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급 서기관의 회귀-116화 (116/222)

116화

마법사 마지오는 화살이 날아오 기 직전까지 오늘 일진이 꽤나 좋 다고 생각했었다.

날씨도 좋았고,지금 한참 치고 받기 시작했다는데 자신은 이렇게

편하게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이야 칼질하는 데 섞여 들어 갈 확률이 적어서 죽을 위험 은 적다지만,그래도 전쟁터 한가 운데서 마나가 텅 빌 때까지 마법 을 쏟아부어야 했다.

마법사가 마나가 부족해서 마법 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전쟁터 한가운데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게 얼마나 지랄 같은지 마 지오는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비행 마 법을 익혔고, 지금 그 덕을 톡톡

히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좋은 기분은 멀리 숲에서 빛나는 화살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는 순간 끝이 났다.

"시,실드!"

화살이 도착하기에 너무 먼 거리 였지만,그동안의 일로 겁이 많아 진 그는 우선 몸 주위에 실드를 쳤다.

간발에 차이였지만 그 덕에 첫 화살은 견뎌 낼 수 있었다.

마지오는 실드를 유지만 한다면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

쨍그랑!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화 살을 막아 낸 실드는 다음 화살에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실드,실드! 실드……!"

놀란 그가 미친 듯이 실드를 만 들어 냈지만,마나를 가득 머금은 화살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마나가 고갈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말도 안 돼! 무슨 전설의 궁사 라도 나타난 건가?"

다시금 적의 화살 앞에서 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가 된 것을 느 낀 그는 결국 최후의 마법으로 실

드를 전개하고 말았다.

"흠, 비행 마법 쪽을 포기할 줄 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제이크는 높은 하늘에서 그대로 추락하는 마법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하튼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서 화살에 꿰어 추락하거 나, 비행 마법을 포기해 추락하거 나.

그 어느 쪽이든 저 높이에서는 살 방법이 없었다.

"들키지는 않았겠지?"

제이크는 수송 부대가 있는 쪽을 힐끔거렸다.

추락 지점이 수송 부대가 있는 곳이라면 꽤나 귀찮아질 수도 있 었다.

하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마법 사는 미리미리 제거해 놓는 게 좋 았다.

"부대 돌격!"

마법사가 추락하는 것을 확인한 레이첼이 명령을 내리자,부대는 마법사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내달 리기 시작했다.

루테리아 유격대는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반란군 수송대는 유격대가 들이 닥칠 때까지 마법사가 추락한 것 을 알지 못했다.

마법사를 믿고 무기마저 짐마차 에 던져 넣은 병사들이 태반이었 고,수송대를 이끄는 기사도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수송 부대의 정면에서 튀어나온 유격대의 선두는 방패를 든 루이 였다.

그는 마나를 방패에 가득 밀어

넣고 말에서 뛰어내려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부대원들은 그의 좌우로 갈라져,일렬로 다가 오는 적 수송 부대 양옆으로 말을 달렸다.

루이는 다가오는 마차를 향해 돌 진을 했고, 다음 순간 마차를 이 끄는 말들과 루이가 충돌했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두 마리의 말이 짐마차와 함께 하늘로 튕겨 오른 것이다.

마차는 거인의 손에 두드려 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을 수송대의 병사들은 얼 빠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그들은 자신 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게 되 었다.

루테리아 레인저들의 특기 중 하 나인 마상 쇠뇌 공격이었다.

물론,용병들이나 징집병 중에 승마 요령이 부족한 자들도 있었 지만,이렇게 근접한 상황에서는 빗나가려고 해도 빗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으악!"

"컥……!"

"적이다! 모두 무기…… 억!"

일렬로 늘어서서 달리던 마차들 중 선두 마차가 박살 나고,이어 서 양옆으로 달리는 유격대에 의 해 뒤에 있던 마차들까지 모조리 쓸려 나갔다.

그나마 후위의 마차들을 보호하 던 병사들과 기사는 정신을 차리 고 무기를 들었지만,이미 기세를 탄 유격대를 막아 내기는 무리였다.

병사들은 도끼와 해머 같은 다양

한 무기들을 들은 용병들에게 박 살이 났다.

일부 정신을 차리고 검을 치켜든 기사는 레이첼의 일검에 반으로 잘려 나갔다.

싸움은 금방 끝이 났다.

결과는 유격대의 대승.

후미에서 벌어진 싸움에 사망자 가 나오긴 했지만,이 정도 완벽 한 승리는 쉽지 않았다.

시몬은 허탈한 표정으로 죽은 기 사를 바라보았다.

"보호는 개뿔. 이 정도면 기사단 장급이잖아? 오히려 내가 보호받

아야 할 판인데……

정작,시몬을 어이없게 만든 루 이첼은 병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 리는 중이었다.

"모두 서둘러요! 부상자들을 수 습하고 마차를 불태워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용병들은 식량을 가 득 채운 마차를 아쉽게 바라보았다.

"불태우기는 아까운데……

"좀 가져가면 안 될까요?" 하지만,그럴 시간이 없었다. 더구나 이미 눈치 빠른 용병이 일을 처리한 뒤였다.

"쓸 만한 건 이미 빼놨어요!"

남들이 마무리를 하는 동안 제시카가 마차들을 돌아다니며 마법 배낭에 마구 짐을 쑤셔 넣었던 것 이다.

"빨라..

용병들은 그런 제시카의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적 부상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마무리할까요?"

적들 중에는 죽은 이들이 대부분 이었으나 부상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아니,그냥 놔두세요."

레인저의 물음에 공녀가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적에게 자신들의 정보가 노출되 긴 하겠지만,그 정도는 문제 없 으리라 판단한 레이첼은 부상자들 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들도 제국민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때,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시간을 벌어 보죠."

제이크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 면 마법을 펼쳤다.

"잠들어라,잠들어라……

부상을 당하고 심정적으로 위축

된 자들이었다.

마나를 각성한 자들도 없었기에 제이크의 마법이 잘 먹혔다.

물론,큰 부상을 입은 자들에겐 치명적이겠지만 시간을 벌기는 충 분했다.

"미안하고 고마워요. 항상 도움 만 받네요."

일을 마치고 온 제이크에게 레이 첼은 감사를 표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입니다."

하지만 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녀도 제이크의 목표와

같이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 제이크는 이 부대의 마법사였다. 그녀의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마차들에 불을 지른 뒤 일행은 바람같이 다른 곳으로 내달렸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연기가 치 솟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연기를 보고 온 반란군 정찰대는 불에 타서 재가 된 마차들과 그 와중에도 잠들어 있는 부상자 여 러 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두 대군이 벌판에서 맞붙은 전투 는 일주일간의 수차례의 접전 끝 에 반란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반란군의 승리는 여러 가지 이유 가 있겠지만,제일 큰 문제는 지 휘권의 차이 때문이었다.

반란군은 처음부터 프랑코 백작 으로 지휘권을 일원화했지만,급 하게 모인 제국군은 아직 영지의 연합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각자 영지별로 싸움에 임했던 제

국군은 하나로 뭉쳐 싸우는 반란 군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제국군은 벌판에서 수만 걸음을 물러나서 다시 방어선을 칠 수밖 에 없었다.

한편,승리한 반란군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러나는 제국군을 그냥 바라보 기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패배한 군대를 뒤에서 몰아쳐서 피해를 누적시키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온 전략의 기본이었다.

반란군의 수뇌들도 잘 알고 있었 지만,이번에는 그 전략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싸움으로 피해가 심하 기는 했지만,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보급이 끊어져서 움 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하나둘씩 보급이 끊어 지더니,마지막에는 후방에 만들 어 놓은 보급 창고가 불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때문에 급하게 수송대를 만들어 보호할 부대들과 함께 후방 깊숙 이 보내 새로 보급을 받아야 했다.

거기다 급한 보급은 주위 영지를 돌아다니며 갈취를 해야 했기에, 군대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 *

"수고했네. 그대들 덕분에 살았어."

큰 패배로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 던 사령부에 오랜만에 큰 웃음소 리가 들려왔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레이첼 공 녀 일행을 맞이하는 오페우스 백

작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얼마 전에야 왜 적들이 물 러나는 제국군을 공격하지 않았는 지 알 수가 있었다.

전열이 무너져 허겁지겁 후퇴하 는 부대의 모습에 큰 피해를 입을 것을 각오했던 오페우스 백작이었 지만, 다행히 적들은 제국군을 그 대로 놔두었다.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운이 좋았다 생각한 그는 신께 감사 기 도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사령부에 모여 있던 귀족들 중 일부도 눈인사로 레이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다른 귀족들은 시샘의 눈으로 레이첼을 노려봤다.

그들은 전투로 영지병들에 큰 피 해를 입은 데다,사령부에서의 발 언권도 크게 손해를 보았기 때문 이었다.

처음 작전은 오페우스 백작의 지 시로 그럴듯하게 짠 제국군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전 공을 탐낸 영지는 나서서 공격을

해 대고,몸을 사린 영지는 혼자 뒤로 물러나 작전대로 이루어진 전투는 거의 없었다.

큰 피해를 입고 뒤로 물러선 지 금,제멋대로 행동한 귀족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제야 오페우스 백작을 비롯한 기사 출신의 귀족들이 실 권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정말 자네 아버지 젊었 을 때를 보는 것 같다니까. 내가 자네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실수를 했구먼."

친우의 귀여운 딸로 생각하고 보 호해 주려고 했었는데,알고 보니 사자의 자식이었다.

여자라고 편견을 가졌던 자신을 꾸짖은 그는 계속 그녀를 칭찬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몇백의 요격 부대로 수만의 병력을 멈춰 세웠 으니 이건 누구도 못한 일일세. 거기다 사상자도 별로 없었잖은 가. 여기서 자네보다 잘 싸운 사 람은 하나도 없다네."

중간중간 보냈던 보고와 같이 돌 아온 시몬 기사의 진술로 교차 검

증까지 마친 뒤였다.

명확히 드러난 루테리아 영지의 공적에 대해 불만을 나타낼 만한 귀족은 이곳에 없었다.

한참을 칭찬하던 백작이 갑자기 낮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한 번만 더 힘써 보는 게 어떻겠나."

패배를 추스르고 반격을 준비하 는 제국군이었다.

하지만 패배의 후유증과 조금 벌 어진 병력의 차이로 작전을 세우 기가 쉽지를 않았다.

"이번에는 시간에 맞춰서 적 후

방을 휘저어 주었으면 하네. 자네 들에게 신경이 집중될 때,전군을 밀어붙이면 효과가 좋을 것 같아 서 말이야."

항상 실력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일을 맡기는 오페우스 백작 이었다.

레이첼은 그 말에 침묵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계속 도움을 받아 온 오페우스 백작에게 인정 을 받은 것은 꽤나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번 인정을 받게 되니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적의 후방은 처음과 다르게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 되 어 있었다.

정찰대가 몇 배나 증가했고,정 찰대 사이에 기사들까지 끼어 있 었다.

돌아오기 얼마 전에는 수송대를 털다가 함정에 걸릴 뻔하기도 했 었다

다행히 제이크가 미리 알아차려 서 잘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그 때만 생각하면 머리가 쭈뻣 솟는 레이첼이었다.

"흠,흠,이번 작전에 큰 도움이 되면 그대들이 청원을 한 새 영지 에 대한 권리를 제일 위로 올려 주겠소."

"저도 같이 청원을 드리겠소. 영 웅에게는 보답이 있어야 하는 법."

레이첼이 고민을 하자 귀족들이 하나둘씩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잘되기만 한다면 자신들 의 청원에 한 자 추가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실패한다면 없던 일이 되고,다

시 발언권도 되찾을 수 있는 기회 였기에 어느 쪽이든 나쁠 게 없었다.

그들은 계속 레이첼을 부추겼다.

"나도 그 청원을 보았어. 버려진 영지를 다시 살려 보려고 하다니. 성공할지 모르지만 루테리아 가문 답구먼. 난 이미 청원을 써 넣었 네."

오페우스 백작까지 그렇게 말하 자,레이첼은 결정을 내렸다.

"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