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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05화 (105/222)

105 화

봄이 막 시작되고 있었지만,협 곡의 바람은 아직도 매서웠다.

병사들은 겨울용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감시를 받으며 가운데 모 여 있는 용병들도 짐승 털옷을 둘

러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레에 실려 있는 부상자 들과 그들과 함께 있는 젊은 여성 은 얇은 천 옷 하나만 입고 있었다.

"에고,정말 추워 보이네."

제시카는 추위에 떨고 있는 젊은 여성을 보고 나지막이 혀를 찼다.

"지금,저쪽 걱정할 때입니까? 우리도 이대로 황도까지 끌려갈 판인데."

제시카 옆에 있던 용병은 입을 대자로 내밀며 투덜거렸다.

"운이 나빴어요. 황도로 복귀하

는 제국군과 마주칠 줄 알았나요?"

"마주친 제국군에 아는 사람이 있지만 않았어도 그냥 제 갈 길을 갈 수 있었을 거야."

다른 쪽에 앉아 있던 루이가 제시카 편을 들었지만,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제시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용병 말이 맞았다.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국군 기사가 아니었으면 일행은 제국군 과 엮이지 않고 성으로 돌아가고 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미안해. 황도에 도착하면 풀어 줄게. 아무래도 비밀을 요하는 일 이라 내가 임의로 풀어 줄 수가 없어."

일행 앞에서 멈춰 선 기사는 제시카에게 사과했다.

제시카는 기사를 보고 한숨을 내 쉬었다.

기사는 황도에서 대관식에 불려 갔던 그녀의 소굽친구,콘라드였다.

훌륭한 제국의 기사가 된 친구를 오랜만에 보게 된 제시카지만,그 녀는 소굽친구를 보면서 반갑기보

다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제시카와 용병들은 얼마 전,레 타니아 왕국 수도에 도착해서 겔 드 신관들과 만날 수 있었다.

루이는 오랜만에 누나와 만났지 만 그것도 잠시,일행은 곧 어린 사제들을 데리고 먼저 영지로 출 발하게 되었다.

제국 병사들이 휩쓸고 지나간 왕 국의 수도는 치안이 붕괴된 도시 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의 집과 부자들의 집은 습 격을 당해 불타 버렸고,겔드 신 전과 사제들도 공격을 당했다.

그 수습을 위해 겔드의 사제와 루이의 누나는 신전을 정리한 뒤 에 따라오기로 했다.

왕국을 통과하면서 본 광경은 사 제들은 물론,용병들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물론 제국 병사들이 직접 수탈한 것은 아니었지만,점령한 지역의 치안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은 제 국 탓에 왕국은 엉망이 되고 있었

다.

치안이 무너지자 폭력이 권력으 로 변했다.

탈영병들은 강도로 변하고,부랑 배들이 영지를 휩쓸었다.

점령한 지역에 제국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그들은 부대 운 영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어 떤 일이 벌어지든 전혀 신경을 쓰 지 않았다.

다행히 기사급이 둘 포함된 용병 대에 겔드 사제들이 함께 있는 집 단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없어,일 행은 큰 사고 없이 왕국을 거의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 제국과의 국경이 가 까워진 것에 안심하고 있을 때, 일행은 이동하는 제국군과 만나게 되었다.

커다란 천으로 감싸 놓은 여러 수레와 부상자들이 실린 수레를 끌고 제국으로 돌아가는 운송 부 대였다.

제국군이 있는 것을 본 용병들이 제국군을 피해 돌아가려고 할 때, 제국군을 이끌던 기사 중 한 명이 제시카를 알아보고 용병대를 멈춰 세웠다.

그가 바로 제시카의 소굽친구이 자 황제의 대관식에 불려간 콘라 드였다.

제시카가 반가워 부른 그였지만, 그 탓에 일이 꼬였다.

용병들이 어쩔 수 없이 제국군에 게로 다가갔다가 그만 천 사이로 보이는 마차의 내부를 보게 되었 던 것이다.

마차 안에는 왕국 수도에서 강탈 한 각종 유물과 귀중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랬다.

이들은 왕국의 보물을 제국의 황

도로 운반하기 위한 부대였다. 용병들이 마차의 내용물을 보게 된 순간 제국군은 용병들을 제압 했고,제시카와 용병들은 얌전히 제국군에게 제압당해 주었다.

"확실히 황도에 도착하면 풀어 주는 거겠지……요?"

"걱정하지 마. 괜히 소문이 나서 도적 떼가 날뛰지 않게 하려는 것 뿐이니까."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콘라

드였지만,제시카는 그의 말을 쉽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소굽친구의 말은 믿을 수 있지만,뒤쪽에서 이쪽을 바라보 는 다른 기사들은 믿음이 가지 않 았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최대한 지원해 줄게."

"그럼,저 부상자들과 같이 있는 여자에게 덮을 거나 가져다줘……요."

제시카의 말에 콘라드는 마차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지랖은……. 거기다 그건 내

가 들어줄 수 없는 내용이야. 황 제 폐하의 지시였거든,저대로 놔 두라는 게……

콘라드는 다른 요청이 있으면 이 야기하라는 말을 남기고 기사들에 게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제시카는 우 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 은 것은 별 상관이 없었지만,자 신이 말을 높여 주는 것을 당연하 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변한 그 의 모습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콘라드는 제시카가 마나 사용자

가 되었다는 것에 조금 놀란 듯했 지만,전처럼 크게 기뻐하지도 않 았다.

'이래서야 전에 말한 청혼 비슷 한 이야기도 기억할 리가 없겠어.'

받아들이지 않았고,앞으로 받아 들일 생각도 없었지만,나름 감미 로웠던 기억이 손가락 사이로 흩 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제시카는 울적해졌다.

"이대로 황도까지 끌려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기사분 말고 는 분위기가 영 이상한 것 같아

요."

한 용병의 말에 다른 용병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제시카의 만류로 싸우 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제압당 했지만,분위기를 보니 아까 전 기사의 말처럼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끙,그렇다고 어린 사제님들을 놔두고 달아날 수도 없고."

제시카가 싸움을 말렸던 것은 콘 라드가 있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겔드의 어린 사제들이 같이 있었 던 것이 더 컸다.

십 대 초중반의 어린 남녀 사제 들은 지금도 야영지 곳곳을 돌아 다니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성력이 깨어 나 치유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 도 있었고,그렇지 않더라도 다들 기본적인 치료법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용병들이라 하면 합법적인 강도단이라는 소리까지 들기 마련 이지만,루테리아 용병들은 최대 한 의뢰와 약속을 지키는 것을 자 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더구나 신을 모시는 사제들을 버 리고 달아나다니.

그런 일은 정말 목숨이 달아나지 않는 한,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다 무기까지 빼앗겨 버렸 고."

제시카가 만류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 며,용병들은 계속 투덜거렸다.

마나 사용자이고 공녀의 측근이 라 이 일행의 리더가 된 제시카였 지만,남성 우월적인 용병들의 사 고방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

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름 제국군과 만나기 전 까지는 말없이 잘 따라 주던 용병 들이었는데,이렇게 문제가 생기 니 다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 고 있었다.

용병의 투덜거림을 듣던 루이가 미안한 표정으로 옆에 놓인 배낭 을 쓰다듬었다.

다른 용병들은 가지고 있는 무기 를 다 빼앗겼지만,루이와 제시카 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마법 배낭에 무기와 장비들을 넣 은 덕분이었다.

평범한 마법 배낭이었으면 다른 마나 사용자가 확인해 봤을 때 내 용물이 들켰겠지만,이 마법 배낭 들은 고대 마법사 제이크가 만든 수제품이 었다.

제이크는 전생의 기억을 살려, 가방에 주인 식별 마법진을 달아 놓았다.

가방 안쪽에 보이지 않게 새겨 놓은 마법진을 규칙대로 활성화하 지 않으면 마나 사용자라 해도 일 반인들처럼 평범한 내용물만 확인 할 수 있었다.

고대 마도 제국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이라고 파티마가 난리 를 피웠지만,지금은 그 혁신적인 방법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어차피 황도까지 갈 생각 없어요. 기다리던 사람이 왔으니까 곧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손에 쥔 브로치를 확인한 제시카 가 용병들에게 말했다.

그녀가 쥐고 있던 브로치는 제이크가 제시카와 루이에게 준 마법 아이템이었다.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제이크가 알 수 있게 해 주는 그 아이템에 는 제이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파티마를 내비게이터로 쓰 는 마법사 제이크 정도의 정확도 는 무리였지만,대충 방향과 거리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브로치가 알려 준 제이크의 위치 는 이틀 사이에 바로 가까이 와 있었다.

냐아옹-

에시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 양이 한 마리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어,나나!"

그녀 앞에 나타난 귀여운 고양이

는 제시카는 물론 루이도 잘 아는 고양이 였다.

-내가 무슨 도깨비방망이입니까? 내가 오면 다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세요!

고양이족 페이샤의 등장에 이어 제시카와 루이의 귀에 제이크의 메시지 마법이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제시카와 루이가 주변을 둘러봤지만,여전히 주변 에는 쉬고 있는 제국군과 부상자 들뿐이었다.

-여기에요,여기! 마나가 바닥이 라 숨어들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 순간 머릿속으로 들려온 목소 리에 제시카는 부상자들 사이에서 슬쩍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았다.

온통 붕대로 감고 있어 마치 미 이라처럼 보이는 제이크였다.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에 제시카 는 그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대답한 마법사님이 붕대를 가득 두르고 환자들 사이에 누워 있다니.

다른 마법사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웃지 마요. 여기까지 달려오느 라 마나를 쥐어팠다니까요. 거기

다 기사들 수준이 높아서 마법으 로 병사 흉내를 냈다가는 들킬 게 뻔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냐아옹-

투덜거리는 메시지 마법 사이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한 얼굴로 나나를 내려다보 니 고양이 입에 작은 나뭇가지, 완드가 물려 있었다.

"어,파티마다."

제시카는 페이샤에게 완드를 건 네받았고,머릿속으로 다른 목소 리를 듣게 되었다.

-아이고,힘들어. 연결되었습니

다. 이제 머릿속으로 말하면 주인 님께 전달될 거예요.

제이크와 같이 겪은 고생을 제시카에게 푸념처럼 털어놓은 뒤,파 티마는 메시지 마법을 활성화했다.

-미안. 고생했어.

-뭐,동료가 위험한데 당연하죠.

-성은 괜찮아? 네가 와도 되는 거야?

-급한 불은 다 꼈어요. 대충 던 전 쪽도 준비가 되었고요.

-다행이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용병들을 뒤로하고, 제이크와 제시카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럼,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려 주세요.

-아. 그게…….

제이크의 물음에 제시카는 난감 한 표정을 짓다가 곧 그동안의 일 을 설명해 주었다.

제시카의 말이 끝나자,제이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꼬이려니 이렇게 꼬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일 년 전에 헤어진 소꿈친구와

다시 만나서 제시카 일행이 이렇 게 잡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쉰 제이크는 고개 를 돌려 앞에 앉아 추위에 떨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온기를 내려주길.'

제이크의 손가락에서 희미한 빛 이 흘러나오고,이어 여성의 몸에 서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르기 시 작했다.

추위가 가시자 덜덜 떨던 여성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제이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잠

든 여성을 바라보았다.

오래전,아니,미래의 인연을 뜻 밖의 장소에서 마주치게 된 제이크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 이 섞여 있었다.

눈앞에 잠든 여성은 미래의 제이크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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