황제 가 그들을 치는 것을 막아 볼 생 각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아인족 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유를 알 아봐야겠죠."

말을 하던 제이크가 다시금 한숨 을 내뱉었다.

"문제는,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황제가 죽어 버려서 황제가 애매 하게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황제는 아인족을 치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듯했다.

계속 듣고 있던 공녀가 그의 말 이 끊어진 사이에 질문을 했다.

"황제 폐하는 미래에도 성격이 안 좋았나요?"

그녀는 황제라는 말을 어렵게 꺼 내 놓았지만,그동안의 습관인지 제대로 존칭을 붙였다.

하지만, 제이크는 황제에 대해 눈곱만큼의 존대도 할 생각이 없었다.

"흠,그 성격 그대로에다가 갈수 록 음흉하고 잔혹해졌죠."

제이크의 말에 공녀는 복잡한 표 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황제 성격상 제가 나서서 설득하다가는 목이 잘려 나갈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공녀님을 통 해서 공작님께 힘을 실어 드릴 생 각이었죠. 그리고 공작님을 도와 황제가 하는 일을 막아 보려고 방 법을 찾아보던 차였습니다."

제대로 된 고대 마법사가 참가하 고 미래 정보로 제국 귀족가를 흔 들면 황제에 대항하는 괜찮은 세 력을 구축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미래를 보고 온 황제는 다른 계획 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이번 특사와 돌아오는 길에 벌어 진 공녀에 대한 마법 공격은 무척 이나 지저분한 냄새를 풍기고 있 었다.

공녀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 지 그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계획은 변함이 없긴 하 지만, 천천히 진행하기에는 시간 이 넉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이크가 원래 계획을 변경하여 공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 준 이

유 중 하나가,차근차근 진행하다 가는 시간이 부족할 듯했기 때문 이었다.

"대충 설명은 다한 것 같군요. 더 궁금한 것 있습니까?"

"휴,더는 무리예요. 지금도 감당 하기가 쉽지 않네요."

제이크의 말에 공녀가 고개를 저 었다.

억지로 버티고 있었지만, 공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럼,오늘은 이만 쉬죠. 다행히 이 협곡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서 몇 가지 준비만 하면 자는 데

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물론 마법 천막이 있다면 더 좋 았겠지만……

제이크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다행히 남은 물건으로 대충 잠자 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제이크는 혹시나 날아가지 않도 록 못과 밧줄로 모포를 잘 동여맸 고,마법을 걸어 위험에 대비했다.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엄청난 마법 공격이던데……

모포에 누운 공녀는 달빛 덕분에 살짝 보이는 협곡의 틈을 보며 뒤

에 남은 일행을 걱정했다.

제이크는 마법이란 말에 슬쩍 떠 오르는 사람이 있었지만,곧 머리 에서 지웠다.

증거도 없이 의심하기에는 상대 가 너무 높은 위치였다.

"괜찮을 겁니다. 제시카도 있고, 루이도 있으니까요."

"모두 걱정하겠네요. 제가 죽었 다고 생각한 앰버가 슬퍼할 텐 데……

공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내일은 마법을 사용해서 올라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큰 문제

가 없으면 며칠 안에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제이크가 바로 대답을 했으나 이 미 공녀는 잠이 든 뒤였다.

하기야 나름 훈련을 했다지만, 이런 고생을 겪은 것은 처음일 테 니 당연했다.

오히려 여태까지 버틴 게 용할 지경이었다.

-나도 자야겠어. 주변 감시 좀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인간인 제이크와 다르게 에고 완 드는 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제이크의 마나를 이용해서 파티 마가 주변에 알람 마법을 펼친 뒤,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직 해가 틈새로 비치지 않아 깜깜한 협곡이었지만,두 사람은 개운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다행히 밤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몬스터나 동물의 습격도 없었고,모닥불도

꺼지질 않았다.

그 덕에 편한 잠을 자게 된 두 사람은 어제의 피곤을 어느 정도 풀어 낼 수 있었다.

전날,모포로 몸을 감쌌던 공녀 도 제이크에게 제시카의 가죽 갑 옷을 빌려 입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여벌의 파티원 복장을 마법 배낭에 넣어 둔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많이 불편한가요?"

"아뇨. 입을 만해요."

물론 자신의 옷이 아니라 가슴이 좀 답답하고 허리도 좀 남지만,

공녀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은 후,제이크가 꺼낸 육포로 아침을 때웠다.

공녀에게는 불편한 식사였을 텐 데도,그녀는 아무런 불만 없이 천천히 육포를 녹여 먹었다.

마법 배낭에는 충분한 양의 물과 식량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제이크와 공녀는 굶어 죽 을 걱정은 덜 수 있었다.

"그럼,시작해 볼까?"

제이크는 공녀를 모닥불 옆에 쉬

게 하고는 바위 끝으로 걸어갔다.

-부양 마법을 쓰실 건가요?

-부양 마법에,비행 마법,가능 하면 반중력도 해 보고.

하늘을 나는 것은 마법사들에게 도 가장 큰 소원이다.

덕분에 간단한 부양 마법부터 최 고 난이도인 반중력 마법까지,비 행 관련 마법은 마법 기술자도 모 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화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비행 마법을 시행하기 까지 마법 기술자들은 공을 들여 야만 했다.

그렇지만 제이크는 파티마에게 주문을 배우는 것으로,바로 마법 을 시전할 수 있었다.

-비행 마법이나 반중력 마법은 마나가 부족할 것 같은데요?

-뭐,마법 지팡이에 있는 마나를 끌어 써 보지. 한 번에 올라갈 생 각도 아니니까. 마나가 되는대로 조금씩 올라가 보자고.

먼저 제이크는 파티마에게 배운 부양 마법을 준비했다.

부양 마법이란 일대의 공기를 이 용해서 몸을 위로 띄우는 마법이다.

이 마법이 제대로 먹힌다면 마나 가 많이 필요한 다른 마법은 따로 쓸 필요가 없었다.

"바람아 불어라! 내 몸을 밀어 하늘을 띄워라!"

제이크가 완드를 위로 치켜들고 는 오랜만에 크게 주문을 외쳤다.

그동안 몰래 주문을 외우느라 답 답했던 보상이었다.

주문과 함께 공기 중의 마나가 완드로 빨려 들어가서 마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휘이이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제이크는 어리둥절했다.

마법이 실패한 적은 많이 있었지 만,이렇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난 적은 없었다.

놀란 그가 다시 한번 마법을 시 전했지만,역시 어떤 일도 벌어지 지 않았다.

제이크는 급하게 다른 마법을 사 용해 보았다.

"빛이여!"

그의 말과 함께 완드 끝에 환한 빛이 맺혀 주변을 밝게 물들었다.

"마법 자체는 이상 없는데……

다른 간단한 마법들도 무사히 시 전되는 것을 확인한 제이크는 이 번에는 마법 지팡이의 마나를 사 용해서 비행 마법을 시전해 보았다.

그렇지만,비행 마법도 전혀 효 과가 없었다.

그리고,마지막으로 마나가 역류 할 것을 각오하고 시전한 중력 마 법마저 아무 결과가 나타나지 않 자,제이크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조용하던 파티마가 입을

열었다.

-혹시나 싶었는데,아무래도 이 협곡은 하늘을 나는 마법이 모두 금지되었나 보네요.

제이크는 파티마의 말에 이 협곡 의 이름이 떠올랐다.

"신이 금지한 건가?"

-신력에 그 정도 힘이 있으려고요. 아무래도 마법 같은데…….

그녀의 말에 제이크는 바로 마법 을 시전했다.

"마나여! 너는 문을 열어 숨겨진 너의 진실을 보여라!"

제이크가 시전한 마법은 과거,

탑에서 지하 비밀 통로의 마법진 을 드러내게 만든 마법 기술의 상 위 마법이었다.

그때는 손에 댄 곳의 마법진만 모습을 드러냈지만,지금은 광범 위한 지역의 마법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제이크는 협곡의 가득 매운 광대한 마법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정말 아름답네요."

뒤쪽에서 공녀의 감탄사가 들려 왔다.

하지만 제이크와 파티마는 동시

에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협곡 사이의 허공을 거대한 마나 도형들이 가득 차 있었다.

협곡을 가득 메운 거대한 마법진 은 딱 봐도 고대 마도 제국의 마 법사들이 만든 마법진이었다.

협곡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마 법,혹은 마나의 기술을 금지하기 위한 광대 무비한 마법진으로,제 국 황도 지하에서 본 복제 마법진 에 뒤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 밑에 뭐가 있길래 저 런 마법진을 설치한 거지?"

놀란 눈으로 협곡 아래를 내려다

본 제이크였지만,그에 눈에는 전 과 같이 검은 구멍만이 보일 뿐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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