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화
딱딱하게 굳어 버린 제이크를 두고 마도사는 계속 혼자 떠들어 댔다.
"아무리 봐도 정말 어려 보이는 데 말이지……. 고대 마법이라고
해도 이 나이에 그런 실력이 가 능한가?"
제이크가 마법을 배운 지 1년밖 에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 면 뒷머리를 잡고 쓰러질 기세였다.
"역시 내 생각대로 고대 마법이 답이었어. 이제 잘 옮겨서 잘 토 해 내게 만들면 되겠군. 아니지, 혹시 모르니 마무리를 해야겠어."
마도사가 멈춰서 제이크를 향해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젠장! 가라! 마나의 화살들이
여 '
아직 마나가 다 모이지 않았던 제이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쓸 수 있는 마법을 우선 쏟아부 었다.
그와 동시에 제이크의 가방에서 밝게 빛나는 화살들이 쏟아져 나 와 마도사에게 날아갔다.
"하하하,역시 한 수가 있을 줄 알았어! 역시 고대 마법사는 여 러 계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군."
호탕하게 웃는 마도사 앞에 반 투명한 실드가 확 펼쳐졌다.
딱 봐도 전에 죽였던 마법사와 차원이 다른 실드였다.
콰콰콰광!
마나가 실린 화살들이 차례로 실드를 두들겼지만, 실드는 화살 들을 버텨 냈다.
"오,마나가 실린 화살이라니. 이런 방법으로 활용이 되는 건 가?"
마도사는 마치 새로운 놀이를 보는 것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날 아오는 화살을 보았다.
이어서 이번엔 물약이 들어 있 는 유리병이 마도사를 향해 날아
갔다.
펑,펑-
실드에 부딪쳐서 산산이 부서지 는 유리병.
그 탓에 안에 든 포션이 공중에 뿌려졌다.
"윈드!"
하지만,조금만 마시기만 해도 잠드는 포션은 마도사가 일으킨 바람에 휩쓸려,멀리 날아가 버 렸다.
"이거,가만히 놔뒀더니 뭐가 나올지 모를 판이군그래. 아무래 도 조금 위험하더라도 제대로 끝
을 내야겠어."
마도사는 실드를 건 채로 제이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도 감탄 섞인 말을 내 뱉었다.
"주문이 없이도 마법을 쓰다니. 이것만 알아내도 놈을 이기기에 충분하겠지."
그는 제이크를 향해 뻗은 손을 꽉 쥐었다.
"바디 스톱,증폭."
마도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두근-
제이크의 심장이 덜커덕 멈췄
다.
마도사 페드리커를 파멸의 마도 사로 알려지게 한 마법이 제대로 펼쳐졌다.
그가 손을 내밀면 마나를 가지 지 못한 일반인은 즉사한다고 해 서 붙여진 이름.
그의 주특기인 바디 스톱은 사 람의 근육뿐만 아니라,몸 내부 의 장기도 멈추는 것이 가능했다.
허파가 공기를 끌어들이는 것도 멈출 수 있고,심지어는 지금처 럼 심장이 멈추게 할 수도 있었
다.
마나를 각성한 자라면 미리 마 나를 심장에 둘러 방어할 수 있 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제이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뇌에 피가 돌지 않는 순간,그 의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간 것이다.
제이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깊숙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 였다.
-정신 차리세요! 어서 마나를
돌려요!
어두운 곳으로 침잠하던 제이크 의 귀로 파티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나?'
파티마의 말에 그는 본능적으로 몸속의 마나를 순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어두웠던 정신이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어,어떻게 된 거지?
-심장이 멈춰서 그래요.
-어,그,그런데 어떻게…….
-마나로 대신 버티는 중이에요.
하지만 이걸로는 얼마 버티지 못 해요!
그녀의 말대로,제이크는 아직 멍한 상태였다.
겨우 의식을 붙잡고 있을 뿐이 었다.
-이제 더는 무리예요. 그냥 마 지막 마법을 쓰세요!
-아,그래,그게 있었지.
파티마의 외침에 제이크가 여전 히 멍한 상태에서 원래 준비한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폭주해라, 네가 가진 마나
제이크가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 우는 순간,페드리커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을 멈추면 대부분 바로 기 절해 버리는데,이 아이는 아직 의식이 있네. 난감하구먼. 더 멈 추고 있으면 뇌가 괴사할 텐데."
괜히 오래 심장을 멈추고 있다 가,죽거나 뇌가 상한다면 다 끓 인 스프를 땅 위에 쏟는 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가 고민하 는 순간,제이크가 메고 있던 가 방에서 물건 하나가 또 튀어나왔
다.
"이건 뭐,요정의 주머니도 아 니고. 뭐가 자꾸 튀어나와?"
지겨운 표정으로 다시 실드를 강화한 페드리커는 가방에서 나 온 물체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가방에서 나온 것은 길 쭉한 마법 지팡이었다.
모르는 이가 봐도 고대 유물인 마법 아이템.
"이런 것도 가지고 있었던 거 야?"
그도 처음 보는 보물에 눈이 휘
둥그레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그 보물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가득 드 는 붉은 색.
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 은 어느새 사라져 가는 저녁노을 대신에 하늘을 붉게 밝히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놀란 페드리커가 급하게 하늘을 향해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제이크의 주문이 끝나는 게 더 빨랐다.
'퍼져라! 세상에 복수해라"
고대 마법 중에는 사람이 가진 마나를 폭주시켜 폭탄으로 만드 는 마법이 있었다.
제이크는 그 마법을 개조해서 마법 아이템도 폭발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제이크의 마나를 가득 품고 있던 지팡이는 더 버티지 못하고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쿠아아앙!
오랜 세월을 버텨 온 마법 아이 템이자 리치의 무기였던 지팡이 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폭발은 산등성이를 휩쓸 어 버렸다.
수많은 나무가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 버렸고,제이크도 뒤로 튕겨져 나갔다.
다행히 파티마가 늦지 않게 실 드를 만들어 줬지만,폭발은 파 티마와 제이크가 예상했던 것보 다 훨씬 크게 일어났다.
엄청난 빛과 열이 산을 휩쓸었 고,잠시 뒤 버섯구름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 광경을 전선에 복귀하고 있 던 기사들과 밀려나던 반란군,
그리고 제국군들까지도 모두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이윽고 버섯구름이 흩어지자, 마법 지팡이가 폭발한 자리가 모 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까지 숲으로 뒤덮인 산 이었던 부분에 숲이 사라져,구 멍이 뻥 뚫린 부분이 생겨났다.
거의 반경 100걸음 이상에 있 던 숲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중앙에는 큰 분화구마저 생겨, 얼마나 강한 폭발인지 알 수 있 었다.
그 현장에는 제이크도 마도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였다.
"큭……"
공터로 변한 폭발 현장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죽, 죽지는 않은 건가."
덜덜 떨리며 들리는 소리는 제이크의 목소리였다.
-이대로 방치하면 죽을 가능성 이 높긴 해요.
몸을 일이키기 위해 애쓰던 제이크는 파티마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하하,윽…… 웃기지 마. 안 그 래도 아파 죽겠는데."
-웃겨요? 농담이 아니라구요! 2도 화상도 여러 곳이고,크게 갈라진 상처도 몇 군데가 있어요. 한쪽 다리는 부러졌고,늑골 도 나갔어요. 더구나 찰과상은 셀 수도 없이 입은 상태란 말이 에요!
"그,그래도 죽지는 않은 거 지?"
-실드가 충격을 분산시켜 줬어요. 그 덕에 튕겨져서 살았지,그
게 아니었다면 분명히 주인님은 죽었을 거예요.
"어쨌거나 살았으니 됐어……. 윽,배낭 안에 포션이 남았을 거야. 포션만 먹을 수 있으면 객사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문제는 충격에 가방이 날아갔 다는 점이겠지요.
"끙,너무 투덜거리지 마. 마나 가 완전히 떨어져 버려서 아픈 것보다 허탈한 게 더 힘들어."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것 때문인 지,제이크의 목소리는 고통 가 운데에서도 꽤 밝았다.
"그런데,카라스는 무사하려나." 제이크와 함께 있던 신수는 마 도사가 나타나자,알아서 몸을 숨겼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폭발 범위가 넓어,제이크는 신수가 피해를 입었는지 걱정됐다.
"크음,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 지만,제일 먼저 자기 목숨을 걱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이크는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 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크윽,한 수가 있다고 생각하 긴 했는데,이런 무시무시한 짓
을 하리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 했어."
쇳소리가 섞인 마도사의 목소리 였다.
제이크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앞을 보니,몸에서 흰 연기를 풀 풀 흘리며 페드리커가 이제는 공 터가 되어 버린 곳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제이크와 달리 폭발을 모두 뒤 집어썼던 마도사였지만, 그는 제이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폭발 에서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실드를 여러 겹
으로 두르고,바디 스톱 마법을 자신에게 걸어 몸을 단단하게 만 든 것이었다.
덕분에 그 강력한 마법 속에서 도 살아나올 수 있었지만, 페드 리커의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폭발에 휩쓸려 반신이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고,한쪽 팔은 아 예 어깨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 감각을 아예 차단해 버려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있었지 만,그도 제이크 이상으로 부상 을 당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대 마법사
란 존재는 너,너무 위험해. 살려 서 알아내기는 무리인 것 같군그 래."
마도사는 남은 팔을 제이크에게 펼쳤다.
"금단의 마법을 쓰는 것은 마음 에 안 들지만,쓰음! 나에게 이 런 상처를 준 놈을 멀쩡히 살려 둘 수는 없지."
그는 제이크의 숨을 끊어 놓은 뒤,두개골을 열어 마법으로 정 보를 습득할 생각이었다.
물론 마법사 사이에서 금단으로 여기는 마법이었고,마법을 쓰는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마법인지라 쓰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살려 두기에는 날아간 자신의 팔이 너 무도 끔찍했다.
"만나서 반가웠고,지옥에나 가 있으라고."
마도사가 마법을 시전하는 것을 보고 제이크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폭발에 의해 입은 부상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가진 마나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파티마도 그의
마나를 빌려서 마법을 사용했기 에,페드리커의 공격을 막아 낼 방법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바디 스-톱- 증폭!"
'제길,이대로 끝나는 건가?'
-아,제발...
파티마의 한탄을 들으며 제이크 는 다시 한번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파티마의 고함도 의미 가 없는 듯했다.
그의 의식이 점점 바닥으로 가 라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죽어! 이 반쯤 구워진 고깃덩 어리야!"
멀리서 거친 용병 목소리가 들 려오는 것 같았다.
"바,바디 스톱!"
"윽,몸을 마비시키는 능력을 가진 마법사인 것 같아요! 마나 를 몸에 두르세요!"
그 옆에서 젊고 힘 있는 다른 용병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동시에 제이크의 정신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워졌던 시야도 다시 밝아졌
다.
그런 제이크가 눈을 뜨고 처음 본 것은 바로 페드리커와 싸우는 제시카와 루이의 모습이었다.
"바디 스톱!"
"윽,이번에는 내가 걸렸어. 젠 장,무슨 마법사가 저 지경이 되 고도 이렇게 싸울 수 있지?"
우뚝 몸을 멈춘 제시카였지만, 말 한 마디도 못했던 좀 전의 제이크와는 다르게 그녀의 입은 멈 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루이의 몸이 마법사를 향해 튀어 나갔다.
"크윽,이놈들이!"
페드리커가 급하게 몸을 피했지 만.
쿵!
"컥!"
아무리 마도사라도 마나 사용자 의 움직임을 따라오기는 무리였다.
루이의 몸통 공격이 페드리커를 강타했다.
그는 실드로 루이를 막아 내려 했지만,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펼친 실드는 루이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깨져 나가고 말았다.
페드리커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고.
푹!
"커억!"
그의 목 앞으로 날카로운 단도 날이 튀어나왔다.
"마법사에게 주문을 외울 틈을 줄 수야 없지."
바디 스톱 마법이 풀린 순간, 마법 부츠의 힘으로 총알같이 페 드리커의 뒤로 달려온 제시카가 마법 단검으로 그의 뒷목을 찔러 버린 것이다.
페드리커는 입을 떡 벌린 채로
튀어나온 단도를 빼내려 손을 올 렸다.
그러나 단도를 뽑기는커녕 그의 손가락만 잘려 나갔다.
한참을 발버둥을 치던 마도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페드리커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 서 둘은 곧바로 누워 있는 제이크에게로 달려왔다.
"으악! 웬 상처야! 그 샤프하던 제이크가 엉망이 되었어!"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여길……
겨우 입을 열어 어찌 된 일인지
묻는 제이크에게 루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제이크 님이 떠나신 뒤에 저희 는 방향을 알려 주는 아이템으로 제이크 님이 가신 방향을 추격했 습니다. 말을 타고 있지 않아 많 이 늦긴 했지만,그리 멀지 않아 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공녀님도 동의하신 겁니다. 전쟁 중에는 예상 못 한 일이 항 상 벌어지니 지원을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이의 말에 제이크는 그만 피 식하며 웃고 말았다.
"자,비실거리며 웃지 말고 이 거나 먹어. 포션이야."
제이크는 제시카가 내미는 포션 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왜? 이거 제이크표 포션이잖아. 자기가 만든 포션이면서 왜 그래?"
물론 제시카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제이크는 더욱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녀가 꺼내 든 포션은 이번에 개량한 포션이 아닌,그가 최초 로 만들었던 포션이었다.
"남은 게 이것밖에 없는 걸 어
떡해.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고." '아니,가방 안에 남은 포션
이……
제이크가 마음속으로 외쳐 댔지 만,아쉽게도 그의 입은 유리병 에 막혀 버렸다.
결국 제이크는 목으로 포션을 꿀꺽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