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페이샤가 가지고 온 소식은 마 법사 제이크가 일행에 꼭 포함되 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원래부터 같이 갈 생각이었던 제이크였기에 모두 그 부분에 대
해서는 수긍을 했다.
그 이외에 문제가 될 만한 요소 도 없었기에,페이샤가 돌아온 뒤에도 일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다음 날 출발은 무 척이나 순조로울 것 같았다.
제이크 파티로서는 오랜만에 대 수림행이었다.
루이와 제시카만이 용병들과 간 간이 대수림을 다녀왔을 뿐,영 지 일 등으로 바빴던 제이크까지 참여한 대수림행은 정말 오랜만 이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레이첼 영주와 마법사
앰버는 참여할 수 없었지만,두 사람의 위치를 생각하면 참여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들 대신 새롭게 어린 두 수습 사제,이네트와 알리바가 일행에 참여했다.
그들은 어린 겔드 신관들의 피 난처를 마련해 준 보답이자,자 신들의 훈련을 위해 따라온 것이 었다.
먼저 수습 사제들을 대표해서 성력을 지닌 이네트가 참여했고, 그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년 사제 알리바가 같이 가게 되었
다.
사실 반쪽자리 성력을 지닌 알 리바의 참여에는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제이크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그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리고 소규모의 용병대가 일행 과 함께했다.
그들의 전신은 과거 대수림을 통해 몰락한 귀족을 탈출시킬 때 같이했던 맥 용병의 파티였다.
과거 파티장이었던 중년 용병 맥이 용병대장이 되어 만든 용병 대로,파티원들이 용병대의 주축 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영지의 소문이 나자,남들보다 빨리 루테리아 영지에서 넘어왔었다.
그리고 소문을 내지 않을 만한 용병대를 찾던 제시카의 눈에 걸 려,이 탐사대에 참여하게 된 것 이다.
이렇게 출발할 때는 모든 게 순 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일행이 출발하기 위해서 모였을 때,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인원 중에 짐꾼도 없고,던전 탐사에 걸맞은 구성도 아니었기
때문에 맥 용병대가 제이크 일행 에게 따졌던 것이다.
베른도 보급 물품이 보이지 않 자 의문을 가졌지만,제이크 파 티의 배낭을 확인하고 모두 입을 닫고 말았다.
영지 제일의 마법사.
속칭 기적의 마법사가 있는 파 티가 어떻게 그들끼리 대수림을 누볐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배낭 속에는 말도 안 되는 엄청 난 공간에 각종 식량과 포션,보 급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수십 명의 짐꾼 이 지고 가는 양보다 몇 배는 많 아 보였다.
"이런 마법 가방을 하나도 아니 고,여러 개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가방을 본 베른이 부러움에 한 숨을 내쉬었다.
아인족의 나라들에도 무게나 부 피를 줄여 주는 마법 아이템은 있었지만,전부 커다란 궤짝이나 수레 크기의 물건들이었다.
그것도 몇 개 없어 실제로 쓰는 물건은 없었고, 그나마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가방 하나만 있으면 대수 림을 넘을 때 그런 고생을 할 필 요가……
제이크의 눈치를 보며 베른이 중얼거렸지만,제이크는 들은 척 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아이템의 위력을 잘 아는 제이크였다.
값싸게 넘길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성을 나선 뒤,일행은 잡풀로 우거진 아스굴론 영지를 관통해 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곳은 영지가 버 려진 뒤,얼마 전까지 몬스터들 이 자리를 잡고 있던 지역들이었다.
"정말 영주님이 성에 자리 잡기 전에는 몬스터들로 들끓었단 말 이지. 대수림 몬스터들에 비해 변형 동물에 가깝긴 했지만,그 래도 만만찮은 놈들이었지."
용병대장인 맥이 신기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부 마법사님이 하신 일이라 던데요?"
"껍,전에는 마법사님인지도 몰 탔단 말이야. 알았으면 얼른 우 리 쪽으로 데려오든가 제시카 파 티에 꼽사리라도 끼었을 텐데."
제이크를 훔쳐보며 용병대장과 원래 파티원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용병대원들 과 두 어린 사제가 선망 어린 눈 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참,몬스터들이 안 보인다고 너무 마음 놓지 마. 대수림 근처
로 가면 여기서 밀려난 몬스터들 이 바글거리니까. 몬스터들끼리 싸워 꽤 숫자가 줄기는 했지만, 남은 놈들만 해도 상당한 숫자 야."
맥과 용병이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새로 용병대에 들어온 용병 들과 수습 사제들에게 해 주는 일종의 조언이었다.
주변 지역에 대한 역사와 지금 상태에 대한 설명,그리고 마법 사의 대단함과 주변을 잘 살피라 는 이야기까지.
평범한 대화였지만,그 속에 중
요한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런데 아깝네요. 정말 비옥해 보이는 곳인데. 이렇게 내버려 두고 있으니."
맥의 말에,주변을 둘러보던 이 네트 수습 사제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거야 아직 몬스터 웨이브도 해결된 게 아니니까. 그래도 루테리아 영주 성 서쪽 땅은 조금 씩 개간되는 모양이더라고. 겨울 되기 전에 추수하면 몬스터 웨이 브 전에 도망칠 수 있을 거라 나?"
제시카는 이네트의 말에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서쪽 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 웠다.
"도망치다가 엉덩이에 이거나 먹어라!"
"호호."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이네트 가 작게 웃기 시작했고,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리바는 빙 긋이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은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제이크는 사제들의 웃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그가 두 사제 에게 벌인 공작은 대실패였던 모 양이었다.
그동안 계속된 사탕발림에도 한 번도 웃지 않았던 이네트가 제시카의 말 한마디에 웃음을 터트리 니 힘이 빠졌다.
그때,두 사제를 웃게 만들었던 제시카가 제이크를 돌아보며 소 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둘은 나에게 맡겨.'
제이크의 공작은 실패일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전부 들킨 모양이었다.
그동안의 삽질에 다시금 한숨이 절로 나온 제이크였지만,그래도 제시카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도 제시카는 두 사람에 게 붙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수림에 도착할 무렵에 는 함께 제이크를 욕할 정도로 친해져 버렸다.
아무래도 제시카의 친화력은 나 이와 국경과 직업을 초월한 모양
이었다.
모두가 말을 타고 달린 덕분에, 일행은 반나절 만에 대수림 근처 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맥이 말한 몬스터 무리를 보게 되었다.
"양처럼 보이는 몬스터네요."
"아마도 마나에 오염되기 전에 는 양이었을 겁니다."
제시카의 말처럼,대수림 앞 벌 판에 모여 있는 몬스터는 거대한 뿔을 가진 양들이었다.
물론 양과 비슷한 점은 뿔과 몸 의 형체뿐이었다.
"하지만,아무리 생김새가 비슷 하다고 해도 저런 덩치면 양이라 말하기는 힘들겠죠."
얼굴 몇 배 크기의 둥그렇게 말 린 뿔과 울퉁불퉁한 근육 덩어리 의 네 다리는 눈앞의 몬스터를 양이 아니라 네 발 달린 마족처 럼 보이게 만들었다.
"숫자가 많아 쉽게 통과하지 못
하겠는데?"
단지 들이받는 것밖에는 공격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몬스터 였지만,백 마리가 넘게 한 자리 에 모여 있으면 그 자체가 난공 불락의 성이었다.
하지만,제이크는 몬스터의 숫 자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시간이 없으니 돌파합니다."
모든 일행이 놀라 그를 돌아보 았지만, 제이크는 담담히 주문을 외울 뿐이었다.
"이에는 이,힘에는 힘. 네 육체 는 강철 같고,네 힘은 거인과
같으니 적은 너에게 달려와 자신 의 힘으로 분쇄될 것이다."
제이크의 주문이 끝나자, 루이 의 몸과 방패가 붉게 물들기 시 작했다.
"어라,몸이 가볍네. 힘도 넘 쳐!"
뜨거워지는 몸에 덩달아 흥분한 루이 였다.
"루이가 먼저 달려가. 마법을 걸었으니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거야."
마법이 걸려 힘을 주체할 수 없 었던 루이는 제이크의 말에 신나
서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덤벼! 루이 님이 상대해 주겠다."
말 이름이 산초는 아니었지만, 몬스터 떼를 향해 달려가는 루이 의 모습은 마치 풍차를 향해 달 려가는 돈키호테 같았다.
붉은 유성처럼 돌진하는 그의 모습에 제이크는 작게 용서를 비 는 사이, 몬스터들은 루이의 모 습에 흥분해 달려들었다.
매애애애애!
덩치에 걸맞지 않은 목소리로 울어 재낀 몬스터들은 앞뒤 가리
지 않고 루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몬스터 떼가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코뿔소들이 한가득 달려오 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도 힘에 취한 루 이는 그런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뒤,홍분한 마나 사용자와 분노한 몬스터 떼가 충 돌했다.
쿠에에엑!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늘 로 튕겨졌고,루이는 성격에 맞
지 않게 크게 소리를 질러 댔다.
"다 덤벼! 내가 무적이다!"
앞선 몬스터들이 루이와 부딪쳐 하늘을 날았지만,뒤따라오던 몬 스터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루이를 향해 몸을 내던질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뛴 루이는 정 말 제이크가 말한 대로 몬스터 떼를 관통해 대수림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다행해 몬스터들은 대수림 앞까 지만 루이를 추적했고, 루이는 기쁜 마음에 뒤를 돌아보며 소리
쳤다.
"모두 무사하죠? 제가 다 뚫고 나왔……
크게 소리치던 그는 곧 어리둥 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뒤에 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라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곧 자신과 좀 떨어진 곳에서 일행을 발견했다.
일행은 이미 대수림에 도착해 있었다.
"수고했어. 네가 몬스터들의 시 선을 끌어 준 덕분에 몰래 넘어 올 수 있었어."
제이크가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다.
일행은 루이가 몬스터를 들이박 는 동안,마법으로 기척을 숨긴 채로 크게 우회해 대수림에 들어 섰던 것이다.
"뒤에서 따라오는 거 아니었나요?"
"네가 너무 요란하게 시선을 끌 어서 말이야. 위험할 것 같아 조 금 돌아온 거야."
루이에게 몬스터를 뚫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뒤따라가 는 사람들이 무사하리라는 보장
은 없었다.
물론 루이가 요란하게 굴도록 광폭화 마법을 걸은 것도 제이크 였고,몬스터들이 달려들도록 만 든 것도 제이크였지만,무사히 일행을 통과시킨 것으로 제이크 는 모두에게 떳떳할 수가 있었다.
'역시 마법사. 무시무시해.'
'마법사님은 가까이 가면 안 되 겠어.'
물론 그 떳떳함은 자기 혼자 느 끼는 것이었기에 제이크는 결국 제시카에게 옆구리를 쥐어뜯기고
말았다.
"아니,그럼 제대로 미리 말을 하던가. 또 말없이 행동해서 사 람들이 무서워하잖아!"
그렇게 한바탕 혼이 난 제이크 와 일행은 잠시 뒤,탈진한 루이 와 함께 대수림에 진입을 했다.
몇 배의 힘과 버서커 마법,그 리고 적 공격을 반사하는 마법까 지 몸에 걸고 싸웠으니 루이 몸 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덕분에 루이는 말에 실려 끙끙 앓게 되었다.
다행히 대수림 안에서는 오히려 몬스터와의 싸움이 많지 않았다.
영지에서 밀려난 몬스터들과의 싸움 덕분에 대수림 외각의 몬스 터들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가끔 덤벼드는 몬스터들은 제이크와 제시카 손에 모두 정리되었다.
그리고 일행은 얼마 뒤,우거진 나무들 사이에 묻혀 있는 던전과 그 앞에서 낡은 천막을 치고 일 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게 되 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건장한
용병들로 보이는 사람들이었지 만,제이크의 눈에는 그들의 본 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날카로운 손톱과 입술 밖으로 삐져나온 어금니,그리고 옷 사 이로 삐져나온 털.
마치 전생에서 보았던 영화와 소설 속의 종족이 실제로 등장한 것 같았다.
"설마…… 오크?"
일행 앞에 나타난 호족의 모습 은,제이크 눈에는 오크처럼 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