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제이크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레 이첼 영지의 핵심 인물들이 회의 실에 모이게 되었다.
레이첼 루테리아 공녀와 앰버 마 법사,제시카와 제이크,그리고 레
인저 니콜라스.
사제들을 데리고 오면서 어떤 일 이 벌어졌는지 모두 어느 정도 알 고 있었지만,제이크에게 나머지 내용을 듣게 된 일행은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제이크는 백작가의 후계자 를 일부러 놓아 준 일을 놓친 것 으로 바꿔 설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족이 황제의 물건을 빼돌리려고 한 일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살아 돌아갔으니,바로 반란을 일으키겠군요."
"백작이 아들을 내치는 걸로 수 습하지 않을까요?"
니콜라스 부대장의 말에 앰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황제를 아는 귀족이라면 그런 걸로는 수습이 안 된다는 걸 잘 알 겁니다. 수송대가 몰살되지 않는 이상 황제의 분노를 피할 길 이 없을 거예요. 반란을 일으키려 면 황제가 제국 밖에 있는 지금밖 에 기회가 없어요."
앰버의 의문에 레이첼 공녀는 니 콜라스의 말에 동의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새 황제가 등극을 하면 서 미래에 문제가 될 만한 영지들 을 미리 정리했었다.
정리되는 영지 중에는 반란을 일 으키는 영지도 있었지만 그런 영 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제국 정 가에 의미 있는 귀족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코 백작은 그런 어중 간한 귀족이 아니라,죽은 루테리아 공작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대귀족이었다.
더구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세력 을 키우지 않은 루테리아 공작과
달리,그는 많은 귀족과 영지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런데 왜 프랑코 백작은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인 걸까요?"
실제로 아들과 그의 기사가 벌인 일이었지만,백작의 허락이 없이 는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었다.
니콜라스의 질문에 이번에는 제이크가 대답을 했다.
"아마도 전부터 기회를 보고 있 었을 겁니다. 황제가 없는 지금 승부를 본 거겠죠. 성공하면 황제 에게 타격을 주고 물건을 빼돌릴 수 있고,혹시 실패하더라도 반란
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니다."
사람들에게는 추측처럼 말했지 만,제이크는 나름 자신의 말을 확신할 수 있었다.
복제 세상의 미래에서 그는 프랑 코 백작의 반란을 보았기 때문이 었다.
황제가 제국을 쑥밭으로 만든 뒤,대수림 너머로 원정을 떠났고, 제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에 휩싸여 버렸다.
제이크는 내전을 일으킨 귀족들 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프랑코 백작은 그때나 지금이나 황제가 제국을 떠나기를 기다려 왔을 거야.'
"어쨌거나 반란이 일어날 거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으니 그 걸 기정사실로 하고 이야기를 진 행하죠."
레이첼 공녀의 말에 모두 저마다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야 강 건너 불구경 아닌가요? 반란에 참여하기도 그렇고. 이제 겨우 성 주위를 안정화시켰 는데 말이에요. 우리는 올 겨울 몬스터 웨이브가 더 중요하잖아
요."
제시카는 바로 당면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문제는 황제가 가만히 있느냐는 거죠. 바로 회군할지 알 수는 없 지만,어쨌거나 다른 귀족들과 영 지로 하여금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을 내릴 겁니다."
니콜라스가 바로 제국의 현실을 꺼내 들었다.
그때 앞에 놓인 지도를 보던 앰 버가 작게 혀를 찼다.
"이런,프랑코 영지가 루테리아 에서 먼 곳이 아니군요."
앰버의 말처럼 두 영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프랑코 영지와 루테리아와 바로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거대한 제 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둘 다 동쪽 에 자리 잡은 영지들이었다.
제국의 규범상 큰 반란이 일어나 면,중앙군과 반란이 일어난 주변 영지가 같이 반란을 진압했다.
즉,프랑코 백작 영지에서 반란 이 일어나게 되면 루테리아도 반 란을 진압하는 데 한몫해야 한다 는 소리였다.
"아마도,프랑코 백작이 들고일
어난다면 다른 곳들도 우후죽순으 로 들고일어날 겁니다. 그동안 참 고 있던 곳들이 많았을 테니까요."
전지의 황제에 눌려 수백 년간 기를 펴지 못한 귀족들이었다.
누군가 불을 지른다면 모두 나서 서 산에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제이크는 그런 광경을 복 제 세상에서 봤었다.
"설마,우리도 반란을 일으키자 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제이크의 말에 니콜라스가 눈살
을 찌푸렸다.
비록 루테리아의 레인저였지만, 그도 기사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 이었기에 반란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에 모두 제이크를 바라보 았다.
니콜라스와 달리 제이크에 대해 잘 아는 다른 사람들은 그의 입에 서 반란을 하자는 말이 나와도 이 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의 말에 고개 를 저었다.
"제 말은,그냥 이곳에 묶여 있
지 말고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앞 으로 나서자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제이크는 반대의 이야기 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루테리아가 반란을 일으 키지 않는 이상,병력을 준비해야 하니 우리가 자진해서 참여했으면 합니다."
제이크의 말에 니콜라스를 제외 한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란 진압에 참여하는 것은 좋 긴 한데…… 우리가 그럴 여지가 있나?"
처음에 제시카가 말한 것처럼, 이 버려진 영지는 이제야 활기가 돌고 있었다.
돌아올 겨울이 어떻게 될지는 모 르겠지만,지금 같아서는 이곳에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할 상황이었다.
"네,루테리아에서도 보낼 병력 이 없을 테니까요."
영지의 내전으로 루테리아는 지 금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다.
반란을 진압할 병력은커녕 방벽 을 지킬 병사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당연히 우리 쪽 병력을 보내 달 라는 요청이 올 겁니다. 괜히 서 로 밀당을 해서 얼굴을 붉히지 말 고,차라리 먼저 나서서 이 영지 의 권리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 니다."
제이크의 말에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실제로 이 성은 레이첼 공녀와 루테리아 파견군이 지배하고 있었 지만,공식적으로는 제국의 소유 인 빈 영지일 뿐이었다.
이곳에 성을 세운 귀족 일가가 모두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버린
뒤에,영지의 소유권이 제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물론,제국의 소유가 되었다고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영 주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제국과 황실의 인증이 꼭 필요했다.
"좋은 이야기긴 한데 과연 이 영 지와 성이 새로 오는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니콜라스가 제일 중요한 질문을 했다.
이 성이 멸망한 이유도,계속 버 려졌던 이유도 바로 겨울에 벌어
지는 몬스터 웨이브 때문이었다.
"그 문제는 아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깨어난 던전 에고 덕분에 방향은 잡혔거든요. 그리 고 또 하나."
제이크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회의실 안에 모여 있는 마나 사 용자들로 인해 주머니에서 강한 마나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물건을 발견한 덕분에 충분 히 가능할 것 같아요."
모두 놀란 눈으로 주머니를 쳐다 보는 가운데,제시카가 답답한 표
정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하지만 제이크는 대답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 었다가 꺼냈다.
그의 손에는 어떤 물건이 들려 있었다.
또르르.
책상 위에 굴러가는 마나를 뿜는 물건을 보고 사람들은 다른 의미 로 눈이 둥그레졌다.
"알,?"
"달걀?"
"마나를 품은 계란도 있나요?"
제이크가 꺼내 놓은 물건은 딱 봐도 새의 알이었다.
큰 알도 아니고 계란 크기의 새 알
사람들이 황당해하는 것이 당연 했다.
"이거 만져 봐도 되나요?"
모두 어이없어하는 가운데,레이 첼 공녀만이 덩그러니 놓인 달걀 을 다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이끌림.
"네,괜찮습니다. 어디다 던져도 안 깨질 겁니다."
제이크의 허락에 레이첼은 조심
스럽게 알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이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전설대로군.'
수백 년 전 제국이 세워지던 때, 초대 황제와 루테리아 기사와의 설화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뭐죠?"
하지만 레이첼도 알을 들고 이리 저리 살펴봐도 이 알처럼 보이는 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공녀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한 번씩 확인했지만,단지 알처럼 보
이는 가볍고 단단한 물건이라는 것 밖에는 모두 알지 못했다.
-그거야 마도 제국 때도 본 사 람이 거의 없을 테니 당연한 거예 요! 나 정도 되는 에고나 알고 있 지,알 상태로 본 사람은 거의 없 죠.
"알,맞습니다."
"정말? 마나가 가득한데?"
제이크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근데 생명의 기운은 전혀 못 느 끼겠는데요? 이미 죽어 화석이 된 건가?"
앰버는 알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 렸다.
"아뇨. 죽은 게 아닙니다. 아직 살아난 게 아닌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법사가 하 는 말은 정말 못 알아먹겠어."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니콜라스도 도통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제이크가 구체적으로 설명 을 시작했다.
"이 알은 자연적인 생명체의 알 이 아닙니다. 이 알은 마법사가
만든 인조 생명체,키메라의 일종 입니다."
"엑! 그 누더기 괴물들 말하는 거야?"
제이크의 말에 제시카가 질겁을 하며 알에서 멀어졌다.
-정말 못 살아! 마법 기술자들이 마법사 이미지를 다 망쳐 놓았다 니까!
제시카가 질겁을 하는 것이 당연 하긴 했다.
현대의 마법사,마법 기술자들이 만든 키메라는 몬스터들의 재생 능력을 이용해서 각종 몬스터와
짐승들을 짜깁기한 괴물들에 불과 했기 때문이었다.
나름 전쟁터에서는 쓸 만했지만,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느껴지는 모습에 사람들은 키메라라는 이야 기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곤 했다.
"원래 키메라는 그런 게 아니었 습니다. 마법으로 생명을 창조하 는 건데,고대 마도 제국이 멸망 을 한 뒤에 그 계열의 마법이 모 두 소실되어서 그런 몬스터만 만 들게 된 거예요."
앰버가 오해를 바로 잡아 줬지 만,제이크는 또다시 파티마의 딴
지를 듣게 되었다.
-소실된 건 그 마법뿐만이 아니 거든요? 거의 다 없어졌으면서.
-아니,앰버 마법사하고는 화해 한 거 아냐?
-공과 사는 구별해야죠!
제이크는 도대체 어디가 공이고 어디가 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앰버 마법사님 말대로 이 알은 고대 마도 제국에서 만든 마법 생 명체의 알입니다. 아마도 부화할 방법을 몰라서 레타니아 왕국의 보물 창고에서 굴러다녔을 겁니
다."
'흠,그러고 보니 프랑코 백작은 이 알이 뭔지 알고 있었던 걸까?' 잠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제이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다행히 제가 이 알을 부화시킬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마법 생명체라면 공녀님께 꽤 도움이 될 겁니다."
몬스터 웨이브뿐만 아니라 수많 은 다른 일에도 도움이 될 게 분 명했다.
"이 생명체가 뭔데 도움이 된다 는 거죠?"
자꾸 끌리는 느낌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레이첼 공녀가 다시 물었다.
그녀의 말에 제이크는 회의실 한 쪽에 세워진 루테리아 영지의 깃 발을 가리켰다.
"제국이 건국될 때,초대 황제와 루테리아 기사의 우정은 여러 가 지 설화나 음유 시인의 노래로 전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이크가 말하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깃발을 바라봤다.
"황제가 나라를 세운 뒤,루테리아는 자신이 데리고 다니던 신수
를 황제가 줬고,황제는 신수가 새겨진 깃발을 그에게 주어 건국 공신과 공작의 작위를 내려 줬지요."
제이크가 가리킨 루테리아의 깃 발에는 은빛 날개의 까마귀가 그 려져 있었다.
"이 알이 바로 신수의 알입니다. 아니,제국의 수호수,카라스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