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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04화 (104/222)

104화

겨울이 끝날 무렵 시작된 루테리아 영지의 내전은 봄으로 접어 들 무렵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싸움은 모두의 예상대로 형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영지는 엄청난 피 해를 봐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공작은 싸움에 휩 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영주 대리로 있으면서 형에게 끝까지 발악하던 이슈비는 결국 소수의 용병과 함께 대수림으로 도망을 쳤다.

그렇게 루레티아 영지의 승계전 이 마무리되었다.

조니건 루테리아는 스스로 새로 운 영주로 올라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 성에서 이제는 전(前) 루테리아

공작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장례식은 제국의 손꼽는 대귀족 답지 않게 검소하게 치러졌다.

제국은 황제가 친정 중인 전쟁 으로 한창이었고,영지도 싸움으 로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가족 간의 싸움으로 영 지가 쑥밭이 되었다는 것을 외부 에 알리기 어려웠던 만큼,영지 내의 귀족과 가족만이 참가하는 검소한 장례식이 된 것이었다.

레이첼 공녀는 조니건의 부름을 받고 영지성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오

빠의 옆에 서서 장례식이 치러지 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장례식이 모두 마무리되고 나서 공작의 시신은 영주성 뒤뜰에 있 는,석실로 되어 있는 가족묘로 향했다.

공작의 시신은 두꺼운 석관 안 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그것으로 모든 예식이 끝났다.

이제 가족묘에는 죽은 공작의 첫째 아들과 딸만이 남게 되었다.

"어떻게 돌아가신 건가요?"

레이첼 공녀의 질문에 조니건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성에 들어왔을 때는 이 미 돌아가신 뒤였다. 이슈비 쪽 에 있던 레인저들이나 병사들도 모른다고 하고. 이슈비와 심복들 은 이미 도망가 버렸으니……

결국,조니건도 정확한 사인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아무튼,이제 영지가 정리되었 으니 돌아와라."

레이첼은 고개를 돌려 새로운 영주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를 꼭 닮은 젊은 얼굴이

보였다.

"제가 왜 돌아와야 하죠?"

공녀의 말에 단단하던 얼굴에 슬쩍 균열이 생겼다.

"어차피 히베루니아 병사들을 막기 위해 임시로 나가 있는 거 잖아. 이제 돌아와서 나와 가문 을 다시 일으켜야지."

오빠의 말에 공녀는 조금 슬픈 얼굴이 되었다.

"버려진 전 황태자비를 원하는 귀족이 있었던가요?"

그 말에 새 영주의 얼굴에 새겨 진 균열이 조금 더 깊어졌다.

"아니면 황제에게 다시 떠넘겨 볼 생각인가요?"

"말이 심하구나!"

"그럼 영주성에서 제가 어디에 필요한지 말해 주세요."

그녀의 말에 조니건은 결국 버 럭 화를 내고 말았다.

"루테리아의 딸이라면 가문을 먼저 생각해야할 것 아냐! 지금 가문 꼴이 어떤지 알기나 해?"

서슬 퍼런 오빠의 모습에 그녀 는 좀 더 슬픈 표정이 되었다.

"내가 황도에 있는 동안 다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나

봐. 아니면 내가 그동안 잘못 알 았나? 어쨌거나 오빠도 내가 모 르는 어른이 되어 버렸어."

레이첼의 말에 조니건은 움찔했 지만,다시 표정을 굳히고 그녀 에게 호통을 쳤다.

"새 영주이자 루테리아 가문의 가주로 명령하겠다. 레이첼 루테리아는 병사들과 용병들을 데리 고 귀환해라!"

조니건의 말이 끝나자,슬퍼 보 였던 공녀의 얼굴도 차갑게 가라 앉았다.

그녀는 똑바로 조니건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 레이첼 루테리아는 조니건 루테리아의 영주 즉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루테리아 가문의 후계자 중 한 사람의 권리로 레 이첼 루테리아는 가문에서 독립 할 것을 선언합니다."

"뭐?"

"어차피 제대로 된 승계도 없었 고 황제의 승인도 없었으니 내가 가문에서 독립하는 것은 아무 문 제도 없습니다. 싸울 생각도 없 으니 이대로 영지에서 물러나겠 습니다."

"감히 네가 그럴 수 있다고 생 각해?"

분노한 조니건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공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응,그럴 수 있어."

그녀의 대답과 함께 뒤쪽에서 검 하나가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공녀는 자연스럽게 검을 검집째 로 낚아챘다.

"누구냐!"

조니건은 놀란 눈으로 석실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가죽 갑옷을 입은 젊 은 남자가 서 있었다.

조니건은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동생과 같이 다니던 용병이었다.

"제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에 조니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사라고 하더니. 쥐새끼같 이 숨어드는 마법도 있는 모양이군."

조니건의 말에 제이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표현은 거칠지만,그의 말처럼 실제로 제이크는 마법으로 모습 을 감춘 채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니건은 제이크와 동생을 번갈 아 보더니 결국 화를 가라앉혔다.

"내가 변했다고 하지만,변한 건 너도 마찬가지다. 가라. 어차 피 힘으로 잡기도 어려울 것 같군."

조니건은 검에서 손을 떼고 문 밖을 가리켰다.

"하지만,영지와 가문을 벗어나

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넌 나중에 크게 후회할 거다."

조니건의 말이 끝나자,공녀는 검을 들지 않은 손을 가슴에 올 렸다.

기사가 다른 기사에게 하는 작 별 인사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버려진 영 지와 레이첼 성은 전과 또 달라 져 있었다.

눈이 녹고 숲에 새순이 자라기

시작한 성 주변으로는 형제간의 내전을 피해 몰려온 루테리아의 영지민이 수많은 가건물을 세워 이제 웬만한 마을을 넘어서는 모 습을 보이고 있었다.

내성 안에도 건물들이 다시 세 워 졌다.

레인저와 병사들의 숙소,그리 고 임시로 만든 용병 사무소,겔 드를 모시는 신전까지.

아직 난민촌 같은 성 밖과 달 리,이제 성안은 제대로 된 영주 성의 모습을 거의 다 갖춰 가고 있었다.

레이첼 공녀는 성벽 위에 올라, 작아져 가는 제이크의 모습을 지 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그는 쉴 시간이 없네요." 공녀 옆에 서 있던 앰버가 푸념 같은 말을 토해 냈다.

"그리고 난 항상 그에게 기대 고,도움만 받고 있지."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어차 피 그도 공녀님께 얻는 것이 있 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앰버의 대답 은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없어 보였다.

"위로는 안 해도 돼. 그저 나 스스로 다시 한번 다짐한 것뿐이 니까."

말을 하는 공녀의 모습은 앰버 의 걱정과 달리 슬픈 모습은 보 이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가족 모두를 잃은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 레이첼 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굳건한 의지만이 보일 뿐이었다.

"모두 무사하겠죠?"

"그러길 바라야지. 제이크 말로

는,루이와 제시카 몸에는 이상 이 없다고 하니까……

사제들을 데리고 오기로 한 제시카와 루이가 포함된 용병들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도 돌아오 지 못했다.

제이크가 가진 마법 아이템으로 제시카와 루이가 무사하다는 것 은 알 수 있었지만,시간이 지날 수록 모두의 걱정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루테리아의 내전이 끝 나기 전에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공작의 장례식이 끝나 고,공녀의 독립 선언이 있고 나 서야 겨우 제이크가 떠날 수 있 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내전에서 승리한 조 니건은 영주성을 살피느라 이곳 까지 공격하러 올 리가 없었다.

또,레이첼이 아는 조니건은 자 신의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알 수 없는 일…… 이번에 본 조니건은 그녀가 알 던 오빠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이 었다.

그럼에도 레이첼은 그리 걱정하 지 않았다.

제이크에게 남겨 놓은 비밀 무 기가 지금 앰버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제이크에게 기대 버 린 것 같지만……

무표정한 얼굴에 아름다운 반투 명한 요정.

과거 아귀 몬스터의 촉수이자, 이 성의 던전 에고가 앰버와 함 께 멀리 사라져 가는 제이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제이크가 잠들었던 던전

에고를 깨우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제이크를 태운 말은 말 그대로 질풍 같은 속도로 달리는 중이었다.

가속 마법에 체력 증가 마법, 근육 강화 마법 등 각종 보조 마 법에 걸린 말은 자신의 최고 속 도를 훨씬 뛰어넘었고,그 충격 은 말에 타고 있는 사람과 고양 이에게 바로 전달되었다.

-신난다! 달려라!

제이크는 저려 오는 엉덩이와 머릿속에 들려오는 환호성에 머 리가 지끈거렸다.

"좀 조용히 해!"

냐옹-

-하지만 재미있는걸요. 고향에 있을 때 탄 엄마 등에 매달릴 때 만큼 신난다요!

제이크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 는 이는 말안장에 매어 있는 가 방에 들어가 얼굴만 쏙 빼내고 있는 고양이었다.

바로 고양이로 변신 중인 페이

샤였다.

페이샤는 제이크가 성을 나선다 는 말에 같이 가기를 원했고,제이크는 그녀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최대한 빨리 달려가야 해서 홀 로 말을 움직여야 하기는 했지 만,고양이 한 마리를 달고 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지금은 후회하는 제이크였다.

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흥분해서 떠드는 목소리 는 말에 걸린 마법을 계속 유지

해야 하는 제이크에게 심각한 정 신적 피해를 주고 있었다.

만약 중간에 페이샤가 잠들지 않았으면 그대로 뒤로 내던져 버 리고 혼자 갔을지도 몰랐다.

-주인님도 고양이가 취향이신가 보네요. 이렇게 오래 봐주시다니. 처음 봤어요.

-너까지 신경 쓰이게 하는 거 야? 방향이나 제대로 알려 줘.

제이크는 지금 제시카와 루이가 가지고 있는 마법 아이템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법 아

이템은 제이크가 앰버에게 받은 마법사 증표를 분석해서 만든 일 종의 탐지 아이템이었다.

마법 아이템을 지니고 있는 사 람의 생존 여부와 위치를 알려 주는 것으로,제이크가 심혈을 기울여 여왕벌 모양으로 만든 증 표였다.

파티 증표라는 명목으로 두 사 람에게 주었다가 화난 제시카의 응징을 받기도 했지만,어쨌거나 두 사람은 증표를 품에 지닌 채 로 길을 떠났다.

-이곳에서 남서쪽이에요. 느린

속도로 북서쪽으로 이동 중이네요.

탐지 마법 아이템은 에고 완드 파티마와 연동이 되어 있어,제이크는 그녀를 마치 네비게이션 처럼 써먹는 중이었다.

파티마의 말처럼,얼마 전부터 제시카와 레이가 가진 마법 아이 템이 느린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아이템의 모습에 겉으로 내색하 지는 않았지만,제이크도 무척이 나 걱정됐다.

그렇기에 일이 어느 정도 해결 되자 이렇게 성을 뛰쳐나온 것이다.

폭주하는 말과 인간 한 명,고 양이 한 마리는 말도 안 되는 속 도로 달려,사홀 만에 제국 남부 를 가로지르고 마법 아이템이 가 리키는 장소에 도착했다.

덕분에 제이크의 엉덩이는 앉지 도 못할 정도로 얼얼해졌고,페 이샤도 지쳐 가방 속에 축 늘어 져 버렸다.

제이크가 탄 말도 마법이 풀리 자 그 자리에 쓰러져 몸을 부들

거리고 있었다.

이 모두는 각종 강화 마법의 부 작용 때문이었다.

루테리아에서 데리고 온 전투마 였지만,3일간의 강화 마법의 후 유증은 버텨 내는 건 쉽지 않았 으리라.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고통 이 가라앉으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제이크도 알 수 없었지만,그동안 말의 수고를 생각하면 그런 위로 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착한 거예요?

가방에서 나와 몸을 쭉 늘려 기 지개를 켜던 페이샤는 협곡 아래 로 내려다보이는 광경에 눈을 동 그랗게 떴다.

협곡 아래에는 수십 대의 마차 와 휴식을 취하는 수많은 제국군 이 보였다.

짐이 가득 쌓인 마차와 병자가 가득 실린 마차들 사이로,어린 사제들이 움직이며 병수발을 하 는 모습이 먼 이곳에서도 잘 보 이고 있었다.

그리고 쉬고 있는 제국군 중앙

에는 무기를 빼앗긴 용병들이 병 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모여 있었다.

그런데 루이와 제시카가 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제이크의 눈에 들어왔다.

"다들 제국군에게 잡힌 거예요?"

옆에서 페이샤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제이크 역시 그녀의 말 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입을 살짝 벌리고 있을 정도로 놀랐다.

제국군이 있는 곳에서 뜻밖에 아는 얼굴들을 보게 되었기 때문

이었다.

제시카에게 다가가는 제국군 기 사와 병사들과 함께 있는 귀족으 로 보이는 여성.

제이크의 눈은 추위에 떨고 있 는 여성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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