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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86화 (86/222)

86 화

제국과의 경계에서 수만 걸음 남 쪽으로 내려온 레티나아 왕국의 평야 지대.

추수가 끝난 넓은 평야에는 병사 들이 가득했다.

한쪽은 대륙의 반을 지배하고 있 는 제국군이었고,다른 쪽은 제국 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레타니아 왕국군이었다.

한참 동안 국지전을 벌이던 제국 군은 황제의 친정 이후 수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레타니아 왕국을 침공했다.

레타니아 왕국도 전군을 동원해 서 제국군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제국군의 공격은 일반적인 무력시위 정도가 아니었다.

제국군은 며칠 만에 국경을 돌파

했다.

불과 한 주도 채 되지 않아 왕국 의 북부 지역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때문에 위협을 느낀 왕국이 자칫 수도까지 점령될까 봐 급히 병력 을 모아 평야에서 결전을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왕국의 현실은 비참했다. 병력에 숫자도,병력의 질도 왕 국군은 제국군에 미치지 못했다.

공격은 먼저 제국에서 시작되었다.

거대한 제국군의 물결이 앞으로

밀려 나오기 시작했고,이어서 제 국군이 자랑하는 황실 마법사단의 마법이 하늘로 쏘아졌다.

"화염구가 온다!"

제국군 진영에서 솟아오른 불덩 어리들이 레타니아 왕국군 진영에 떨어졌다.

몇 개의 불덩어리들은 반투명한 방어막에 막혀 공중에서 터져 나 갔지만,나머지 불덩어리들은 병 사들이 모인 곳에 떨어졌다.

불덩어리에 휩싸인 병사들은 비 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다른 병사들은 그들을 도

울 시간이 없었다.

"진격하라!"

말을 탄 제국군 기단이 앞으로 내달려,불덩어리를 맞아 무너진 왕국군 진영으로 돌입했기 때문이 었다.

왕국군은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 지만,힘으로 짓눌러 버리는 제국 의 공격에 또다시 패배하여 급히 후퇴하고 말았다.

쾅!

오랜 세월 내려온 왕실의 예술품 인 회의실 탁자가 왕의 주먹질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분노한 레타니아의 왕이 나 그 앞에 있는 신하들이나 그것

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패전이라니! 왕국이 자랑하 는 기사단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 고,장군들은 뭣들 하느난 말인 가!"

왕은 분노에 차 소리쳤지만,그 나 신하들이나 모두 공허한 말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군대나 기사단의 숫자,마법사와 병력의 질 모두가 상대가 되지 않 았다.

이들은 제국이 전처럼 천천히 무 력시위를 하며 움직이리라 생각하 고는 안심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전격적으로 밀고 내려 올 줄은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왕도를 옮기심이 어떨 지……

거기다 조심스럽게 올린 조언은 왕의 분노를 부채질할 뿐이었다.

"저들이 국경을 넘은 지 2주도

되지 않았어! 그런데 천도를 하라 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왕의 분노가 산을 찔렀지만,왕 국군을 격파한 제국의 선봉대가 이미 수도의 지척에 도착해 있었다.

그나마 고대 숲을 마지막으로 방 어선을 펼치고 있지만,오래 버티 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한참 분노를 내뿜던 왕은 겨우 안정을 되찾아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거칠게 얼굴을 문지르더니 옆에 있는 상업 장관에게 입을 열

었다.

"다른 나라들은 아직 연락이 없 나? 필요한 정보는 전부 제공했는 데 설마 먹기만 하고 내빼지는 않 겠지?"

"예상보다 제국이 너무 빨리 움 직였을 뿐입니다. 다른 왕국들에 게서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은 이 미 와 있습니다."

"결국 시간 싸움이라는 건가? 왕 궁을 비우고 물러나면 왕국을 원 래대로 회복하기 쉽지 않은데."

제국이 대륙의 반을 점령한 뒤 수백 년 동안,남부 왕국들은 서

로 힘을 합쳐서 제국의 남진을 저 지 했었다.

하지만 왕국들끼리 힘을 합치는 중에서도 서로 간에 반목이 있어 왔기에,처음 제국의 침입을 받는 왕국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아,별수 없지. 이대로 앉아서 망할 수는 없으니 그대들 말대로 왕궁을 옮기도……

"전하!"

왕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회의 실이 부서지듯 열리며 기사가 뛰 어들어 왔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왕은 인상을 찡그렸지만,이어지는 기사의 말 에 얼굴이 밝아졌다.

"브리티 왕국에서 지원군이 도착 했습니다!"

갑작스런 기사의 난입에 놀라 도 망치려고 했던 귀족들도 기사의 말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리고 기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 게,열린 문을 통해 판금 갑옷으 로 무장한 기사가 들어왔다.

전통적인 브리티 왕국의 갑옷에 마법 아이템이 분명한 중검을 들 고 있는 중년의 기사였다.

기사는 왕을 보고 가슴에 손을 올렸다.

"브리티 왕국 이글 기사단의 단 장,캐러딕이 인사드립니다."

상당히 무례한 인사였지만,도움 이 절실했던 레타니아의 왕과 귀 족들은 그런 무례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드디어 왔군. 어서 오게나! 얼 마나 지원이 온 것인가?"

왕에게는 지원 병력이 얼마나 되 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이글 기사단 전원과 왕실 마법 사단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그리

고 일반 병력 일만 명과 용병 이 천 명이 지금 수도에서 이틀 거리 에 도착해 있습니다."

캐러딕의 말에 왕이 안도의 한숨 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시간에 맞을 듯했다.

다만,캐러딕이 데려온 인원만으 로는 제국군에 대항하기에 그 수 가 부족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왜 연락이 없지?"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 왕의 말 에 기사단장이 계속 대답했다.

"페카 폴라스의 병력들도 곧 도

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히베루 니아는 제국의 동쪽 영지들을 직 접 치기로 했습니다. 거리가 멀어 지원을 오기보다는 제국의 눈을 돌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기사단장의 말에 왕은 안심을 하 면서도 쓰린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지금 저 브리티 왕국의 기사단장 이 말하는 내용은 레타니아 귀족 중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왕국들이 레타니아를 배제

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진행한 것이었다.

남부 왕국의 중심 국가라는 자부 심은 제국의 침략 한 번에 모두 쓸려 나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뼈 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지금은 지푸라기도 잡아 야 할 때였다.

레타니아의 왕실과 수도 시민들 은 다른 왕국의 지원군들을 대대 적으로 환영했다.

그리고 레타니와 왕국의 남은 패 잔병들과 지원군들은 고대 숲을 방어 거점으로 삼아,제국군과 제

대로 한판 붙기 위해 준비하기 시 작했다.

같은 시각.

제이크 일행은 수백 명의 용병과 징집병과 함께 버려진 영주성 앞 에 도착해 있었다.

이 영주성은 루테리아 영지의 남 쪽에 있는 버려진 영지 중앙에 자 리 잡고 있었다.

버려진 영지는 원래 루테리아 영 지처럼 대수림의 몬스터를 막아

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결국 몬스터 웨이브를 버 티지 못하고,멸망하고 말았다.

영주성 주변은 이미 겨울이 깊어 져서 그런지 눈으로 가득했다.

마법사들 덕분에 얼어 죽는 일은 없었지만,일반 징집병들은 용병 처럼 준비를 하지 못해 추위에 벌 벌 떨고 있었다.

다행히 이곳까지 오는 동안 아직 사상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빨리 쉴 곳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징집병들은 추위에 동사

할지도 몰랐다.

히베루니아 왕국이 북으로 진격 했다는 첩보에,루테리아 공작은 레이첼 공녀와 막내아들에게 각각 왕국의 군대를 최대한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물론 공녀에게는 원하지 않는다 면 남아 있어도 된다 했지만,정 말 그렇게 한다면 후계자 경쟁에 서 영원히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공녀는 고민 끝에 참여하 기로 결정했다.

문제는,데리고 갈 병력이었다.

이미 첫째 아들이 대다수의 레인 저와 징집병을 데리고 출전한 상 황이었다.

그나마 막내아들은 자신의 사병 과 레인저 부대를 가지고 있었지 만,공녀에게는 마법사 한 명과 친한 용병 파티 하나가 있을 뿐이 었다.

공작은 그런 공녀에게 영지의 자 금을 풀어 최대한 용병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공녀의 요청에 큰 용병 대 둘과 자잘한 용병 파티들만이 소집에 응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에 공녀는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영지민과 용병들이 사랑 하는 공녀였지만,그녀를 믿고 전 쟁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 기에,용병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 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공녀는 그나마 부족한 인원은 영 지민들을 징집해서 보보충했다.

하지만 이미 쓸 만한 인원은 두 형제가 데려가 버려,구색 맞추기 에 불과했다.

"그런데 공녀님의 표정은 나쁘지 않군. 공녀님 옆에 있는 마법사님

과 요즘 뜨고 있는 여왕벌 파티 때문인가?"

공녀의 부대에 참여한 용병대 중 하나인 회색말굽 용병대의 용병대 장은,공녀와 그녀의 옆에 함께 선 사람들을 보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그래도 저들 실력은 나름 괜찮 던데요? 마법사인 앰버 님 실력이 야 잘 알고 있었고,제시카가 있 는 파티도 각각 기사급 정도는 되 어 보이고요."

대장의 말에 옆에 있던 고참 용 병이 슬쩍 제시카 파티를 칭찬했

다.

"네가 그런다고 파릇파릇한 영계 를 양쪽에 낀 여자가 신경이라도 쓸 거라고 생각해?"

대장은 늙은 홀아비 용병을 한심 하게 바라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그래도 말도 안 되게 실력 이 좋아졌다는 건 인정해야겠지."

이 버려진 성까지 오는 동안 사 상자가 없었던 것은,몬스터들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앞에서 몬스터 들을 처리한 제시카와 그녀의 파 티원들 덕분이었다.

그 부분은 그도 충분히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싸움은 몬스 터와의 싸움과는 또 다른 이야기 였다.

"몬스터와 잘 싸운다고 전쟁을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

공작의 압력 때문에 공녀를 따라 버려진 영지로 내려내려오기는 했 지만,용병들의 걱정은 이만저만 이 아니었다.

용병들 중에는 전쟁을 겪어 본 자들도 꽤 많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끼리의 전쟁이 어

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회색말굽 용병대 대장도 그런 전 쟁을 겪은 용병 중 하나였다.

"그래도 나름 조언을 받아들여서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으니 개죽음당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한데."

다행히 이곳까지 오면서 본 공녀 는 의외로 합리적인 지휘를 할 줄 알았다.

"어차피 요격전이니까요. 영지에 지원군이 올 때까지 진격을 늦추 기만 하면 되니까 운이 좋으면 무

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용병대의 고참 용병은 욕을 먹었 어도 계속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 고 있었다.

"뭐,이미 한 배를 탔으니 바보 짓만 안 한다면 뒤통수를 칠 필요 는 없겠지. 그보다 우선 빨리 성 에 짐을 풀어! 적군과 싸우기 전 에 모두 얼어 죽겠다!"

다행히 공녀는 사람들을 더 대기 시키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녀는 바로 성을 정리하라고 지 시를 내렸고,추위에 떨던 사람들 은 빠르게 성안으로 돌입했다.

캬앙!

성안 곳곳에는 마물들이 숨어 있 었다.

그러나 그 마물들의 수는 몇 되 지 않아,제대로 무장을 갖춘 수 백의 병력들에 의해 죽거나 도망 가고 말았다.

그렇게 공녀를 필두로 한 병력들 은 버려진 성을 곧바로 되찾았다.

용병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망가 진 창과 문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들이 성을 정리하는 동안,제이크는 성 앞 공터에 남아 있었다.

그는 긴 마법 지팡이를 바닥에 꽂은 채로 한참을 명상에 잠겨 있 었고,루이가 그의 옆에 서서 그 를 지켜 주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제이크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지 팡이를 거두어들였다.

"어떤가요?"

제이크의 표정에 이미 답이 나왔 지만,루이는 다시 한번 그에게 물어보았다.

"훌륭해. 이 정도 핫 스팟이면 전 던전보다 훨씬 괜찮은 던전이 될 거야."

"다행이네요. 그런데 던전을 만 들 시간이 있을까요?"

"응? 던전을 왜 만들어?"

"네?"

"이미 던전이 만들어져 있어. 이 성 밑에 꽤 거대한 몬스터가 타리 를 틀고 있지 뭐야."

"네?"

놀란 루이가 성을 돌아보는 순 간!

콰르르르-

성 전체가 울릴 정도로 진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놀라 모두 성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제이크는 환한 미 소를 지었다.

"자,집을 뺏으러 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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