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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68화 (68/222)

68 화

돌을 깎아서 만든 홀.

불어오는 마나의 바람은 두 사람 의 옷마저 펄럭이게 했다.

공녀는 몸 주위를 지나는 마나의 느낌에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된 검술 연습으로 조금씩 마나에 대한 감 각을 느끼기 시작한 그녀였다.

지금 느끼는 마나의 흐름은 그녀 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집중해! 피부에 느끼는 감각을 몸 안으로 투영해서 그 느 낌을 잡아채!

그런 그녀의 머릿속으로 에고 검 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제이크가 절벽 밖에 꽂혀 있는 것을 가져온 것이다.

검집을 뺀 뒤 그녀의 손에 쥐어

주니 그래도 제 할 일은 제대로 하는 에고 검이었다.

에고 검의 음성에 정신을 차린 공녀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제대 로 명상에 돌입했다.

이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동안 얼마나 깨달아 낼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최고의 기회였다.

그렇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공녀에게 던져 준 뒤에 제이크는 눈앞의 마나 기둥을 조사하기 시 작했다.

높은 천장을 닿을 듯한 커다란 기둥은 그 재료가 무엇인지,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먼지 하나 없 이 반들반들했다.

거기다 곳곳에 막혀 있는 빛나는 마석 덕분에 마치 보석이 박힌 대 리석 기둥처럼 보였다.

-설마 대리석은 아니겠지.

-마법으로 가공한 합금일 거예요.

-뭔지는 모르고?

-저라고 뭐 모든 마법을 다 아 는 것도 아니라고요. 더구나 연금 술 쪽은 전 주인들이 별로 관심을 안 가졌던 부분들이라서요.

-하긴,포션 쪽도 약하더만…….

-그건 재료가 부족했던 거잖아 요!

어차피 놀리려고 한 말이었기에 제이크는 파티마의 항의를 무시하 고 마법을 시전했다.

"마나여! 너는 문을 열어 숨겨진 너의 진실을 보여라!"

협곡에서 마법진을 눈에 보이게 만든 마법.

그 마법은 이곳에서도 확실히 효 과를 보여 주었다.

웅-웅-웅-

마석이 박힌 기둥 표면에 현란한 마법진이 떠오른 것이다.

-비행 관련 마법을 막는 마법진 에,공간에 마법진을 고정하는 마 법,마나를 마법진에 부여하는 마 법에,다른 마법진과 연동하는 마 법,그리고 방어 마법이 걸려 있 네요.

제이크의 눈을 통해 기둥의 마법 진을 확인한 파티마의 말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마석을 이용해서 마법 진에 마법을 공급하는 이 기둥은 강력한 방어 마법이 수호하고 있 었다.

-해제가 가능할까?

-무리일 듯한데요. 적어도 최상 급 이상의 마법사들이 달라붙어서 만든 것 같아요.

-그럼 파괴하는 건?

-괜히 방어 마법이 아니죠. 더구 나 공격했다가는 뭐가 더 튀어나 오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결국 처음 생각대로 움직여야 겠네.

어차피 제이크가 이곳을 찾은 것 은 마법진의 마나를 끊을 생각으 로 온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마법 아이템이나 에고 아 이템처럼 마나 기둥도 멀쩡히 잘 가동되고 있었다.

제이크의 눈이 잠시 기둥에 박힌 마석들을 향했다.

방어 마법을 해제하고 저 마석들 만 캐서 가져가도 기존에 모은 마 석의 몇 배나 될 터다.

하지만 그 꿈은 잠시 미뤄 둬야 할 듯했다.

제이크는 기둥에서 시선을 땐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홀에 들어온 입구가 아닌 다른 통로가 없는지 살펴보려는 생각에

서였다.

이곳을 만든 마법사들이 모두 이 안에서 자신을 희생했을 리가 없었다.

마법사들이라는 게 그렇게 자기 희생적인 존재들도 아니었고,뒤 를 준비하지 않는 마법사가 마법 사일 리가 없었다.

하늘을 나는 마법을 모두 막아 놓았으니 분명 걸어서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어 놓았을 게 분명했다.

-혹시 시간 설정을 해서 날아서 빠져나간 뒤에 가동되게 했을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설마 그런 마법진도 새겨져 있 었던 거야?

-아뇨.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가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찾던 통로는 곧 발견되었다.

반대쪽 벽에 문처럼 생긴 흠을 찾아낸 것이다. 뒤로 파티마가 살 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의 일로 작은 복수를 한 것이다.

-다행히 표준 양식이네요. 바로

열릴 거예요.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가 뒤를 돌 아보았다.

때마침 공녀가 명상에서 빠져나 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마나 사용자가 되지는 못했지만,그래도 실마리는 발견 한 모양이었다.

눈을 뜬 공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공녀와 제이크는 우선 홀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이미 잘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 기에 두 사람은 잠자리를 만들자 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밤을 보낸 뒤,다음 날 두 사람은 밝은 얼굴로 출발 준비 를 했다.

환한 마나 기둥 덕분에 아침을 밝게 맞이한 두 사람은 금방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문으로 보이는 흠 앞에 섰다.

만약을 대비해서 공녀는 검을 뽑 아 들었고,제이크도 한 손에는 완드를, 다른 손에는 마법 지팡이

를 들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게 숨겨진 문은 제이크가 마나를 흘려보내자 바로 열렸다.

문 뒤로는 넓고 긴 통로와 통로 끝에는 위쪽으로 향하는 층계가 보였다.

그리고 층계 입구 쪽에는 3미터 정도 크기의 판금 갑옷을 입은 조 각상이 통로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조각상이 아 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곳

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이크와 공녀는 통로 안으로 들 어섰다.

슈욱! 턱!

두 사람이 통로 안으로 들어서자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

한번 닫힌 문은 제이크의 마나에 도 반응하지 않았다.

"역시 쉽게 지나가게 할 리가 없지."

문이 닫히자 판금 갑옷을 입은 조각상,고대 마도 시대에 만든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디언인가요?"

공녀가 앞으로 나서며 에고 검을 치켜들었다.

던전을 지키는 마법 병기들을 부 르는 말인 가디언.

"그런 것 같습니다. 물러서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마나 사용자 가 아니면 상처 입히기 어렵습니다."

아직 공녀가 마나 사용자가 되지 못했기에,그녀가 이 싸움에 도움 이 되진 못할 것이다.

제이크는 앞으로 나서면서 완드 를 움켜쥐었다.

하지만,공녀는 제이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가더 니 에고 검을 강철 골램을 향해 휘둘렀다.

캉!

골렘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자연 스러웠다.

도저히 오랜 시간이 흐른 모습이 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공녀의 검을 한쪽 팔로 막아 낸 골렘이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대검 을 힘차게 휘둘렀다.

"위험……!"

놀란 제이크가 완드를 치켜들었

으나,마나 사용자의 속도와 비슷 한 골렘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대검은 공녀의 허리를 갈라 버리 려는 듯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 순간,공녀는 몸을 뒤로 누워 버렸다.

공녀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대 검.

공녀는 대검이 지나가는 순간, 뒤로 몸을 던지며 다시 일어섰다.

"정말 단단하네요. 그래도 상대 는 가능할 것 같아요. 시간을 벌 테니까 뒤를 부탁해요."

"아,네."

공녀의 말에 제이크가 그제야 정 신을 차렸다.

말을 마친 뒤에 다시 골렘에 달 려들어서 싸우는 공녀의 모습을 보니 과연 그녀 말대로였다.

쓰러뜨리는 것은 무리겠지만,방 어만 한다면 공녀 혼자서도 충분 히 시간을 끌 수 있어 보였다.

-대단한데요. 마나를 사용하지 못할 뿐 기사급의 움직임이에요!

"기술은 기사 이상이야. 마나 없 이 저렇게 움직이다니."

미래에 본 황비의 모습을 기준으

로 생각했던 제이크는 자신의 생 각을 고쳐야 했다.

그녀에게 에고 검을 준 이유는 나름 실력이 있어 보여서도 있었 지만,그녀와의 관계를 든든히 하 기 위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실력을 보 니,정치적인 고려가 전혀 필요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실력 자체로도 에 고 검의 주인이 될 만했다.

-보자마자 그녀가 바로 인정한 걸 보면 정말 실력이 좋아서였겠 죠.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말 이었다.

제이크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 만,곧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완드를 통해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를 가득 끌어당겼다.

한편,공녀는 살며시 이어졌다 떨어지곤 하는 마나의 흐름을 잡 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상대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골렘 이었고,손에 든 것은 마법 아이 템의 최고봉인 에고 검이었다.

더구나 방금 마나라는 것의 감각 을 제대로 느낀 덕분에, 그녀는 싸우는 도중에도 마치 마나 훈련 을 하는 기분이었다.

에고 검은 그녀가 싸우기 시작하 면서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튼튼한 골렘의 몸을 몇 번이나 후려쳐도 에고 검에는 흠집 하나 나질 않았다.

마나를 쓸 수만 있었다면 잘라 내지는 못해도 조그만 상처라도 입힐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현재의 그녀에게는 이렇 게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것만 해

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야얏!"

그녀는 그동안 쌓인 모든 답답함 을 시원하게 날려 버리려는 듯이 원 없이 검을 휘둘렀다.

쿠앙,캉,캉!

고함을 지르며 통로의 벽을 달리 고, 바닥을 구르면서 골렘의 몸을 넘나드는 공녀의 모습에,제이크 는 조금 질린 얼굴이 되었다.

'와, 그동안 내가 봤던 침착하고 현숙한 모습에 저런 면이 숨어 있 었던 거야?'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제이크는

곧 나설 준비를 했다.

골렘이 공녀를 상대하느라 이쪽 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지금이 적기였다.

"뒤로 물러나요!"

제이크의 말에 골렘의 배를 걷어 차며 뒤로 쭉 물러나는 레이첼 공 녀.

동시에 완드와 마법 지팡이를 골 렘을 향해 가리키는 제이크.

"우선 마법 방어를 날려버리고."

갑작스러운 마나의 유동에 골렘 이 제이크를 향해 몸을 돌렸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워터볼!"

"라이트닝 삼 연발!"

골렘의 몸에 엄청난 물 덩어리가 쏟아지더니,뒤이어 마법 지팡이 에서 골렘을 향해 전류가 쏟아졌다.

파지지직!

온통 물에 젖은 채로 전격 공격 을 세 번이나 당한 골렘의 몸에 관절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이 정도 전격에 당할 골 렘이 아니었다.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골렘은 제이크를 향해 움직였다.

제이크도 여기서 공격을 끝낼 생 각이 없었다.

그는 마법을 모두 소진한 지팡이 를 배낭에 집어넣고 배낭 안에서 오랜 만에 쇠뇌를 꺼내 들었다.

손에 든 쇠뇌로 자동으로 화살이 날아들었고,쇠뇌는 스스로 음직 여 화살을 장전했다.

"다음은 약점을 찾고."

제이크가 주문을 외우자,골렘의 몸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이 환하 게 빛을 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알 수 없 는 도형일 뿐이었다.

하지만 마법사인 제이크에게는 어떤 식으로 골렘이 움직이는지, 마나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 주는 전자 기판의 회로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골렘의 약점을 알 려 주는 설계도와 다를 바 없었다.

"강해지고,날카로워지고,빨라지 고,너는 이제 뚫지 못할 것이 없다."

제이크는 쇠뇌를 골렘의 허리춤

을 향해 겨냥했고,그의 모든 마 나는 화살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다가오는 골렘을 향해 화 살이 발사되었다.

투캉!

마치,총알이 발사되는 듯한 소 리가 들린 뒤,골렘의 허리에 자 그마한 구멍이 생겨났다.

구우우우웅!

그리고 이내 골렘은 결국 눈에서 빛이 사라지며 앞으로 넘어졌다.

쿠웅.

핵이 파괴된 골렘은 더 이상 움 직이지 않았다.

골렘이 쓰러지자,공녀는 신기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그가 마법을 쓰는 것 을 보았지만,마법을 사용해서 적 을 쓰러뜨리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마법사하고는 전혀 다른 방 법으로 쓰러뜨리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해 보였다.

"고대 마법사들은 모두 그런 식 으로 싸우나요?"

- 푸하하하하.

-설마 그럴 리가!

그녀의 질문에 에고 검은 웃음을

터트렸고,에고 완드는 빽 하니 소리를 질렀다.

마법 기술자처럼 마법 아이템에 들어 있는 마법을 쓰고,쇠뇌에 마법을 걸어 적을 쓰러뜨리는 마 법사라니.

마도 제국의 마법사 중에 그런 마법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전생의 기억과 미래의 경험 덕분 에 제이크의 마법은 어떻게 쓰던 잘 먹히면 최고라는 실용주의 마 법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에고 검의 웃음을 들은 공녀는 어리둥절했지만, 제이크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 구차해지기만 할 게 뻔했다.

그는 먼저 층계를 향해 성큼 성 큼 걸어갔다.

"한참을 움직여야 할 겁니다. 어 떻게 길이 났을지도 모르고 누가 막아설지도 모르니까요."

제이크의 말에 공녀도 굳은 얼굴 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앞을 막아선 가디언을 쓰러뜨리고 위로 나 있 는 층계를 통해 위로 올라가기 시 작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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