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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73화 (73/222)

73 화

공녀와 제이크 일행이 루테리아 시에 들어서기 전부터 영지는 어 두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뿐만 아니라 스산한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공녀와 앰버는 아직 로브를 둘러 쓴 채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영지에 들어온 만큼 모습을 드러 낼 법도 했건만,아직 때가 아니 라 여긴 것이다.

귀족인 그녀는 자신이 살아 돌아 온 뒤에 벌어질 일을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 아버지인 공작과 만 난 뒤에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게 순서라 생각했다.

"드디어 너희도 돌아온 건가?" 대수림과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시의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예시

카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먼저 떠난 사절단에 의해 이곳에 도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지나오는 길에 본 바로는 제국 전체가 전쟁을 준비하는 듯 보였 으니,당연히 영지와 루테리아 시 에서도 알 수밖에 없었다.

"기다려 봐. 성에 연락을 보내야 하니까."

"우리도 먼저 영주님의 성으로 갈 거니까 연락 안 해도 될 거야."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그 럼 빨리 가 봐!"

병사는 로브를 둘러쓴 두 사람에 대해 검문도 하지 않고 일행을 안 으로 들여보냈다.

일행은 영지로 오는 도중에 구한 말을 재촉해서 성을 향해 달렸다.

가는 길에 보인 시 내부는 예상 외로 무척이나 혼잡했다.

시민들의 수는 평소와 다르지 않 았지만 길에 보이는 용병의 숫자 와 레인저들의 수가 상당했다.

거기다 징집병으로 보이는 병사 들마저 눈에 띄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인데요?"

그 모습을 보고 앰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 웨이브.

날이 추워져 먹이가 없어진 대수 림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내려오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수림 주변에 있는 영지라고는 루테리아 영지뿐이었기에,몬스터 들은 해마다 루테리아로 내려왔다.

영지 동쪽에 만들어져 있는 거대 한 장벽 또한,자연히 몬스터들이 루테리아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 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마다 벌어지는 몬스 터 웨이브는 루테리아 시의 용병 들과 레인저들로 충분히 막아 왔 었다.

때문에 이렇게 징집병까지 시에 모여들 이유는 없었다.

"아무래도,우리 영지도 출정을 하게 된 것 같네요."

공녀가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 렸다.

일행은 더욱 말을 재촉해서 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곧,영주의 성 근처에 도 착했다.

동쪽 대장벽과 연결되어 있는 성 은 몇 달 전과 다를 바 없이 굳건 하게 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주 성의 정문을 지키던 레인저 들은 일행을 보고 앞을 막아섰지 만,앰버가 로브를 슬쩍 들춰 모 습을 보이자,바로 알아보고는 통 과시켜 줬다.

성의 내실 안쪽.

공작의 집무실은 어두운 분위기 가 가득했다.

집무실 안쪽 책상에는 공작이 앉 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앞쪽 소파에는 그를 닮은 두 젊 은이와 공작의 먼 친척이자 참모 인 앤드류 남작이 앉아 있었다.

공작을 닮은 두 젊은이는 바로 공작의 두 아들이자 공녀의 오빠 와 남동생인 조니건과 이슈비였다.

첫째인 조니건 루테리아는 아버 지와 별다르지 않는 거대한 덩치 와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도 나이에 맞지 않게 근엄해 서,주변에서는 공작과 판박이라

는 소리를 많이 듣는 이였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자 막내인 이 슈비 루테리아는 날렵하고 탄력 있는 몸매를 한 멋지게 생긴 남자 였다.

나이도 20대 초반이라 어린 느 낌이 조금 남아 있는 데다가, 평 소 얼굴에는 장난꾸러기 같은 느 낌이 가득했다.

하지만,지금은 네 남자 모두 무 척이나 어두운 표정이었다.

"출전 준비는 거의 마쳤습니다. 징집병 소집도 끝났고,기본적인 훈련도 마쳤습니다. 다만,출전 뒤

에 남는 인력으로 올해 몬스터 레 이드를 막을 수 있을지가 걱정입 니다."

공작과 닮은 첫째 아들의 말에 막내가 툭하니 반박을 내뱉었다.

"그래서 여태 대수림을 돌면서 몬스터를 정리했잖아. 거기다 아 버지도 남고 나도 있는데 뭐가 걱 정이야."

"네 동생 말대로 넌 걱정할 필요 없다. 레이첼의 추모를 위한 싸움 이다. 우리만 뒷짐을 질 수는 없지."

눈을 뜬 공작의 표정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못하는 것 때문에 한 껏 일그러져 있었다.

"껍,이왕이면 내가 갔으면 했는 데."

"어차피 레타니아 왕국을 공격하 는 쪽이 부대도 아니고 조력일 뿐 이니까. 별 의미 없어."

동생의 말에 조니건이 무뚝뚝하 게 대답했다.

"쳇,그야 그렇지만."

사절단 중 몇 명이 달려와 전해 준 공녀의 죽음은 공작과 그 아들 들에게 슬픔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자 누이의 죽 음은 거친 레인저들이자 고귀한 귀족인 그들에게도 크나큰 고통이 었다.

그래서 그 뒤에 내려온 황제의 출정 명령을 제일 먼저 나서서 준 비한 공작이었다.

다만,루테리아 영지는 왕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탓에 그들이 모은 병력은 레 타니아 왕국과의 싸움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영지 남쪽에 있는 히 베루니아 왕국을 견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더L 아직도 앰버는 돌아오 지 않은 건가?"

"사절단과 헤어진 뒤에는 소식도 온 게 없습니다."

"누님과 정말 사이가 좋았으니까요. 아마도 누님을 찾기 전까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막내 이슈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였다.

문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앰버 마법사님과 일행이 돌아오 셨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앰버와 일행 이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너라도 무사히 돌아왔구 나."

반가운 얼굴로 몸을 일으키던 공 작은 앰버 뒤에서 로브를 젖히는 공녀를 보고는 그대로 몸을 멈추 었다.

그리고.

우당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자신의 책 상을 박살을 내며 공작이 집무실 을 가로질렀다.

"우악!"

소파에 앉아 있던 아들들은 반가 움을 표시하기도 전에 급하게 몸 을 피해야 했고,참모인 남작은 부서진 소파와 함께 뒤로 나뒹굴 고 말았다.

"살아 있었구나."

순식간에 공녀 앞에 선 공작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공작의 얼굴은 평상시와 다르게 살아 돌아온 딸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두 형제도 공녀 에게 달려왔다.

예상과 다르게,이 가문은 형제

간에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아 보 였다.

'뭐,가문 승계에서 먼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기뻐하던 공작이 벌컥 그 녀를 품에서 떼어 놓더니 놀란 눈 으로 공녀를 쳐다보았다. 제이크 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의아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동안 봐 왔던 귀족들과는 달리 순수하게 형제의 무사함을 기뻐하 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공녀를 꼭 안고 있던 공작이 벌

컥 그녀를 품에서 떼어 놓더니 놀 란 눈으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각성했구나!"

"네"

그녀의 말을 들은 두 형제도 깜 짝 놀란 듯 공녀를 쳐다보았다.

마나를 각성하지 않고도 단지 검 술만으로 각성한 레인저들을 상대 하던 그녀였다.

첫째 아들 얼굴에 슬쩍 어두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막내도 잠시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그런 기색을 알지 못했 는지 공작은 그녀가 돌아온 것만

큼 그녀의 각성을 기뻐했고,뒤이 어 그녀의 뒤에 선 일행을 돌아보 았다.

"앰버,수고했다. 너도 전보다 성 장한 듯하구나."

가족을 대하듯 편하게 대하는 공 작의 말에 앰버는 고개를 숙였다.

공작은 앰버의 뒤에 서 있던 일 행을 훑어보았다.

'마나를 쓸 줄 아는 용병이 둘이 라……

"훌륭하군."

제시카와 루이를 본 그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뒤이어

제이크를 본 그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마법사가 맞나?"

[역시 검호 수준의 기사인가 보 네요. 일반 마법사와 다른 걸 느 낀 모양이에요.]

제이크는 마음속에 들려오는 파 티마의 음성을 배경으로 공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용병 마법사,제이입니다."

공작은 잠시 제이크를 바라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사이군. 반갑네."

공작은 다른 마법사와 다른 마나 의 흐름을 느꼈지만,마법사라는 종족이라는 게 워낙 별의별 인종 이 다 있다 보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등에 맨 마법 스태프를 보니 마 법사는 분명해 보여,신분에 이상 은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이들이 너의 가신이냐."

공작은 모든 이들을 둘러보고 만 족한 얼굴로 공녀에게 물었다.

죽은 줄 알았던 딸과 함께 돌아 온 자들이었으니, 그녀의 수하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공녀는 공작의 말에 일행을 돌아 보았다.

사랑하는 친우인 앰버와 용병인 제시카와 루이.

그리고…….

공녀는 마지막으로 제이크를 보 고는 공작에게 대답을 했다.

"아뇨. 그들은 저의 동료입니다." 공녀의 말에 공작이 의아한 표정 을 지었고,두 아들은 공작의 '가 신'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작은 수하를 만들라는 자신의 지시를 듣고도 동료라고 말한 공

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두 아들은 공작의 말에 공녀도 자신들과 같은 후계자로 인정했다 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각기 여러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 속에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 그런 기색을 보일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바로 표정을 풀고 그녀 의 귀환을 축하했다.

* * *

집무실을 나와 만찬장에서 식사

를 한 뒤,공작은 용병들을 따로 접견실로 보냈다.

그 후에 가족들과 참모인 남작, 그리고 앰버만 응접실에 모이게 해,그동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공작이 굳은 얼굴로 황궁이 있는 서쪽 창문을 노려보았다.

"이런 미친 황제가!"

첫째 아들도 아버지처럼 굳은 표 정이었고,막내만이 소리를 내어 황제를 욕했다.

"결국 쳐 낼 생각이었던 건가?" 공작의 말에 참모인 남작이 말을 이었다.

"예,아무래도 같이 가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원래대로라 면 첫째 도련님이 가셔야 했던 사 절단이었으니,결국 가문을 끊을 생각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까지 내가 참고 있음에 도……! 황제는 인간이기를 포기 한 모양이로군."

담담하게 말을 꺼내던 공작이 안 타까운 얼굴로 공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네게는 정말이지 힘 든 경험을 하게 만들었구나."

"괜찮아요. 이 정도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아요."

담담히 대답하는 공녀의 모습에 공작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마나를 각성해서인지, 아니면 고 생을 해서인지 자신의 딸은 이제 어엿한 한 명의 귀족가 기사가 되 어 있었다.

"그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 요,아버지?"

첫째의 물음에 공작은 한숨을 내 쉬었다.

"성질 같아서는 군대를 일으켜 황도로 진군하고 싶지만,그건 무 리겠지."

"아무래도 증거가 부족합니다. 확실한 증인이 공녀님밖에는 없으 니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기도 힘 들 테지요."

남작도 공작과 같은 의견이었다.

"하지만,이대로 있다고 황제가 그냥 놔둘 리도 없잖습니까!"

막내가 화난 표정으로 소리를 쳤 고,공녀가 자신의 남동생의 팔을 잡아 주었다.

"누나는 화가 나지도 않아? 결혼

하려던 상대가 누나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화가 안 날 리가,나도 루테리아가의 사람이야."

공녀의 말에 공작이 고개를 끄덕 였다.

"네 말이 맞다. 루테리아가 분노 를 잊을 리가 없지. 다만 드러내 놓고 덤볐다가는 그 핑계로 쓸려 버릴 뿐이니,차근차근 일을 진행 하도록 하자. 어쨌거나 황제와 적 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공작의 말에 두 아들과 공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은 남작과 앰버에게도 비밀 을 지키도록 맹세하게 했다.

"우선 레이첼,너는 아무것도 모 르는 채로 구사일생하여 돌아온 것으로 하도록 하고,첫째 너는 원래 계획대로 부대를 이끌고 내 려가라."

"아버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우선 황제가 없는 틈을 타서 황도로 가 봐야겠다. 아무래도 황제 반대파 를 규합해야 할 것 같으니."

그렇게 큰 틀을 우선 잡고 있던 공작의 응접실 밖에서 급하게 문

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누구도 들이지 말 라고 했잖은가!"

거칠게 소리치는 공작의 말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문밖에서 들려온 레인저 의 대답은 공작의 명령을 어기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급보입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돼,아직 눈도 안 내렸 는데 벌써 웨이브가?"

놀라 중얼거리는 막내의 말처럼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응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밖으 로 서둘러 뛰쳐나갔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이상, 루테리아 일족에게는 다른 모든 일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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