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화
미래의 일을 전부 이야기해서 아 인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 겠지만,아직 아인족들을 모두 믿 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이어진 끈을 자
를 생각도 없었다.
"저도 저 괴물들을 막기 위해 노 력하는 중입니다."
그러고서 잠시 말을 멈췄던 제이크가 주술사의 눈을 맞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괴물들에 대한 여러 가 지 정보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얻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전부 말할 수는 없지만,떡밥은 던져 놓았다.
제이크의 말에 베른은 난감한 표 정을 지었고,주술사는 묘한 눈으
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한 번 더 주술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안 하겠지?"
"한 번으로 끝입니다. 그 정도면 최대한 배려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크 말에 주술사는 고개를 끄 덕이면서도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그럼 전 던전을 살펴봐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제이크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제이크는 던전으로 들어가기 전 에 두 어린 사제에게 말을 건넸다.
"너희도 같이 갈래?"
갑작스러운 전투로 놀랐을 두 사 람에게 제이크는 던전을 구경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걸로 두 사람의 기분이 나아지 기를 바랐다.
"아,정말요?"
"좋아요!"
다행히 두 사람은 제이크의 제안 에 기뻐했다.
역시 아직 어린 사제들이었다.
던전이라는 소리에 두 사제가 눈 이 반짝였다.
그렇게 네 사람이 다시 던전 안 으로 들어섰다.
"제시카는 유물이 있나 좀 찾아 봐 주세요. 전 사제님들하고 제단 쪽으로 가 볼게요."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에서 제이크는 제시카에게 부탁을 했다.
"그래!"
제시카는 신이 나서 아래로 달려 갔다.
제시카가 사라진 뒤에,제이크는
두 사제와 함께 지하 신전을 걸어 가기 시작했다.
"와! 이런 게 던전이구나."
어린 사제들은 높은 천장과 나란 히 늘어선 기둥들을 정신없이 쳐 다봤다.
제이크는 그 모습을 보며 데리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몸은 좀 어때?"
시간이 지나 던전에 대한 호기심 이 좀 가라앉자,제이크는 알리바 에게 몸 상태를 물었다.
좀 전에 지네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 낸 알리바였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피투성이 가 된 넝마 같은 옷을 보면 얼마 나 상처가 컸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 문제 없어요……
알리바의 말처럼 그의 팔은 상처 는커녕,작은 흠집도 보이지 않았다.
"겔드 신께서 반쪽 성력을 주신 대신에 치유의 은사는 훨씬 뛰어 나게 주셨나 봐요."
알리바는 새로 꺼내 입은 옷의
팔을 걷어 올렸다.
"좀 전에 뼈가 보일 정도로 갈라 졌던 팔이에요. 상처가 전혀 안 보이죠? 덕분에 큰 상처에도 무사 할 수 있었지만……
알리바는 낮은 한숨으로 말을 끝 맺었다.
전에도 들었지만,그는 자신의 괴물 같은 자기 치유 능력보다 다 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을 더 원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살아남았고, 이네트도 구할 수 있었던 거잖아."
"맞아요. 덕분에 살았다니까. 알 리바,너는 어깨를 펴고 다녀도 돼."
알리바는 이네트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지만,그래도 위로가 됐는 지 표정만은 전보다 밝아져 있었다.
제이크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역시 여행이 최고야.'
좀 전의 일로 알리바가 자신의 힘이 가진 유용성을 깨달은 것도 잘된 일이었지만,두 사제가 그에 게 편하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제이크는 더 기뻤다.
그렇게 평범한 잡담을 나누며 지 하 신전을 관통한 세 사람은 몬스 터들의 시체가 쌓여 있는 재단에 도착했다.
재단 위에는 불이 한창 타오르고 있었다.
던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제이크의 지시대로 몬스터의 시체를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타닥, 타탁,펑!
불타는 몬스터의 시체 내부에서 는 가끔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지네 괴물의 알이 불길에 깨진 것이었다.
다행히 지네 괴물의 알껍데기와 속에 있던 새끼 지네 괴물은 불길 정도로 충분히 없앨 수 있는 것 같았다.
몬스터들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용병대에서 무척이나 아까워했지 만,괴물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봐? 어차 피 마석은 불타지도 않을 거잖아. 빨리 주변 수색이나 해."
맥 용병 대장이 넋을 놓고 보고
있는 용병들을 혼냈다.
"대장님도 저 검은 괴물을 보고 아까워했잖아요."
한 용병의 반박에 찔끔한 맥이 소리쳤다.
"그거야,마석도 안 나오고 가공 도 불가능해 보여서 그런 거지!"
바닥에 흩어져 있는 지네 괴물 시체 중에는 뭔가 해 보려던 흔적 이 있는 시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해체된 시체들에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용병대는 금 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용병 대장의 말대로,저 디스트
로이어들은 마석도 몸에 지니지 않았고,껍질이나 살로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대륙이 멸망하던 시절,사람들은 괴물들이 몬스터처럼 쓸모라도 있 었으면 그렇게 쉽게 유린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마나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이 있 고,성장하고,끝없이 쏟아져 나오 는 괴물들과 평범한 몬스터를 같 은 선상에 두기는 무리였다.
돈이 되거나 몸에 좋다면 존재하 지 않는 용도 잡을 사람들이 바로 용병들이니,뭔가 괴물 안에 쓸 만한 것이 있었다면 그렇게 몸을 사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비꼬듯 농담을 한 것이었다.
"난 실험용으로 가져가야겠지."
제이크는 등에 메고 있는 가방에 지네 시체들을 하나하나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용병들이 수군거 렸지만,제이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괴물에 대해 뭔가 발견할 수 있
다면 눈앞에 있는 이 징그러운 지 네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제이크였다.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괴물을 모으는 제이크에 대한 수군거림은 더욱 커져 갔다.
"저거 이상한데."
"분명 전하고 달라졌지?"
그런데 아무래도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제이크는 수 군거리는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용병들은 제이크가 아니라 제단 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제단에 뭐가 있다고.'
시선을 돌려 봤지만 제단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단 위에는 여전히 불타고 있는 몬스터들뿐이었다 .
불길이 아까 전보다 더 높은 곳 까지 치솟고 있는 모습만 눈에 들 어왔다.
"잠깐,저 높이까지 불길이 솟구 쳤다고?"
제이크는 용병들이 왜 웅성거리 는지 알 수 있었다.
몬스터들을 태우고 있는 불길이 전과 다르게 위로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제이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 지 금방 눈치챘다.
제단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두 사제 때문이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 는 두 사람의 성력에 제단이 반응 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하던 작업을 서둘러 마 무리 지은 뒤에 제단 앞으로 가서 사제들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기도가 끝났다.
그러자 높이 솟았던 불길이 조금 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용병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제이크와 달리 마 나와 성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 은 의아한 기분만 남긴 채로 관심 을 끊고 말았다.
숯처럼 까맣게 타 버린 몬스터들 은 제단 아래로 내려졌다.
예상대로 내부에 있던 마석은 멀 쩡했다.
그제야 용병들이 전부 달려들어 몬스터들의 내부에 있던 마석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진짜 있다…… 캬아!"
"이건 정말 큰데?"
"이건 꽝이야. 에잇!"
용병들은 신나게 마석 캐는 데 열중했다.
지네 괴물에 뱃속을 뜯겨 버린 몬스터들에게서는 마석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그래도 채취된 마석 의 양은 상당했다.
그렇게 한참 작업을 마치고,일 행은 던전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저녁이 훨씬 지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 던전은 깊지 않아 당일로 끝낼 수 있었다.
호족들은 옛날에 던전을 빠져나 가 파티 중이었는데,용병들과 제이크 일행도 그 파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역시 제이크의 예상대로 평상시 호족들의 식성도 상상 이상이었다.
일이 끝나 술까지 마시기 시작하 자,일행의 가방은 급속도로 홀쭉 해지기 시작했다.
'휴우,내가 이럴 줄 알았지.'
제이크는 홀로 한숨을 짓고는 말
았다.
그렇게 한참 파티를 하는 도중 에. 따로 던전을 확인하던 제시카 가 위로 올라왔다.
"망했어! 따로 함정도 없고,숨 겨진 장소도 없어. 완전 꽝이야."
제시카는 무척이나 침울한 표정 이었다.
"조금 뒤 파티가 끝나고 같이 한 번 내려가 보죠."
"아무것도 없다니까."
"사제 분들도 유물을 찾는 걸 구 경해 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같 이 가실 거죠?"
제이크 옆에서 술 대신 우유를 마시고 있던 두 사제는 갑작스러 운 권유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여태 던전을 둘러봤는데 또 내려 가라니.
그런데 제이크에 이어 제시카도 두 사람을 꼬시기 시작했다.
"아,그게 좋겠다! 같이 가자. 내 가 실력을 보여 줄게."
눈치 빠른 제시카가 제이크의 말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꽝이라고 말한 장본 인이 활기차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두 사람은 더 어리둥절했다.
파티가 끝난 뒤,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각.
불침번을 자청한 루이만이 깨어 있을 때.
잠자리에 들지 않은 제이크와 제시카,두 사제가 다시 던전 안으 로 들어섰다.
용병들과 호족들은 잠에 빠져, 일행이 다시 던전에 들어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주술사 투스카가 제이크의 인식 저하 마법을 뚫고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약속한 것이 있었기 에 그는 모른 척을 해 주었다.
일행은 달리다시피 지하 신전을 가로질렀다.
"제단이 성력에 반응을 했다고?"
"네,두 사람도 느꼈죠?"
"헉,헉,성력이 움직이긴 했는 데…… 그냥 기도 때문이 아니었 나요?"
이네트의 말에 제시카가 반색을 했다.
"그럼 가능성 있겠다. 왜 아무것 도 없나 했더니 성력에 반응하는 거였나 보네. 근데 같은 신을 섬
기는 곳이었나? 왜 성력이 반응하 지?"
제시카의 물음에 두 사제는 어깨 를 으쏙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그들은 제단 앞에 도착했다.
"헉,헉,에고 운동을 해야겠어요. 다들 멀쩡한데."
"신력은 마법이랑 충돌해서 지원 마법을 걸어 줄 수가 없었네요."
"휴우,두 분이야 마법사나 마나 사용자니 힘이 안 드는 게 당연한 건데. 넌 왜 멀쩡한 건데?"
치유술을 이용해서 이네트는 겨
우 숨을 돌리며 그녀가 화살을 알 리바에게 돌렸다.
"나도 잘 모르겠어. 좀 전에 크 게 다치고 난 뒤에 몸이 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
지금까지는 지네 괴물에게 다친 정도로 부상당했던 적이 없었던 알리바였기에,성력이 자신의 몸 에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쓰면 쓸수록 강해지고,상처 난 뒤에 회복하면 더욱 튼튼해지지.'
미래에 성기사로 활약한 알리바 는 고문에 가까운 학대와 싸움으
로 자신의 힘을 키웠었다.
피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리는 과 정에서 그는 마나 사용자 이상의 힘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런 훈련을 시 킬 수도 없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제이크 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나마 이곳에서 큰 상처와 치유 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으니,앞 으로는 알리바가 어떻게 하냐에 달려 있었다.
"자,자,그보다 다시 한번 기도 해 볼래? 그냥 살펴봤을 때는 아
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
제시카의 말에 두 사제는 제단 앞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흠,아까는 제사를 드리는 것처 럼 몬스터를 태우고 있었는데. 그 냥 비워 놔도 될까요?"
제이크는 텅 빈 제단 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성력이 기준이면 뭔가 반응 이 있지 않겠어? 정 안 되면 가 방 안에 있는 남은 고기나 쌓아 놓고 불태워 봐야지."
밖에서 배를 두드리며 자고 있는 호족들이 들으면 도끼를 들고 달
려올 소리를 하는 제시카였다. 다행히도 고기를 날려 먹을 필요 는 없었다.
두 사제가 기도를 하기 시작하 자,제단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 작한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제시카가 휘파람 을 불었다.
"휘익! 이러니 알 수가 없지. 기 술도 좋아. 버튼 자리가 구별이 안 되게 만들었냐."
제시카의 말대로,제단 한쪽 구 석에 빛을 내지 않는 작은 사각 박스가 있었다.
"성력이 안 흐르면 반응도 안 하 는 버튼일 거야. 정말 신기하네. 마법사는 자주 하는 짓이긴 한데, 성력에 반응하는 건 처음이야."
제시카가 버튼을 지그시 누르자. 그그그긍-
거대한 제단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제단이 있던 자리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보물 창고 등장이요!"
제시카가 계단의 모습에 환호성 을 지르며 뛰어드는 모습에 제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
를 따랐다.
이네트와 알리바도 모험을 떠나 는 소년 소녀의 얼굴을 하고선, 조심스럽게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 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