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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75화 (75/222)

75 화

해가 지기 전.

공작의 첫째 아들은 부대원들을 데리고 성을 나섰다.

공작과 막내아들,레이첼 공녀는 레인저들과 용병들과 함께 성벽에

올라 몬스터들을 막을 준비를 했다.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생업을 중지하고 그들을 도왔다.

제시카와 루이도 용병들과 만나 장벽 위에서 몬스터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제이크는 앰버와 함께 고 급 주택가에 있는 그녀의 저택으 로 향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 지만,마법사가 하는 일이라 그려 려니 하고 넘어가 버렸다.

"역시 마법사는 인식이 이상하게

박혀 있군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나 가며 제이크가 작게 한숨을 내쉬 자,앰버가 힐끗 그를 돌아보았다.

"남 이야기하듯 할 게 아닌 듯한 데요,마. 법. 사. 님?"

"하,하하. 아직 주변에서 마법사 취급을 잘 안 해 줘서요. 루이만 저를 마법사로 생각해 주지,제시카는 전하고 똑같이 대하더라고요."

더구나 다른 사람들은 얼마 전까 지 제이크를 평범한 용병으로 알 고 있었다.

[그래도,주인님 집에 있는 시녀 장은 마법사인 걸 알고 있잖아요.]

파티마의 말에 한 달 전 마법으 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을 때가 생 각나,제이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구사일생으로 공녀와 던전을 빠져나온 뒤에 제이크는 마법을 사용해서 시녀장에게 연락 을 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고,죽었 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으니 걱정하 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가 자신의 던전과 연결된

마나를 활성화해서 시녀장 힐다 앞에 영상을 띄어 놓았을 때,그 는 힐다가 놀라 기절하지만 않기 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힐다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영상의 제이크와 대화를 나누었다.

공녀와 제이크가 죽었다는 이야 기 속에서도 그녀는 저택을 잘 관 리하고 있었고,제이크가 비밀을 지켜 달라는 이야기에도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상보다 훌륭한 일 처리와 대응 에 제이크는 무척이나 만족했다.

그 보답으로 그녀에게 줄 선물을 몇 가지 정해 놓기도 했다.

"흠,이번에도 말하다 말고 딴생 각하는 것 같은데 에고 아이템하 고 말하는 중인 건가요?"

"아,예. 파티마가 조금 활발한 성격이라서요."

"아쉽네요. 저도 그녀와 이야기 를 해 보고 싶었는데."

마법사답게, 제이크의 완드가 에 고 아이템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앰 버는 파티마와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공녀의 에고 아이템과는 다르게

마법을 쓸 수 있는 에고 아이템이 라,마법사의 학구열이 불타오른 것이다.

하지만,제이크는 위험하다는 이 유를 들어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때 파티마가 제이크에게 투덜 거렸다.

[그냥 허락하시지 그랬어요. 그 러면 제대로 된 마법이란 것이 무 엇인지 마법사 흉내 내는 마법 기 술자에게 제대로 알려 줄 텐데요.]

역시 위험했다.

앰버에게 말한 마나 충돌의 위험 이 아니라,파티마의 독설에 의한 정신적인 충격이 문제였다.

제이크는 앰버의 말에 그저 난처 하다는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두 사람은 작지 않은 이층집에 도착했다.

몇 개월 전에 한 번 와 봤었던 앰버의 집이었다.

집을 지키던 사용인들의 격한 환 영을 받은 앰버는 곧 그들을 물리 고,제이크와 함께 바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문은 몇 겹의 마법진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앰버는 자신의 스태프를 들고 주 문을 말하며 마법을 하나하나 풀 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파티마가 제이크 에게 속삭였다.

[정말,마법 기술자들은 어쩔 수 없네요. 방어 마법진 구조가 하나 같이 똑같네.]

파티마는 마법진을 만드는 것 자 체는 불가능했지만,눈앞에 보이 는 마법진이 어떤지 판단하는 데 는 탁월했다.

제이크도 파티마의 말에 동의하

는 바였다.

물론 나름 다름 사람들이 풀지 못하도록 복잡하게 꼬아 놓고,마 법사가 가진 고유한 서클과 반응 하도록 만들어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 기술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마법사인 제이크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제이크는 앰버를 보며 자신이라 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해 봤다.

"한 10여분 정도 걸릴까.'

대마도사 정도가 되는 마법사가 우격다짐으로 힘으로 밀어붙여 만 든 마법이 아니라면,이 마법진이

아니라 다른 마법진이라도 그 정 도 시간이면 풀릴 게 분명했다.

'황궁급만 아니면 귀족들 저택을 털고 다니는 도둑이 될 수도 있겠 는데?'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던 제이크 는 앰버가 마법을 다 풀자,그녀 의 뒤를 따라 지하실 안으로 들어 갔다.

예상대로 지하실은 앰버의 실험 실이었다.

한쪽에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 장과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책들.

그리고 여러 가지 마법진을 새기

기 위한 실험 도구와 마법 실험을 위한 여러 가지 물건들.

미래에 봤었던 마법사들의 실험 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험실이 이 지하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마법사의 실험실이군요."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 는 제이크의 모습에 앰버가 고개 를 갸웃거렸다.

"제이크도 마법사가 되었으니 실 험실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집도 있잖아요."

앰버의 말에 제이크가 난감한 표 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로로 만들어진 통로에,곳곳에 숨어 있는 함정,보물 창고에,마 법진이 가득 펼쳐진 핵이 있는 던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이크의 공 방은 이 실험실과 너무 달랐다.

-감히 이런 작업실을 마법사의 공방과 비교를 하다니!

제이크는 파티마의 분노 어린 외 침을 흘려들었다.

"그것보다 왜 부르신 거죠?"

"아,잠깐 기다려 봐요."

앰버는 밖에서 쓰지 않던 안경을 코에 걸치더니 한 곳에 쌓여 있는

물건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그 탓에 먼지가 가득 일어나,제이크가 마법으로 가라앉혀야만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난장판이네. 귀족이라서 일까?'

하기야 항상 사용인이 집안일을 해 줬을 테니 정리정돈을 잘할 리 가 없었다.

소위 물 한 번도 안 묻혀 봤을 귀족이었을 테니,다른 사람이 들 어오지 못하게 한 실험실이 깨끗 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 있었네."

한참을 뒤적거리던 앰버가 깊숙 한 곳에서 메달 하나를 찾아냈다.

마나가 흐르는 게 한눈에 보이는 것이,마법 아이템이 분명했다.

"저희 학파의 인증 메달이에요."

앰버는 꺼낸 메달의 먼지를 털어 낸 뒤에 근처의 탁자에 올려놓고, 메달에 대고 자신의 마나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이크에게 메달에 대 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꽤 오래전에 마법사들이 모여 서로 간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메달이에요. 이 물건 덕분에 가짜 마법사들을 걸러 낼 수 있어 꽤 유용한 물건이죠."

제이크도 잘 아는 메달이었다.

각 마법 학파가 인증한 메달에 각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등록 해서 들고 다니는 물건으로,이 메달 때문에 제이크는 마법사들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그 메달은 마법사 자신 의 마나만 인식하는 것 아닌가요?"

"아,알고 있었군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건데……

신기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 보던 그녀는 다시 메달에 마나를 주입하며 그의 말에 대답을 해 주 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래야 하는데, 예외가 있어요."

"예외요?"

"마법사가 제자를 키울 때 항상 자신의 학파의 마탑에만 붙어 있 는 것이 아니거든요. 산속 깊은 데 박혀 있을 때도 있고, 사막이 나,무인도에,그리고 버려진 던전 에서 지내는 마법사도 있어요."

마나를 모두 주입한 앰버가 메달

을 들고 마법을 걸어 보았다.

"프루비 잇시스던트!"

제이크는 그녀가 주문을 외자, 그녀의 손에 들린 메달과 품속에 있던 메달이 서로 반응하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앰버도 그를 확인하고는 제이크 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런 외딴 곳에 지내는 마법사 가 길러 낸 마법사는 마탑에 들러 확인을 받을 때까지 신분을 증명 할 방법이 없어요. 가끔 몰락한 학파는 마탑도 소실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앰버가 메달을 제이크 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경우에는 임시로 스승이 자신의 마나를 사용해서 메달을 인증해요. 스승이 신분을 보장하 는 거죠. 거기다 분실하거나 착용 자가 죽게 되면 마나를 건 사람이 알게 되니까 나름 사랑하는 마법 사 간에는 서약용으로 쓰기도 해요."

담담한 앰버의 말에 제이크가 오 히려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자,다 되었어요. 이걸로 제이크 는 제가 보증하는 우리 학파의 마

법사가 되었어요. 다행히 우리 학 파가 거의 일인 전승에 가까워서 동문을 만날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은 고대 마법사로 지내기가 힘들 테니,우선 마음에 안 들더 라도 제 사제 정도로 만족해 주세요."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었다.

이 메달은 제이크가 가장 원하던 물건이었다.

더구나 앰버로서는 큰 위험을 감 수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거짓말로 메달을 만들 어 주고 신분을 증명해 준 것이니

말이다.

만일 다른 마법사들이 진실을 알 게 되면 마법사로서의 앰버의 지 위는 물론,다른 마법사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공녀를 구해 준 고마움과 자신에 게 비밀을 알려 준 것에 대한 보 답으로,그녀는 최선을 다한 선물 을 한 것이다.

"잘 쓰겠습니다."

제이크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빨리 대장벽으로 돌아가 죠. 가는 길에 저희 학파에 대해

설명해 줄게요."

앰버는 지하실을 나와 대장벽으 로 향하는 동안,제이크에게 자신 의 학파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 주었다.

시조와 스승,그리고 배우는 마 법과 시약들까지.

앰버는 제이크를 이름뿐인 동문 이 아니라 진짜 사제처럼 대하려 는 작정 같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설명에,제이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가 지금 하는 이야기들 은 모두 완드를 발견했던 던전 속

마법 세상의 1년 동안,이미 들었 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의 기억을 그녀도 하 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녀에게 메달을 받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 이다.

-연구소의 마법진은 1인용이라 불가능해요.

파티마의 뻔한 대답에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앰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들었던 내용이었지만,성실 하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

척이나 보기에 좋았다.

* * *

다행히 두 사람은 해가 넘어가기 전에 대장벽으로 돌아왔다.

붉은 석양을 뒤로한 채로 이미 레인저들과 용병들은 준비를 마치 고 있었다.

대수림 쪽에서 보이던 신호탄들 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용병들과 레인저들은 모두 기본 적으로 쇠뇌를 들고 있었고,그들 의 뒤로는 일 년 동안 준비한 화

살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거기다 장벽위에는 거대한 발리 스타들이 포장을 벗고 대수림을 향해 시위를 걸고 있었고,성벽 뒤로는 돌을 가득 실은 투석기들 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돌아오자,공작과 함 께 멀찍이 서 있던 공녀는 앰버와 제이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옆에 있던 제시카는 궁금 한 표정으로 제이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제시카의 물음에 제이크가 앰버 를 돌아보자,앰버는 고개를 끄덕

였다.

그걸 보고,제이크가 제시카에게 작게 속삭였다.

"오늘부터 전 앰버 님이 비밀리 에 키운 마법사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리둥절한 제시카와 루이에게 제이크가 조금 전의 일을 설명하 는 사이,앰버는 공녀에게로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가 졌다.

"불을 피워!"

어둠이 내리자 성벽 위로 횃불이 가득 올라왔고,앰버와 몇 명의

마법사가 빛나는 구를 하늘로 띄 워 올렸다.

"마나여,세상에 빛을 뿌려라!" 제이크도 밝게 빛나는 광원을 하 늘로 띄워 올렸다.

갑작스러운 제이크의 마법에 주 변의 용병들이 모두 눈이 동그랗 게 변했다.

"마법사였어?"

"그럼 그렇지, 마나 사용자들 사 이에 일반 용병이 있을 리가."

"근데 왜 여태 비밀로 했었다 냐."

"마법사 족속들 생각을 알게 뭐

야."

의외로 제이크의 마법은 용병들 사이에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제이크의 광원이 향한 방 향이 다른 마법사들의 광원과는 달랐다.

성벽 위에 떠오른 다른 광원과 달리,제이크의 광원은 대수림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이윽고,제이크가 펼친 광원 아 래로 대수림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수많은 검은 그 림자들이 벌판으로 쏟아져 나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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