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젠장……!"
도비는 눈앞에 펼쳐진 마법 방패 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마법 아이템이라니.
마법 아이템을 들고 다니는 기사
라니!
이건 저 남자가 기사인가를 따지 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마법 아이템은 왕실 기사단에서 나 볼 수 있었다.
더구나 반투명 막을 만들어 내는 마법 방패가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제이크가 직접 만든 마법 아이템 이었으니 처음 보는 것은 당연했 지만,도비가 그런 사정을 알 리 가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벌였는지 알게 된 도비의 얼
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이미 결투는 시작된 뒤였다.
마나가 두 사람 사이에서 충돌하 고 있었다. 이미 두 사람은 싸우 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도비의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흘 러내렸다.
이대로는 기세에 눌려 검도 휘둘 러보지 못할 것 같았다.
더구나 이미 결투가 선언된 상태 였다.
그것도 무엇이나 밸 수 있는 마 나 검끼리의 싸움이었다.
기사끼리의 결투는 태반이 한쪽 의 죽음으로 결정 날 수밖에 없었다.
도비는 이를 악물고 검에 마나를 가득 불어넣었다.
검이 부르르 떨리며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래,이길 수 있어!'
아직 정식 기사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평민이라 기사 인증이 늦 는다고 믿는 도비였다.
더구나 상대는 검에 마나를 씌우 지 않고 있었다.
예상보다 약하게 뿌려지는 마나
와 처음 보는 마법 방패.
그리고…… 마나를 뿜어내지 못 하는 검.
그를 눈치챈 도비가 한쪽 입꼬리 를 스윽 올렸다.
"아하,설마 반쪽이었나?"
그의 머릿속에 어디선가 들었던 반쪽 마나 사용자 이야기가 떠올 탔다.
마나를 검에 싣지 못해 방패를 든 종자의 이야기.
별로 믿기지 않던 이야기였는데, 눈앞에 당사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마나를 담은 검을 막기 위해 마 법 방패를 구한 건가?"
그렇다면,도비에게도 승산이 있 었다.
상대에게는 마나 검을 막아 내는 마법 방패가 있지만,고작 방패로 모든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검술 싸움.
도비는 자신의 검술 실력에 자신 이 있었다.
"타앗!"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힘차게 외 치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상대가 들고 있는 검을 향 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방패로 검을 막으면 검과 방패가 모두 묶이게 될 게 분명했다.
휘익!
그런 생각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캉!
하지만, 그의 검은 상대의 검에 튕겨 나왔다.
"말도 안 돼!"
분명 마나가 흐르고 있지 않은 검이었는데 자신의 마나 검이 튕 겨 나오다니!
도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
다.
하지만 곧 그런 고민도 할 시간 이 없어졌다.
상대가 휘두르는 검을 막기 위해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야 했기 때 문이었다.
캉! 스컹! 캉!
도비는 머리에서 떨어지는 검을 막고,밑에서 올라오는 검을 누르 고,앞으로 밀려드는 검을 피하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그는 상대 의 또 다른 장비를 떠올리게 되었다.
'방패는 어디에 있는 거지?'
여태 자신의 검과 싸운 것은 상 대의 검이었다.
그동안 방패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놀란 그가 루이의 방패를 찾는 순간.
그의 시야에 반투명한 막이 들어 왔다.
마법 방패가 그의 얼굴을 내려친 것이었다.
자신의 검은 이미 상대의 검에 묶여 있었기에 그는 고스란히 방 패에 머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쾅!
마치 거대한 종이 울리는 것 같 은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도비의 몸이 바닥에 튕겼 다가 뒤로 날아갔다.
퍼억!
한참을 날아간 도비는 여관 벽을 부수고 건물 안에 처박혀 버렸다.
"어,실수. 안 다치게 하려는 게 그만..."
루이는 민망한 얼굴로 자신이 날 려 버린 기사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땅에 처박힌 순간 이미
정신을 잃은 도비는 구멍 밖으로 다리를 덜렁거릴 뿐이었다.
"풋 "
그때,그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던 루이는 고개를 돌렸다.
아델이 바닥에 주저앉아 웃고 있 었다.
"하하,뭐야,그 표정. 바보 같아."
루이를 보고 웃는 아델이었지만, 그가 보기에는 아델 얼굴이 더 바 보 같았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그녀의 눈 에서는 계속 눈물이 쏟아지고 있 었다.
좀 전의 눈물과 또 다른 눈물이 었다.
루이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 갔다.
그녀 앞에 멈춰 선 그는 한쪽 무 를을 꿇었다.
그리고 손목에 감긴 수건을 풀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손수건이 얼굴에 닿는 순간 잠시 움찔했지만,그는 멈추지 않고 눈 물이 흐르는 얼굴을 닦아 줬다.
아델도 손수건이 얼굴에 닿자 놀 란 표정이 되었지만,곧 환한 미 소로 변했다.
"데리러 왔습니다."
"응,기다렸어."
루이는 아델의 팔을 잡아 몸을 일으켜 줬다.
아직 마나에 놀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기에,그녀는 루이 의 팔을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다시 울컥했다.
이런 큰 소란이 일어났으니,여 관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놀란 사람들이 뒷마당으로 달려 나왔지만,그들은 벌어진 상황에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딱 봐도 기사 둘이 싸운 흔적이 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 에서,여관 주인이 용기를 내어 벽에 뚫린 구멍으로 조금씩 다가 갔다.
수습 기사인 도비가 무사한지 확 인해 봐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여관이 문을 닫는
것을 넘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구멍 속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확인한 여관 주인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살아 있다."
다행히 도비는 무사했다.
머리에 엄청난 혹이 나 있고,온 통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
하지만 기절만 했을 뿐,큰 부상 은 없어 보였다.
그때,그의 머리 위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 시간 방에서 나오지 못했던
아델의 엄마가 내뱉은 소리였다. 뒷마당에서 들린 폭음에 억지로 몸을 움직여 창밖을 내다본 그녀 는 뜻밖의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낸 것이었다.
"모시러 왔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루이는 2층 창 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과거 그녀를 모시던 종자였다면 무릎을 꿇고 말해야 했지만,지금 은 백작 부인이 아닌 아델의 어머 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과 달라진 인사에도 톨레도 백 작 부인은 기쁘기만 할 뿐이었다.
아들을 포함한 모두가 두 모녀를 버렸는데,오히려 그들이 버린 남 자가 기사가 되어 두 사람을 찾아 오니 복잡한 심경이 들기도 했다.
잠시 뒤,기절했던 도비가 깨어 났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거친 말을 내뱉고는 여관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결투에 진 것이나 아델을 빼앗긴 데 대해 앙심을 품지는 않 은 듯했다.
그렇게 도비가 여관을 떠나고 얼 마 뒤,마차 하나가 여관을 빠져
나갔다.
루이가 수소문해서 구한 마차였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충분한 보상 을 한 뒤에 두 여성과 함께 마차 를 탔다.
다행히 루이에게는 개선된 제이크표 포션이 여러 개 있었다.
그는 우선 백작 부인에게 포션을 먹인 뒤,북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아스굴론 영지까지는 꽤 멀고, 중간에 험지도 많이 있었지만 마 차에 탄 세 사람은 다시 만난 기 뽐을 만끽했다.
늑대를 닮은 짐승은 정말 빠른 속도로 들판을 가로질렀다.
평지에서는 말보다 빠르지 않았 지만,대신 이 짐승은 숲과 언덕, 협곡을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그만큼 승차감은 엉망이었 지만,이 정도 승차감을 힘들어할 사람은 그들 중 아무도 없었다.
"하하,이건 꽤 재미있네."
그동안 마법으로 별 이상한 것을
다 타 본 제시카는 오히려 신나 보였다.
대수림 너머 아인족들이 사는 땅 은 인간들이 사는 땅과 그리 다르 지 않았다.
황무지가 있고,숲이 있고,강이 있었다.
다양한 식물들이 살고 있었고, 여러 동물이 지나가는 일행을 바 라봤다.
그리고, 몬스터도 있었다.
캬악!
달리는 일행 옆으로 커다란 새가 따라붙었다.
길쭉한 두 다리로 달리는 새의 날개는 퇴화하여 양옆에 덜렁거리 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크가 머릿속으 로 비슷한 동물을 떠올렸다.
'타조인가?'
하지만,타조로 보기에는 달리는 모습이 상당히 달랐다.
머리와 긴 꼬리가 일자로 누워 달리는 모습이,마치 빠르게 달리 는 공룡 같았다.
'털 달린 공룡이려나?'
뭐,어찌 되었든 지금은 펄쩍펄 쩍 뛰어 일행을 덮치는 몬스터일
뿐이었다.
획.
하지만 몬스터에게는 안타깝게 도,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제이크가 아니었다.
빛나는 화살들이 치솟아 떨어져 내리는 몬스터를 덮쳤다.
일반 화살이라면 강철처럼 단단 한 깃털에 막혔겠지만,이 화살은 마법으로 쏘아진 마나 화살이었다.
화살들이 몬스터를 꿰뚫었다.
몬스터는 일행을 덮치지 못하고 뒤에 나뒹굴었다.
다른 몬스터들도 땅을 뚫고 솟아 오른 넝쿨에 감겨,더 이상 일행 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건 아니타의 마법 덕이었다.
이런 식으로 일행은 몬스터들의 습격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막아 냈다.
밤이 되면 매번 저녁때쯤 나타나 는 마을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마을의 간격이 딱 맞게 만들어졌 는지,아니면 달리는 속도를 맞추 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덕에 매번 편한 잠자리를 가 지게 되어,달리는 동안 그리 피
로는 쌓이지 않았다.
잠을 잤던 마을들에는 꽤나 여러 종류의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여우족 마을, 변식족 마을,호족 마을 등.
다만 아인족들은 처음 방벽에서 본 것과 다르게,각 마을에는 한 종족밖에 없었다.
그에 의문이 들어 아니타에게 물 었지만.
"성소에서는 다들 함께 모여 도 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 을 단위에서는 종족별로 지내는 게 훨씬 편합니다."
모범 답안 같은 답만 듣게 되었다.
더구나 주술사에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주술사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 이 뭔가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였 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주를 달린 일행은 성 소로 불리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 었다.
성소 바빌로니아.
천 년 전 마도 제국을 탈출한 아 인족들이 처음 정착한 도시.
바빌로니아는 커다란 분화구처럼 보이는 분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의 주변은 수직에 가까운 낮 은 산들이 자연적인 방벽이 되어 주고 있었고,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이 분지 중앙에 모여 커다란 호 수를 이루고 있었다.
도시는 호수를 둘러싼 채로 넓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원형으로 둘러친 산 중턱에 올라 일행은 도시를 바라봤다.
도시는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펼쳐져 있는
도시는 무질서해 보이면서도 그 안에 묘한 규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와 넝쿨로 이루어진 건물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그리 고 강철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건 물까지.
전혀 다른 형태의 건물들이 신기 하게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랜만에 성소에 오게 된 아인족 들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옆에서 제시카는 처음 보는 도시의 모습에 감탄을 터트렸다.
뒤에 서 있던 제이크는 호수 중
앙에 있는 섬을 보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섬에는 커다란 건물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적어도 천 년은 넘어 보이는 고 대 양식으로 만들어진 건물.
상당히 넓게 만들어져 있지만, 단층으로 보이는 석조 건물이었다.
제이크는 먼 이곳에서도 무슨 건 물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분명 고대 마도 제국 시절 에 만들어진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