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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23화 (123/222)

123화

"레이첼 루테리아는 루테리아 영지의 병력과 함께 많은 작전에 서 뛰어난 전적(戰績)을 보여 주 었다. 그러므로 나 황제 엘리고 스 사알 안드라스는 경에게 찬사

와 함께 상을 수여한다. 그의 활 약은 다음과 같다. 첫째,적의 보 급을 끊고……

홀에는 황제를 대신하여 의전관 이 낭독하는 축사가 계속 울려 퍼졌다.

그 옆에서 상을 받고 상을 주는 공녀와 황제의 표정은 축사의 내 용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오랜만이군."

온갖 감정이 다 섞여 있는 황제 의 말에 레이첼은 무표정하게 대 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황제는 사무적인 레이첼의 대답 을 듣고는 다시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삭막한 음성도 오랜만에 듣 는군. 전에는 짜증만 났었는데 이젠 반가운 느낌이 다 들어."

레이첼은 황제의 말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황궁에서 쫓겨나기 전까 지 황제에게 이런 음성과 얼굴을 보여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난 적이 많지 않았지만,황제 를 보게 될 때마다 그녀는 최대

한 반갑게 그를 맞으며 성심성의 껏 그를 대했었다.

그럼에도 철없던 황제에게는 아 무 소용이 없어,쫓겨나는 처지 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그녀는 곧 황제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미래.

황비가 되었던 그 시절을 말하 는 것이었다.

제이크에게 이야기를 듣고,그 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황제의 입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물론,황제는 그녀가 그때의 일 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황제는 잠시 그녀의 표정을 즐 기다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뭐,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우 선 식을 진행해야겠지? 어디 보 자. 상으로 버려진 영지를 새 영 지로 인정해 달라?"

"그렇습니다. 루테리아 영지 남 쪽에 있는 버려진 영지를 새로 개척 중입니다. 영지에서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기 위해 황실에

서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된 신전과 용병 사무소 를 세우고 세금을 걷고,군사를 모집하는 등 앞으로 영지를 꾸려 가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황실의 인정이 꼭 필요했다.

황제는 묘한 표정으로 상소를 살펴보았다.

"대수림 옆의 버려진 영지 라…… 그건 아무도 탐내지 않는 곳이지 않나? 장벽도 없이 몬스 터 레이드를 어떻게 막으려고?"

공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도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은 아닌 모양이었다.

"뭐,그건 알아서 할 테니까. 흠, 이번에 루테리아도 영주가 바뀌었지,아마? 하지만,거기도 정식으로 영주가 된 것은 아니 고……

레이첼은 황제의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후계자의 영지 승계에 대한 황 실의 인증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승계 과정에서 큰 싸음이 있었다 해도, 지금껏 공작가의

영지 승계를 황제가 거부한 경우 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 황제는 루테리아 영지 승계를 쉽게 인증해 줄 생 각이 없어 보였다.

공녀에게 의문을 남긴 채로 황 제는 계속 중얼거렸다.

"흠,공작의 딸이긴 하지만,여 자를 한 영지의 영주로 삼는 다……. 꽤 곤란한 이야기인 데…… 근데 추천인은 꽤 많군. 활약이 대단했던 모양이지?"

황제는 날카로운 눈으로 공녀를 바라보았다.

"거기다 마나를 각성하다니. 내 가 아는 레이첼과 같으면서도 많 이 다르군. 레이첼 안에 네가 들 어 있었던 거냐,아니면 내가 벌 인 일로 네가 바뀐 거냐."

'황제 폐하도 너무 달라지셨군요.'

공녀도 황제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를 내쫓을 때는 얼굴도 보 이지 않은 황제로 인해 마지막 만났을 때는 황제는 아직 철부지 악당에 불과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말도 안 듣고,자기만이 최고로 여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황제 는 그 소년과 얼굴은 같아도 전 혀 다른 사람이었다.

눈앞의 황제는 어려 보이는 얼 굴과 달리,이미 완성된 성인이 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의 주관 과 생각을 완성한 어른.

하지만,그 어른은 이상하게 성 장한 듯했다.

"전과 달라진 황후를 품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긴 하겠지

만……

황제는 공녀를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황후가 날뛰는 모습을 보는 것 도 나름 재미가 있겠어."

레이첼은 황제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황제는 치기 어린 욕망을 제어 하게 된 어른이 아니라, 더욱 잔 혹한 욕망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고 쟁취할 수 있게 된 어른 이 된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결정은 이곳에 오기 전 제이크가 한 말과 한 치

의 다를 바가 없었다.

"황제는 요청을 수락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황제는 쾌락주의자니 까요. 자신에게 재미를 주지 못 하는 인간들은 가차 없이 처단하 지만,뭔가 재미있고 신기한 것 들은 좀 더 굴러가게 놔둬요."

말을 하는 제이크의 얼굴 깊숙 한 곳에서는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그게 꽃을 피웠을 때 황제는 그 꽃을 뭉개 버리죠."

지금도 황제의 눈은 기대로 반 짝였다.

그 기대에 피 냄새가 가득한 느낌이 들어,레이첼은 자신이 피 웅덩이 안에 들어 있는 것 같 았다.

"하지만,그냥 상을 주게 되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질투하는 놈 들도 말이 많겠지?"

황제가 능글맞게 이어 말하는 사이, 의전관의 끝없는 축사가 끝을 맺고 있었다.

".그리하여,레이첼 루테티

아를 남작으로 봉하고,영지 아 스굴론의 임시 영주로 임명한다. 기한은 1년. 그녀가 1년 동안 영

지를 지켜 내고,대수림에 있는 새로운 던전 다섯 개를 기간 안 에 탐사해 내면 정식 영주로 인 정해 줄 것이다."

의전관의 발표에 레이첼 편을 들었던 오페우스 백작과 몇몇 귀 족들의 표정이 어두워졌고,그녀 의 성공을 질투하던 귀족들은 음 침한 미소를 지었다.

남작이라는 작위는 영지를 가진 귀족들의 작위 중에 가장 낮은 작위였지만,영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당한 작위였다.

그리고 임시 영주라 해도,정식

영주와 권위 등 할 수 있는 일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1년이라는 기간이 문제 였다.

1년 안에 영지를 지켜 내고,새 로운 던전 다섯 개를 찾아내라니.

물론,몬스터 웨이브를 이겨 내 고 영지를 유지해야 영주로 인정 하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던전 다섯 개 를 찾아내라는 것은 이제 겨우 새 영지를 개척하는 영주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

황도의 귀족들은 작년 대수림 탐사에서 새로 발견한 수많은 던 전들을 모두 황제의 기사단이 찾 아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거기다,던전 다섯 개를 찾아내 라는 것은 그 던전에서 나온 유 물도 바치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가 없었다.

귀족들은 절망에 빠진 공녀의 얼굴을 보게 되리라 생각하며 공 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공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1년 뒤 확 실히 결과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 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공녀를 재미있다 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있군. 뭐가 그대를 이 렇게 자신 있게 만들었지?"

오랜 시간 그녀를 봐 왔던 황제 였다.

황제는 그녀의 표정에서 자신감 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녀는 대답 대신 미소 만 지었다.

그녀에게서 답을 들을 수 없다

고 판단한 황제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이제 영지로 돌아가는 건가?"

"네,부상자와 사망자도 많아서 우선 영지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실제로는 그녀의 활약을 보다 못한 귀족들이 이 같은 핑계로 그녀를 강제로 부대에서 빼낸 것 이었다.

황제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 지만,우선은 두고 볼 생각이었다.

"폐하,다음 포상자들이 대기 중입니다."

그때,뒤쪽에서 집사장이 작게 말을 올렸다.

이미 의전관의 말도 끝난 뒤였다.

홀에 있는 사람들은 들리지 않 는 황제와 레이첼의 대화가 끝나 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황제는 변한 공녀의 모습에 흥 미를 느꼈기에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아쉽게도 다음 식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겠습니다.'

공녀는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재미있어,생각보다 더 재미있어."

황제는 물러서는 공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뒤로 이어진 수여식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고,밤에는 화려 한 피로연이 펼쳐졌다.

어지러운 시국으로 인해 얼마 뒤에는 다시 전쟁터로 달려가야 할 귀족들과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모두 피로연에 참석해서 친분을 나누기 바빴다.

황제도 피로연에 얼굴을 드러내 었지만,곧 실망하고 말았다.

"루테리아 남작님은 수여식이 끝난 뒤 바로 영지로 출발하셨습 니다. 영지가 걱정이 돼서 먼저 출발하게 되어 사죄를 드린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레이첼을 찾는 황제의 말에 되 돌아온 대답 때문이었다.

황제의 실망한 표정에 수행하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남작님을 다시 모셔 올까요?"

기사의 말에 황제는 피식 웃더 니 고개를 저었다.

"뭐,낚싯바늘에서 운 좋게 벗 어난 물고기를 그물로 잡아 버리 면 그게 무슨 재미겠나? 오히려 잘되었어. 나중에 성공하거나 실 패해서 좌절하거나,그때 다시 부르면 돼. 지금보다 훨씬 짜릿 한 일이 될 거야."

나중을 기약하는 기대로 다시 즐거운 얼굴이 된 황제였지만, 피로연에는 이미 흥미를 잃어버 린 뒤였다.

"난 들어간다. 쓸 만한 애 하나

들여보내도록."

황제가 휘적휘적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피로연은 더욱 환하게 불을 밝혔다.

같은 시각,공녀,아니,레이첼 루테리아 남작과 새로운 영지 아 스굴론의 병력은 황도에서 좀 떨 어진 벌판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아니,오늘밤은 자고 와도 됐 잖아? 오후 늦게 출발해서 밤이 슬을 맞고 야영이라니,도대체 무슨 심보야!"

사실 오후에 출발한 것은 레이 첼이 정한 것이었지만,그렇게 하라고 조언한 이는 제이크였다.

그래서 제시카는 그에게 투덜거 리는 중이었다.

다만,그 투정이 그리 진지한 것이 아니었기에 레이첼도 그녀 를 제지하지 않았다.

레이첼은 투정을 들어 주고 있 는 제이크를 보며 오후에 들은 그의 말을 떠올렸다.

"피로연은 절대 참석하지 마시 고 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황제

의 성격이라면 언제 뭔 짓을 벌 일지 모릅니다. 최대한 황제에게 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낮에 황제를 본 그녀로서 는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일행과 함께 황도를 나섰던 것이었다.

레이첼은 낮에 본 황제와 지금 제시카에게 혼나고 있는 제이크 를 같이 떠올려 보았다.

둘 다 마법으로 미래를 경험하 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둘 다 뛰어난 머리와 추진력도 있었다.

하지만,오늘 본 황제의 모습과 제이크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때나마 평생을 같이 살 것으 로 생각했던 사람은 무섭고 소름 끼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낯선 여행자는 어느새 그녀가 가 장 믿고 신뢰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거기다 자신은 황태자비에서 이 제 새로운 영지의 임시 영주인 남작이자,기사가 되어 있었다.

황태자비에서 쫓겨난 것은 황제 가 한 일이었고, 이렇게 성장한 것은 제이크의 도움이 대부분이 었다.

미래를 경험한 두 남자 덕분에 자신의 인생이 변했다고 생각하 자,레이첼은 신기한 기분이 들 었다.

'처음 만난 게 아마 이 근처였 었지?'

그때 제이크가 우울한 그녀를 위로해 주었었다.

"남작님,홍차 한 잔 드시겠습 니까?"

레이첼은 때마침 들려온 제이크 의 말에 크게 미소를 지으며 대 답했다.

"네,주세요. 브랜디를 가득 넣 어서 맛있게 한 잔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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