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싸움을 건 것은 반란군이 먼저였다.
몇몇 기사가 쇠뇌의 사정거리 바 로 앞까지 나와 신나게 황제에 대 해 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선전 포고에 가까운 형식 으로,그에 대한 대응도 항상 비 슷했다.
곧바로 연합군 쪽에서 쇠뇌에 비 해 사정거리가 월등히 긴 마법이 기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불타는 공들이 하늘을 갈랐고, 기사들은 신나게 자신들의 진영으 로 도망쳤다.
화염구는 적진까지 거의 따라갔 지만,부대의 상공에서 적 마법사 의 실드에 막혀 터져 나가고 말았다.
그다음은 대전의 서전을 장식하
는 마법의 향연이었다.
수많은 마법이 상대방의 진형을 향해 날아갔고,실드에 막혀 공중 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의 마나를 깎아 먹은 뒤에 양군은 서로를 향 해 전진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거대한 두 무리의 군대.
그리고 활과 쇠뇌를 쏠 수 있을 정도의 사정거리에 접어들자,수 많은 화살이 서로에게 날아갔다.
벌써 마나가 부족해진 마법사들 의 실드들이 깨져 나갔고,방패로
막아 내지 못한 화살들은 상대의 진형에 떨어져 피해를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끝없이 늘어 선 긴 열의 일부가 끊어지자 그 사이에서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마나를 가득 머금은 기사의 창과 검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기 사뿐.
상대 진영에서도 기사들이 튀어 나와 서로를 향해 치달았다.
한편,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얼 굴을 일그러뜨리는 기사가 있었다.
황도 기사단의 시몬이라는 기사 였다.
그는 평지에서 꽤 떨어진 야산 중턱에 서서 불만을 삭히고 있었다.
그도 저 기사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지만,자신에게 내려진 명령 이 다른 것이었다.
용병으로 이루어진 유격 부대의 감시 및 지원이라니.
앞날이 창창한 자신에게는 좌천 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따로 말을 들어 보니, 원래 이 일은 자신이 맡을 일도 아니었다.
단독으로 움직이는 유격 부대라 가짜로 전공을 올릴지 몰라,귀족 들끼리 병사들을 서로서로 파견해 서 감시하는,그런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보통 평범한 병사를 보내는 정도 에 그치는 잡일에 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페우스 백작이 나서서 파견 보낼 사람에 자신을 지목한 것이다.
루테리아 공작과 친한 사이였고, 지금 파견 온 공녀와도 사이가 좋 은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녀를 돕기 위해 자신을 보낸 것 같았
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배치가 바 뀌게 되는 입장이 되면 상대가 좋 게 보일 리가 없었다.
"도움은 개뿔. 쳇! 원래 감시 역 할이니 최대한 객관적으로 하면 그만이지."
'뭐,전 황태자비는 꽤 예쁘다고 하니 한 번 정도는 구해 주는 걸 로 하고.'
그렇게 불퉁한 얼굴로 결정을 내 린 시몬은 빠르게 말을 몰았다.
곧,그는 루테리아에서 온 부대 가 머무는 야社에 도착할 수 있었
다.
'오! 전부 경기병이야? 그래도 준비할 건 준비했네?'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것같이 보이는 수백의 사람들은 모두 말 에 타고 있었다.
말도 제대로 된 전투마들은 아니 지만,경기병용으로 제대로 키운 것 같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파견 인원이 적 은 것을 이유로 레이첼이 새 영주 와 한바탕해서 영주성에 있는 레 인저들의 말을 싹 쓸어 온 것이었다.
또한,용병들과 루테리아 영지민 들은 기본적으로 말을 탈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모두 영지에서 이곳 까지 오는 동안 레인저들에게 계 속 승마 훈련을 받았기에 웬만한 기병 못지않은 실력이 되어 있었다.
시몬은 땅속까지 처박혀 있던 루테리아 병력에 대한 점수를 조금 올려 주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을 살피던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수백 명의 병사들 사이에서도 곧바로 레이첼
공녀를 찾을 수 있었다.
온통 남자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여자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거기다 뜻밖에 꽤 예쁜 여자가 둘이나 있었는데,한쪽은 딱 봐도 용병으로 보였기 때문에 공녀를 찾는 건 더욱 쉬웠다.
그는 말에서 내려 공녀에게 인사 를 했다.
"황, 황도 기사단 소속 기사 시 몬입니다. 오페우스 단장의 지시 로 이곳에 배속되었습니다."
말을 꺼내면서 그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공녀가 기사가 되었다는 말을 듣 기는 했지만,직접 마나가 얽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말로만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했다.
"병사가 아니라 기사가 오셨네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명령 서는 가지고 오셨나요?"
"네,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품에서 명령서를 꺼내 그녀 에게 건넸다.
그런데 시몬은 레이첼이 명령서 를 살펴보더니 뒤에 있는 남자에 게 명령서를 보여 주는 걸 보고
내심 크게 놀랐다.
레이첼은 그런 남자의 반응에 아 랑곳 않고 뒤에 있던 제이크와 대 화를 나눴다.
"나름 신경을 써 주신 것 같은데요?"
"확실히 그런 면이 없지 않네요."
그녀의 말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 덕였다.
명령서에는 적의 후방 정찰과 병 참 부대의 요격을 하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평범한 요격 부대의 명령서이긴 했는데,그 안에는 위험 발생 시 에 최대한 자유롭게 행동해도 된 다는 예외 조항이 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공녀를 배려하여 넣어 준 문장이었다.
"뭐,써먹을 구석이 많은 문구네요. 잘 되었습니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를 지었다.
시몬은 레이첼과 이야기를 나누 는 어려 보이는 용병 차림의 남자 를 힐끗 쳐다보았다.
'참모라 하기에는 너무 어린데? 애인인가?'
용병치고는 귀족 도련님처럼 생 긴 모습이 꼭 귀부인의 어린 애인 같았다.
다만,애인을 이런 전쟁터에 데 리고 나올 이유도 없다 생각한 시 몬은 얼른 그런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 버렸다.
"그럼 시몬 경은 제 옆에서 같이 움직이도록 하세요."
그녀의 말에,다시 말에 오른 시 몬이 공녀의 옆으로 다가갔다가 다시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뒷 머리카락 속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 었다.
뮤우뮤우-
새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공녀의 어깨에 올라섰다.
시몬은 애완조를 데리고 전쟁터 를 나온 공녀의 모습에 기가 찼다.
'설마,저 남자도 진짜 애인 아 냐?'
그런 오해를 하는 시몬을 놔두 고,공녀의 애완조(?)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뮤우우우-
맑고 청아한 아름다운 새의 노랫 소리가 모두의 귀에 들리기 시작 했다.
그러자 시몬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나가 움직여?"
그의 몸속에 있는 마나가 노래에 따라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 우리 마스코트께서 노래를 시작하셨구먼."
"크,중독되겠어. 포션을 수십 병 마신 기분이야."
"또. 한바탕 달릴 모양이네. 빨리 출발합시다!"
주변을 보니 다들 이미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시몬이 놀라 공녀에게 물었다.
"무슨 성법이나 마법입니까?" 마법이라면 상당한 마도사가 아 니면 힘든 대규모 보조 마법이었다.
수백 명에게 동시에 활력을 지원 해 주는 마법이라니.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공녀가 고개를 저으며 살짝 웃었다.
"아뇨. 이 아이가 한 거예요."
공녀는 어깨에 앉은 새를 부드럽 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는 동물,특히 새가 사 람들에게 보조 마법을 걸었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
'아니,잠깐. 들어 본 적이 있었 는데?'
뭔가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든 시몬이었지만,그 생각은 레이첼 의 외침에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선두는 제이 마법사. 부대 이동 하라!"
그녀의 말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 눴던 젊은 용병이 먼저 앞으로 튀 어 나갔고,부대원들도 모두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뭐? 저 남자가 마법사였어? 근 데 마법사가 선두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 에,그는 그냥 머릿속을 비우고 부대를 따라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루테리아 파견 부대는 한 창 전투 중인 평야를 크게 옆으로
둘러 말을 달렸다.
공녀의 새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 도 힘을 내게 만들어 주는 모양이 었다.
수백 구의 말들은 평야가 아니라 산길을 달리는데도 거칠 게 없었다.
시몬은 한참을 신나게 말을 달리 다가 다시 의문에 휩싸이고 말았다.
부대는 벌써 한 시간 이상 말을 달리고 있었다.
멀리 돌아간 상황이긴 하지만, 주위를 살폈을 때 분명 이곳은 적
진에 훨씬 가까운 곳이었다.
부대 주변에 정찰병을 세워 놓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우측으로!"
더구나 가끔 선두에 선 마법사라 불린 한 용병이 뜬금없이 길을 바 꾸고 있었다.
'설마,마법으로 적을 정찰하는 건가?'
혹시 하늘에 패밀리어가 된 새라 도 떠 있나 살펴봤지만,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뿐이었다.
기사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들고 달리는 데 집중을 했다.
믿기지 않았지만,공녀의 명령으 로 선두에 선 남자는 마법사가 맞 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마법사가 하는 일은 신 경을 끄는 게 속이 편했다.
시몬의 추측은 정확하지는 않았 지만,사실에 근접해 있었다.
원래 마나를 가진 자들만 감각으 로 알아차릴 수 있는 제이크였다.
하지만 얼마 전,신조 카라스를 깨우는 과정에서 신조에게 자신을 각성시키고 말았고,그와 신조는 공녀와 마찬가지로 감각 일부를
공유하게 되었다.
덕분에 제이크는 신조가 근처에 있는 동안에는 마나를 가진 자들 이외의 자들까지도 파악이 가능하 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능력이 적의 정 찰병들을 피해 부대를 달리게 하 고 있었다.
물론,이 수백 명이 정찰병들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는 제이크의 수면 마법이 상대를 잠재워 버렸다.
이제는 마나를 가지지 않은 한
명 정도는 먼 곳에서도 충분히 잠 재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제이크는 일행을 멈춰 세웠다.
"후아! 이건 정말 대단해. 노래 가 끝나도 멀쩡하다니까."
용병 중 하나가 말을 두드리며 칭찬했다.
신조의 능력으로 오랜 시간을 달 린 말들이었지만,탈진한 것 같은 말들은 보이지 않았다.
카라스의 노래는 마법과 달리 부 작용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노래를 끝낸 작은 새는 다시 공
녀의 품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직 어린 새였기에 휴식이 필요 했다.
"왜 멈춘 건가요?"
앞으로 나아간 공녀가 제이크에 게 물었다.
아직 좀 더 달릴 수 있었고,쉴 만한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쓸 만한 타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제이크가 멀리 하 늘을 가리켰다.
공녀와 함께 앞쪽으로 나아갔던 시몬은 마법사가 가리킨 하늘을
바라봤다.
'똑같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인…… 저건 뭐지?'
시몬 기사가 눈에 마나를 집중했다. 콕 찍힌 점처럼 보이는 물체 가 점점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법사?"
멀리 마법사 한 명이 하늘에 떠 있었다.
"마법사를 공중 정찰로 써먹고 있네요. 정말 수지가 안 맞는 정 찰 방법인데. 그걸 알고 있을 텐 데도 저렇게 하는 거라면 그 아래 뭔가 있다는 말이겠죠."
제이크의 말에 시몬도 고개를 끄 덕이고 말았다.
"흠,그럼 내가 나설 차례인가?" 옆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에 시몬이 깜짝 놀랐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부대에 있는 또 한 명의 여성이 어느새 옆에 서 있었다.
"부탁해요."
"맡겨 두세요!"
공녀의 말에 대답을 한 제시카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풀 위를 날아가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시몬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언뜻 봐도 말을 탄 것보다 훨씬 빨랐다.
얼마 뒤, 제시카가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정답이야. 수송 부대였어. 대충 주변을 둘러봤는데 함정도 아니었 고."
그녀의 말에 제이크는 공녀를 돌 아보았다.
"어떻게 할까요,부대장님?"
제이크의 말에 공녀는 앞을 바라 보았다.
그동안은 살아남기 위해,아니면 주변에서 떠밀려서 했던 일이 대 부분이었다.
하지만,이제부터는 자신의 의지 로,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공녀는 다시 제이크를 바라보았 고 명령을 내렸다.
"공격하세요."
제이크는 그녀의 말에 마법을 일 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배낭에서 수십 개의 화살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화살 하나하나에 마나가
실려,화살들이 희미한 빛을 내뿜 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몬은 얼마 전에 생각했던 공녀의 애인 일 것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북북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는 저런 마법을 쓰는 마법사를 본 적이 없었다.
화살이 모두 빛을 뿌리자,제이크의 손이 하늘에 떠 있는 마법사 를 가리켰다.
"가라!"
제이크의 말과 함께 화살은 줄줄
이 하늘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