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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서기관의 회귀-173화 (173/222)

173화

"마도 제국 시절의 금화와 마법 아이템을 드리겠습니다."

아니타의 대답에 제이크는 시큰 둥한 표정이 되었다.

금화를 준다는 것도 좋고,마법

아이템을 주는 것도 좋긴 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이 따로 있으십니까?" 제이크의 표정을 보고 아니타가 다시 질문했다.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 려고 할 때였다.

광장 안쪽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가로 손에 쥔 목걸이를 쓸 수 있게 만들어 드리죠. 그걸 원하는 거 아닙니까?"

중년,아니…… 나이를 알 수 없

는 남자가 제이크의 손을 가리키 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니타가 그 남자를 돌아보고 깊 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장로들과 적어도 같은 위치 로 보이던 아니타였다.

그런 그녀가 저렇게 정중하게 인 사를 하다니.

제이크와 제시카는 남자를 다시 살펴봤다.

아니타와 비슷한 계열의 옷을 입 은 키 크고 잘생긴 남자.

딱 봐도 아니타와 같은 서포터라

는 종족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는 아니타나,도시에서 스쳐 가며 봤던 몇 명의 서포터들 과는 달랐다.

젊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그 의 표정에는 오래된,아주 오래된 세월이 보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마찬가지로 겉과 안에 들어 있는 게 다른 제이크로서는 그 사실을 확실히 느 낄 수 있었다.

"쿠사라라고 합니다. 오시길 기 다렸습니다."

다만,정중하게 말하는 그의 모

습은 전형적인 서포터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쿠사라의 시선은 제이크의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를 느낀 제이크는 자신의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방벽을 지나 아인족의 세상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손에 쥐고 있 었던 목걸이였다.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며 계속 손에 쥐고 있었는데 결국,알아보 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게 뭔지 아시는군요."

"그게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 습니다. 마도 제국이 몰락했을 때 같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마도 어느 던전에 묻혀 있다가 사용법과 함께 대마도사가 다시 찾은 모양이었다.

아니면,제국의 전 황제가 미래 를 보고 찾아낸 것일 수도 있고.

문제는 대단한 마법 아이템인 만 큼,보안이 철저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이어 가다가 제이크 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들은 말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렸다.

제이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떠봤다.

"이 목걸이를 실제로 본 적이 있 군요."

"하하,역시 현명하시군요. 네, 전 그 목걸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상하긴 했지만,상대의 말에 제이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이야기야?"

제시카가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 정으로 물어보자,제이크는 그녀 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마도 제국 시대 때 살았던 인물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엥? 무슨 소리야. 마도 제국이 망한 게 천 년도 넘었잖아. 그때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지금……

제시카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쿠 사라라는 남자를 위아래로 쳐다봤다.

"그럼,천 살이 넘는다는 거야? 보기와 달리 엄청 늙은 분이네?"

그녀의 적나라한 말에 쿠사라의 표정이 묘해졌다.

"뜻밖이로군요. 바로 믿으실 줄

은 몰랐습니다."

"뭐,제이크가 한 말이니까. 더구 나 제이크라는 인간도 있는데,천 살 넘게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 죠."

제시카의 말에 제이크도 쓴웃음 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쿠사라라는 남자도 제이크를 다시 보았다.

"하기야,마도 제국 때의 마법을 되살린 분이니……

"뭐,그것 말고도 다른 것도 있 지만."

그렇게 덧붙이며 제시카는 어깨

를 으쏙였지만,다행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천 살이 넘은 서포터.

과연 다른 일족의 장로들과 비슷 한 위치의 아니타가 공손하게 인 사를 할 법했다.

제이크는 잠시 그를 보다가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생 마법입니까?"

"역시,알아차리시는군요."

"서포터들을 만들 때,오래 살도 록 생명의 기초 단계에서 재생 마 법이 활성화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두 배는 살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저는 그 최 대치가 어디일지 테스트해 본 실 험체였습니다."

쿠사라의 말에 제이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시카는 오래 산다는 것에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지만, 제이크는 재생 마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 었다.

파괴되는 몸을 되살리는 마법.

신관의 치유 스킬과 다르게 파괴 되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재생 되는 고통도 느낄 수밖에 없는 마 법이었다.

천 년을 살아오는 동안,눈앞의 남자는 끝없는 고통을 느껴 왔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에서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저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정도 풀리셨을 테니,이제 따라오시죠. 문제가 생긴 곳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앞장선 그는 바닥 에 구멍이 숭숭 뚫린 지하 광장으 로 그들을 안내했다.

작은 구멍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날 정도로 작았지만,큰 구멍은

거대한 광장의 사분의 일을 차지 할 정도로 컸다.

"얼마 전,하늘에서 몬스터 한 마리가 내려왔습니다. 상당한 크 기의 강력한 검은 몬스터. 저희들 은 보자마자 놈이 디스트로이어라 는 것을 알아차렸죠."

그는 많은 구멍을 지나 중간급 정도가 되는 구멍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우리는 구멍 밖으로 빠 져나가는 놈들을 막을 준비밖에 안 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속수 무책으로 방어가 뚫렸고,놈은 이

안으로 날아 들어갔죠."

이 구멍도 작은 집 한 채는 들어 갈 정도로 큰 구멍이었다.

"이 아래는 마치 개미굴처럼 만 들어져 있습니다. 수많은 굴이 시 시각각 움직이며 길을 바꾸고 있 죠. 모두 마법진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이곳은 수많 은 굴로 만들어진 미로진이었다.

고대 마도 제국 때 만들어진 마 법진으로 구축된 미로진.

바닥이 없는 협곡의 마법진이 하 늘을 나는 것을 금지한 것처럼,

이곳의 마법진은 지형 자체를 움 직여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마법진이 새로운 디스트 로어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어차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 을 수 없었겠지만,나갈 때도 못 막았다는 건 큰 문제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아 마 종류가 달라서였겠죠."

어깨를 으쏙인 그는 구멍을 가리 켰다.

"이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말에 제이크가 눈살을 찌푸 렸다.

"미로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 안 으로 들어가야 한다고요?"

"네,이곳이 출구를 담당하는 마 법진이라면,미로의 중앙에 핵을 담당하는 마법진이 있습니다. 원 래 그 핵에는 디스트로이어들이 접근하지 못하는데,이놈은 그대 로 핵까지 뚫고 들어가 마법진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작게 한숨 쉰 그가 말을 이었다.

"덕분에 미로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미로를 뚫고 나오는 놈이 나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막아 내 고는 있지만,이대로라면 사고가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 래서 제대로 된 마법사가 나타났 다는 말에 당신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 제이크는 왜 섬에 마 나 사용자가 버글거리고,마법에 뒤덮여 버렸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과한 경비라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제이크는 아니타를 돌아봤다.

"하지만,서포터는 제가 오는 것 을 반대한 것 아니었나요?"

장로급인 그녀가 반대했다면 그 일족 모두가 반대했을 게 분명했

다.

"제가 수습할 수 있을 거로 생각 했겠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무리 입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 했지만,아니타의 표정은 그의 말 과 달라 보였다.

얼마 전까지 은은한 미소만 보였 던 그녀였지만,지금은 조금 그녀 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 낌이 들었다.

그녀는 다른 것보다 눈앞의 남자 를 걱정하는 듯했다.

조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갔지만,

우선 눈앞의 일이 먼저였다.

"미로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도 길을 잃지 않나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미 로의 영향은 저 아래에 있는 디스 트로이어에게만 있습니다. 길은 계속 바뀌긴 하지만,우리는 방향 을 잃지는 않습니다."

"결국,길을 헤매는 괴물들이 득 실거리는 미로를 지나,핵에 도착 해서 마법진을 고쳐야 한다는 거 군요."

역시 쉬운 일은 없었다.

"저도 제법 마법을 잘 쓰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얼마 전에 혼 자 핵까지 다녀오기도 했으니까요."

그가 말하지 않아도 굉장한 마법 사라는 것은 제이크도 알 수 있었다.

마법 기술자에 가깝다고 하지만, 천 년간 살아남은 마법사가 보통 마법사일 리가 없었다.

대마도사처럼 무식하게 마나를 뿜어내지는 못하겠지만,실력 자 체는 눈앞의 서포터가 더 좋을 수 도 있었다.

제이크가 동의를 구하듯 제시카

를 바라봤지만,제시카는 어깨를 으쏙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는 이야 기였다.

그에 제이크는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괴물을 막기 위해 다시 살아온 인생이었다.

위험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이 정도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쉬 운 일이었다.

"목걸이는 확실히 쓸 수 있게 만 들어 주는 겁니다."

"하하,마나를 걸고 약속드리겠 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작은 마나가 그 의 심장에서 흘러나왔다.

마나를 걸고 약속까지 했으니, 제이크도 더는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쿠사 라를 선두로 일행이 한 명씩 동굴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이 동굴에서는 비행 마법 을 쓸 수 있었다.

먼저 떨어져 내린 두 서포터 마 법사들은 각기 비행 마법을 사용 해서 천천히 떨어져 내렸고,제이크도 한 손으로 제시카의 허리를

감고 곧장 비행 마법을 사용했다.

"처음인 것 같은데? 이렇게 날 껴안은 건."

"제가 처음이 아니라,남자한테 안긴 게 처음 아닌가요?"

장난 삼아 던진 두 사람의 농담 이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허리를 감은 손을 놓 을 수도 없었다.

결국,제이크는 말을 돌릴 수밖 에 없었다.

"그 날개 달린 괴물은 원래 어떻

게 생겼었나요? 전 지네로 변한 괴물하고,지네에 날개가 달린 것 만 보았는데……

호족과 주술사에게도 물어봤지 만,그들은 던전 밖으로 튀어나온 지네 때 모습만 봐서 원래 모습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제이크가 떠올리는 괴물 의 이미지는 마지막 봤던 날개 달 린 지네의 모습이었다.

"흠,어떻게 생겼냐 하면……

쿠사라는 떠올린 이미지를 마나 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앞에 마나로 만들어

진 형상이 나타났다.

제이크가 만들었던 영상 창들보 다는 떨어지기는 했어도 결코 쉬 운 마법이 아니었다.

하지만,제이크는 상대의 마법에 감탄할 겨를이 없었다.

쿠사라가 만든 작은 마나 상은 제이크가 전에 보았던 괴물이었다.

레이첼과 함께 레타니아 왕국의 협곡을 빠져나올 때.

뼈로,화석으로,시체로 보았던 괴물이었다.

"설마……. 고대 숲 균열의 괴

물?"

제이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졌다.

계속되는 혼란으로 엉망이 된 레 타티아 왕국.

하지만,이곳 고대 숲은 그런 혼 란이 느껴지지 않았다.

숲을 가로지르는 균열도 전과 다 르지 않았고,버려진 야영지도 수 풀에 뒤덮여 이제 다른 곳과 그리 차이 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괴물이 뛰쳐나와 흩어진 돌무더 기도 이끼에 덮여 있었다.

하지만,이상한 점도 있었다.

너무 조용했다.

고대숲치고 몬스터가 많이 설치 는 곳은 아니었지만,그래도 몬스 터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다니,이해 가 안 가는 일이었다.

크르르릉.

조용한 가운데 작은 으르렁거림 이 들려왔다.

그리고 흩어진 돌무더기 사이에

서 검은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해가 환히 비추는 낮이었지만, 빛은 그림자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니,그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몸 전체가 검은 생명체였다.

바로 박쥐 같은 형태에 소의 발 을 한 검은 몬스터였다.

얼마 전에 나온 괴물과 비슷한 모습을 한 몬스터는 날개를 활짝 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자신과는 조금 달랐지만,동료의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괴물이 날아가는 방향에는 히베

루니아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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