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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92화 (92/222)

92 화

물러난 적들이 이를 갈고 있는 순간.

제이크도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 에 빠져 있었다.

지하 광장 중앙에 띄워 놓은 커

다란 마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 고,주변을 돌던 작은 마석들은 모두 땅에 떨어져 있었다.

[공녀에게 걸려 있던 환상 마법 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각 부대,성 뒤쪽 산으로 귀환 완료했습니다.]

[추격하던 적 부대 매몰 완료. 375명 매몰 확인되었습니다.]

[던전 관리용 마석,과열 중입니다. 마석 내부에 이상 현상이 발 견되고 있습니다.]

계속된 파티마의 보고에 제이크 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무리한 일이었나?"

-이틀 만에 마석의 마나를 사용 해서 강제로 던전을 구축했잖아요.

-그리고,던전을 구축한 바로 다 음 날에 방어 시설을 돌려 적과 싸웠으니,던전에 무리가 안 갈 리가 없죠.

파티마가 말하는 하나하나가 전 부 제이크의 가슴에 비수로 박혀 들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주인님은

마법사치고 너무 위험하게 행동하 세요.

이어지는 파티마의 말에,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크도 자기가 무리를 하고 있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아."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제 제이크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 이었다.

황제가 제국을 망하게 하는 기 억.

대륙의 인류가 괴물들에게 쓸려

나가는 기억.

막아 낼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는 괜찮았지만,힘이 생기고 가능 성이 보이자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황제가 예상보다 빨리 전쟁을 일으킨 것 때문에 더 급해진 모양 이야. 앞으로는 조심해야지."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컸지만, 제이크는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그것보다,문제는 이 마석인데." 던전 관리를 위해 띄워 놓은 아 귀 몬스터의 마석.

원래 푸른빛을 흘리는 투명한 보

석이 지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계속된 마나 주입과 사용으로 마 석이 과부하에 걸려 버린 것이다.

-내부가 급격하게 활성화된 상 황이네요. 우선 사용을 멈추고 기 다리면 다시 안정화될 것 같아요.

"하지만,상황을 보니 힘들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적 장군의 호전적인 성격이 문제였다.

물러났으면 좀 쉬고 재정비를 했 으면 좋으련만,그는 금세 다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과열되면 어떻게 되지? 설마 터지지는 않겠지?"

-던전 관리 마석이 터진다는 이 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과하게 마나를 유 입시켜 본 적도 없으니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제이크는 난감한 얼굴로 붉게 변 한 마석을 바라보았다.

마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 이 살아 있는 것처럼 출렁거렸다.

히베루니아 군의 두 번째 공격은 그들이 물러난 지 채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공격은 기세로 밀어닥치던 처음 공격과 달리,착실하게 성을 향해 전진했다.

기사단도 앞으로 나서지 않고 병 사들도 주위를 경계하면서 차분히 성벽으로 나아갔다.

천천히 움직이는 그들을 향해 성 에서 화염구가 날아오기도 했지 만,실드에 막혀 병사들에게 피해 를 주지 못했다.

"이럴 때 화살 세례라도 퍼부으

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자신이 펼친 화염구가 중간에 막 히는 것을 본 앰버가 아쉬운 표정 을 지었다.

앰버는 첫 번째 싸움에서 던전을 활용한 대단위 마법을 보게 되어 마법사로서는 무척이나 만족해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마법사 말고 도 공녀의 친구이자 부관이라는 다른 직책이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해. 거의 피해 없이 적 수백 명을 줄여 버 렸잖아."

공녀는 좀 전과 달리 무척이나 홀가분해 보였다.

이제는 더 이상 연극을 할 필요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성벽에 병사들이 없다는 것은 들키지 않을 것 같네요. 적 들이 다 성문으로 몰려가는데요?"

적들의 방향을 살피던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성벽에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들은 성벽 대신 성문을 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제이크와 일행이 바 라던 바였다.

"신기하네요. 적들이 제이크 생 각대로 움직이는 게 말이에요. 혹 시 제이크는 서기관의 삶을 산 게 아니라 장군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하지만,앰버의 말에 제시카와 공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 책벌레가 그럴 리가."

"확실히 문관 출신이었어요." 서재에 가득한 책을 본 제시카 도,한 달 동안 같이 보냈던 공녀 도 제이크가 서기관이 아닌 다른 출신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흠,그러고 보니 공구 쪽도 잘 다루긴 하던데. 대장장이로는 소 질이 있더라고요."

"하긴,싸움 빼고는 꽤 다재다능 한 편이었죠."

제이크에 대해 품평을 한 뒤,세 여성은 성벽을 뛰어내렸다.

외성 벽은 상당히 높았지만,마 나 사용자와 마법사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는 높이는 아니었다.

바닥에 내려선 세 여성은 정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우리 세 사람만 있으면 함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정문 앞의 황량한 공터를 앰버가 걱정스럽게 둘러보았다.

"사람이 더 있게 보이면 되겠 죠."

그때,여성들의 뒤에서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또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타 난 것이다.

쿠구구궁-

동시에 바닥의 흙이 차례로 위로 솟구치며 사람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형상을 한 흙 인형들이 수백 개가 만들어지고,그 위를

마나가 한 번 더 훑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홁 인형이 용병 차림을 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제이크는 사람으로 변한 흙 인형 하나를 두들겨 봤다.

하지만 인형은 전혀 반응을 보이 지 않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제이크는 고개 를 끄덕였다.

"환상을 씌운 거라 자세를 바꾸 는 것은 불가능해요. 자세히 보면 들킬 수 있으니 세 사람이 시선을 끌어 주시는 게 중요해요."

담담한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와

공녀는 감탄할 뿐이었지만,마법 사인 앰버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이런 마법을 본 적이 없었다.

"고대 마법은 이런 것도 가능하 군요."

-마도 제국 시절에도 이런 식으 로 마법을 활용하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었지만요.

제이크의 머릿속에서 앰버의 말 에 대답하는 파티마의 음성이 들 려왔다.

"그보다 공녀님은 뒤로 물러나십 시오. 앞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파티마의 음성을 무시하고,제이크는 정문 앞에 서 있는 공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공녀는 뒤로 물러나는 대 신 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저와 함께 다닐 동안에 제가 뒤 로 물러난 적이 있나요?"

똑바로 바라보는 공녀의 눈을 본 제이크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죽지 않아야 정치적으로 유리했지만,그런 이유를 댔다가 는 바로 연을 끊을 판이었다.

귀족답지 않은,아니,어떤 면에

서는 제대로 귀족다운 그녀의 모 습은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제이크도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대신 최대한 조심 해 주세요."

"네,걱정하지 마세요."

전혀 통하지 않을 말이 분명했지 만,어쨌든 주의를 시킨 뒤에 제이크는 다른 두 여성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녀들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집쟁이 아가씨들 같으니라고.' 제이크는 돌연 자신이 말괄량이

아가씨들을 돌보는 늙은 집사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되면,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바꿔야 할 듯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해 볼까?" 제이크는 지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성문 안쪽 공터에 마법진 이 나타나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파멸의 힘을 간직해라. 너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해라

제이크의 말이 이어지며 바닥은 물론,성벽과 내성의 벽에까지 마

법진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밖에 있는 적들은 볼 수가 없었 지만,제이크 옆에 있던 세 여성 은 빛나는 마법진에 시선을 빼앗 기고 말았다.

-마법진을 이렇게 틀어 버리면 어떻게 해요!

-뭐,다들 힘을 내는데 나도 한 손 거들어야지.

-그렇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바꾸면 위험하다고요. 마석도 불 안정한 상태인데!

-뭐,어차피 한동안 비워 둘 건 데 상관없지.

-이 파괴 마법사 같으니라고!

환하게 빛나던 마법진은 다시 성 벽 안으로,또 땅속으로 사라졌고, 그 순간 육중한 소리가 두 곳에서 들려왔다.

쿵,쿵-

성문 밖에서 적들이 성문을 부수 기 위해 두들기는 소리와 무언가 거대한 것이 성 안쪽에서 걸어 나 오는 소리였다.

하지만,일행은 성 안쪽에서 나 는 소리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낡은 성문이 잠시도 버티지 못하 고,부서져 버렸던 것이다.

쿠앙!

폭탄에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간 성문 뒤에는 거대한 해머를 든 장 년의 장군이 희죽 웃고 있었다.

"시두스 장군이 직접 나섰나?"

"오,나를 알아?"

장군이 자신을 알아보는 제이크 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이에,기 사들이 먼저 장군의 양쪽으로 쏟 아져 들어왔다.

기사들은 성문 안으로 들어선 뒤 에 성문을 지키는 진형을 만들었다.

성문을 막아서는 적들을 대비하

기 위해서였다.

하지만,그들은 전혀 공격을 받 지 않았다.

적들은 멀찌감치 서서 성문을 장 악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공성전을 치르면서 처음 겪는 상 황에 기사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방패를 치켜들고 착실하게 주위를 경계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기사들 사이를 빠져나오면서 장 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질이 나 직접 성문을 때려 부

쉈지만,그는 자신이 직접 나선 것에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상대는 성문 앞을 지키 지도 않고 있다니.

"혹시 뭐 숨겨 놓은 마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는 뒤쪽의 마법사에게 물어봤 지만,어색하게 미소만 짓는 마법 사를 보고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벽에 걸려 있는 마법도, 땅을 꺼지게 하는 마법도 알지 못하는 멍청이들에게 물어본 내가 잘못이 지."

장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적들 중앙에 서 있는 공녀를 바라봤다.

비운의 황태자비로 알고 있던 루테리아 공작의 외동딸.

"공작이 가문의 수치를 죽을 장 소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잘못 생각했군."

지금 보고 있는 그녀는 제대로 된 마나 사용자이자 기사였다.

"황제가 미쳤다는 말이 맞는 모 양이야. 아니면 잘난 약혼녀를 시 샘했든가."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린 장군은 그녀를 향해 해머를 세웠다.

"제대로 된 기사라면 어울려 주 는 게 도리지. 난 히베루니아 왕 국의 시두스 기사다."

장군의 말에 공녀는 입꼬리가 살 짝 위로 올라갔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기사에게 듣 는 결투 인사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검을 앞에 세워 장군의 인사를 받았다.

"나는 루테리아 영지의 기사 레 이첼 루테리아! 그대를 상대하겠 습니다!"

마나에 실어 낭랑하게 전하는 그 녀의 목소리에 장군은 실룩 미소

를 지었다.

"하하하,전장터라 둘만 싸우지 못해 미안하군. 양해 부탁한다."

아무리 성질이 급한 그라 할지라 도,자신의 위치를 잊지는 않았다.

이미 기사들 뒤로 병사들도 거의 반수 이상이 들어온 상황이다.

그는 해머를 위로 치켜들고 크게 소리쳤다.

"전원 돌격! 모두에게 죽음을 내 려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기사와 병사 들은 모두 앞으로 내달렸고,그 선두에는 공녀를 향해 달리는 시

두스 장군이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공녀와 제시카가 달려 나갔고,앰버도 손을 들어 마법을 채우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정말 바보들인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았다.

마법사들이 기사들을 보고 학을 떼는 이유를 그도 알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완드를 든 제이크의 손이 위로 올라가자 다시금 마법진들이 옅게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콰앙.

그와 동시에 내성의 문이 터져 나가며 커다란 골렘이 모습을 드 러 냈다.

골렘은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서 있는 흙 인형 사이를 지나,적들 을 향해 달려 나갔다.

-마석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무너뜨릴 때까지 좀 더 버텨 봐!

쩌적!

파티마의 외침에 제이크가 답하 는 사이,마법진들이 새겨진 벽들

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성 지하에 있는 광장은 온통 붉 게 물들어 있었다.

마석이 토해 낸 붉은 마나가 지 하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광장 중앙에 홀로 떠 있는 마석 은 이제 절대 평범한 마석으로 보 이지 않았다.

두근,두근.

붉은색으로 아예 변해 버린 마석 을 감싼 마나가 점점 형태를 이뤄 갔다.

길게 늘여진 머리카락,부드러운 어깨 곡선.

모여든 마나는 마치 반투명한 여 성,혹은 요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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