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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41화 (141/222)

141 화

사람이 늘어 정신없던 창고 안이 한순간에 정리가 되었다.

"식량은 하루치만 가족 단위로 배분하고,나머지는 따로 빼놔 주 세요."

"아픈 환자나 이동이 불편한 분 들은 미리 이야기해 주세요."

"무거운 개인 짐들은 미리 이야 기해 주세요! 지쳐서 낙오될 수 있습니다."

필요한 물건들은 바로 재분배되 었고.

"혹시 짐의 무게나 부피를 줄일 수 있는 마법이나 마법 아이템이 있습니까?"

"아,마법 가방이 있긴 한데……

"그럼,식량과 천막을 따로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이크의 마법 가방은 바로 활용

되었다.

"뭐 하는 사람이죠? 저희 상단에 서 고용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저희 집사장입니다." 알프렛의 활약에 제플린이 군침 을 흘렸지만,제이크가 단호히 거 절했다.

잠시 뒤, 알프렛 덕분에 일행은 바로 출발 준비를 끝낼 수가 있었다.

"뒷골목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순 찰하는 군인들에게는 뒷돈을 찔러 줬습니다만,그래도 안 들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줄발하기 전 제플린이 사람들에 게 주의를 줬다.

"사람들에게 방음 마법을 걸어 놓겠습니다.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 겠지만,그래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제플린을 향해 그렇게 말한 제이크는 창고를 떠나며 사람들에게 방음 마법뿐만 아니라 인식 약화 마법까지 걸어 버렸다.

마법 지팡이가 없어 마나를 모으 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

하지만 전보다 실력이 좋아져서, 시간만 충분하다면 더 효과적인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어두운 밤.

조용한 골목을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기에 시끄 러을 법도 했지만,골목은 조용하 기 그지없었다.

전부 제이크의 마법 덕분이었다.

제플린의 말대로,골목에는 순찰 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수십 명씩 무리 지어서 골목을 통과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사람들은 곧 성벽 가까이에 있는 밀수업자의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밀수업자의 아지트는 평범한 이 층 가정집처럼 보였다.

이 집의 지하에 바로 성 밖으로 통하는 지하 땅굴이 만들어져 있 다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 을 것이다.

"빨리 들어가요!"

사람들이 도착하는 족족 상단 직 원들이 땅굴로 이어진 지하실로 사람들을 내려보냈다.

"더 서두를 수 없나?"

"이게 최선입니다. 굴이 겨우 사 람 한 명 지나갈 크기밖에 안 됩 니다."

직원의 말에,제플린은 집 앞에 서 있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을 바 라보았다.

"날 봐서 어쩌려고. 그 정도 구 멍도 큰 편인 거야. 안 들키려면 어쩔 수 없어."

밀수업자인 노인의 푸념 섞인 말 에 제플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군요."

"그보다 인원이 왜이리 늘었어?"

"그게 사람들끼리 연락을 하는 바람에..

"쯧쯧,마법사라 그런지 자네는 그런 면이 항상 허술하더군."

노인은 제플린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데,이렇게 허술하면서 잘 도 안 들켰군."

"아,사실은…… 동료가 도와줘 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노인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위험해 보여서 안 되 겠어. 난 슬슬 빠질 테니 성공하

기를 기원하겠네."

어차피 돈을 받고 알려 준 길이 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제 노 인은 알 바가 아니었다.

노인이 떠나고 얼마 뒤였다.

삐익-!

조용하던 거리에 호각 소리가 들 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병사들의 목소리가 거리 를 울렸다.

"도망자들이 있다! 찾아라!"

그 소리에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 잡혔다.

"난,난 안 가요. 그냥 조용히 있 으면 될 거예요."

"돌아가자! 아무래도 위험해."

여러 가족이 대열을 이탈해 도망 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남은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래도 재웠던 병사들이 들킨 모양이에요. 시간을 너무 지체했 나 봐요."

앰버의 말에 제플린이 인상을 찌 푸렸다.

"아직 다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앰버는 스태프를 위로 치켜들었

다.

"아무래도 준비한 마법을 써야겠 어요."

"크윽,웬만하면 안 썼으면 했는 데……

아쉬운 표정이 가득한 제플린이 었지만,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 의를 표했다.

"이 방법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 렇게 아쉬워하지 마요!"

그렇게 외치며 앰버가 스태프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붉은 빛이 스태프에 머물기 시작 했고, 똑같은 빛이 일행이 출발했

던 창고에 나타났다.

앰버의 주력 마법인 화염 마법이 었다.

제이크와의 연구 덕분에 원거리 에서도 화염 마법을 구동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창고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붉 게 타오르더니 결국 화려하게 터 져 나갔다.

쿠앙!

도시 한가운데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불이야!"

"적의 공격이다!"

"우선 불부터 꺼!"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불타는 창 고로 향했다.

수색하려던 병사들도 전부 창고 로 달려갔다.

"아,내 창고……

다만 제플린만이 불타는 창고를 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틈을 타,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서둘러 지하로 내 려갔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그 앞을 지키 고 있던 제이크의 눈에 창고의 불 이 아닌 다른 불이 들어왔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불덩 이들.

모두 마법사가 쏜 화염구들이었다.

제국군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밀수업자가 파 놓은 땅굴은 성에 서 좀 떨어진 숲과 이어져 있었다.

다행히 숲은 포위망 바깥에 위치 하고 있었다.

몇 명의 감시병만이 숲을 지키고 있었는데,그들은 모두 마법사들 의 마법에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땅굴을 빠져나온 사람들 은 차마 바로 달아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넋을 잃고,자신들 이 빠져나온 성을 바라보았다.

성이 불타고 있었다.

제국군이 쏘아 올린 화염구들과 불화살들이 성벽을 넘어 거리를 불태우고 있었다.

가끔 화염구와 불화살을 막아서 는 실드가 보이기는 했지만,몇 번 막지도 못하고 실드가 깨져 버

렸다.

마법사의 숫자와 기량이 너무 차 이가 났다.

성안의 사람들이 불을 끄려고 하 겠지만,저렇게 쏟아지는 불을 막 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불타는 성을 향해 제국 군이 본격적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병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올라갔고,성문에서도 격전이 벌 어졌다.

하지만,화염에 휩싸인 성의 모

습에 비하면 그런 전투는 아무 것 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황제가 미친 거 아냐? 설마 모 두 불태울 생각인가?"

제플린의 한탄에 사람들은 울음 을 터트렸다.

"너무해."

"돌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다 죽을 거야!"

모두 분노하고 슬퍼했지만,돌아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공성전에서 민가에 화염을 사용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된 전 술이었다.

물론,상황에 따라 금기는 깨지 기 마련이기는 했지만,적어도 지 금과 같은 순간에는 아니었다.

성을 포위한 상황에서 불을 지른 다는 것은 성에 있는 사람들을 모 두 죽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 넋을 놓고 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귀에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야 합니다. 이곳도 금방 들킬 겁니다. 최대한 성에서 멀어 져야 해요!"

제이크의 말에 사람들이 겨우 정

신을 차렸다.

"그래야겠죠. 살 사람은 살아야 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제 플린이 사람들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중한 몸이었지만,선두에서 사 람들을 이끄는 그의 모습은 숲을 달리는 사슴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행히 숲은 멀리까지 이어져 있 었다.

성의 소란으로 숲은 동물 한 마 리 보이지 않았고,성이 불에 타 면서 주변이 환해진 덕에 일행은

어두운 숲을 어렵지 않게 걸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제이크를 비롯한 많은 사 람들이 아스굴론 영지를 향해 나 아가기 시작했다.

라플란 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지켜야 할 도시가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병사들은 제국군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다.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은 올라오

는 제국군을 밀어내지 못했고,성 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뚫리고 말 았다.

황제는 멀리서 커다란 천막 앞에 앉아 불타는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문과 남문이 열렸습니다. 기 사단은 시청과 관사로 향했고,나 머지 부대는 외각부터 정리 중입 니다."

"성벽 위도 반 이상 정리되었습 니다. 예상보다 저항이 약합니다."

"일부 병력이 북문을 통해 탈출

하려고 했습니다만,전부 격퇴했 습니다."

계속해서 보고가 올라왔지만,황 제의 눈은 불타는 성에서 떨어지 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시가지 쪽은 진입 이 힘들 것 같습니다. 화염이 너 무 거세서……. 마법사님께 말해 서 불을 끄도록 할까요?"

그러던 중,한 기사의 보고에 닫 혀 있던 황제의 입이 열렸다.

"그냥 놔둬. 제국에 대항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놈들도 깨달아 야 하니까."

"아,알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움찔했던 기사가 뒤 로 물러났다.

다시 혼자가 된 황제는 붉게 물 든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이힌테일이 없으니 편하긴 편 하네. 이래저래 딴지가 심해서 짜 증이 났었는데. 이제 좀 속이 개 운해지는 것 같군."

대마도사가 옆에 있었다면 도시 에 불을 질러 버린다는 계획을 실 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였다.

만약 아이힌테일이 옆에 있었다 면 목을 걸고 반대를 했을 게 분 명했다.

물론 지금도 참모들이나 기사들 이 조금씩 반대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황제의 명령을 차마 거부 할 용기가 없었다.

"뭐,제어하는 수단으로 써먹기 는 나쁘지 않지만,너무 나대는 것도 문제지. 잘못하다가는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까."

황제는 대마도사를 황도에 두고 온 자신의 결정을 자찬했다.

그러면서 황제는 바람결에 느껴

지는 피 냄새와 유황 냄새를 한참 동안 음미했다.

"좀 더 참아야겠지. 이제 슬슬 마무리되어 가니까."

아수라장이 된 성을 바라보며 황 제는 자신의 계획을 점검해 나갔다.

"이쪽 반군을 다 정리하고,서쪽 도 정리하면,슬슬 대수림으로 움 직여 볼까? 예상대로 남부 왕국 놈들은 레타니아를 먹으려고 신나 게 싸움 중이니……

지금까지 원하던 목표는 거의 이 룬 황제였다.

예상 밖의 일은 얼마 되지 않았다.

"레이첼 정도이려나……

황제는 잠시 떠오른 전 황태자비 생각에 피식 웃고는 사람들을 불 렸다.

황제의 사색을 보고 뒤로 물러나 있던 기사들과 사용인들이 다가왔다.

다가온 사용인들은 황제의 몸에 갑옷을 입혀 줬다.

그동안 황제는 기사들에게 지시 를 내렸다.

"빠르게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하도록.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반 군을 끝장낸다."

"엡!"

기사들의 대답에 만족한 미소를 지은 황제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빠져나간 놈들은 없겠지?"

"아,그게…… 일반인 몇 명이 동쪽 숲을 통해 달아났습니다."

눈치를 보던 기사의 보고에 즐거 워 보이던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 게 굳어졌다.

"누가 담당하고 있었지?"

"저,앵겔로 자작이……

"군의 포위를 뚫고 도망쳤다고?

일반인이? 그게 말이 되는 소린 가! 당장 잡아오라고 해! 못 잡아 오면 대신 자기 목을 들고 오라고 전하도록!"

황제의 기분이 가라앉자,기사와 사용인들이 바짝 긴장을 했다.

황제가 기분이 나쁘면 누구의 목 이 날아갈지 알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기사 하나가 바로 튀어나갔고, 황제는 굳은 얼굴로 성을 향해 걸 어갔다.

그러면서 뒤에 부동자세로 서 있 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성의 윗대 가리 놈들을 모두 잡아 놓도록. 내가 친히 정의를 집행하겠다."

피를 맛볼 생각에 황제의 얼굴에 다시 즐거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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