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대마도사 일행이 도시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검은 지네는 보이지 않았다.
도시 밖에도 몬스터가 많다고 알 고 있던 일행은 의문을 느낄 수밖
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스승님. 모두 도시 안으로 숨어 버린 걸까요?"
아이힌테일은 잠시 고민을 하다 가,말을 꺼낸 제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래서는 답이 없겠군. 위에서 살펴보고 와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확 히 파악해야 했다.
몬스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지 금까지 하늘을 나는 일은 자제했 지만,이번 같은 경우에는 정찰이
반드시 필요했다.
대마도사의 말에 제자가 바로 비 행 마법을 사용해 공중으로 떠올 탔다.
한참을 올라간 그는 하늘에서 주 변을 살폈다.
그런데 사람 키의 10배 이상 올 라왔는데도 주변에 검은 지네나 다른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너L 찜,그냥 내려갔다가는 스승님한테 혼나겠 지?"
마법사는 일행을 내려다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대마도사는 홀로 도시 쪽을 보고 있었다.
분명 저건 도시도 확인해 보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저걸 놓치고 바로 내려간다면 앞 날이 막막해지는 게 눈에 훤히 보 였다.
"뭐,마법이 잘 안 먹힌다고는 하지만…… 바닥에 붙어 다니는 지네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그는 억지로 자신을 안심시킨 뒤 도시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외성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마
탑을 빼면 다른 나라의 도시와 그 리 다르지 않았다.
높고 튼튼한 외성 벽과 단단한 성문,그리고 성벽 앞으로 흐르는 수로.
어디를 봐도 전형적인 성벽 도시 의 모습이었다.
다만 성벽 뒤로 불쑥 솟아올라 있는 탑은 검은 마탑이라는 이름 답게 까만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꽤 싸움이 치열했나 보네." 마법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성문과 성벽에 싸움의 흔적이 많 이 남아 있었다.
성문은 반쯤 꺾여서 덜렁거리고 있었고,성벽은 곳곳이 녹아 있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돌까지 녹일 수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마법사는 겁에 질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조심스럽게 성벽 위에 섰다.
그런데 의외로 바깥쪽과 달리 위 에는 싸움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피를 흘린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도시 쪽은 엉망이군."
성벽 위에서 도시 쪽을 쳐다보던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성벽 안쪽에 있는 도시는 반쯤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나무로 만든 집들은 태반이 무너 져 있었고, 돌로 만든 집들도 곳 곳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 었다.
도시에도 사람의 모습이나 시체 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조용한 도시의 폐허는 하늘에서
봐도 무척이나 괴기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지? 다 어디 간 거 야?"
이렇게 된 이상 땅으로 내려가 확인해 봐야겠지만,그쪽은 그가 할 일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혀를 차고는 다시 일행 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마법사가 성벽 밖으로 넘 어가 버린 뒤.
조용했던 거리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스스숙
골목,그리고 무너진 집 그림자
속에서 낯선 존재가 움직였다.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검은 형 체.
바로 검은 지네들이었다.
잠시 뒤,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 온 마법사는 자신이 본대로 도시 에 아무것도 없다고 보고했다.
그에 고민하던 대마도사는 결국 도시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마도사의 말에 사람들은 걱정 스러운 표정이 되었지만,그를 따 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대마도사가 도시로 진입하려는 시각.
제이크와 호족들은 다른 성문을 향해 성벽 아래를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저놈들의 포위망 밖이라 고 했죠?"
베른이 제이크에게 다시 한번 물 었다.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하는 제이크의 능력은 아무리 들어도 믿기 가 쉽지 않았다.
물론,고대 마법사이니 별의별
마법을 다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거 리의 몬스터의 위치를 손금을 보 듯이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 한 일이었다.
-흠,맵핵 같은 느낌이려나.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또 처음 듣는 말에 파티마가 다 시 물었지만,베른의 질문이 먼저 였다.
"도시 안은 전부 저 괴물들 세력 안이지만,성벽 밖에 있는 놈들은 전부 대마도사 일행 쪽으로 몰려
갔습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올 때,한 마 리도 못 봤다."
옆에서 달리던 주술사가 제이크 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그의 말처럼 포위망 옆을 지날 때도,하늘에 떠 있는 마법사를 볼 때도,검은 지네는 본 적이 없었다.
"몬스터가 이동할 방법이 지상만 이 아니잖습니까."
"지상 아니면,하늘?"
주술사가 제이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에는 마법사 하나만 떠 있었다.
-하늘에도 없다면 지하겠네요.
정답은 베른 어깨에 앉아 있던 고양이에게서 나왔다.
제이크는 페이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감지로는 성벽 밖에 있는 놈 들은 땅속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 습니다."
제이크는 고개를 내려 지면을 바 라봤다.
"원래 있었던 능력인지 모르겠지 만,그 지네 괴물은 땅속으로도
다닐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우리가 쫓을 때,그런 능 력은 없었다. 땅속에 숨어 있었으 면 우리가 여기까지 따라을 수 없었다."
그들 중에도 주술사가 있었지만, 주술사는 땅속에 숨은 몬스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새로 생긴 능력일까요?"
"그건 확인해 보면 되겠지."
주술사의 말대로였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아 이힌테일 일행이 있는 쪽을 가리 키며 말했다.
"그래도 저쪽 일행 덕분에 쉽게 진입할 수 있겠네요."
"같이 와야 한다고 하는 걸 반대 해서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제이크도 일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 들킬지 몰라 대마도사와 따 로 움직인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만,대마도사 일행이 미끼가 되어 버린 것이다.
-흠,정말 말도 없이 미끼로 쓸 생각이신가요?
-그래야지. 어차피 내 목표를 위
해서 잠시 같이하는 사람들일 뿐 이니.
-오호,웬일로 제법 악당 같은 소리를!
-더구나 레이첼 영주가 대마도 사에게 마나의 약속을 하게 만들 었으니,다들 큰 문제는 없을 거야.
-호호,그러시구나.
뻔뻔한 제이크의 말에 파티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나하고 감각을 공유한 다는 것은 잊지 않으셨죠? 이곳까 지 달려오면서 주인님이 마법을
걸은 마석 몇 개를 떨어뜨렸더라 고요.
파티마의 웃음소리에 제이크는 한숨을 푹 내쉬며 투덜거렸다.
에고 완드 때문에 숨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제이크는 아이힌테일 일행을 미 끼로 쓸 생각이었지만,그래도 경 고는 제대로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갑작스러운 기습만 없으 면 대마도사와 일행 실력으로 충 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그는 달리던 와중에 모
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금부터 잠깐 시끄러울 겁니 다! 놀라지 마세요."
그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봤고,제이크는 손 가락을 튀기며 걸어 놓은 마법의 발동 주문을 외웠다.
"터져라!"
광! 쾅! 쿠앙!
일행의 뒤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제이크가 포위망 옆을 지나갔다 고 말한 바로 그 자리였다.
폭발은 땅을 뒤집어 놓았고,땅
속에 있던 지네 괴물들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결국,어미의 명령을 받던 지네 괴물들은 충격 탓에 숨어 있으라 는 지시를 잊어버린 채 땅 위로 튀어나와 날뛰기 시작했다.
폭발을 본 일행은 제이크를 다시 돌아봤다.
"역시,난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
"그냥 미끼로 쓰지는 않으셨군요."
-흥,베른은 내기에 졌으니 돈이 나 내요.
"아냐,지금 경우는 어느 쪽도 아 냐."
아무래도 아인족들은 제이크가 동료를 미끼로 쓸지에 대해 내기 를 한 모양이었다.
주술로 제이크의 인성을 알아본 주술사와 옆에서 그를 봐 온 페이 샤는 미끼로 쓰지 않는다에 돈을 걸었고,베른은 반대에 건 듯했다.
자신도 모르게 내기의 대상이 된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자, 파티마 는 그의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웃 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호족 일행은 북쪽 성문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 * *
같은 시각.
막 성문으로 들어가던 대마도사 일행은 갑작스러운 폭발에 깜짝 놀랐다.
타고 있던 말들이 다리를 들어 올리며 날뛰는 바람에 사람들이 떨어질 뻔했다.
일행은 무기를 쥐고 사방을 노려 봤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바로 실드를
자신의 몸 주변에 펼쳤다.
다행히 폭발이 일어난 곳은 그들 과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성벽에서도 거리가 있는 동쪽 벌 판에서 뜬금없이 큰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난 것이다.
"마법?"
대마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꺼 낸 말에 두 제자가 고개를 갸웃거 렸다.
"저런 형태의 마법은 처음 보는 데요? 화염 마법도 아니고."
"비슷한 거라면,마나 사용자를 터트리는 마법이 좀 비슷하려나?"
뒤이어 말을 꺼낸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와 스승의 눈빛에 황급히 입을 닫았다.
아직 제국 마탑에서는 그 마법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다른 두 사람이 보기에 도 마나 사용자를 터트렸을 때 봤 던 폭발과 꽤 비슷해 보였다.
"주변에 아직 살아남은 마법사가 있었나?"
제자의 말에 대마도사는 묘한 눈 으로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을 바 라봤다.
"살아남은 마법사가 아니면,외
부에서 온 마법사일 수도 있고." 그러자 두 제자가 고개를 갸웃거 렸다.
하지만,다시 질문하기에는 상황 이 좋지 않았다.
제시카가 달려오는 검은 지네들 을 발견한 것이다.
"몬스터예요!"
"어,분명 없었는데?"
그에 정찰을 나갔던 마법사가 놀 란 눈으로 달려오는 검은 지네들 을 바라봤다.
그사이 아이힌테일이 표정을 굳 힌 채 추측했다.
"과연,땅속에 있었던 건가? 그 럼 폭발 때문에 밖으로 나온 것이 겠군."
과연 대마도사다웠다. 그는 단번 에 진실을 알아맞혔다.
"땅속에 있었다고요? 그럼,설마 함정?"
대마도사의 말에 제시카가 퍼뜩 긴장했다.
"몬스터가 함정도 팝니까?"
하지만 이어진 마법사의 질문에 제시카가 단검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이렇게 대규모로 함정을
파는 몬스터는 본 적이 없긴 한 데..
제시카가 말끝을 흐렸다.
던전 에고가 된 몬스터가 있는 판에,함정을 파는 몬스터가 없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제시카의 추측은 금방 사 실로 드러났다.
캬아아아악!
반쯤 부서진 성문 너머에서 몬스 터의 괴성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들킨 것을 알게 된 검은 지네들 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곳에서도 땅
을 뚫고 검은 지네들을 튀어나왔 고,순식간에 일행은 검은 지네에 게 포위당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제이크와 아인족들은 동쪽 성문 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 간, 주술사는 호족들에게 걸려 있 는 주술을 풀었다.
다른 주술을 걸기 위해서였다. 모습을 바꿔 주는 주술이 풀리자
호족들은 원래의 돼지 머리 형태 로 돌아갔다.
주술사는 새로운 주술을 걸며 호 족들에게 소리쳤다.
"진격이다. 그동안 답답했던 것 을 이제 모두 풀어 버려라! 콘케, 쿠함바!"
"쿠함바!"
주술사의 외침에 호족들이 모두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안 되는 거였나."
"이 정도도 잘 참은 겁니다." 제이크의 한숨에 베른이 나름의
위로를 해 줬다.
이왕이면 마탑까지 몰래 가고 싶 었던 제이크였지만,호족들에게는 애초에 통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뭐,그동안 숨어 다닌 것도 아 니잖아요. 그냥 생각 없이 달렸는 데.
파티마의 핀잔에 결국 제이크도 수긍했다.
다행히 도시의 동쪽에는 지네 괴 물이 많지 않았다. 모두 대마도사 쪽으로 몰려간 것이다.
호족들은 드문드문 달려드는 지
네 괴물을 신나게 썰어 가며 마탑 을 향해 달려갔다.
주술사의 주술은 이번에도 호족 들의 검을 날카롭게 만들어 줬다.
제이크도 탄식을 하며 그들의 뒤 를 따랐다.
페이샤는 바로 제이크의 어깨에 올라탔고,베른은 성문에서 그들 을 배웅했다.
음유 시인은 빠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