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제국군이 정비를 하는 동안,반 란군도 보급 라인을 다시 잇고 슬 슬 전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새로운 방어선에서 적을 맞이할 생각이었던 제국군이였기
에,반란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제국군이 다시 세운 방어선 앞까 지 움직일 수 있었다.
꼼짝 않는 제국군을 보면서도 반 란군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동안 받은 기습으로 바짝 긴장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루테리아 유격대는 반란군 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그들을 기 다리고 있었다.
"무슨 작전이길래 적들이 몰려오 는 정면에서 기다리는 거야?"
"저기 보이는 게 구름은 아닌 거
죠?"
"저게 다 군대가 일으킨 먼지 야?"
"와…… 염병,무슨 먼지가 저렇 게 가득 펼쳐져 있냐."
그동안의 활약으로 자신감이 충 만해진 유격대도 지평선에 가득 솟아오르는 먼지를 보고는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용병들은 모두 공녀와 제이크를 계속해서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공녀도 모르는 것은 마찬 가지였기에 제이크를 쳐다봤다.
그런데 정작 제이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발을 구르고 있었다.
"흠,이 정도면 되려나."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 리에 멈췄다.
"이 정도가 최선이겠지. 여기로 하지 뭐."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건 데!"
그나마 제이크에게 할 말을 할 수 있었던 제시카가 빽 하니 쏘아 붙였다.
그러자 제이크는 뻔뻔하게 미소
를 지으며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아,오래 기다리셨죠? 그럼 시 작하겠습니다. 모두 어딘가 붙잡 고 있어요."
어딘가 불안한 제이크의 말에 모 두 질겁을 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른 마법사들도 무섭기는 했지 만,이 제이크라는 마법사는 도무 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어 더욱 무서웠다.
그런 그가 주의를 준다면 제대로 따라야 했다.
이미 작전 중에 몇 명은 그의 말 을 따르지 않았다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
제이크가 마법 배낭에서 오랜만 에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짧은 배낭에서 긴 마법 지팡이가 뽑혀 나오는 모습은 언제나 봐도 신기했다.
지팡이를 꺼내는 제이크는 지팡 이를 자신의 앞에 푹 찍어 세웠다.
"흙은 마나의 의지를 따라 압축 되고,지표는 스스로의 힘으로 굳 건히 세워라. 어스 웜!"
제이크는 머릿속으로 거대한 드 릴이 땅을 뚫고 가는 것을 연상했다.
동시에 마나가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대로 땅속을 갈아 대기 시 작했다.
쿠구구구궁-
그러자 땅 전체가 마구 흔들렸다.
히이잉!
사람들은 더욱더 땅에 납작 엎드 렸고,말들도 크게 놀라 날뛰려 했다.
때마침 신수 카라스가 노래를 불
러 줘서 다행히 말들의 흥분은 가 라앉았다.
하지만 모두 갑작스러운 지진에 이미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땅이 울린 뒤, 다시 지면은 조용해졌다.
"끝난 건가?"
"뭐가 변한 거지?"
"무슨 마법인거야?"
흔들림이 멈추자,사람들은 고개 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주변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닥도 그대로였고,풀도 나무도
변한 게 없었다.
"다 끝났습니다. 아,아니네요. 입구를 안 만들었군요."
-주인님은 가끔 하나씩 실수를 한다니까요.
-이제 1년 차라서 그래.
워낙 강력하고 뛰어난 마법을 사 용해서 사람들이나 파티마가 자꾸 잊어 버렸지만,제이크는 마법사 가 된 지 이제 1년도 되지 않았다.
물론 복제 세상의 시간을 포함하 면 1년이 넘기는 했지만,그래도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
다른 마법사라면 이제야 아직 수 습 마법사 딱지를 떼지도 못할 시 간.
그의 실수는 오히려 당연할 수도 있었다.
제이크는 바닥에 꼽힌 지팡이를 잡고 다시 주문을 외웠다.
"뚫려라!"
쿠구궁-
그의 말과 함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던 땅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큰 구멍이 제이크의 바로 앞에 만들어졌다.
"제가 앞장설 테니 모두 따라 들 어오세요."
제이크가 먼저 구멍 난 땅속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가 땅속으로 사라지자 사람들 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라가야 해?"
"안 가면 안 될까?"
"누가 좀 먼저 가시지?"
"왜 날 보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서로를 바라보 다,끝에 가서는 제시카에게 머물 렸다.
"아,좀……
모두 자신을 바라보자,제시카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루이가 나섰다.
"흠,공녀님께 선두에 서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제 가 먼저 가겠습니다."
"에잇,같이 가자. 제이크는 또 뭔 이상한 마법을 써 가지고."
루이가 앞장선다는 말에 한숨을 푹 쉰 제시카는 투덜거리면서도 루이와 함께 움직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구멍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의외로 경사가 급하지 않은 동굴을 보게 되었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구조 같은 데요?"
"그러게."
루이의 말에 제시카가 맞장구를 쳤다.
다행스럽게 동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보였다.
아래로 향한 짧은 동굴을 지나 자,두 사람의 눈에 널찍한 지하 광장이 들어왔다.
천장에 떠 있는 환한 마법등으로 밝혀져 있는 지하 광장은 넓이에
비해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종유석처럼 보이는 기둥 이 여러 군데서 받치고 있어 꽤 아름다워 보였다.
"나쁘지 않죠?"
중앙에 서 있던 제이크가 제시카 에게 자랑하듯이 물어보자,제시카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걸 지금 만든 거 야?"
"그럼요. 사실 이 마법은 성 지 하 던전에 살고 있던 몬스터를 연 구하면서 만든 거예요. 단단하지 않은 땅속을 압축해서 공간을 만
드는 거죠. 중간에는 압축한 흙으 로 기둥을 만들고,지표도 압축된 흙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구구절절 설 명하는 제이크였지만,두 사람은 그냥 대단하다는 것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왜 만든 거야?"
뭔가 대단한 것은 알겠는데,어 째서 하필이면 적들이 다가오는 이때에 이런 지하실을 만들었는지 가 중요했다.
"볼트,아니,지하 기지예요."
제이크가 또 두 사람이 알 수 없
는 소리를 내뱉자,제시카가 짜증 섞인 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왜 필요한 건 데?"
"왜긴요,여기서 숨어 있으려고 그러는 거죠."
"설마,다가오는 반란군들이 지 나가기를 이 안에서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겠지?"
"오! 제대로 아셨네요."
제시카는 제이크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이 마법사가 생각하는 방 식은 그녀의 이해를 자꾸만 벗어
났다.
제시카의 반응과는 달리,루이는 눈을 반짝이며 제이크에게 물었다.
"오! 그런데 군대가 지나가도 안 무너지나요?"
"좀 전에도 말했지만,이 안에 있는 흙을 다져서 만든 천장이야. 끄떡없어."
제이크가 으쏙거리며 말하자,루 이가 환히 웃었다.
"그럼,소리만 숨길 수 있으면 정찰대에도 안 걸리고 잘 숨을 수 있겠는데요!"
아직 세상의 상식에 익숙하지 않 은 루이는 바로 제이크의 말에 감 탄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군 대가 지나가는 땅속에 숨는다는 게 가능하다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혹시 너, 정말 고대 마도 제국 시절의 마법사였던 거 아니야? 꼭 그때 죽은 뒤에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것 같아."
꽤나 날카로운 제시카의 말에 제이크는 속으로 움찔했다.
어쨌거나 평범한 사람의 상식을
깨 버리면 꽤나 그럴듯한 방법이 었다.
루이가 사람들이 있던 곳으로 다 시 돌아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지 하 광장으로 오자,따라온 공녀도 주위를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다른 이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용병들과 병사들은 안심 하며 지하 광장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한편,시몬은 그 모습을 모두 지 켜보며 제이크라는 마법사에게 겁 을 집어먹고 말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이렇게 다양 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니. 저 제이라는 마법사는 이야기에 나오는 마왕일지도 몰라.'
마법사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병사나 용병과 달리,그는 황도에 서 마법사를 많이 접해 봤었다.
때문에 제이크가 벌이는 마법들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병사들은 뜻밖의 휴식을 얻게 되었다.
크지 않은 지하 광장은 제이크가
띄워 놓은 빛으로 주변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식량은 마법 배낭 속에 그동안 수송대를 털어 모아 놓은 것이 가득했다.
제이크는 마법으로 그들이 내려 온 입구도 막아 버렸다.
그렇게 한가롭지만 긴장감이 넘 치는 하루를 보낸 루테리아 유격 대는 다음 날,계속해서 머리 위 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질린 표정 이 되었다.
반란군 부대가 머리 위를 지나가 고 있었던 것이다.
제이크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고 장담했지만,끊임없이 들려오 는 소리에 사람들은 천장이 무너 질까 걱정하는 눈빛으로 신경을 곧두세우고 있었다.
다행히 진동으로 먼지만 휘날릴 뿐이었지만,사람들은 혹시 소리 라도 들릴까 봐 입도 뻥긋하지 못 했다.
그렇게 몇 시간 이상 이동하는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소리가 멈 추자 진이 빠져 늘어져 버리고 말 았다.
그리고,며칠이 지났다.
"아니,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거야. 이제 나가면 안 돼?"
마법으로 밝힌 빛 아래에서 제시카가 투덜거렸다.
벌써 며칠째 어두운 곳에서 갇혀 지내려니 무척이나 답답했던 모양 이었다.
하지만,루이는 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오랜만에 편하게 쉬고 좋기만 한데요."
"뭐? 너도 용병 다 되었나 보다."
루이의 말에 제시카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곳곳에 늘어져 있는 용병들처럼 루이도 반쯤 거지꼴을 하고 편하 게 지하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제시카와 레이첼은 불편 하기 그지없었다.
시커먼 남자들과 같이 며칠을 보 내는 것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동안 생리 현상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하 고 있었지만,슬슬 짜증이 밀려오 고 있었다.
에시카의 말에 제이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시카의 말대로,나갈 시간이 된 것은 맞았다. 오페우스 백작과 약속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당장 나가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지하 광장 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무래도 일행 위에 적의 진지가 세워진 모양이었다.
사정을 설명하자,제시카가 표정 을 찡그렸다.
"엑,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일단은 어떤 부대인지 확인해 보고,밤에 야습을 하든가 시간이 들더라도 굴을 파야겠죠."
"으이구,좀 더 한적한 곳에 만 들었어야지."
"작전이 항상 계획대로 되는 법 은 없는 거죠. 정 안 되면 위에 있는 부대만 제거하고 돌아가는 걸로 하죠. 그럼 확인하고 알려 주세요. 병사들을 슬슬 움직여 놓 을 필요가 있겠네요."
공녀는 별 문제가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지만,계획이 어그러 져 난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공녀는 그 시간부터 부대를 정비 하기 시작했고,제이크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천장에 구멍을 뚫 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밤이 된 것을 마 법으로 확인한 제이크는 밧줄에 마법을 걸고 위로 올려 보내기 시 작했다.
마치 마술 뱀처럼 긴 밧줄의 끝 은 수직으로 솟구쳐서 천장에 난 구멍으로 사라졌다.
제이크는 밧줄 끝에 자신의 시야 를 공유한 뒤에,조심스럽게 밧줄 을 움직였다.
이 시간이 되었는데도 지상은 꽤 나 번잡했기 때문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제이크가 중얼거렸다.
"밤이 되었는데도 왜 이리 음직 이는 사람이 많은 거지?"
제이크가 그동안 계속 지켜본 이 유도 일반 병영처럼 느껴지지 않 은 지상의 기척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야시장처럼 느껴지 는 기척이었다.
밧줄은 마치 뱀처럼 작은 구멍에 서 조용히 빠져나와 고개를 꼿꼿 이 쳐들었다.
밧줄이 보는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제이크는 뜻밖의 광경을 보 게 되었다.
수십 명의 귀족과 기사들.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수십 명의 여성들.
마치 낮처럼 환한 횃불이 사방을 비추고 있었고, 곳곳에서는 여자 들을 사이에 두고서 술판이 벌어 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펼쳐진 마차
와 천막까지.
"설마,전쟁상인들인가?"
제이크의 말대로였다.
전쟁터를 따라다니며 술과 여자 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파는 상인 들.
바로 그들이 일행의 머리 위에서 술장사를 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