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이, 기사들은 정신없이 주변을 훑었다.
"모두 찾아!"
기사단장의 외침에 기사단들은
모두 마법사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쪽 말에 사람이 타고 있다!"
"이쪽 말에도 있어!"
사방으로 달려 나가는 말들 중에 는 사람이 타고 있는 말들이 있었다.
"모두 잡아!"
단장의 분노의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 탄 것처럼 보이는 말은 기사의 검에 바로 잘려 나갔다.
하지만 죽은 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기하네. 환각 마법을 극한으 로 수련한 마법사인가?"
옆에서 사방으로 달리는 말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도사는 기사들에게 작은 조언을 해 주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사일세. 그럼 있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가능할 게 아닌가? 그러니 차라리 날뛰는 말 들을 모두 죽이는 게 편할 거야."
단장은 마도사의 말에 정신이 번 쩍 드는 것 같았다.
"과연 그렇군요."
기사단장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 고는 정신없이 말들을 베어 나가 는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말들을 전부 죽여라! 단 한 마 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날뛰는 단장의 모습에 머리를 절 레절레 흔든 마도사는 하늘로 몸 을 띄웠다.
"머리가 굳은 기사들이 마법사를 찾을 리가 없지. 애들을 좀 풀어 야겠군."
공중에 뜬 마도사의 손에서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뒤.
마법사들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아무래도 환상 계열의 마법사인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시 하고 마나 스캔으로 뒤지도록."
마도사의 지시를 들은 마법사들 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럼 기다려 볼까?"
마도사는 공중에 뜬 채로 피바다 가 되고 있는 지상을 구경하기 시 작했다.
* * *
마도사의 예상이 맞았다.
제이크는 달리는 말의 배에 착 달라붙어 환상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뒤쪽에서 들리는 마도사의 조언에 질겁을 하고 말았지만,다 행히 그가 숨어 있던 말은 다른 말들보다 빨리 기사들 앞을 벗어 났다.
하지만 이 지역 전체에 포위망이 쳐져 있었기에 말은 멀리 가지 못 하고 결국 병사들에게 잡히고 말 았다.
서걱!
어느새 뒤따라온 기사가 말을 베
어 넘겼다.
하지만 죽은 것은 말뿐이었다.
"이쪽을 지나간 자가 있었나?"
"이 말밖에는 없었습니다."
한 병사의 말에 기사는 바로 다 른 곳으로 말을 달렸다.
한 마리라도 놓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이란 게 엄청나네. 분명 수 백 명이 말을 타고 가고 있는 것 을 봤는데."
"하긴,지금 생각해 보면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이 다 비슷비슷하 긴 했어."
"뭐? 뒤늦게 깨달으면 뭔 소용이 야."
죽은 말을 앞에 두고 잠시 잡담 을 나누던 정찰병이 옆에서 말없 이 서 있던 다른 병사에게도 말을 건넸다.
"너도 같은 생각이지? 맨날 나중 에 아는 척이라니까."
"정말이야! 내 육감이 얼마나 무 시무시한데. 그건 너도 인정…… 어,잠깐. 우리가 세 명이었나? 분명 출발할 때는 두 명이었는데. 그럼 넌 누구지?"
육감이 좋은 병사인 모양이었다.
제이크는 현혹 마법을 뚫고 이상 한 점을 알아차린 정찰병에게 속 으로 박수를 보냈다.
"아쉽네. 몰랐다면 그냥 같이 있 다가 사라졌을 텐데."
나지막이 혀를 찬 그는 두 병사 를 향해 수면 마법을 시전했다.
"잠들어라!"
그가 두 사람을 기절시킨 뒤,제이크를 정찰병으로 보이게 만들었 던 환상 마법이 해제되었다.
마법을 유지시켜 주던 마법 지팡 이의 마나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 었다.
"지팡이의 마나가 떨어진 건 이 번이 처음인가?"
마나를 끌어모으고 저장하는 성 질을 가지고 있는 마법 지팡이를 일종의 배터리로 사용해 오던 제이크였다.
그동안은 던전에서 계속 충전할 수 있어서 지팡이의 마나가 떨어 질 틈이 없었다.
하지만,이번 원정에서는 너무 오랜 기간 너무 마나가 많이 드는 마법을 많이 사용해 왔기에 마나 가 바닥이 나 버렸다.
-이제는 맨몸으로 상대해야 하
겠네요.
"뭐,그동안 너무 치트키를 써 온 거지. 사백 마리의 말에 현혹 마법을 걸고 환상 마법까지 걸어 서 유지시키는 게 내 마나 양으로 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
겉으로는 담담히 말하는 제이크 였지만, 그의 표정은 꽤나 심각해 져 있었다.
파멸의 마도사가 등장하다니.
그 정도 유명한 마도사를 제이크 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애써 미래의 기억까지 들추어 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도 제국,아니,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마법사가 바로 파멸의 마도사였다.
모든 아이템을 가지고도 상대하 기가 어려운 마도사인데,하필이 면 이때에 제일 강력한 무기 하나 를 쓸 수 없게 되다니.
더구나 주변에 깔린 수많은 병사 들과 기사들을 피하는 것도 이제 는 힘들 터였다.
"이제는 마나를 최대한 아끼면서 다녀야겠네."
제이크는 적 병사의 옷으로 갈아 입은 뒤,잠든 두 병사를 마법으
로 땅속에 가라앉혔다.
혹시라도 깨어난 병사에게 들켜 도망치는 방향을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죽지 않도록 공기구멍 정도는 만 들어 줬지만,두 병사가 나중에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지는 제이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들의 사정까지 봐 줄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그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병사 복장을 한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이럴 줄 알았으면 루이와 제시카가 훈련할 때 같이 하는 건
데!"
-어차피 돌아가면 또 안 할 거 잖아요.
"이번에는 꼭 하고 만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며 제이크 는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제이크가 숲 사이로 사라지고 얼 마 뒤,마법사 한 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마나 디텍트!"
그는 마나 흔적을 찾는 마법을 실행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여기까지는 마법을 쓴 흔 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 딱
끊어졌네."
물론,누가 쓴 마법인지,무슨 마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었 지만,마법이 사용된 흔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법 사용을 멈춘 건가? 그럼 찾기가 애매해지는데. 아무래도 마도사님께 말씀드려야겠네. "
마법사는 고개를 젓더니 다시 하 늘로 솟구쳤다.
제이크가 마나를 절약하기 위해 한 행동은 제이크의 위치를 숨겨 주는 데 뜻밖의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제이크는 해가 질 무렵까 지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포위 망도 거의 빠져나갈 수 있었다.
* * *
이윽고 저녁때가 되자,전방에서 하늘로 붉은 색 연기를 내뿜는 화 살들이 쏘아졌다.
급하게 복귀하라는 신호였다.
"젠장!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마법사에게 농락을 당한 기사단 은 분노를 토해 내었지만.
"아무래도 양동 작전이었던 모양 이야. 정말 제대로 당했는걸."
곧 옆에서 들려온 마도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뭐,한 방 먹은 거지. 그 마법사 가 노리고 했다면 전선이 완전히 붕괴되겠지."
"모두 말에 오른다!"
기사단은 급하게 말에 올라 돌아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마도사는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먼저들 가 있게나."
"같이 안 가십니까?"
"애들은 보내겠네. 난 좀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어서……
기사단장은 마도사의 호기심에 속으로 혀를 차고선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급속 전진! 본진으로 돌아간다!"
프랑코 백작의 기사단은 다시 먼 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네들도 모두 돌아가게. 난 곧 뒤따라가지."
모여든 마법사들에게 귀환 명령
을 내린 마도사는 모두 떠나가자 멀리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냥 돌아갈 수야 없지. 그 마 법은 분명 고대 마법의 일종이었어. 그렇다면 고대 마법을 배운 마법사라는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들이 제이크를 찾는 동 안,그는 제이크가 남긴 마법을 분석했었다.
남겨진 마법은 마도사 수준의 환 상 마법과 현혹 마법.
아무리 봐도 이 시대에는 존재하 지 않은 마법이었다.
"수준은 높아 보이지만 고대 마
법의 약점은 확실하지."
바로 규격화된 주문이 없기에 대 응 속도가 느리다는 것.
"고대 마법이라니. 어디서 구했 는지 모르겠지만,이것만 내 것으 로 할 수 있으면 아이힌테일을 발 밑에 둘 수 있어."
그가 반란군 쪽에 속해 있는 이 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대마도사 아이힌테일에 대한 질투였다.
귀족 출신도 아니면서 대관식 참 가로 승승장구해 대마도사가 된 아이 힌테 일 이 었다.
새로운 황제에게 기대를 걸어 봤
던 그였지만,새 황제도 아이힌테 일만을 감싸고돌았다.
정통 귀족인 그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 앞에 막힌 벽을 뚫을 수 있는 길이 보인 것이다.
전쟁이 한창이었지만,그에게는 홀로 도망친 마법사를 쫓는 게 훨 씬 더 중요했다.
"그럼 가 볼까?"
마도사는 공중에 떠올라 기사단 과 다른 마법사들이 간 방향과 반 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헉,헉,다들 돌아가는 거 맞 지?"
-맞아요. 아무래도 아까 연기 화 살들이 귀환 명령을 내리는 화살 들이었나 보네요.
나무가 가득한 산등성이에 주저 앉은 제이크가 거친 숨을 몰아쉬 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던 사람의 기척 이 빠르게 물러나고 있었다.
"헉,헉,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 을 그냥 쓰는 건데. 헉,헉,힘들
어 죽겠네."
-운동을 하겠다고 말한 지가 얼 마 되지도 않았어요.
"헉,헉,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야. 마법사가 육체 노동이라니,이 건 잘못된 거라니까!"
파티마의 정곡 어린 말에 변명을 하는 제이크였다.
-말 바꾸지 마세요.
물론 파티마는 듣지도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네 말이 맞아. 마법사가 맨몸 으로 뛰어다니다니. 덕분에 꽤나
찾기가 어려웠잖은가."
-제길,적이다. 방어 마법 준비 해 줘!
-알겠습니다. 실드 예약. 정신 방어 준비. 그리고 보조 마법을 걸겠습니다. 힐링.
파티마의 마법이 효과가 있는지 지친 육체에 힘이 돌아오고 거친 숨도 잠잠해졌다.
제이크는 음성이 들린 하늘을 올 려다보았다.
붉은 노을이 가득한 하늘에서 마 도사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흠,마나가 다 떨어진 건가? 변
장을 하고 맨몸으로 뛰다니. 덕분 에 찾기가 어렵긴 했지만,나한테 는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다른 마법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독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운이 좋 다고 생각하는 마도사였다.
-상대할 수 있을까?
-아뇨,마나양이 너무 차이가 커요. 지금은 마법 지팡이도 없으니, 웬만한 마법은 다 취소될 거예요.
파티마의 대답에 제이크의 표정 이 어두워졌다.
마법 기술자라고 파티마가 얕잡 아 보는 현대의 마법사들은 고대
마법사보다 그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그렇다 하더라도 마나양 에서 차이가 나면 별수가 없었다.
물량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더구나 마법 기술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었다.
"바디 스톱!"
바로,빠른 주문 시전이었다.
담담히 말을 하던 마도사가 어느 순간 주문을 외웠다.
마도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이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 렸다.
"역시 마나가 얼마 없는 모양이 군그래. 이제 주문도 봉인했으니 슬슬 무력화시켜 볼까나."
제이크의 몸에서 반발이 거의 일 어나지 않자,마도사는 즐거운 표 정이 되었다.
예상보다 일이 쉽게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제대로 된 마법사에게서 배우지를 못한 모양이구먼. 마법 전투 대응도 잘 못하는 것 같고. 설마,던전 같은 데서 고대 마법 을 익힌 건가?"
바닥에 내려선 마도사가 제이크
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한 공격 이 들어왔어요.
-끙,너나 나나 요즘 마법사들하 고 싸워 본 경험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제 능력으로는 풀 수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공격을 해 볼까요?
-아니,괜히 경각심을 줄 필요 없어. 주문을 외울 수 없으니 마 법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놔둬 야 해.
-그럼 어떻게 하실 거죠?
-우선은 가까이 접근하게 놔두 고서 한 방으로 승부를 봐야지. 자폭해 버리자.
-네?
-신호하면 내 몸에 최대한 실드 를 둘러 줘.
-하지만,상대 마법사에게 피해 를 주려면,주인님도 엄청 피해를 볼 텐데요?
-별수 없어. 꼴을 보니 실험실 쥐가 될 판이야. 죽더라도 그 꼴 이 될 수는 없지.
-……알겠어요.
"뭔가 방법을 찾는 건가? 눈이
열심히 움직이는군. 하지만,내 마 법에 한번 걸리면 깨는 건 불가능 할 거라네. 입을 열 수가 없으니 주문을 외울 수도 없을 테고 말이 지."
역시 이 시대의 마법사들은 고대 마법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
고대 마법은 말뿐만 아니라 이미 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어 떤 방법도 가능했다.
마도사의 자화자찬을 귀 뒤로 흘 려보내며,제이크는 자신의 마나 를 마법 배낭 안에 있는 마법 지 팡이로 계속 밀어 넣었다.
마나를 가득 담고 내보낼 수 있 는 마법 지팡이였다.
당연히 가지고 있는 모든 마나를 한 번에 내보낼 수 있었다.
그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을 쓰면 한순간이나마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순간에 발동하는 마법 중에 제일 강력한 마법은 바로 폭발 마법.
제이크는 마법 지팡이를 터트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