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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03화 (103/222)

103화

늦은 오후의 햇살은 레이첼 성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알현실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알현실은 누군가 열심히 청소해 서 깨끗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오랜 세월 버 려졌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런 알현실의 모습을 중년의 사 제가 신기한 듯이 둘러보는 중이 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성치고는 정 말 멀쩡하군."

처음 이 성에 대해 들었을 때는 폐허만 남은 성에서 지친 얼굴로 야영을 하는 사람들만 있을 것으 로 생각했던 그였다.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 성은 멀 쩡했고,심지어 성안과 주변에는

새로운 집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밝은 표정인 것이,버려진 영지가 아니라 제국 내부의 안전한 성처 럼 보일 지경이었다.

때문에 사제는 한참이나 놀라 했다.

그렇게 중년의 사제가 알현실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알현실 입구 쪽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겔드의 신관이 이곳까지 찾아오 실 줄은 몰랐군요."

사제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입 구로 세 남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제일 앞에는 그도 잘 알고 있던 비운의 전 황세자비이자 루테리아 의 공녀,레이첼 루테리아였다.

황도에서 행사 때 멀찌감치 보았 던 드레스 차림과 달리,지금은 레인저 복장에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습도 파티에서 본 아름다웠던 모습에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아름다운 조각처럼 보이던 그때와 달리,지금은 아름다움과

함께 생명력이 가득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 올리 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항상 같이 다 닌다는 여자 마법사 대신에 젊은 두 남자가 보였다.

한 명은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달 리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기사 복장을 한 청년이었고,다른 한 명은 평범한 용병처럼 보였다.

바로 루이와 제이크였다.

원래는 사제의 예상대로 앰버가 같이 오는 게 맞지만,지금 그녀 는 성 지하에 있는 던전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루이는 누나가 있는 교단의 사제 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앰버 대신 제이크와 같이 달려온 것이 었다.

"겔드의 축복을. 처음 뵙겠습니다. 겔드를 섬기고 있는 주세프라 고 합니다."

공녀가 상석에 앉자 중년 사제는 사제 특유의 인사를 올렸다.

사제의 이름을 들은 제이크는 조 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름 유명하거나 미래에 활약했 던 사람이라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을 터인데,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반가워요. 저는 루테리아 파견 대장 레이첼 루테리아입니다."

레이첼은 공녀라는 신분 대신에 직책을 이야기했다.

과거 이 성의 영주 자리에 앉아 담담히 직책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원래 그 자리가 자신 의 자리인 것처럼 보였다.

'공작의 피 때문인가? 아니면 황 비의 경험 때문?'

뜻밖의 모습에 놀라기는 했지만, 새로운 공녀의 모습은 그의 입장

에서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과연 신이 하시는 일은 어긋남 이 없어.'

"그런데 무슨 일로 방문하신 건 가요?"

이어진 공녀의 질문에 그는 자세 를 바로 했다.

"저는 이 성에 저희 신전을 세우 기를 요청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주세프 사제의 말은 제이크를 놀 라게 했다.

아침에 고민했던 일이 제 발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정말 신의 도움인가?'

한편 공녀는 사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도 신관과 신전이 필요하다 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이렇게 교단이 나서서 이런 외진 곳에 신 전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저희 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사 제님들께서 이곳에 아무 이유 없 이 신전을 세우실 리가 없겠죠."

주세프 사제는 공녀의 질문에 조 금 고민을 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금방 밝혀질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가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저희 교단 본부가 있는 레타니 아 왕국이 지금 제국에 거의 멸망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교단은 중 립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제국이 왕국을 합병하거나 속국 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겔드 교단 도 조용히 새로운 지배자가 들어 서기를 기다리면 될 것이었다.

"제국은 왕국을 다스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귀

족 약탈과 방관으로 왕국 위를 지 나갈 뿐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치안이 붕괴된 왕국은 극심한 혼란이 휩싸여 버렸다. 강 도와 도둑이 들끓고,이웃 간에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제국군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잔 악한 모습을 보였다면 모두가 제 국에 대해 분노를 키웠을지도 몰 탔다.

하지만 제국군보다도 더한 이들 이 있었다.

일반인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왕 족과 귀족들,그리고 치안이 붕괴

한 것을 빌미로 날뛰는 이웃사람 들로 인해 그들의 분노는 갈 곳을 잃고 말았다.

"신을 섬기는 입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는 있지만,지 금은 교단의 어린 사제들을 보호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레타니아 왕국 수도에 있던 겔드 교단의 본부도 대혼란에 휩싸여 버린 것이다.

"우선 아직 배우고 있는 어린 사 제들을 옮길 곳을 찾다가 레이 사 제가 루테리아 영지를 이야기했 고,영성이 높으신 분들이 기도로

신께 허락을 얻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겔드 교단은 무척이 나 입장이 애매한 상황이었다.

다른 왕국으로 본부를 옮기자니 레타니아 왕국의 국교 취급을 받 고 있어 다른 왕국으로 옮기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타니아를 쏙 밭으로 만드는 제국으로 귀화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도 제국에서 독립성이 보장되고 있는 루테리아 영지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자 한 것이다.

사제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공녀 는 루이에게 사제가 쉴 곳을 안내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루이가 누나에 관해 이야기를 들 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루이가 사제를 데리고 나간 뒤 공녀가 제이크를 돌아보았다.

"제이크는 회귀한 게 아니라 예 언가 아닌가요?"

아침 회의 이후 그가 넌지시 꺼 낸 이야기가 바로 현실화되어 버 리니,공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절대 우연입니다." 정색하며 대답하는 제이크를 재 미있게 바라보던 공녀가 다시 입 을 열었다.

"일종의 피난처라고 해도,우리 로서는 좋은 기회니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죠?"

"다시 루테리아로 복귀한다면 모 를까,이곳에 계속 있으려면 꼭 필요합니다."

제이크의 말에 공녀는 눈을 가늘 게 떴다.

"그 말은…… 확실히 결정을 내 리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녀의 말처럼 이제 확실한 결정 을 내릴 때가 되었다.

"그동안은 떠밀리다시피 일이 진 행됐지만,앞으로는 공녀님의 선 택에 달렸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는 공녀의 확실한 결정이 필 요한 시기였다.

"하지만,어차피 다음 몬스터 웨 이브를 막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 이잖아요."

제이크의 말에 슬쩍 미소를 지으 며 공녀가 반격하자,그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저도 말 씀드리지 못한 건데……. 그래도 영지 전체는 무리지만,이 성 정 도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위해 그동안 제이크는 앰 버와 제시카와 함께 매일같이 던 전과 성을 돌아다녔고,지금도 앰 버가 지하 던전에서 열심히 작업 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레이첼 성은 점점 난 공불락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버려진 영지 전체를 생각하면

루테리아의 대장벽 같은 방어벽이 없어,영지로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아 낼 수 없다는 게 제이크의 생각이었다.

성뿐만 아니라 영지의 안전까지 생각했던 제이크로서는 아직 준비 가 모자라게 여겨졌던 것이다.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공녀가 오랜만에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그대는 항 상 혼자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정곡을 찔린 제이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 대를 만나고,마나를 각성하고,싸 우고,동생을…… 보고……

공녀는 마지막 말을 하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냉정해지기 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덕분에 결심했어요. 루테리아 공작의 딸이 아닌 나 스스 로 서 볼 생각이에요."

공녀는 제이크를 똑바로 바라보 았다.

"평범한 제국의 귀족으로는 그대 가 말한 미래를 막기는 불가능하 니까요."

제이크에 대한 공녀의 믿음은 그 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제이크가 공녀를 세우기 위해 노 력한 것 이상으로 공녀는 제이크 를 도울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제이크와 이야기를 마친 공녀는 그 뒤로 용병 대표들과 레인저들 을 불러 이 일로 회의를 했다.

사람들은 신전이 만들어지고 신 관들이 온다는 이야기에 대찬성했 고,사제들을 데려오기 위한 용병

부대가 바로 만들어졌다.

다음 날.

레타니아로 출발하기 위해 성밖 에 모인 용병 중에는 루이와 제시카도 보였다.

제시카는 한참 동안 제이크에게 쓴소리를 듣고 있는 증이었다.

"루이는 이해가 가는데 제시카는 왜 끼어든 거예요? 성에도 할 일 이 많잖아요."

"아니,루이 혼자 가면 힘들 테 니까. 같이 가는 거야. 내가 루이 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사실대로 말해요."

제시카가 허둥지둥 대답했지만, 제이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나,이제 던전 지하 돌아다 니며 함정 만드는 거 그만할래. 그거 엄청 지겨워!"

결국,제시카는 속에 있는 말을 토해 놓았다.

처음 던전용 함정을 만들 때는 새로운 역사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즐겁게 만들었지만,또다시 지하 에 처박혀서 함정만 계속 만들고 있다 보니 그만 질려 버린 것이다.

제이크는 제시카의 말에 아차 했다.

그동안 너무 자신 위주로 일을 진행했던 것이다.

"……오히려 제가 사과를 해야 할 일이었군요."

제이크가 제시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니,사과할 거는 아니고. 루이 를 도와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 고,함정도 기본은 대충 다 끝났 으니까……

제이크의 사과에 제시카가 허둥 거렸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몸조심하 고요."

결국,제이크는 제시카를 막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시카는 미안한 얼굴로 레타니 아로 가는 용병들과 함께 길을 떠 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제이크는 옆에서 같이 배웅을 하고 있는 앰 버를 돌아보았다.

"혹시 앰버도 억지로……는 아니 군요."

앰버도 제시카처럼 억지로 도와 주는 것이 아닐까 했지만,지하로

내려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 는 것을 보니 피식 웃음만 나왔다.

그날,그렇게 루이와 제시카가 포함된 십여 명의 용병이 겔드의 사제들을 데려오기 위해 레타니아 로 출발했다.

그리고 주세프 사제는 레이첼 성 에 남았다.

자신의 교단을 받아 준 보답이기 도 했고,신전을 만들기 위한 선 발대이기도 했던 그는 주변을 돌 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

덕분에 레이첼 성에 있는 용병과 사람들은 한층 안심하며 생활을 해 나갔다.

레이첼 성은 점점 영지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레이첼 공녀의 오빠이자 루테리아 공작의 장남인 조니건 루테리아가 영지병을 데리고 루테리아 영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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