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아침 해를 받으며 프랑코 기사단 의 정예 기사들이 말과 함께 들판 을 내달리고 있었다.
모두 마나를 각성한 정예 기사들 로,근위 기사들에 버금간다고 백
작 영지의 모두가 자부하는 기사 들이 었다.
그런 기사들이 전방의 싸움터를 놔두고 후방으로 질주를 하고 있 었다.
아들을 잃고 분노한 프랑코 백작 의 명령으로 이렇게 기사단 전체 가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많은 기사들이 백작의 분노에 동 의를 했지만,불만을 표하는 기사 들도 꽤 있었다.
"이 인원이 모두 갈 필요가 있습 니까? 겨우 용병으로 된 유격대인 데."
다른 것보다 일개 용병대를 잡기 위해 자신들 전체가 동원된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신입이 투덜거 렸다.
반란군에서는 루테리아에서 파견 된 유격대를 용병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옆에서 달리는 신입 기사의 질문 에 선임 기사가 대답을 해 주었다.
"공자님이 죽었어. 거기다가 고 위 귀족분들의 자제분들이 많이 죽었다. 그것도 부대 바로 후방에 서. 백작님이 분노하시는 게 당연
해."
말을 달리면서도 두 기사는 마치 평지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대화 를 나눴다.
이는 대단한 마술(馬術)과 마나 활용 기술로,이것만 봐도 이들의 실력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선임 기사는 그 정도 말로는 후 임 기사가 납득할 리가 없다고 생 각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도 큰일이지 만,다른 것보다 권위가 실추된 게 제일 커. 그 용병대가 전부터 우리 후방을 제집처럼 돌아다닌
건 알고 있지? 그래서 후방에 거 미줄처럼 감시망을 깔아 뒀었는데 이번 일로 농락당한 거나 다름없 기 때문에 백작님이 더욱 분노하 신 거다."
선임 기사의 말에 후임 기사는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했다.
귀족의 권위가 침범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고 단단히 벼르신 모양이다. 전선 에 있는 병력 상당수를 후방에 전
개시키고,마법사단에게도 부탁을 한 것 같더군. 신출귀몰한 놈들이 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피할 수 없 을 거야."
"마법사단에도요?"
"어차피 적도 제대로 박살 나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테니,이번 에 제대로 잡으시려 하는 거겠 지."
그렇게 선임 기사가 한참을 설명 하는 동안, 멀리 잘 보이지도 않 는 앞쪽에서 화살 하나가 흰 연기 를 뿜으며 솟아올랐다.
정찰대의 신호 화살이었다.
"좀 더 속도를 올린다!"
그걸 보고 기사단의 선두에 있던 단장이 목소리를 높였고,기사단 은 질풍처럼 길을 내달렸다.
사백이라는 숫자는 군대에서는 작은 숫자지만,지금은 너무 많았다.
선두에 선 제이크와 함께 달리는 사백 명의 병사들은 모두 침묵을 지킨 채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제이크의 어깨에는 은빛의 귀엽
고 통통한 새가 노래를 부르고 있 었다.
말들은 그 새의 노래에 힘을 얻 어,지치지 않고 힘차게 달릴 수 있었다.
-괜찮겠어요? 적들이 점점 좁혀 들고 있는데요.
제이크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파티마였기에,지금 상황을 제이크 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근방에서 연기를 내뿜는 화살들 이 계속 치솟고 있었다.
제이크가 최선을 다해 사람이 없 는 곳으로 달리는 중이었지만,사
백 마리의 말이 달리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적 정찰병들도 전과 달리 신호만 보낼 뿐,절대 유격대에 접근하지 않았다.
-슬슬 작전대로 해야 하지 않을 까요?
-아니,좀 더 모아야 해.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이 어느 수 준인지 알 수 없었기에,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최대한 추격자 수 를 늘려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점차 포위망이 두꺼워지 는 가운데,사백 마리의 말이 힘
차게 앞으로 내달렸다.
* * *
같은 시각.
작전 시간이 되었지만,제국군 사령부는 아직 작전 시작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의 패배에서 피해를 많이 본 영지들이 작전에 딴지를 걸었 던 것이다.
"차라리 이대로 담을 굳게 쌓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황제 폐하가 돌아오실 동안 저
들이 더 진격을 못하게 막는 편이 안전합니다."
"막말로 황도만 빼앗기지 않으면 되는 거잖습니까. 괜히 공격을 하 다 치명적인 반격을 입으면 누가 책임을 질 겁니까!"
이들은 모두 얼마 전까지 작전에 찬성하던 영지들이었다.
패배하고 밀려났을 때는 화도 나 고 황제의 분노도 두려워 모두 반 격에 찬성을 했었지만,막상 흥분 이 가라앉으니 겁이 덜컥 났던 것 이다.
오페우스 백작은 귀족들의 딴지
에 화를 넘어 허탈할 지경이었다.
전지의 황제라는 화려한 이름의 통치에 가려진 제국의 민낯이 눈 앞에서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반란의 기미나 모가 난 행동을 하는 자들은 황제의 대관식 때마 다 목이 잘려 나가고,복지부동하 고 무사안일한 귀족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나마 생각이 있는 자들은 루테리아 공작처럼 외진 영지에 갇혀 버리거나 프랑코 백작처럼 결국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일 까.
'뭐,나도 정치에 관심을 끊었으 니 마찬가지인가.'
그렇게 다 포기하고 싶었던 백작 이지만,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다.
"그럼,지금 반란군 후방에서 최 선을 다해 작전을 펼치고 있는 이 들은 어쩔 생각인 건가!"
친우의 딸을 적들이 버글거리는 곳에 밀어 넣은 것은 바로 자신이 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르는 이들 도 제국의 자식들이었기에 백작은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뭐,좀 돌아다니다가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경계도 심해졌을 테니 뭔가 하기도 힘들 텐데……
말을 흐리는 귀족들의 모습에, 백작은 당장 이 자리에서 검을 뽑 아 모두 베어 버리고 싶을 지경이 었다.
덕분에 사령부 천막 안은 대검호 의 살기로 공기가 싸늘해졌다.
"갑자기 추워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귀족들이 몸을 부르르 떠는 사이 에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기사가
있었다.
"정찰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직위고 뭐고 그냥 다 던져 버리 고 한바탕할까 생각하던 오페우스 백작은 기사의 말에 크게 반색을 했다.
"뭔가 수확이 있었나?"
"예! 몇 개 부대가 후방으로 빠 져 나간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오! 성공했군."
"그리고,프랑코 백작의 기사단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법사
단에도 빈자리가 있는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맙소사! 뭔 짓을 벌인 거야?"
그 말에 오페우스 백작은 물론이 고,천막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라고 말았다.
기사의 보고에 의하면 적의 주력 이 상당 부분 빠져나간 것이다.
백작은 눈에 불을 켜고 천막 안 을 훑었다.
"이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테 지?"
범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백작의 말에 귀족들은 움찔하는 얼굴이
되었다.
더구나 기사의 말처럼 적의 주력 이 빠져나갔다면 이건 해 볼 만한 일이었다.
"계획대로 공격을 시작한다. 전 군 출동 준비!"
백작은 자신의 검을 뽑으며 기사 들에게 지령을 내렸고.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그의 명령을 받고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뿌우우우-!
전장의 나팔이 크게 울려 퍼지 고,제국군 전체가 몸을 일으켜
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최선을 다해 적을 따돌 렸지만,사백 마리의 말의 질주는 그날 밤이 되기 전에 결국 멈추고 말았다.
"이런,너무 일찍 잡혔는데."
-큰일이에요. 해가 질려면 좀 더 있어야 해요.
멈춰 선 유격대 앞에는 어느새 유격대를 앞지른 프랑코 백작의 기사단이 검을 빼들고 서 있었다.
"몰이사냥을 당한 건가."
이미 좌우로는 제이크의 감각이 느껴지기로 수백,수천의 병사들 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나마 병사들이 없는 곳으로 달 린다는 것이 적 기사단의 앞이었 던 것이다.
제이크가 혀를 차고 있는 사이, 기사단의 단장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가 너무 얌전히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멈춰선 유격대를 보고 있 자니 위화감이 느껴졌다.
"쯧쯧,당했구먼."
그때,기사단 바로 앞에 나이가 지긋한 마법사 한 명이 내려서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사는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마도사였다.
대마도사 아이힌테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이 시대에 마도사라는 이름을 얻은 열 사람 중 한 명으 로,파멸의 마도사라는 이명을 가 지고 있는 강력한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는 반란군 마법사단의 단장이자,반란군 영지 중 하나의
영주였다.
"꽤 대단한 마법사구먼,어디서 이런 마법사가 나타난 거지?"
그는 기사단장의 말을 무시한 채 로 제이크를 향해 말을 건넸다.
-들킨 것 같네요.
-젠장,이런 괴물이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제이크가 급하게 자신이 펼쳤던 마법을 해제하기 위해 마법 지팡 이를 꺼내 들었지만,마도사의 주 문이 더 빨랐다.
"디스펠!"
강력한 강제 해제 마법이 제이크
와 유격대를 휩쓸었다.
"앗!"
"이런!"
다음 순간,앞을 막고 있던 반란 군 기사들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 앞에 서 있던 사백 명의 병 사들이 모두 사라지고. 사백 마리 의 말만 남았던 것이다.
뮤우뮤우-
신조 카라스는 충격을 받았는지 바로 제이크의 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제이크도 강제로 해제된
마법 탓에 잠시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마도사는 흥미롭다 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호오,마나에 충격이 클 텐데 조금 휘청이고 끝나다니. 아직 어 려 보이는데 스승이 누굴꼬."
-젠장, 역시 마법사란 종족은……
옆집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 같은 마도사의 말에 제이크는 속으로 짜증을 냈다.
이런 전장에서 저렇게 태평한 말 투라니.
자신도 마법사지만,마법사라는
종족들은 정말 답이 없는 인간들 이었다.
적들을 속이기 위해 펼쳤던 마법 이 해제되자 제이크는 상당히 난 감했다.
마지막 순간에 계획이 어그러졌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감한 것은 마도사를 제 외한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용병들이 어디로 사라졌지?" 말에 올라타 있던 일들이 모두 사라지자,반란군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말 위에 있어야 할 루테리아 유 격대는 사실 땅속에 있었다.
그들은 제이크가 만들어 놓은 지 하 광장에 숨어 있었다.
그랬다.
루테리아 유격대는 처음부터 원 래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상인들의 노점을 박 살 내고 다시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들 대신에 제이크가 홀 로 사백 마리의 말들과 함께 적들 을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그가 가진 마법과 신조의 능력을 더해 마법 지팡이의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서 대규모 환상 마법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물론,제시카나 공녀 같은 특정 인물들은 모사해 낼 수 없었고, 각각의 인물마다 생동감도 부여할 수 없었지만,달리는 수백 명의 병사들을 일일이 확인할 정찰병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제이크는 다른 사람들의 위치를 묻는 기사단장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 을 뿐이었다.
"잡아! 저놈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토해 내게 해!"
기사단장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조심하게나,꽤 대단한 마법사 일세."
옆에서 마도사가 주의를 주었지 만,그의 말은 백이 넘는 기사들 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제이크의 입에서 주 문이 흘러나왔다.
"날뛰어라! 너의 모든 것을 걸 고!"
원래는 환상이 유지된 상황에서 쓸 생각이었던 마법이었지만,지
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히이잉!
제이크의 주문에 말들의 눈이 벌 겋게 달아올랐고,곧 사백 마리의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말들은 사방으로 달려갔고,달려 오는 기사들에게도 들이박았다.
물론,마나를 각성한 기사들에게 는 의미 없는 짓이었지만,그들의 시야를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순간,제이크도 필사 의 탈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