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화
자작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한 다 윈은 허탈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마법사 둘도 뚫기 힘들었는데, 마나 화살을 쏘는 궁사라니.
거기다,자작이 죽은 이상 이제
더는 추격이 불가능했다.
그는 바위 뒤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추적을 멈춰라. 모두 뒤로 물러 서!"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 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급하게 후 퇴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물러나는 병사도 있 었지만, 대부분은 뒤도 보지 않고 황급히 달아났다.
마법사와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그 꼴을 본 다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앞을 살폈다.
다행히 마법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간 건가?'
하기야 일반인들을 보호하고 있 는 마법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라면 후퇴하는 병사 들까지 건드리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일반인을 보호하기 위 해 이런 전력을 모으다니. 혹시 저 일반인들 중에 중요 인물이 있 는 건가?"
사정을 잘 모르는 다윈으로서는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근처 부대에 가서 기사들을 모 아 다시 쫓아 봐야겠어. 아무래도 수상해."
주인으로 섬기던 자작이 죽었기 에 그도 앞날을 다시 계획해야 했다.
다행히 이번 일은 그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잡 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린 다윈은 곧 다시 숨을 들이키며 놀 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 어느새 쇠뇌를 든 젊은 남자가 다가와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는 바로 좀 전에 그에게 화살 을 쏘아 보낸 궁사였다.
'대체 어느 틈에 내 뒤로 온 거 지? 그 정도도 눈치 못 챌 만큼 감각이 흐려진 건가?'
다윈은 부상을 입은 탓이라 생각 하고는 어깨를 잡은 손을 내려 검 을 잡았다.
"보내 주는 것 아니었나?"
"병사들은 보내 줄 수 있지만, 기사를 놔줄 수는 없지."
상대의 말에 다윈은 고개를 끄덕 였다.
자신이었어도 부상을 당한 기사 를 놔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곧 다윈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기사를 너무 얕본 모 양이군."
그러면서 다윈은 슬쩍 주위를 살 펴봤다.
하지만 감각에 걸리는 기척이라 고는 눈앞에 있는 사내와 자신, 둘뿐이었다.
아무리 마나를 담은 화살을 쏘는
궁사라고 해도 근접전에서 기사와 일대일로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네 자만심이 너를 죽일 거다!" 왼손에 검을 쥔 기사는 한걸음에 궁사(?)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마나를 실은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카캉!
하지만,그의 검은 허공에서 튕 겨 나가고 말았다.
"실드?"
놀란 그의 눈앞에 쇠뇌의 화살촉 이 보였다.
"말도 안 돼! 마법사라니!"
슈욱! 푹!
그러나 미처 피할 틈도 없이,부 상당한 다윈은 눈앞에서 쏘아진 화살을 고스란히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더 이상 추적자가 없는 것을 확 인한 일행은 하루 뒤에 숲을 빠져 나왔다.
그곳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프 랑코 영지와는 어느 정도 떨어진 영지였다.
그만큼 이미 많은 피난민으로 인 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때문에 영지로 들어가는 검문이 심했다.
하지만 일행은 앞을 가로막는 영 지병에게 얼마 정도의 돈을 몰래 찔러주고는 문제없이 통과했다.
상단 일행은 이곳에서 여러 대의 마차를 구해 아스굴론 영지로 출 발했다.
"저희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도착해서 인사드 리겠습니다."
앰버의 인사에 제플린이 깊게 고 개를 숙였다.
아스굴론 영지의 레이첼 성까지 는 일주일 정도의 거리에 다다랐 을 때였다.
제이크 일행은 루테리아에서 벌 어진 일이 걱정되어,먼저 움직이 기로 했다.
제플린을 비롯한 상단 사람들은 이제 도망자들이라고 생각하기 어 려을 정도로 평범한 행상인들로 보였다.
상단주가 마법사인 데다,만약을 대비해 반센도 이들과 같이 음직
이기로 했기에 자신들이 없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한 제이크 가 내린 결정이었다.
이제 제국군의 추격도 없으니, 이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 더 좋아 보였다.
"영지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모 두 대수림 쪽으로 물러가기는 했 지만,혹시 모르니 영지 경계 부 근으로 용병이나 병사를 보내 놓 겠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제플린은 눈을 껌 벅 였다.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
지만,병사를 보내는 권한을 가진 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 님이 우리 영지 서기관 이에요. 저보다 제이크 서기관에 게 잘 보여야 할걸요?"
앰버의 말에,제플린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제플린 상단의 이주는 상단뿐만 이 아니라 아스굴론 영지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마법사가 상단주인 중견 상단이 영지에 자리를 잡게 되면 다른 영
지와의 물류 교환에 엄청나게 도 움이 될 것이었다.
아스굴론 영지도 한 단계 도약을 해야 할 때였다.
지금까지 루테리아 영지와 대부 분 거래를 했는데,이제 다른 영 지와 거래를 틀 때가 됐다고 생각 한 제이크가 남몰래 입가에 미소 를 띠었다.
상단 일행과 헤어진 제이크와 앰 버,알프렛은 새로 구한 말을 타 고 길을 내달렸다.
제이크의 마법으로 힘을 얻은 말
들은 굉장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전설의 전투마처럼 내달리는 말 들로 인해 앰버는 질린 얼굴로 말 고삐를 꽉 쥐었고,알프렛은 그만 멀미를 하고 말았다.
마굿간지기 출신이라고 자신만만 하던 그였지만,난생처음 느끼는 속도에 그만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알프렛은 달리는 내내 말에 매달 려 신음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단 이틀 만에 아 스굴론 영지의 경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작은 강 을 건너자,일행 앞에 푸른 벌판 이 펼쳐졌다.
얼마 전까지 몬스터들이 배회했 던 황량한 벌판이 풍성한 목초지 로 변해 있었다.
푸른 풀밭에 소와 양이 풀을 뜯 고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밀밭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대수림을 봐도 마나가 많으면 생물들의 성장이 빨라지죠. 몬스 터들이 쓸고 지나가지만 않으면 영지의 농사는 매년 풍년일 겁니
다."
제이크와 앰버는 영지를 보며 만 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걱정으로 아직 영지 서쪽만 농사를 짓고 있 었지만,서부의 농작물만으로도 이번 해는 풍작을 이룰 게 분명했다.
"이제 겨우 영지에 들어섰으니 한참 더 달려야겠네요."
앰버의 말에 알프렛이 하얗게 질 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스굴론 영지도 꽤나 큰 영지였다. 동쪽에 위치한 레이첼 성까지
는 반나절 이상 달려야 했다.
그런데 제이크가 갑자기 말에서 내렸다.
"더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마법사의 방법으로 움직이죠."
그렇게 말하고서 제이크가 바닥 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루테리아 시에서 사용 했던 귀환 마법진이었다.
"제대로 만든 마법진이 아니라서 그때만큼 멀리 이동하는 것이 안 되어 영지까지 온겁니다. 이제 는 편하게 가죠."
그래서 이곳 영지 경계까지 말로
달려온 것이었다.
거기다,백색의 탑 지하의 마법 진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흙바닥 에 마법진을 그리지도 못했을 것 이었다.
제이크가 마법진을 그리는 사이 에 알프렛이 조심스럽게 앰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공간을 넘는 마법은 백색의 마탑만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마 법사님들이 비밀로 하라고 엄청 강조하던데……
알프렛의 말에 앰버가 미소를 지 었다.
"뭐,다른 곳에 있는 것을 그들 이 모르고 있었던 것뿐이겠죠. 그 리고……
앰버는 조금씩 빛을 흘리는 마법 진을 바라봤다.
언제나 봐도 제이크가 그리는 마 법진은 아름다웠다.
"앞으로도 놀랄 일은 많을 거예요."
앰버의 말을 끝으로,제이크가 몸을 일으켰다.
마법진을 완성한 것이다.
-파티마.
-던전 에고와 연결이 되었습니
다. 던전 쪽 마법진도 준비가 되 었습니다.
이제는 이름만 불러도 알아서 준 비하는 에고였다.
제이크는 완드를 손에 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쉽게도 배터리 역할을 하는 마 법 지팡이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제이크가 상황에 따라 마법 지팡이의 도움 없이 직접 대기에 서 마나를 끌어모아야 했다.
"마나,세상의 근원이여. 존재하 지 않는 자들의 기원이여. 내 안 에 모두 모이소서!"
제이크의 주문과 함께 그를 향해 마나가 몰려들었다.
제이크 주변으로 바람이 회오리 쳤다.
그와 동시에 제이크의 몸속에 마 나가 쌓여 가기 시작했다.
현대 마법사,혹은 마법 기술자 들은 삼투압 현상처럼 서클에 마 나를 스며들게 했다.
덕분에 마법을 쓸 때 제이크처럼 마나를 강제로 모을 필요도 없이 서클에 모인 마나를 사용하면 그 만이었다.
대신,서클에 담긴 마나를 모두
다 사용하면 다시 서클에 마나가 모이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반면에 제이크는 현대 마법사처 럼 마나 한계라는 제약이 없었다.
대신 마나를 끌어모아야 하는 시 간이 필요했지만,정신력이 뒷받 침해 주는 한 그의 마나는 무한했다.
"대수림이라면 좀 더 빨리 모였 을 텐데……. 그래도 전보다 마나 가 모이는 게 빨라졌어."
제이크의 실력도 올라갔지만,대 륵 전체의 마나양이 증가한 것도
한몫을 했다.
제이크에게는 좋은 일이긴 했지 만,멸망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 되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제이크는 몸속에 가득 찬 마나를 느끼며 마법을 시전했다.
완드를 든 그의 팔이 앞으로 펼 쳐지자,마법진이 환하게 빛을 발 했다.
[너와 나는 붉은 실로 엮인다. 내 뒤의 시공간은 팽창하여 나를 밀어내고,너와 나 사이의 공간은 접히고 또 접혀서 하나가 된다.
알큐비에레 드라이빙!]
-어 주문이 바뀌었는데요?
-어차피 이미지야,이미지.
전생의 워프 학설에서 따온 주문 이긴 했지만,이미지만 잡을 수 있으면 문제없었다!
화악!
마법진 위에 있던 제이크의 모습 이 사라졌다.
번쩍!
눈을 가리던 환한 빛이 사라진 뒤,알프렛이 본 것은 낮선 지하
광장이었다.
마치 거대한 동굴을 개조한 것 같은 광장.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반투명한 아름다운 요정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알프렛은 옷을 걸치지 않은 요정 의 모습에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 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정이 떠 있는 곳 바로 밑쪽에 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 고,그 주변에 여러 가지 도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법사가 쓸 만한 실험 도구들과
전시용으로 보이지 않는 갑옷들과 병기들.
거기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아 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들까지.
'마석은 아니겠지?'
보석도 저렇게 굴러다니게 할 리 는 없겠지만,마석이라면 보물 상 자에 꼭꼭 감춰 놓아야지,저렇게 아무렇게나 둘 리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알프 렛이 중얼거렸다.
"설마,제이크 님의 마법 실험실 인가?"
마법사의 실험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알프렛도 주위에 보 이는 실험 도구 덕분에 반쯤은 정 답을 맞힐 수 있었다.
"마법 실험실이 맞기는 하죠. 다 른 이름으로 던전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같이 이동을 한 앰버가 알프렛의 말에 한마디를 더했다.
"던전이라고요?"
던전이라는 말에 알프렛의 얼굴 이 굳어져 버렸다.
그 옆으로 쏜살같이 요정이 날아 왔다.
[주인님!]
제이크의 귀환을 반기는 던전 에 고였다.
그녀의 환대에 제이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앰버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요정처럼 보인다고 해도 아귀 촉수였던 옛날을 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던전 에고는 오래 제이크에게 달라붙지 않았다.
[레이첼 영주님이 돌아오시면 바
로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자동 응답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모양이었다.
-에고를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 은 주인님밖에 없어요.
-던전 에고도 처음이잖아. 덕분 에 편하고 좋지 뭐.
제이크는 말을 전해 주는 빈크루 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바로 지상으로 향했다.
그 뒤를 앰버와 알프렛이 따랐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중앙 회의실
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일행은 뜻밖의 사람이 레이첼을 노려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