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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38화 (138/222)

138화

기사들의 행진이 지나가고 한참 뒤.

일행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한 고풍스러운 저택 앞에 서 있 었다.

저택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조 금은 쇠락한 듯이 보이는 지역이 었는데,저택의 분위기도 동네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3층 저택과 그 앞에 있는 정원 은 그동안 열심히 관리한 듯 나 름 규모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어쩔 수 없었던 듯,다소 음산해 보였다.

"이 집이 맞나요?"

예상과 다른 저택의 모습에 앰 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을 겁니다."

그렇게 답하며 제이크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저택이 괴물들에 의해 반쯤 무너져 있었는데,이 낡은 쇠창살과 정원의 고풍스러운 조 각들만큼은 그때도 거의 유사하 게 남아 있었다.

"빈덴롤 자작의 집으로 안내해 달라고 해서 찾아오기는 했는데, 정말 자작님을 아시는 겁니까?"

반센이 미심쩍다는 듯 제이크에 게 물었다.

그는 기사들의 행진을 보던 제이크가 별안간 한 귀족의 저택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하는 바람에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결국 반센은 이 저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찾은 귀 족의 집은 내심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낡아 보였다.

거기다 이곳에 사는 귀족은 작 은 광산 하나만 가지고 있는 쇠 락한 귀족 가문일 뿐이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가문의 귀 족을 제이크가 어떻게 아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에 제이크도 이럴 줄은 몰랐

다며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정확한 위치 는 몰라서……

사실이었다.

아니,위치는 알고 있었지만,당 시 폐허가 된 이곳이 어딘지만을 알고 있었던 제이크였기에,설마 귀족 저택이 이런 상태일 줄이라 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뭐,하기야 고객이 원하는 걸 하는 게 좋죠."

다행히 반센은 금세 기분이 풀 렸는지 기운찬 모습으로 정문 옆

에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뎅,탱-

줄을 당기자,문 위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저택에 붙어 있는 마구간에서 하인으로 보이 는 남자가 뛰어나와 일행을 맞이 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마구간 청소를 하다 나온 것인 지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지 만,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 래된 저택의 하인답게 정중했다.

"저는 자작님과 조금 안면이 있

는 마법사입니다. 근처에 들린 김에 안부 인사를 하러 들렀습니다."

제이크가 미리 준비한 말을 꺼 내자,하인은 일행을 기다려 달 라고 말한 뒤에 바로 저택으로 달려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저택 안에 서 하인과 함께 나이가 지긋한 집사가 모습을 보였다.

정장을 입은 반백 머리의 남자 는 누가 봐도 제대로 된 귀족가 의 집사로 보였다.

그는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 일

행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요즘 거리가 흉흉 해서 바로 문을 열어 드리지 못 했습니다. 어서 열어 드리거라."

집사의 말에 하인은 낡은 창살 문을 열었고,일행은 늙은 집사 의 안내를 받아 저택 안으로 들 어설 수 있었다.

"우선 응집실로 안내해 드리겠 습니다. 주인님께는 누가 오셨다 고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마법사 제이라고 합니다. 전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던 학생 이었습니다. 근처를 지나가다 인

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아,그러시군요. 자작님이 기뻐 하실 겁니다. 우선은 이곳 응접 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 오."

일행을 홀 옆에 있는 응접실로 안내한 집사는 자작을 부르기 위 해 방을 나섰다.

집사가 응접실 밖으로 나가자 반센 마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돌아보았다.

"제이 님, 브리티에서 아카데미 를 다니셨었나요?"

물론 제이크도 아카데미를 나오

기는 했지만,이 왕국의 아카데 미가 아니라 당연히 제국 아카데 미 출신이었다.

아카데미는 가정 교사를 두기 힘든 상인이나 하급 귀족,기사 의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 진 교육 기관이었다.

이 집의 주인인 빈덴롤 자작도 과거에 왕국 아카데미에서 강의 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이 집의 집사에게 들었던 제이크는 마법사가 되어 스승을 찾아온 제자라는 형식으 로 이 저택을 방문한 것이다.

"뭐,그렇죠."

제이크가 대충 말을 얼버무리 자,옆에서 앰버가 반센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미소를 짓던 앰버가 바 로 표정을 굳히고 제이크에게 말 했다.

-그런데 방금 나간 집사는 나 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던데요? 몸도 안 좋은 것 같고…….

사전에 제이크에게서 사정을 들 었던 앰버가 걱정이 되었던지 제이크에게 메시지 마법으로 말을 해 왔다.

-예상대로입니다. 아니,딱 좋 습니다.

하지만,제이크는 아파 보이는 집사의 모습에 오히려 안심이 되 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생각했기 때 문이었다.

일행이 응접실에 있는 동안,하 녀들이 차와 함께 다과를 내왔다.

앰버는 나온 과자와 차를 맛본 뒤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저택이 오래되어 낡기는 했지만,분위기도 그렇고 차나 다과도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즉 이 집을 관리하는 집 사와 하녀장의 실력이 나쁘지 않 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조금 기대 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집사가 저택의 주인을 모시고 왔다.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빈델롤 자작은 약간 마른 체형에 조금은 고지식해 보아고,또 어딘가 공 허해 보였다. 그 분위기가 꼭 이

집과 닮아 있었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훑어보 더니 애매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내가 사람을 잘 기 억하지 못해서……. 어찌 됐든 와 줘서 고맙네."

자작은 제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사과해 왔지만,사 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 했다.

"아닙니다. 제가 512기 중에서 도 제일 조용한 축이어서 알아보 지 못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뻔뻔한 제이크의 말에 자작은 표정이 풀렸다.

"근데 복장을 보아하니…… 마 법사가 된 건가?"

"운이 좋아서 마법을 익히게 되 었습니다. 지금도 마탑에 들렸다 가 나오는 길입니다."

"마나의 손길이 닿다니. 하긴 따로 정계에 생각이 없었다면 나 쁘지 않은 선택이지."

자작은 제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사에게 지시를 내 렸다.

"오랜만에 온 손님이군. 식사를

준비해 주게나. 그래도 명색이 내 제자라고 찾아왔는데 그냥 보 낼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집사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식사가 준비될 동안 자작과 제이크는 아카데미 때 이야기로 즐 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이크는 자작의 말에 적당히 동조하는 척하며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에도 맞장구를 곧잘 쳤다.

자작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딘 가 이상하다고 미처 생각지 못하

는 듯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반센은 남 모르게 하품을 했지만,상황을 아는 앰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오랜만에 자작의 저택 에서 오찬이 열렸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처음 일행을 맞이했던 하인마저 원래 하는 일 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옷을 갈아 입고 시중을 들었다.

점심 식사는 무척 맛있었고,분 위기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그런 분위기는 식사가 마쳐 갈 때쯤에 갑자기 깨져 버 렸다.

"죄,죄송합니다. 잠,잠시 자리 를 비워야겠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집사가 자 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을 빠 져나간 것이다.

집사는 혼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는지 남자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나갔다.

제이크 일행이 어리둥절한 표정 으로 자작을 바라보자,자작은 집사가 나간 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집사가 얼마 전부터 몸이 좋질 않아. 신관들 도 고치지 못하고,이유도 모르 겠고. 그래도 그동안 무리를 하 지 않게 해서 괜찮은 듯했는 데……

아무래도 갑자기 닥친 손님으로 인해 몸 생각을 하지 않고 음직 이다가 탈이 난 모양이었다.

다행히 집사가 나간 뒤에도 남 은 사람들이 열심히 움직여서 식 사는 잘 마무리되었다.

그 뒤에 후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집사를 부축했던 하인이 급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집사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습 니다. 아무래도 신관을 모셔 와 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인의 말에 자작의 표정이 어 두워졌다.

"전에도 별로 소용이 없었는 데……. 하아,그래도 어쩔 수 없 지."

신관을 불러 봤자,잠시 안정을 취하게 하는 정도밖에는 안 되었

다.

평범한 하인이라면 큰돈이 드는 신관을 부르지는 않았겠지만,자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허락을 하려 했다.

그때 였다.

"제가 집사님을 좀 봐도 되겠습 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제이크가 끼어 들었다.

"응? 무슨 말인가?"

"제가 비슷한 경우의 환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괜히 자작님의 일에 끼어들면 실례가 될 것 같

아 가만히 있었는데,많이 안 좋 으신 듯하니 제가 잠깐 확인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제이크의 말에 자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멀뚱히 상황을 지 켜보던 반센이 제이크의 편을 들 었다.

"사실 이분은 포션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입니다. 신관이 알지 못하는 병이라면 한번 보게 하시 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반센의 말에 자작이 놀란 눈으 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포션은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었나? 허어,참……. 아무튼 내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니. 따라오게나."

그러고는 그가 하인에게 지시를 마저 내렸다.

"그리고 넌,신관님을 모셔 와 라. 만약을 대비해야지."

자작의 말에 하인이 고개를 숙 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빠 져나갔다.

자작은 제이크를 데리고 집사가 누워 있는 방으로 향했다.

집사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방은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고 있 었다.

"뭔 감기도 아니고,이렇게 방 까지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라 니..

자작의 말에 제이크는 집사가 아니라 방 안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혹시 집사님의 병을 마법사에 게 보여 준 적이 있습니까?"

"없었지. 신관이 있는데 마법사 에게 보여 줄 이유가 없지 않은 가. 물론 포션은 써 보긴 했는데, 효과는 없었다네."

자작의 말에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작의 행동은 당연히 취할 법 한 방법이었다.

하지만,이 병은 마법사가 볼 필요가 있었다.

방 안에 가득한 열기는,단순한 열기가 아니라 마나의 부산물이 었다.

또한 집사가 앓고 있는 병도 일 반적인 병이 아니라,마나에 의 해 생기는 병이었다.

동물이 마나에 의해 몬스터로 변화하는 것처럼,그리고 기사가

마나에 의해 각성하는 것처럼. 일반인들도 마나에 노출되어 이 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어 마법사마저 아는 사람이 없었지 만,훗날,괴물들이 세상을 휩쓸 었을 때는 많은 이들이 이 병으 로 고생을 했었다.

일종의 세기말 병으로 불리는 '마나 감기'.

이름에 붙은 '감기'에서 알 수 있듯,나중에 치료법이 발견이 되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 가 벼운 병이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원인도 모르 고 죽은 사람이 많았다.

바로 눈앞의 늙은 집사처럼.

"역시 예상대로군요. 이 병은 질병이 아니라 마나에 의한 병입 니다."

"마나에 의한 병이라고?"

"네,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 니다. 그래도 마법사에게 보여 줬다면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제가 한번 치료해 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하인이 신관을 데 리고 헐레벌떡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집사가 멀쩡해진 뒤였다.

신관은 건강해진 모습으로 집사 가 자신을 맞이하자 입을 딱 벌 렸고,하인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자작은 기쁜 표정으로 제이크 에게 물었다.

"집사는 내게 가족과 다름이 없 네. 형제나 진배없지. 자네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어. 혹시 원하 는 게 있나? 나도 자네에게 선물

을 하고 싶군."

자작의 말에 제이크가 대답했다.

"아,그럼,혹시 집사 후보로 쓸 만한 사람이 없을까요? 저희 집 이 가문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는 데 집을 관리할 만한 사람이 없 습니다."

"하하,마음 같아서야 자네가 치료해 준 집사를 보내고 싶지 만,그럴 수는 없지. 흠……. 혹 시 제대로 된 집사를 원하는 건 가?"

"아닙니다. 제 집은 하녀 둘이

있는 작은 집에 불과합니다. 아 직 제가 어려서 집을 제대로 관 리해 줄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 서요."

"흠,그럼 저 녀석은 어떤가? 집사가 그동안 키우고 있던 놈이 라네. 아마 지금 집사가 건강해 지지 않았으면,그의 뒤를 이어 우리 집 집사가 되었을 걸세."

자작은 집사 앞에서 기뻐하고 있는 하인을 가리켰다.

당연히 제이크는 그의 말에 환 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제이크가 원하던 사람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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