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화
얼마 뒤.
레이첼 성에 제플린 상단 일행이 드디어 도착했다.
"아니,여기가 이런 곳이었나?"
"정말 아름다운 곳인가 봐요."
상단 가족들은 영지를 지나며 초 록 물결이 넘실거리는 벌판을 연 신 둘러보며 기대를 잔뜩 한 상태 였다.
하지만 성에 도착하는 순간,그 런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고 오히 려 겁에 질리고 말았다.
"이건 또 뭐지? 혹시 여기도 전 쟁이……. 흠,어찌 됐든 앰버 님 을 만나 봐야겠네요."
많은 병사와 용병이 가득한 거리 를 보며 상단 가족들이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제플린을 바라보 자,제플린은 우선 그들을 다독이
며 중얼거렸다.
기껏 전쟁을 피해 도망쳐 왔건 만,알고 보니 이곳도 전쟁을 준 비 중인 모양이었다.
영지 마법사 앰버를 찾은 자리에 서 설명을 간략히 들은 제플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 영지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까요..
하지만 곧 앰버의 미안한 표정을 본 제플린은 크게 숨을 쉬며 미련 을 털어 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이제는 잘 해결되기를 빌 수밖에는 없죠."
그나마 여태까지 싸움터였고,또 다시 싸움터로 변할 루테리아 영 지로 가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영지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영지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 드릴게요. 상단 으로 계속 활약해 주시면 됩니다."
앰버의 말에 제플린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게 제플린 쪽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엠버는 반센에 게 시선을 돌렸다.
"반센 마법사님은 마법 상점을 차리신다고 했죠?"
그랬다.
반센은 아스굴론에 마법 상점을 세울 생각으로 일행과 같이 온 것 이었다.
물론,실제로는 무너져 버린 제 국 동부의 백탑 지점을 다시 세울 속셈이었다.
"절대 다시 스승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마법 상점
을 성공시켜서 한몫 단단히 잡을 겁니다."
하지만 반센은 지점 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말에 제플린은 한숨을 내쉬 었다.
자신 말고도 딴생각을 하는 마법 사가 늘어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반센이 자리에 없는 제이크에 대해 물어보았다.
"제이크 마법사님은 바쁘신가 보 죠?"
마법사들이 전부 모인 자리였지 만,제이크는 보이지 않았다.
서기관 일로 바쁜 것 같아 물어 본 것이었지만,앰버는 고개를 저 었다.
"그렇기는 한데,음…… 지금 자 리에 없어서요. 아마 잠시 뒤면 루테리아 영지에 도착할 거예요."
앰버의 말에 반센과 제플린은 고 개를 끄덕였다.
영지의 서기관이라고 했으니,이 영지의 영주와 무관하지 않을 터.
그 정도 되는 마법사를 가만히 쉬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사이에 벌써 루테리아로 갔군요. 어제까지 성에 있었다고 하던
데,정말 빠르네요."
'아니,지금도 성안에 있는 걸요?'
제플린의 말에 앰버는 싱긋 미소 를 지었다.
제이크는 그녀의 생각처럼 성 지 하에 있는 던전의 중앙홀에 있었다.
그는 앰버의 말대로,곧 루테리아 영지로 갈 예정이었다.
"문제없는 거 맞지?"
"전부 고쳤습니다. 이제 단방향 귀환 마법진이 아니라 양방향 공 간 이동 마법진입니다."
제시카의 물음에 제이크가 자신 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때 파티마가 안절부절못한 목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직 불안한 점이 없지는 않잖 아요. 테스트도 안 해 봤는데.
파티마의 말처럼 완벽한 것은 아 니었지만, 같이 이동할 사람을 불 안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거기다 이동할 수 있는 곳이 현 재는 한 곳밖에 없었기에 실험도
할 수 없었다.
영지로 돌아온 뒤,제이크는 자 신의 일을 앰버와 알프렛에게 다 떠넘겨 버리고 귀환 마법진 개조 에 몰두했다.
그로 인해 알프렛은 적응 기간도 가지지 못하고 업무에 파묻혀 버 리고 말았지만…….
"내가 왜 알프렛을 찾은 뒤 환호 를 했는데,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제이크는 이런 뻔뻔한 소리를 하 며 일을 떠맡겨 버렸다.
다행히 마법진 개조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머릿속에 저장해 온 마탑의 마법 진은 제이크의 실력을 한 단계 을 려 주었고,그는 늦지 않게 개조 를 끝낼 수 있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하면 오히려 불 안한데."
제시카가 제이크와 같이 지낸 게 한두 달이 아니기에,의심의 눈으 로 제이크를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세요,제시카." 하지만 제이크는 뻔뻔한 얼굴로 마법진을 서둘러 가동시켰다.
두 사람은 정찰대로 루테리아 영 지에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전처럼 영주성 안까지 들어가는 것은 힘들겠지만,루테리아 시 내 부를 살펴보는 정도는 어렵지 않 았다.
더구나 이렇게 공간 이동으로 시 내부에 잠입할 수 있으면,일은 더욱 쉬워졌다.
"빈크루,시작해!"
제이크의 말에 반투명한 요정이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옷 좀 입힐 수 없어? 저런 몸매 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고."
애매한 질투가 포함된 지적이었 지만,던전 에고는 제이크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좀 더 성장하면 뭔가 꾸미거나 하겠죠. 아직 어린 에고니 저 정 도도 감지덕지예요.
파티마의 말처럼 이제 겨우 깨어 난 에고였다.
더구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던전 에고인 만큼, 조심스럽게 성 장시켜야 했다.
[대응 마법진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마법진이 활성화됩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준비가 다됐다네요.
빈크루와 파티마의 말에 제이크 는 마법진 중앙에 올라갔다.
"어서 와요."
"으,마법은 무서워."
제시카는 투덜거리며 제이크 옆 에 섰다.
그동안 기상천외한 제이크의 마 법을 옆에서 봐 왔던 그녀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마법의 대단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뒤.
불안해하는 제시카와 함께 제이크는 공간을 뛰어넘었다.
화악!
환한 빛이 사라지고 난 뒤,제이크가 처음 본 것은 놀란 표정의
제국군이었다.
"마,마법이다!"
"마법사야! 알려야 해!"
"미친,여기 들키면 우린 죽어."
"아니,저놈들 잡아!"
"뭐라고? 마법사잖아,도망쳐야 해!"
그와 동시에 별별 소리가 사방에 서 쏟아졌다.
놀란 제이크가 주변을 둘러보니, 군인 여러 명이 엉거주춤한 자세 로 마법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온 거 맞아?"
제이크 옆을 지나가며 제시카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고,그와 거의 동시에 병사들의 비명이 지 하실에 울려 퍼졌다.
쿠엑!
으억!
"살려 줘…… 컥."
죽어 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쓰 러지는 병사를 향해 제시카가 주 먹을 휘둘렀다.
"안 죽여. 곱게 기절이나 해."
푸억!
괴상한 소리를 내며 병사가 기절 해 버렸다.
지하실에 있던 병사 모두를 예시
카가 순식간에 정리한 것이다.
"이런,여기가 병사들의 아지트 가 됐을 줄은 몰랐네요."
두 사람이 공간 이동으로 온 곳 은 제이크 일행이 살던 집의 지하 실이었다.
저택이 무너진 뒤에 임시로 지내 던 집으로, 얼마 전 제이크가 마 법진을 통해 영지로 돌아온 곳이 기도 했다.
다행히 마법진은 지워지지 않았 지만,남겨 놨던 물건들은 모두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마법 실험 도구들은 술잔과 식기
가 되어 있었고,의자는 불쏘시개 가 된 뒤였다.
더구나 마법 아이템을 담아 놓았 던 상자들은 병사들이 훔치고 빼 앗은 물건이 담겨 있었다.
"거리의 불량배를 병사로 만들었 나 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지. 이러면 치안이 더 나빠질 텐데."
제시카의 말에 제이크가 조금 놀 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내심 찔렸는지,제시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왜! 난 유식한 말 쓰면 안 돼?
나도 좀 있어 보이는 여자가 될 생각이야."
제이크 주위에 있는 여자들이 전 부 수준 있는 여자들뿐이라,제시카도 경쟁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병사들은 모두 기절한 뒤에 밧줄에 꽁꽁 묶이고 말았다.
거기다 제이크가 수면 마법을 펼 쳤으니,며칠은 깨어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러면 싸움이 끝날때까지는 일 어나지 못할 겁니다."
"살았던 집을 시체 밭으로 만드 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지하실을 마법으로 봉인까지 한 뒤에 두 사람은 빈집을 나섰다.
거리는 무척이나 썰렁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 고,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들만이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 가운데 제이크의 마 법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맙소사…… 믿을 수가 없어." 이제 루테리아는 거의 죽음의 도 시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끔 들려오는 비명과 개 짖는 소리 이외에는 숨죽여 훌쩍이는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활기찼던 도 시는 더는 이곳에 없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뒷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병사들의 경계를 확 인했다.
"묘하게 불균형하네."
제대로 규율이 잡힌 병사들과 개 차반인 병사들이 섞여 있었다.
두 그룹은 서로 말도 하지 않았 고,지휘관들도 서로 터치하지 않 았다.
"한쪽은 용병들이나 불량배들 같 고,다른 쪽은 아마도 히베루니아 왕국의 병사들일 겁니다."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어떻게 저 많은 숫자가 이곳까지 넘어온 걸까."
제이크도 잘은 모르지만 대수림 쪽에 왕국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슈비도 대수림으로 도 망친 거라 생각하면 앞뒤가 맞았다.
"그럼 볼 건 다 본 건가요?"
두 사람은 반나절 이상 몰래 시 를 둘러보면서 반란군의 허실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 대충 공격할 만한 곳은
다 파악되었으니,이제 아는 사람 몇 명 얼굴만 보고 가면 될 것 같아."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이래 돼도 마나를 가진 도둑이 야. 기사가 아니면 나 잡을 사람 은 없어."
제시카는 제이크에게 손을 흔들 고는 바로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여태 그녀는 제이크의 마법 속에 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인지,건물로 뛰어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나 보 였다.
고양이 같은 그녀의 모습은 금방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 렸다.
흔적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 은 제이크도 추적 아이템이 없이 는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이크와 헤어진 그녀는 용병 친 구들을 만난 뒤,정찰을 보고하기 위해 영지군에게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스굴론 영지군은 제이크와 제시카가 출발한 뒤에 바로 레이첼 성을 떠나기로 했었다.
그러니 제시카가 영지군에 도착 할 때는 영지군이 영지의 경계를 넘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영지의 경계에 군대를 세워 두고 상대 영지에 선 전 포고를 하겠지만,영주를 죽인 폭도에게 그런 규칙을 적용할 이 유가 없었다.
아스굴론 영지군은 바로 루테리아 시로 밀어닥칠 예정이었다.
그렇게 잠시 제시카와 헤어진 제이크는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이제 제이크에게 따로 맡겨진 일
을 할 때였다.
찬란한 루테리아의 이름이여.
아름다운 새의 노래 속에 우리의 꿈이 펼쳐지도다.
네 속에 있는 오래된 친우는 이 곳에 이름을 남기었고
우리의 명예는 주춧돌이 되어 성 을 일으켰도다.
수첩에는 오래된 시가 쭉 쓰여 있었다.
이 시가 남작이 말하던 보물 창
고로 향하는 암호였다.
그리고 레이첼이 보고도 고개를 갸웃거린 시였다.
제이크는 시를 전부 읽지도 않고 수첩을 다시 덮어 버렸다.
"누가 쓴 시인지 모르지만,고약 한 성격이네. 그냥 위치를 알려 주면 될 걸. 겉멋만 부리고 있어." 뜬금없이 시를 남긴 루테리아의 초대 공작이 제이크에게 욕을 먹 었다.
제이크는 어차피 이 시로 공작가 의 보물 창고를 찾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완드를 쥔 손을 펼쳤다.
마나가 점차 제이크에게로 모여 들었고,제이크는 그 마나를 다시 사방으로 흘려보냈다.
"마나를 모두에게 보내니,받아 들일 수 있는 것들이여,모두 나 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라."
그의 주문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 나간 마나는 자신을 흡수할 수 있 는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물건,바 로 마법 아이템이었다.
제이크가 방금 외운 주문은 그동 안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쓸
수 없었던 마법이었다.
이제 눈에 보지 않고도 좌표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니,다른 여러 마법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도시에 있는 마법 아이템들에 살 짝 빛이 머물렀다가 사라졌고,제이크의 머릿속에 아이템의 위치들 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잠시 뒤,루테리아 시에 있는 대 부분의 마법 아이템의 위치가 제이크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마법 아이템들이 한자리 에 모여 있는 곳도 찾을 수 있었다.
공작의 보물 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