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지금부터는 대수림입니다. 모두 긴장하세요."
제시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 였지만,실제로 긴장을 한 사람은 기사 시몬뿐이었다.
물론,제시카도 시몬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였다.
다른 일행이야 대수림에 대해 따 로 말해 줄 필요가 없었다.
일행은 지금 대장벽을 흉내 낸 성벽을 지나,활엽수가 가득한 숲 에 들어서는 중이었다.
먼저 제시카가 앞에서 일행을 이 끌었고,그 뒤는 제이크,제이크 뒤에는 음유 시인이 그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몬 기사가 후위를 지켰다.
고양이는 제이크 어깨에 앉아 하 품하는 중이었다.
제시카의 말에 한껏 긴장했던 시 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슬슬 긴장 을 풀게 되었다.
대수림이란 말에 겁먹었었는데, 이렇게 보니 제국에 있는 평범한 산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시몬은 일행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도무지 이 일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마나 사용자인 여자 용병 과 젊은 마법사가 대단하다는 것
은 저번 전쟁에서 직접 경험했기 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음유 시인과 고양이라니? 대수림에 음유 시인이나 고양이 를 데리고 가는 탐사대가 있을 거 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거기다,인원은 이게 전부였다.
대수림에 들어가는 탐사대 하나 가 수십 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 된다는 것을 그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숫자만으로 대수림 안을 들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데,완전히 넘어갈 생각을 하다
니…….
아무리 봐도 자살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시몬은 문득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대수림 입구 근처에서 숨 어 있다가 몇 개월 뒤에 그냥 돌 아갈 생각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인원이 적은 것 도 말이 된다.
기사인 자신만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인다면 들키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내가 그런 유혹에 넘어
갈 리가 없잖아!'
물론 개죽음할지도 모른다는 생 각에 유혹이 상당하긴 했지만,자 신은 제국의 정명한 기사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국에 충 성을 다할 생각이었다.
시몬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음유 시인이 그에게 말을 걸 었다.
잘생긴 시인의 목소리는 음유 시 인답게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시인은 그동안 여행에서 들은 경 험담을 늘어놓았고,그에게도 재 미있는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봤
다.
"오,내전에서 큰 공을 세우셨다 고요? 정말 대단하시군요. 혹시 작은 이야깃거리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래에 추가할 이야 기가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싸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겠지 만,사람 자체는 무척 좋은 것 같 았다.
기분이 풀린 시몬은 기꺼이 그에 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럼,제가 이분들과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 드리면 되겠군요……
저 여우족이라고 하는 음유 시인 의 현혹술은 지금도 대단한 능력 을 발휘하고 있었다.
출발 때부터 불만과 걱정으로 가 득 차 있던 기사를 금방 무장 해 제시켜 버린 것이다.
즐거운 표정으로 내전 때 이야기 를 떠드는 기사의 모습에,제시카 와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들고 말았다.
시몬에게는 안됐지만, 대수림은 역시 대수림이었다.
그가 한참을 떠드는 동안 숲이 조용해졌고,일행의 걸음이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시몬이 어리둥절하며 입을 닫는 사이에 제이크는 한쪽을 바라보며 손을 들고 있었고,맨 앞을 걸어 가던 제시카는 어디로 갔는지 보 이지도 않았다.
크앙!
순간, 나무 사이에서 검은 표범 하나가 뛰어나와 일행에게 달려들 었다.
나무를 뛰어넘을 때마다 색이 변 하는 표범의 모습에 시몬은 놀란 눈이 되었다.
하지만 표범,카멜레온 레오파드
쪽은 그보다 훨씬 놀라고 있었다.
동료와 함께 나무 위에 숨어 먹 이를 기다리고 있던 표범은 주변 의 환경에 맞춰 몸의 색을 변화시 키고 있었는데,어느 순간 몸의 색이 맘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무리 눈치가 좋은 몬스 터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들의 위 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오히 려 그들이 기습을 받게 된 것이다.
표범 하나가 아래에서 솟구친 인 간 여자의 단검에 찔려 한순간에
목숨을 잃자,다른 표범이 놀라 먹이를 향해 뛰쳐나갔다.
"시몬 기사님, 부탁드리겠습니다."
달려오는 표범을 보며 제이크가 소리쳤다.
시몬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는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달려오는 몬 스터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이상하게 색이 변하는 몬스터라 꽤나 놀랐지만,이런 몬스터 하나 감당하지 못할 기사가 아니었다.
"흠,확실히 나쁜 실력은 아니 네."
-눈에 뻔히 보이는 몬스터인데. 기사가 저 정도도 못 하면 기사를 때려치워야죠.
신랄한 파티마의 말이었지만,그 녀의 말이 옳았다.
평상시처럼 몸을 숨긴 카멜레온 레오파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도 있었겠지만,이 표범의 기술은 미리 알아차린 제이크에게 방해받 은 뒤였다.
"어차피 일행이 되었으니,적응 을 시키는 편이 좋겠지."
물론 대수림의 위협을 제대로 알 려 주는 방법도 있었지만,그렇게 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나름 실력은 있어 보이니 차근차 근 적응을 시켜서 한 사람 몫을 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실력을 봐야 할 사람이 한 사람 더 있기도 하고.'
제이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음유 시인을 빤히 쳐다봤다.
평범한 음유 시인이라면 싸울 줄 모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지금 같이 움직이는 음
유 시인은 평범한 음유 시인이 아 니었다.
호족과 다닐 때도 비전투 요원이 라며 몸을 뻤었지만,이곳 대수림 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너도 실력을 드러내야 할 거야. 뻔히 무임승차하는 꼴을 볼 수야 없지.
냐옹?
제이크가 날린 메시지 마법에도 페이샤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앉 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녀를 봐줄 생
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안내자는 한 명만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왜 고양이와 음유 시인이 같이 가게 됐는지 모르겠지만,안내자 가 둘이니 대상을 빡세게 굴려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런 그의 생각 덕분에 대수림에 진입한 지 이 주일 뒤,일행은 모 두 진이 빠진 표정으로 제이크를 노려봤다.
첫 몬스터를 잡고 의기양양해하 던 시몬 기사는 이어진 몬스터의
습격에 밀려 죽을 뻔했고,
그 탓에 처음에는 뒤에서 응원만 할 생각이었던 음유 시인도 자신 의 실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음유 시인 베른의 무기는 뜻밖에 도 들고 있던 만돌라였다.
제이크는 그가 만돌라를 양손으 로 잡자,전생에 소설에 나왔던 음공(音功)을 떠올렸다.
무협지에 보던,소리로 적을 제 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홍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아쉽게도 그의 공격 방법은 제이크의 예상과 달랐다.
베른은 자신의 악기를 들어 올려 몬스터를 후려친 것이다!
깨갱!
머리가 두 개 달린 들개가 만돌 라에 맞아 날아가 버렸고,그사이 에 기사는 달려든 몬스터들을 정 리할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몬스터의 습격은 계속 이어졌고,끝까지 싸움을 지켜보 던 페이샤도 결국 움직이게 되었다.
지쳐 버린 베른이 그녀를 계속 노려봤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앙!
몬스터가 멀리서 괴성을 지를 때,베른의 눈치에 지쳐 버린 고 양이는 슬쩍 숲으로 몸을 날렸다.
크아앙! 크아! 까앙! 쿠엑!
그리고 얼마 뒤,몬스터의 괴성 이 비명으로 변했다.
그것도 잠시,곧이어 숲이 조용 해졌고,돌아온 고양이의 입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슬쩍 입 주위에 묻은 피를 혀로 할은 고양이는 다시 제이크의 어 깨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리 지 못한 시몬을 뺀 일행은 다시는
그녀에게 뭘 시킬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그렇게 다른 일행이 고생하는 동 안,제이크는 다른 마법사들처럼 위험한 순간에만 나서서 일행을 도와줬다.
덕분에 다친 일행은 아무도 없었 지만,대신 일행의 입은 길게 앞 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불만은 식사 시간 과 잘 시간이 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야외에서 볼 수 없는 따뜻한 식 사와 편한 잠자리는 그와 다닐 때
가 아니라면 생각도 못 하기 때문 이었다.
"흠,이럴 줄 알았으면 도와줄 걸 그랬군요."
대수림에 도착하고 이 주일이 지 난 오후.
대수림 깊이 자리한 바위산 중턱 에 서서 제이크가 혀를 찼다.
그리고 일행은 눈에서 불을 뿜을 것처럼 제이크를 노려봤다.
일행이 올라선 바위산은 대수림 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바로 대수림의 지배자 중 하나인
비룡의 둥지가 있던 곳이었다.
대수림을 넘으려던 탐험가들이 제일 목숨을 많이 잃었던 곳 중 하나로,특히 하늘을 날던 마법사 가 많이 죽었었다.
얼마 전까지 수많은 비룡이 하늘 을 날고,바위산에도 많은 비룡이 알을 지키고 있었던 있었을 터였 지만…….
지금 이곳에는 살아 있는 비룡은 커녕 살아 있는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미래에 제국군도 이 바위산 을 통과하기 위해 엄청난 병력을
잃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제이크는 최 대한 마법을 쓰지 않고 준비해 왔 었는데,막상 도착해 보니 이 바 위산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 이 바위산에 있는 비룡들 때문에 인간을 데려갈 방법이 없 었습니다. 저희 아인족들은 모종 의 방법으로 숨을 수 있었지만, 인간들은 그게 불가능했으니까요.
미리 알려 주지 않았던 바람에 자신들만 고생만 하게 된 것을 알 게 된 베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지네를 쫓아 대수림
을 지나던 호족들은 이 바위산이 비워진 것을 알게 되었고,회의 끝에 인간들을 초청하기로 한 것 입니다.
제이크는 베른의 말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로,그들은 대수림을 넘어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이 있는 것 같았고.
둘째로,이곳에 있던 비룡들은 고의적으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 지만,인간이 대수림을 넘지 못하 도록 한 아인족들의 성벽이었다.
성벽이 무너졌으니 언젠가 인간
들은 대수림을 넘어올 거고,그 전에 미리 친분이 있는 사람을 부 른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바위산이 비 워지게 된 것은 최근에 벌어진 것 으로,제이크가 본 미래에서는 일 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몬스터들끼리 큰 싸움이 있었던 것 같군요."
뼈만 남은 거대한 비룡의 사체와 주변에 파헤쳐진 흔적은 제이크의 말과 일치했다.
"설마,그 검은 지네가?"
하지만 제이크는 곧 머리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나는 비룡과 땅을 기는 지네였다.
이런 식으로 싸움이 날 이유도, 비룡들이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을 이유도 없었다.
물론 제이크의 추측대로 변태를 하기 전 괴물이 비룡들을 죽인 것 이었지만,제이크와 일행이 그것 까지 알 수는 없었다.
잠시 뼈만 남은 사체를 보던 일 행은 바위산을 내려갔다.
바위산 뒤로도 엄청난 산맥이 일 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산맥의 모습에 일행은 질린 표정이 역력했지만,오히려 베른 과 고양이는 기쁜 표정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저를 따라오십시 오. 음유시인들 사이에 내려오는 비전으로 길을 뚫겠습니다."
베른이 앞으로 나서며 꺼낸 이야 기에 시몬은 왜 음유 시인이 이 탐사대에 참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음유 시인의 비전은 존재하 지도 않았지만,따로 길을 뚫겠다 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랜 옛날부터 내려온 길.
대수림을 관통하는 숨겨진 길로, 오랜 세월 현혹술로 대수림의 자 연과 친해진 여우족들이 찾아낸 안전하고 빠른 길이었다.
아인족끼리 부르는 이름은 여우 길.
몬스터들의 영역 사이로 난 길이 었다.
베른의 장담대로,일행은 싸움 없이 대수림을 빠르게 주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