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화
"주인님이 오셨으면 인사드려야 지."
"하지만,주인님이 서재로 가서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앤은 의아해하는 힐다의 팔을 잡
고 서재로 이끌었다.
두 사람이 막 서재 앞 복도로 들 어서는 순간.
크아아아아아!
멀리서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천둥소리 같은,하지만 그보 다 더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은 소 리였다.
"에구머니나!"
"꺄악!"
그 소리에 힐다가 깜짝 놀랐고, 앤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게 무슨 소리죠?"
"몬스터 소리 같은데. 설마 여기
까지 몬스터가 흘러들어온 건가?" 물론 힐다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가 알기에는 몬스터 말고는 이런 소리를 내는 짐승은 없었다.
그런데,두 여성이 소리에 놀라 멈춰 선 사이,그녀들 옆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지나갔다.
"엑! 나나잖아?"
주저앉아 있던 앤은 옆으로 지나 가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나나는 그동안 고양이와 정이 들 어 버린 앤이 고양이에게 붙여 준
이름이었다.
고양이는 그녀의 외침을 무시하 고,두 사람보다 먼저 반쯤 열린 서재로 쑥 들어가 버렸다.
"소리에 놀라 들어왔나 보다. 우 리도 빨리 가자. 주인님 서재를 고양이가 어지럽히면 안 돼."
이번에는 힐다가 주저앉은 앤을 이끌고 서재로 향했다.
그녀에게는 멀리서 들려온 몬스 터의 괴성보다 고양이가 서재를 어지럽히는 게 더 걱정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재로 들어가 보니,고양이가 뭔가 두려운 표정
으로 서재 중앙에 웅크리고 있었다.
"앗,거기 그대로 있어!" 고양이를 발견한 앤이 고양이를 향해 달려갔다.
힐다도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뭘 보고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고양이를 안아 올린 앤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양이가 보고 있는 창 을 바라보았다.
"어,엄마……
그리고 앤의 얼굴도 바로 창백하 게 질렸다.
놀란 힐다가 앤에게 달려가 똑같 이 창밖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창밖에서는 작은 산 크기의 거대 한 괴물이 저택으로 다가오는 중 이었다.
신전의 기둥 같은 네 개의 다리. 그리고 징그럽게 생긴 물고기 모 양의 몸.
그리고 그 몸 위로는 수많은 촉 수들이 꿈틀대는,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괴물이었다.
힐다는 고개를 흔들어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도 루테리아 영지민이었다.
무척이나 무섭고 징그러운 몬스 터였지만,몬스터를 보고서 기절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앤을 품에 안고 다시금 창밖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제이크가 저택 마당 중앙에 서서 다가오는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주인의 손에는 빛을 뿌리는 작은 완드가 들려 있 었다.
더구나 그가 서 있는 저택의 앞 마당에는 신비로운 마법진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그런 신비로운 광경도 창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는 괴물 의 모습을 가릴 수는 없었다.
힐다는 다시금 앤과 고양이를 품 에 꼭 안은 채 최대한 몸을 웅크 렸다.
그런데 그 순간!
저택 안에 울리는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택 내 모든 인원 서재 진입 완료. 던전으로 긴급 수송을 시작 합니다.]
놀란 모녀가 당황하여 시선을 이 리저리 두고 있을 때였다.
구구구궁.
서재 바닥이 아래로 가라앉기 시 작했다.
"엄마!"
"괜찮을 거야! 주인님 마법일 테 니까 가만히 있어!"
모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를 꼭 껴안았다.
그 사이에 낀 고양이도 앤의 품 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채로 땅속 깊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이 완전히 아래로 꺼지고 잠
시 후.
힐다와 앤이 사라진 채로 바닥이 올라왔다.
그리고 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까.
서재는 아무것도 없는,텅 빈 방 이 되었다.
[전원 대피 완료했습니다.]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저택에 파티마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저 택의 마당에 서 있던 제이크는 만 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이제 움직여도 되겠지?" 저택의 정문 앞에는 거대한 아귀 형 몬스터,초롱아귀가 벌써 도착 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놈은 저택의 정 문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저택 정문 위로 처음 보는 반투 명한 벽이 담벽을 따라 저택을 둘 러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롱아귀의 키보다 훨씬 높이 펼 쳐져 있는 반투명한 벽은 바로 제이크가 만들어 놓은 방어막이었다.
그것은 제이크가 자랑하는 방어
마법들 중에 가장 강력한 마법으 로,던전과 저택을 공격하는 적을 막아 내기 위한 것이었다.
초롱아귀는 머리를 들이박아 방 어막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쿵! 쿠웅!
쩌억!
역시 대장벽을 무너뜨린 돌진다 웠다.
초롱아귀가 머리를 들이받을 때 마다 방어막이 반쯤 깨져 나갔다.
다행히도 방어막은 깨지는 즉시 복구되었지만,그걸 지켜보는 제이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방어 마법진의 내구도 저하. 앞 으로 4회 이상은 막아 낼 수 없 습니다. 던전 핵의 마나 소모량이 극심합니다. 방어막을 거둘 것을 추천합니다.-
"어차피 대피가 끝나면 거둘 거 였어!"
제이크가 환하게 빛나던 완드를 치우자 바닥의 마법진과 방어막이 모두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막던 방어막 이 사라지자,초롱아귀가 움찍,움
직임을 멈췄다.
그사이,제이크는 다시 던전 핵 에서 마나를 끌어모으며 몬스트를 향해 투덜거렸다.
"아니,왜 나를 쫓아오는 건더가 우리도 그때 살기 위해 발악했던 것뿐이라고!"
-그래도 그 덕분에 주인님의 던 전까지 유인할 수 있었는데요.
파티마가 바로 딴죽을 걸었지만, 제이크는 파티마의 말에 뭐라 대 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하기는커녕 그는 다음 마법을 쓰기 위해 끌어모으던 마나마저
역류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제이크의 머릿 속에 파티마의 음성이 아닌 다른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내 것을 돌려줘...... $$^&^$ 당장!
'설마!'
-던전 핵을 통해서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있어요.
이어지는 파티마의 설명.
"설마,앞에 있는 몬스터가 말하 는 건가?"
-정보의 시작이 몬스터에게서 나오고 있으니 주인님의 생각이
정답인 듯해요. 그리고 몬스터의 말이 아니라 생각 일부가 흘러들 어 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설마 저 녀석의 마석 일부로 던 전 핵을 만든 것 때문이야?"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그게 진실에 가까울 것 같아요. 흠,더구나 자동 번역되고 있는 말을 들어 보니 그 빼앗긴 마석 때문에 주인님을 쫓고 있었던 모 양이네요.-
와중에도 초롱아귀의 생각이 끊 임없이 제이크의 머릿속으로 들어 왔다.
-……인간을 죽여야 돼,아니, 내 물건을 돌려받아야…… 아……
덕분에 제이크를 쫓는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이어지는 초롱아귀 의 음성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왜 그러는 것인지 의아하기는 했 지만,지금은 몬스터의 생각을 분 석할 시간이 아니었다.
멈춰 섰던 초롱아귀가 머리를 흔 들고는 다시 달려들려 했기 때문 이었다.
크아아아앙!
그리고 다행히 제이크도 필요한 마나를 던전 핵에서 모두 끌어모 은 뒤였다.
"물이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듯, 전하도 흘러간다. 마나는 전기가 되고 땅은 전지가 된다. 이번에는 초대형이다! 가라,천만 볼트!"
파지지지지직!
제이크의 주문이 끝나자,이번에 는 담장과 저택의 벽에서 마법진 의 떠오르면서 엄청난 전류가 몬 스터를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크아아아앙!
전류는 초롱아귀의 다리를 지지
며 위로 치솟아 올랐고,피부를 불태우고 등에 난 촉수들을 감전 시켰다.
초롱아귀는 제대로 직격당한 전 격에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초롱 아귀 말고도 전격에 당한 두 사람이 있었다.
"까악!"
"으윽!"
바로 초롱 아귀의 등에 매달려 있던 레이첼 공녀와 제시카였다.
"아차!"
그제야 제이크도 두 여성이 아직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을 떠올렸다.
공녀와 제시카는 촉수와 싸우다 가 이곳까지 실려 온 것이다.
초롱아귀가 제이크를 쫓느라 정 신없이 달리는 바람에 촉수들은 공녀와 제시카를 제대로 공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 여성도 마찬가 지였다.
촉수와 싸우며 빠른 속도로 달리 는 거대한 몬스터 위에서 버텨 내 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빼곡히 등을 덮은 촉수를 벗어날 수도 없었기에,두 여성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곳까지 실려 온 것이었다.
다행히 전격 대부분은 초롱아귀 에 집중되었고,촉수들마저 마비 된 덕분에 두 여성은 간신히 촉수 의 밭을 빠져나와 초롱아귀의 등 밖으로 뛰어내릴 수 있었다.
"제이크! 너!"
바닥에 내려선 제시카가 제이크 를 보며 화를 냈다.
그 옆에 서 있던 공녀도 말을 하 지 않을 뿐이지,눈매가 제법 날 카롭게 올라가 있었다.
"정말 미안해요! 제대로 된 사과
는 나중에 많이 할게요! 일단은 먼저 다리를 공격해서 돌진을 막 아 줘요!"
다급한 제이크의 말에,두 여성 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초롱 아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나중에 장난 아니게 화낼 것 같은데요. 설마,혼날까 봐 싸움에 신경을 돌린 건가요?
몬스터의 양 앞발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두 여성을 보며 파티마가 속삭였다.
솔직히 제이크는 파티마의 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전격 마법 탓에 공녀와 제시카의 머리카락이 마치 파마한 것처럼 타고,꼬불거리고 있었다.
제시카와 공녀가 알아차린다면 솔직히 혼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 을지도 몰랐다.
'파마를 피는 마법,아니,스트레 이트파마를 하는 마법이 있나?'
잠시 엉뚱한 마법을 떠올리던 제이크는 바로 머리를 흔들었다.
몬스터의 마비가 풀리지 않았을 때가 기회였다.
"자동 방어로 돌려."
[던전이 자동 방어 상태로 변경 됩니다. 대응 마법진들 가동됨니다.]
전격을 쏘아 내던 마법진들이 사 라지고,저택과 마당과 담벽 곳곳 에 다른 마법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제이크는 등에 멘 배낭에 서 쇠뇌를 꺼내 들었다.
"강화 최대로!"
그는 마법 무기로 개조된 쇠뇌의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던전의 마나를 뽑아 쓰고 있는 지금,제이크의 마나는 무한에 가
까웠다.
그로 인해 제이크의 정신에 무리 가 가기 시작했지만,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
쇠뇌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자, 제이크는 배낭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쇠뇌에 장전했다.
제이크가 이번에 꺼낸 화살은 기 존의 화살과 조금 달랐다.
화살의 끝에 마석이 박혀 있는 이 화살도 제이크가 만든 일종의 마법 아이템이었다.
물론 마나 사용자의 몸을 떠난 마법 아이템의 마법을 유지시키는
것은 아직 제이크에게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한 가지,가능 한 마법이 있었다.
"봉인을 깨고 모든 구속을 벗어 던져라. 너를 가둬 놓은 모든 것 을 파괴해라!"
바로 마나를 폭주시켜 터지게 하 는 마법!
과거 수습 마법사 쥬더스가 쓴 것이었는데,제이크는 그 마법을 마석에게 쓴 것이었다.
제이크가 주입한 마나와 그의 주 문에 의해 화살의 마석이 붉게 달
아오르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쇠뇌를 초롱아귀를 향 해 치켜들었다.
쇠뇌는 초롱아귀의 얼굴을 지나 더 위로 향했다.
조준선에 걸린 목표는 바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초롱 아귀의 촉수.
제이크는 호흡을 멈추고 조준선 과 자신을 일치시켰다.
세상이 온통 정지한 것 같은 순 간.
제이크가 방아쇠를 당겼다.
쿵!
최대로 강화된 쇠뇌가 화살을 앞 으로 쏘아 보냈다.
대물 저격총을 쓴 것 같은 소리 가 들림과 동시에 제이크의 옷이 후폭풍에 펄럭거렸다.
그리고.
시한폭탄이 된 마석을 박아 넣은 화살은 초롱아귀의 촉수를 향해 공기를 뚫고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