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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07화 (107/222)

107화

일행이 지나가고 있던 협곡은 제 국과 루테리아 왕국의 경계에 있 었다.

평상시 같으면 제국군과 왕국군 이 양쪽에서 지키고 있었을 테지

만,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패한 왕국군은 밀려 내려갔고, 왕국 후방까지 진출한 제국으로서 도 이곳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 는 사이에 일행은 제국의 영토 안 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잠시 쉬도록 하지. 제국 안으로 들어왔으니 좀 여유를 부 려도 될 거야."

선임 기사가 부대를 멈춰 세웠다.

그의 말에 사람 중 일부는 지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지만,나

머지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주 위를 둘러봤다.

-병사들은 연기가 너무 어설픈 데요?

제이크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 던 파티마가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 쉬었다.

-뭐,병사들에게 연기를 시키는 게 무리한 일이지. 그래도 우리 용병들은 제대로인데?

제이크의 말대로 용병들은 누가 봐도 지친 모습을 하고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물 좀 줘요. 죽일 거 아니면 목 좀 축입시다!"

"나도! 나도!"

"난 물 마실 정신도 없다. 에구 구,삭신이야."

제대로 늘어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용병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그 들의 눈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훑 고 있었다.

거기다 루이와 제시카는 조심스 럽게 가방에서 장비들을 빼내고 있었다.

용병들은 병사들의 분위기로 보

아 곧 싸움이 시작될 것을 알아차 렸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멀리서 슬슬 다가오는 마나 사용 자들을 느끼며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붕대로 감싸고 있어 큰 부상을 입었으리라 생각했던 환자가 갑자 기 벌떡 일어서자,깜짝 놀란 데 이지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녀의 외침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부상자는 데이지를 향해 손가락 을 입에다 대며 마차에서 뛰어내 렸다.

-데이지,위험하니까 마차 밖으 로 나오지 말아요.

머릿속에서 들리는 음성에 데이 지는 다시 한번 놀랐다.

하지만 곧 마법사의 메시지 마법 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마법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순간 그녀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데이지는 급하게 마차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너를 보아도 본 것이 아니고, 너를 만져도 만진 것이 아니다. 세상의 눈은 너를 비껴가고,세상 의 귀는 너를 무시한다."

마차에서 내린 제이크는 마차에 손을 대고 인식 저하 마법을 걸었다.

소음 마법에,인식 저하 마법까 지 걸었으니,운이 나빠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한 마차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꽤 신경 써 주시네요.

의아해하는 파티마의 말에 대답

하지 않고,제이크는 그저 병사를 찾아 이리저리 살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그는 기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쉬고 있는 병 사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이크는 자신에게 걸려 있는 마 법을 다시 확인하고는 따로 떨어 져 있는 제국군에게 다가갔다.

제국군은 붕대를 감고 다가오는 제이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이름은 잘 모르지 만,군복을 입은 전에 본 적이 있 는 제국군으로 보였다.

마나를 쓰지 못하는 일반 병사는

환상 마법을 쓴 제이크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내가 군패를 흘린 것 같아. 잠 깐만 나 좀 도와서 같이 찾아 주 라."

"귀찮게 내가 왜?"

"찾으면 한턱낼게."

"정말이냐? 쳇, 그럼,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같은 부대원의 요청에 제국군은 그를 따라 근처의 바위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바위 뒤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제이크는 군복을 입고 혼자 걸어 나왔다.

-기사들에게 환상 마법이 들킨 다면,마법을 안 쓰면 되지.

-어차피 앰버 마법사가 쓰던 방 법이잖아요. 거기다 변장도 하지 않았으면서…….

파티마의 딴지에 제이크가 한숨 을 내쉬었다.

'또 딴지. 아무래도 에고 복은 없나 봐. 파티마,아귀 몬스터의 촉수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제이크 는 파티마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앰버 마법사? 언제부터 마법 기술자를 마법사로 부르게 되었어?

-마법 기술자들은 다 한심하지 만,그래도 앰버 마법사는 제대로 마법을 배우려는 열정이 있는 분 이에요.

아무래도 성 지하 던전에서 같이 지내는 동안에 앰버와 많이 친해 진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서둘러야겠어. 슬슬

놈들이 접근하는 것 같아.

어느새 멀찌감치 모여 있던 자들 이 신호를 받았는지,일행이 쉬고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이크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제국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스 며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선임 기사와 콘라 드가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콘라드 기사가 차출된 병사들을 데리고 정찰을 다녀오도록."

선임 기사의 말에 정찰을 가게 된 병사들의 얼굴에 불만이 떠올

랐지만,선임 기사가 텃세를 부리 겠다는 데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병사들은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굳은 얼굴의 콘라드와 함께 출발했다.

"어,댁은 왜 그냥 있어?"

남아 있던 병사 하나가 옆에 있 는 병사 차림을 한 제이크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의 질문에 제이크는 작게 손 가락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왜 그래? 계속 같이 있었으면 서. 나도 영지군 출신이잖아?"

"어라? 그랬나? 이상하네."

제이크의 말에 병사는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래도 다행히 잘 넘어간 듯하 자,제이크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 을 내쉬었다.

역시 정신 계열 마법은 쉽지 않 았다.

지금이야 잠깐 마법을 강화해서 혼란시키긴 했지만,오래 가긴 힘 들어 보였다.

'그보다 다가오던 용병들이 정찰 을 가는 병사들을 따라가는군. 우 리한테는 다행인 건가?'

어리둥절한 병사를 놔두고,제이크가 슬슬 뒤로 물러나는 사이에 선임 기사가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잡아 놓은 용병들과 사제들, 음…… 어쩔 수 없지. 부상자들까 지 한자리에 모으도록."

남은 병사들은 원래 그의 부하였 던 영지병들과 수송대 소속의 병 사들뿐이었다.

수송대 소속에는 말을 안 듣는 병사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대세 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정찰을 보낸 병사들은 용병들이

처리하거나 적어도 발을 붙잡아 줄 테니,그동안 나머지들을 정리 해 놓아야 했다.

선임 기사는 허리에 찬 검을 잡 았다.

우선 남은 기사를 처리할 시간이 었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콘라드를 정 찰 보냈으니,남은 기사들은 가뿐 히 두 사람으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선임 기사가 떠난 뒤,병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라? 여기 모아 놓은 용병들

장비 어디로 갔지?"

그때 부대장이 한쪽이 텅 비어 있는 물품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아,그거 기사님이 치워 두라고 해서 옮겨 두었습니다."

"그랬었나? 뭐,상관없겠지."

한 병사의 말에 부대장은 어깨를 으쏙이고 병사들을 지휘하기 시작 했다.

"아 또,쉬라고 했으면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거야."

"물이나 좀 주고 사람을 움직이 쇼."

용병들은 한껏 투덜거리면서도 병사들의 지시에 착실하게 따랐다.

어린 사제들도 조용히 용병들과 함께 협곡 한쪽으로 걸어갔고,부 상자들이 탄 마차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괜찮은 거죠?"

다들 한자리에 모이게 하자,어 린 사제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주 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의 말에 용병들이 씨익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영지에 가서 축도나 제대로 내려 주시라고요."

그렇게 사제들을 넓게 둘러싼 채 로 병사들이 잠시 서 있을 때였다.

기사들 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뭐 하는 짓입니까? 황제 폐하를 배신하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 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 바로 상부에 보고를 해야…… 컥!"

그러나 기사의 고함 소리는 끝을 맺지 못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젊은 기사

가 검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가슴에서 튀어나온 검날을 보며 기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 로 허물어져 내렸다.

두 기사는 쓰러진 기사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죽은 기사의 보고를 받던 기사는 병사들과 사람들 앞에 서고는 병 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해 어리둥 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놀란 몇몇 병사들은 벌어졌던 입을 닫고 선

임 기사의 말을 경청할 자세를 취 했다.

"다들 알겠지만,여기 있는 병사 대부분과 우리 두 기사는 아돌프 백작 소속이다. 아돌프 백작님은 황제의 전횡에 반대하는 귀족 중 한 명이시다. 황제라 해 봤자 어 차피 강대한 영주일 뿐이다. 선량 하고 훌륭한 황제라면 귀족 모두 가 따르겠지만,지금 황제는 어떤 가!"

중년의 선임 기사는 병사들을 앞 에 두고 열변을 토했다.

황제의 실정과 광포한 성격에 대

해 늘어놓고 대항하는 귀족들의 세력에 대해 과장되게 자랑을 했다.

꽤나 그럴듯한 설명에 용병들까 지 혹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가져가는 이 재물들도 모두의 희생으로 얻은 물건이다. 하지만 이 재물을 그대로 가져다 바친다면 모두 황제 홀로 가지게 되어 버린다! 하여 우리는 이 재 물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한 자들에게 최대한 분배를 할 것이다."

결국,도둑질에 동참하라는 이야 기였다. 아니,모여 있는 사람들을 그냥 놔둘 리가 없으니 병사들에 게 강도와 살인에 동참하라는 이 야기 였다.

그러나 그의 말에 반대하기가 힘 들다는 게 문제였다.

기사 한 명이 반대하다가 목숨을 잃은 게 조금 전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지금은 기사와 다 른 병사들에 따라야 했다.

한편,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공 포에 몸을 떨었다.

선임 기사가 하는 말은 병사들에

게만 해당됐다. 즉,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살려 둘 리가 없다는 뜻 이었다.

"황,황제 폐하가 네놈들을 가만 히,가만히 안 둘 것이다!"

마차 안에서 가래 섞인 목소리가 분노를 토해 냈다.

그를 시작으로,입을 열 수 있는 다른 부상자들도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모두 지옥에 갈 거다!"

"살,살려 주세요. 저도 동참할게 요!"

분노하는 사람,살려 달라고 비

는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를 쳤지 만,기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럼,거절하는 사람은 저들 쪽 으로 가고,나머지는 뒤로 물러서 도록."

반대할 사람이 없을 거라 확신했 기에 형식적으로 한 말이었다.

역시나 대부분의 병사들이 한참 뒤로 물러서며 가지고 있는 무기 들을 꺼내 들었다.

일부 갈등하던 병사들도 결국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하지만,모두 그의 말에 따른 것 은 아니었다.

병사 하나가 용병들과 부상자들 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배낭을 제시카에게 던지고는 용병들과 사제 앞에 섰다.

"한 명인가? 그래도 용기는 가상 하군."

사람들 앞을 막아선 병사의 모습 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기사 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넌 누구지? 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의 말에 병사는 나지막이 혀를 찼다.

"역시 마나 사용자에게는 잘 안 먹힌다니까."

병사는 투구를 벗고 자신을 소개 했다.

"루테리아 영지의 용병,제이입 니다."

그의 말에 선임 기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잡은 용병 중에도 너는 없었어. 설마? 외부에서 온 건가?"

아무래도 변수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바로 검을 뽑았다.

"모두 죽여! 쇠뇌 발사!"

급하게 내린 기사의 명령에 일부

병사들이 들고 있던 쇠뇌를 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제이크의 입에서 주 문이 흘러나왔다.

"세상을 가르는 벽,실드!"

사람들을 향해 쏘아진 화살들은 하늘에서 보이지 않은 벽에 부딪 쳐 퉁겨져 나왔다.

"설마,마법사?"

놀란 선임 기사가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때,옆에 있던 젊은 기 사는 오히려 검을 들고 앞으로 나 섰다.

"마법사라 해도 어차피 한 명입

니다. 제가 붙잡고 있을 테니 나 머지를 처리해 주십시오."

나름 영지에서 마법사에 대한 대 응법을 배워 온 젊은 기사,아니, 백작가의 후계자가 자신 있게 앞 으로 나섰다.

하지만,제이크는 그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사들은 우리가 상대할게." 어느새 장비를 갖춘 제시카와 루 이가 앞으로 나섰고.

"야,자기 물건만 챙겨! 남의 것 에 손대지 마."

"와! 이 마법 배낭,끝내주는데

요?"

"대마법사님이라니까. 서둘러. 우 리도 한몫해야지."

뒤이어 자신의 무기를 챙긴 용병 들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병사 들을 바라보았다.

"마법사는 겁이 많답니다. 그럼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 전투가 시 작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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