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주술사 투스카의 설명이 계속 이 어졌다.
"날아다니는 놈을 잡기는 어려웠 지만,땅에 붙어 있는 놈을 우리 가 상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던전 밖으로 나온 지네형 디스트로이어를 던전을 지키던 아 인족들이 공격했고,괴물은 상처 를 입고 달아났다.
"그런데 다리가 많으면 정말 빠 르다. 여러 종족이 계속 추적했지 만 잡을 수 없었고,결국 대수림 에 들어서고 말았다."
그 뒤로는 아인족들은 대수림을 우격다짐으로 통과할 수 있는 호 족들로 추격대를 편성하여 이곳까 지 디스트로이어를 추격해 온 것 이었다.
"거의 잡을 뻔했는데,놈은 부상
을 입고 이 던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제는 우리가 던전 공략 을 잘 못한다는 거다. 땅꾼 놈들 이 있었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텐 데. 여기로 온 건 우리들뿐이라 어쩔 수 없이 너희들에게 도움을 부탁한 거다."
말을 끝낸 주술사는 지친 얼굴로 야영지를 만들고 있는 호족들에게 다가갔다.
"머리를 너무 써서 피곤하다. 다 들 비켜."
주술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터를 만들던 덩치들이 뒤로 물
러섰다.
그러더니 주술사는 이상한 춤을 추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쿵더덩,쿵덩.
그의 발구름과 함께 울퉁불퉁한 땅이 점점 평평하게 변해 갔다.
'굿거리장단이냐.'
상상 이상의 광경을 보게 된 제이크 일행은 넋을 놓고 야영지가 만들어지는 것을 구경했다.
이윽고 엄청난 공터가 만들어졌다.
일행들은 다 만들어진 야영지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커다란 덩치의 호족들이 놀랄 차례였다.
제이크 파티의 가방 속에서 천막 들이 튀어나와 야영지에 펼쳐진 것이다.
용병들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미 리 본 광경이었기에,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만든 기적인 양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맥 대장과 고 참 용병들에게 욕을 먹고 말았다.
"뭐 해! 니들이 마법사냐! 식사 준비나 해!"
"희!"
덩달아 고개를 세웠던 어린 두 사제는 맥 대장의 잔소리에 기겁 한 얼굴로 요리를 하러 달려갔다.
아직 식사 시간은 되지 않았음에 도 요리라는 소리에 덩치들의 눈 이 벌겋게 변했다.
제이크의 눈에는 입에서 침까지 흘리는,먹이에 눈이 돌아간 멧돼 지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날의 식사는 용병들과 제이크 일행에게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 았다.
커다란 덩치의 호족들은 끝없이 음식을 탐했고,덕분에 요리를 만
드는 불은 한참 동안 꺼지지 않았다.
제이크 일행이 메고 온 식자재는 그렇게 순식간에 확 줄고 말았다.
마치 웬만한 대군이 식사를 한 것 같은 모습에,제이크 마저 질 려 버렸다.
"지원을 부탁할 만하군요."
"뭐…… 평상시에는 이 정도는 아니에요. 그동안 현지 조달을 한 탓에 다들 배가 고팠을 겁니다."
베른이 미안한 듯이 변명을 했지 만,평범한 인간의 몇 십 배를 먹 어 재끼고 바닥에 축 늘어진 호족
들을 보니,평상시에도 만만치 않 을 거라고 제이크는 생각했다.
-마도 제국 때도 저 돼지들의 식성이 문제였죠. 군대 전체를 저 놈들로 하기에는 유지비가 감당해 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에,제이크는 일을 빨리 해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엄청난 양을 가져 왔다고 생각했 는데, 잘못하다가는 모자랄 판이 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일행은 던 전에 바로 진입하기로 했다.
"너희 두 사람은 우선 이곳에 남아. 우선은 경험을 해 봐야 하니 까."
제이크는 두 사제를 야영지에 남 게 했다.
미래에 대단한 활약을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지금은 아직 어린 사제들일 뿐이었다.
괜히 위험한 곳을 데려갔다가 죽 거나 다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용병대 일부와 호족 두 명에게도 야영지를 지키라 말한 뒤에,일행 은 횃불을 들고 던전으로 향했다.
루테리아 영지보다 남쪽에 있기 때문인지,던전 주변의 나무들이 활엽수들이었던 것처럼 던전의 형 태도 루테리아 영지에서 보던 것 과 달랐다.
지하로 향하는 구조는 비슷했지 만,이곳의 던전은 비밀스러운 지 하 동굴 같은 느낌이 아니라 버려 진 유적 같은 느낌이었다.
지상에 남겨져 있는 건축물들도 오래전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의 일부로 보였고,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통로처럼 보였다.
통로는 꽤 길게 아래로 향하고 있었고,부서지지 않은 함정도 상 당수가 남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제시카와 루이의 손에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아래로 내려간 일 행은 커다란 지하 광장과 마주하 게 되었다.
"흠,아무래도 여긴 지하 신전 같은데요."
내려오면서 벽과 바닥을 살피던
제시카가 마지막으로 눈앞에 펼쳐 진 높은 천장과 넓은 광장을 보며 결론을 내렸다.
"광장형이다. 모두 진형을 갖춰!" 뒤따라 통로를 나온 용병들이 맥 대장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족들이 광 장으로 들어섰다.
일행이 들어선 지하 광장은 예상 보다 더 큰 모양이었다.
커다란 덩치들이 들어섰는데도 전혀 표가 나지 않았다.
광장 바닥은 단단하고 평평한 돌
을 사각형으로 이어 붙여 만들어 져 있었고,천장을 받친 기둥들은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었다.
제이크가 보기에도 이곳은 전생 에 봤던 그리스 신전과 많이 비슷 했다.
일행은 횃불을 들고 조용한 지하 광장을 걸어갔다.
"비어 있는 곳일까? 너무 조용한 데?"
용병대의 선두에서 걸어가던 맥 대장의 말에 제시카가 고개를 저 었다.
"전혀요. 신전형이라서 그런지
함정은 없지만,살고 있는 몬스터 들은 있었어요."
그녀는 횃불에 비친 바닥을 가리 켰다.
그곳에는 붉은 핏자국이 길게 이 어져 있었다.
"이런 핏자국과 바닥이 패인 흔 적이 여러 곳에 나 있어요."
"엥? 핏자국이 있었어? 근데 몬 스터의 시체 같은 건 보이지 않았 는데?"
"불도 약하고 잘 찾지 않으면 보 이지 않을 정도로 약한 흔적이에요. 그리고 시체는 보일 리가 없
죠."
제시카는 핏자국을 가리키던 손 을 전방을 향해 들어 올렸다.
"핏자국은 전부 앞쪽을 향해 나 있어요. 뭔가에 의해 끌려갔다는 거죠. 거기다 흔적을 보니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에 의하면,이곳을 침 입한 괴물이 원래 이 던전을 장악 했던 몬스터들을 모두 죽인 뒤 안 쪽으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였다.
"잡혀간 몬스터는 작은 놈들인 가?"
"아뇨,꽤 큰데요. 중형급이에
요."
제시카의 말에 맥이 심각한 표정 이 되었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무서운 괴물 인 모양이었다.
맥뿐만 아니라 제시카의 말을 들 은 다른 용병들도 걱정하는 표정 이 되었다.
그때,그들의 뒤쪽에서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어차피 안 내만 해 주면 우리가 해결한다."
일행 뒤쪽에서 어슬렁거리며 따 라오고 있는 주술사의 목소리였
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호족 들도 가슴을 두들기며 동의를 표 했다.
"아무래도 우린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자신감 있는 주술사의 말에 용병 하나가 다른 용병에게 속삭였다.
"바보냐? 던전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무력만으 로 됐다면 기사들만으로 탐사대를 조직했겠지. 우리가 필요했겠냐."
"뭐,기사 비슷한 사람들끼리 던 전을 턴 파티도 있잖습니까."
그 용병이 눈짓으로 선두에 선 제이크 파티를 가리켰다.
꽤나 정곡을 찌른 말에 고참 용 병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딴 청을 부렸다.
"아니,죽은 몬스터들을 왜 끌고 간 거야? 잡아먹을 거면 그 자리 에서 잡아먹을 것이지."
용병의 중얼거림은 선두에 서서 걸어가고 있던 제이크의 귀에도 들렸다.
마법으로 청각을 강화한 덕분에 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됐다고 투덜 거린 제이크였지만,그는 곧 용병
의 고민에 동참하고 말았다. 용병의 말처럼 이곳이 괴물의 둥 지도 아닌데 죽은 몬스터의 시체 를 가져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괴물이 몬스터 시체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 었고,리치 마법사처럼 좀비로 만 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 지도 않았기에,한참을 고민하던 제이크는 결국 포기를 하고 말았다.
'정말 몬스터는 왜 끌고 갔지?'
같은 시각.
끌려간 몬스터들은 길게 이어진 신전 길의 맨 끝,신전의 거대한 제단 위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체가 되어 제단에 포개진 몬스 터는 이 지역과 던전을 지배하던 하마처럼 생긴 중형 몬스터였다.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랄 맞은 성격 덕분에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몬스터였다.
그리고 겹겹이 쌓여 있는 몬스터 들 맨 위에는 다른 몬스터들보다
몇 배는 큰 몬스터가 반쯤 뜯어먹 힌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그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들을 지 배하는 몬스터로,이 재단에 자리 를 잡고 있던 보스 몬스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폭한 울음 으로 주변을 떨게 했던 몬스터였 지만,지금은 이렇게 홀로 찾아온 지네 괴물의 먹이가 되어 있었다.
츠츠츠-
거대한 덩치들이 산처럼 쌓여 있 는 제단 위로 거대한 지네가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 키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긴 지네는 과거 날개가 달려 있을 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닮은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피부 정도였다.
거대한 지네는 시체들을 꼼꼼히 확인하며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스 몬스터 의 시체에 머리를 파묻고,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지네의 많은 다리 중에는 잘려 나간 다리들도 꽤 보였지만,대부 분의 다리들은 거의 복구되어 있 었다.
몬스터를 먹어 치우는 것으로 호
족들에게 당한 상처를 거의 회복 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파먹던 지네는 어 느 순간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다리의 감각 기관에 색다른 진동 을 느꼈던 것이다.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죽 인 뒤에는 원래 있었던 진동 이외 의 것은 느끼지 못했던 지네였다.
새로운 진동이 느껴졌다는 것은 던전에 적이 침입했다는 이야기였다.
지네는 그동안 자신을 추격했던 이상하게 생긴 인간들을 떠올렸
다.
발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그 인간 들의 발걸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로 인해 이렇게 던전에 몸을 피하게 됐는데,다행히 몸을 거의 회복한 지금에서야 던전 안에 들 어온 모양이었다.
지네 괴물은 쌓여 있는 몬스터 시체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 뒤에 만족한 듯 시체의 산에서 내려와 제단 뒤로 물러섰다.
준비는 충분했다. 자신이 당한 상처를 돌려줄 때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긴 광장의 끝에 도착한 일행은 신전의 끝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제단과 그 위에 놓인 몬스터 시체들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이게 다 뭐야!" 사람들은 몬스터 시체를 보고 눈 이 둥그렇게 변했다.
"설마,몬스터 시체로 제사를 지 내는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될 것 같은 의견도 나왔다.
그 와중에 제이크는 움찔거리는
시체를 보고 가물거리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제이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게 소리쳤다.
"모두 후퇴해! 증식형이야! 시체 에서 새끼들이 나올 거야!"
평상시처럼 존댓말을 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면서 제이크는 급하게 주문 을 외웠다.
용병대는 제이크의 말에 따라 다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호족들은 등에 매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오히려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 시체들이 폭 발했다.
푸악!
그리고 폭발한 시체 안에서 작은 지네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츠츠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